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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우리 성당 제대 이야기: 전주교구 여산성지성당 - 순교자들을 현양하는 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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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9-26 ㅣ No.751

[우리 성당 제대 이야기 – 전주교구 여산성지성당] 순교자들을 현양하는 제대

 

 

교회의 현대화를 모색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는 교회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가장 실제적인 획기적 변화는 신자들을 등진 채 십자가상을 바라보며 미사를 올리던 사제들이 신자들을 바라보며 미사를 집전하게 되는 전례 개혁이었다. 이는 제대가 식탁의 의미로 강조되며 교회 공동체를 식탁 공동체로 표현하게 된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성당 제대는 동쪽을 향해 벽에 붙어 있어서 사제만 제대를 보며 미사를 드렸다. 신자들은 제대를 거의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미사 전례에 참여했다. 지금도 공의회 이전에 설립한 성당에 가면 당시 사용하던 제대, 곧 ‘전통 제대’를 볼 수 있다.

 

 

전주교구 제2의 순교 성지에 자리한 성당

 

전북 익산시 여산면은 호남의 관문으로, 병인박해(1866년)의 연속인 무진박해(1868년) 때 수많은 신자가 신앙을 지키고자 목숨을 바친 곳이다. 「치명일기」에 공식적으로 기록된 순교자는 25명, 하지만 이름을 알지 못하는 순교자는 훨씬 많다고 전해진다.

 

당시 여산에는 사법권을 지닌 부사와 영장이 상주하며, 고산, 금산, 진산 등지에서 붙잡는 여산 관아로 이송된 신자들이 여산 곳곳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처형되었다. 여산 숲정이에서는 참수형, 배다리(여산교)에서는 수장형이 이뤄졌으며, 장날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터에서는 교수형이 집행되었다. 동헌 앞마당(백지사터)에서는 손을 뒤로 묶고 얼굴에 물을 뿌린 뒤 그 위에 벽지를 여러 겹 붙여 질식사시키는 백지사형이 거행되었다. 또 뒷말, 기금터, 옥터 등 여산면 전체가 순교 성지라 할 수 있다.

 

전북 익산시 여산면 영전길 14, 이곳에 순교자를 기념하는 여산성지성당(주임 박현웅 미카엘 신부)이 있다. 여산의 순교 성지들이 내려다보이는 나지막한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성당은 1958년 나바위성당에서 분리되어 1959년에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순교 성지의 거룩한 품위를 위한 치유의 제대

 

여산성지성당에는 무진박해 순교 150주년과 본당 설립 60주년(2018년)을 맞아 2019년 건립한 ‘순교자의 모후 제대’가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전통 제대를 구현한 제대는 높이 7m, 폭 4m로 웅장하고 화려하며 아름답고 이색적이다.

 

순교 성지에 어울리는 품위 있는 제대를 바랐던 당시 주임 박상운 토마스 신부는 “제대를 통해 순교자 영성도 드러내고 제대가 가진 의미도 묵상하게 하고 싶었다.”고 건립 이유를 밝혔다.

 

제대의 기본 형태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주교좌 성당 제대에서 가져왔다. 이 성당 제대는 1948년 무렵 파괴되어 지금은 사진으로만 남아 있다.

 

박 신부의 설명에 따르면 제대에는 여산의 일곱 순교지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일곱 개의 성상이 놓였다. 맨 위에는 손을 활짝 펼치신 성부와 비둘기 형상의 성령이 순례자들을 축복한다. 성자이신 그리스도는 미사 제대 옆에 승천하는 모습의 십자가로 서 있다. 성부 양쪽에서는 천사들이 손을 모은 채 하느님을 찬미하며 기도를 전구한다.

 

그 아래 가운데에 여산 성지의 주보인 ‘순교자의 모후’ 성모상이 자리하고, 좌우에 베드로 성인과 바오로 성인이 신앙의 두 기둥으로 교회를 떠받친다. 본당 설립 때부터 함께한 성모상은 맞잡은 두 손을 아래로 내렸는데, 박해 때 손이 묶여 처형장에 끌려가는 순교자들의 고통을 함께 겪는 모습이다. 성모상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순교자들이 가게 될 곳을 일러 준다. 그 아래 일곱 개의 조각상은 성모칠고를 표현한 것으로 여산의 일곱 순교지를 뜻하기도 한다. 특히 가운데 네 번째 통고는 십자가의 길에서 예수님과 성모의 만남을 성광과 함께 표현했으며, 그 안쪽에 감실이 놓여 있다.

 

가장 아래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제대를 표현했는데 성지의 역사를 드러낸다. 가운데 십자가 형상 안에 김대건 신부의 유해와 구 제대의 성석이 놓여 있다. 현재 사용하는 제대는 이 제대와 같은 형태다.

 

여산성지성당의 순교자의 모후 제대는 여산 성지를 찾는 순례자들이 마지막까지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죽음마저 따랐던 순교지들의 삶과 영성을 묵상하게 한다.

 

[경향잡지, 2020년 9월호, 글 · 사진 김민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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