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토마스 머튼의 영성 배우기22: 기도함으로써 기도를 배워간 머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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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12-01 ㅣ No.1343

[세상과 소통한 침묵의 관상가 토마스 머튼의 영성 배우기] (22) 기도함으로써 기도를 배워간 머튼


“자기 비움과 겸손으로 기도하라”

 

 

토마스 머튼의 기도 여정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식별이 필요할 때, 먼저 기도해야 함을 보여 준다.

 

머튼은 자신의 과거 방탕했던 시간으로 말미암아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 입회를 거절당했다.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뉴욕 할렘에 있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시설인 ‘우정의 집’과 켄터키주에 있는 겟세마니 트라피스트 수도원을 보여 주셨다. 앞으로 둘 중 어디에서 하느님을 위해 살아야 할지 고민하던 머튼은 자신이 영어 강사로 일하고 있는 성 보나벤투라 대학의 아기 예수의 데레사 소성당에 기도하러 갔다. 그는 애원하며 “제발 저를 도와주십시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대로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당신은 아실 테지요? 저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길을 보여 주십시오”(「칠층산」 739쪽)라고 기도를 바쳤다.

 

스스로 그것이 ‘어떤 증표를 청하는 그릇된 기도’라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그는 식별을 위한 기도를 애절한 마음으로 바치고 있었다. 그런데 홀연, 마음속에서 겟세마니 수도원의 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종소리는 내가 어디에 속하는지를 알려주어 마치 나를 집으로 부르는 것 같았다…. 이제까지의 모든 의심과 주저와 의문이 사라지고 내가 속한 트라피스트 수도회에 가겠다는 결심이 더욱 굳어졌다.” (「칠층산」 740쪽)

 

물론, 머튼과 같이 우리의 식별을 위한 기도에 즉각적인 응답이 없을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냐, 저것이냐” 혹은 “두 가지 선”이 겹쳤을 경우 우리는 식별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먼저 하느님의 뜻을 찾기 위한 기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많은 경우 기도를 통해 결정했을 때, 그 결과에도 초연할 수 있는 은총이 주어진다.

 

1941년 12월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입회한 그는 이제 세상과 분리되어 오롯이 하느님께 집중하는 ‘기도의 사람’이 되었다. 그는 매일 성무일도를 바치고, 미사에 참여했으며, 수도원에서 가르쳐 주는 다양한 전통적인 기도 방법들을 익혔다. 특히 그는 공동 기도와 미사의 은총에 감동하였다.

 

“이것은 나에게 신비다. 이 여러 미사들(필자 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이었기 때문에 사제들은 개별적으로 미사를 드렸다)의 침묵과 장엄과 존엄과 열렬한 기도 분위기에 압도되어 나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여기서는 평범하고 통상적인 전례(그러나 희생으로 단련된 영혼들에 의해서 합당한 공경으로 집전되는 전례)를 통해서도 은총이 밀물처럼 나를 덮쳐 누르고 진리가 그 엄청난 힘으로 나를 압도했다.” (「칠층산」 660쪽)

 

그런데 이러한 수도원에서의 전통적인 기도의 삶은 그의 더 깊은 고독을 향한 갈망과 관상적 체험을 통해 더 성장해 나아갔다. 그 과정에서 그는 모든 기도, 가령 염경(소리) 기도, 성독(Lectio Divina), 전례적 기도, 묵상과 명상 기도 등은 관상의 은총을 받기 위한 도구요 방법들이기 때문에 기도에 대한 불필요한 구분과 형식주의를 피해야 함을 깨닫게 된다.

 

그는 1964년 11월 12일 엣타 굴릿(Etta Gulick)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저는 믿음과 단순성 안에서 홀로 하느님과 함께 있는 자유와 평화를 그들이 (수련자들) 사랑하게 되도록 힘쓸 것입니다. 또한, 모든 쓸모없는 자신의 힘으로 얻으려는 수고와 모든 형식주의에 대한 노력이나 집중을 줄이고, 모든 불필요한 구분을 없애고자 합니다. 그릇된 방법 안에서 공적인 기도의 삶의 장치들에 대해 심각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공동체 안에 그리스도의 거룩한 현존의 장소로서 단순한 믿음 안에서 거행되는 전례를 저는 사랑합니다.)” (The Hidden Love of Love, 368)

 

또한,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가 기도를 통해 성취하려는 것을 넘어 오히려 기도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비워내고 ‘전적인 가난’과 ‘아무것도 아님’의 실질적인 체험을 이끌어주는 십자가와 진정한 겸손으로 기도해야 함을 깨닫게 된다.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12월 1일, 박재찬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부산 분도 명상의 집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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