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강론자료

2018-09-30.....연중 제26주일 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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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8-09-29 ㅣ No.2269

연중 제26주일 (나해)

민수기 11,25-29         야고보 5,1-6       마르 9,38-48

2018. 9. 30. 이태원

주제 :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는 세상에서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물으면, 어떤 대답이 가능할까요? 말로 한다고 이런 행복이 우리에게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행복을 위해서 생각할 요소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의 주변을 둘러보면, 욕심을 가진 사람이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거나 생각하는 개인은 자신이 욕심을 가졌다고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생각으로 자신은 다른 사람보다 낫게 산다고 말하고, 남보다 잘사는 것이니, 자신을 통해서는 세상에 문제가 될 일이 없다고 말하기도 쉽습니다.

 

평소에도 내가 늘 봐왔던 대로 행동하던 사람이 평소와는 달리 좋은 모습을 보이면, 내가 질투해야 옳을까요? 아니면 특별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야할까요?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이 한쪽으로 치우친 행동을 했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제자들은 자기들만의 우물에 빠져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자기들의 행동이 옳은 것이라고 예수님에게 자랑했는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행동을 다르게 판단하셨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삶은 작용과 반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작용과 반작용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고, 앞의 행동에 따라 다음의 행동이 따라오는 모양인데, 누군가가 내게 한 작용에 따라 내가 드러낸 반작용이 옳은 것이라고 누가 말해주겠습니까?

 

구약의 뛰어난 인물이었던 모세도, 하느님의 힘을 행동으로 드러내는 사람들을 질투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의 힘이 드러나던 일을 질투한 사람의 무리에는 훗날에 후계자가 된 여호수아도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는 일을 인간의 생각으로 막지 말라고 한 모세의 선언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겠습니까?

 

이렇게 이론적인 말을 하면, 우리는 세상의 일은 다 안다고 말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움직이는 것이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는 것인지 그 방법을 묻습니다. 질문하는 사람이 몰라서 묻는 것이라면 다행이지만, 그 대답을 알면서도 묻는 것이라면 어떤 판단이 가능하겠습니까? 하지만 이 일은 사람의 생각과 마음으로 먼저 움직이는 일이기에 그 판단이 쉽지는 않습니다.

 

야고보사도가 쓴 편지의 말씀으로 들은 두 번째 독서는, 세상의 부유한 사람들을 하나로 몰아서 교육하는 내용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말하기가 쉬운 판단의 하나는, 신앙에서는 왜 부자인 사람을 멀리하고 미워하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분법의 세상에 빠져 살기 때문에 물을 수 있는 질문입니다. 야고보사도가 부자인 사람들을 무조건 잘못된 사람이라고 욕했다고 생각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세상일을 대할 때, 가난한 사람들이 만드는 잘못의 합계보다는 부자로 사는 한 사람이 만드는 잘못의 분량이 클 수도 있다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오늘 말씀에서도 언급하지 않은 신앙은 가난한 사람들을 무조건 편들고 칭찬한다는 생각도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선악을 대한다면서, 현실모습이 부자이거나 가난하다는 것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게 되면, 드러나는 모습이 부자라고 욕하는 대상으로 비난하고, 드러나는 모습이 가난한 사람이라고 옳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첫째 목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가장 먼저 도움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는 행동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세상에서 의롭고도 올바른 사람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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