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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십계명 따라 걷기: 여덟째 계명 -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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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9-22 ㅣ No.2050

[십계명 따라 걷기] 여덟째 계명 :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



진실의 길


공약(公約)과 공약(空約) - 마르 6,17-29(세례자 요한의 죽음) 묵상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국민의 종이 되고자 나선 정치 지도자들이

국민을 위한 공약(公約)을 내걸고

이 공약에 힘입어 국민의 대표가 된 후에는

이를 성실히 이루어 나가는 한에서 말입니다.

 

만일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어도

그 누구도 항의하지 못하거나

 

정당하게 항의하는 사람을

현실 논리로 짓밟거나

 

‘정치가 다 그런 것이지.’라며

두리뭉실하게 넘어간다면

 

그리하여 일단 선거에서 이기려고

공약(空約)을 남발하는 것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다만 국민을 바보로 여기는

우민주의(愚民主義) 국가일 뿐입니다.

 

정치 지도자라면 국민을 위해서

꼭 해야 할 약속이 있고

해서는 안 될 약속이 있습니다.

 

꼭 해야 할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하고

혹시 해서는 안 될 약속을 했다면

지키면 안 됩니다.

 

다수를 위한

공약(公約)을 공약(空約)으로

바꾸기를 일삼는 정치 지도자는

 

소수 특권층을 위해서

해서는 안 되는 것을 약속하고

이를 지키려고 혈안이 된 정치 지도자는

 

불의한 정치 지도자입니다.

마치 헤로데처럼 말입니다.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들 중에

헤로데 같은 사람이 없다고 믿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너무나도 슬프고 화가 납니다.

 

※ 모든 약속에는 사랑, 정의, 선(善)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과 인간의 말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요한 1,1-3).

 

하느님은 말씀이시고, 말씀하시는 분이시며, 말씀으로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만물의 이름을 지으신 분이십니다(창세 1장 참조). 하느님의 말씀은 생명을 창조하시는 말씀이요, 창조하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시는 말씀, 곧 진실의 말씀입니다. 말씀이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드시고 대화의 상대방으로 삼으셨습니다(창세 1-2장 참조). 그러므로 하느님을 닮은 사람은 말하는 존재이고, 유형무형의 말을 통해서 사람임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사람이 하는 모든 말이 참된 말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말씀처럼 생명을 보듬는 살림의 말, 나를 나답게, 너를 너답게, 그리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진실의 말만이 참된 말입니다. 이와 반대로 자신을 살리고자 다른 이를 죽이는 말, 자신을 감추려는 위선의 말, 진실을 왜곡하는 말, 헛소문을 퍼뜨리는 말 등은 이 말의 피해자들뿐만 아니라 말하는 사람을 파멸시킵니다. 여덟째 계명은 바로 이러한 말을 삼가라는 요청입니다.

 

 

살리는 말과 죽이는 말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루카 5,10). 어부 시몬은 베드로 사도가 됩니다. “나를 따라라”(5,27). 예수님께서 세리 레위를 부르시자, 레위는 새 삶을 시작합니다. “손을 뻗어라”(6,10).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7,14).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7,48).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8,48).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 8,11). 예수님께서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말씀을 통해 어둠에 갇혀 있던 사람들을 빛으로 인도하시고, 죽음의 늪에서 헤매던 사람들을 살리셨습니다.

 

“나봇은 하느님과 임금님을 저주하였습니다”(1열왕 21,13). 불량배 두 사람이 사주를 받아 거짓 증언을 합니다. 그리하여 나봇은 처참하게 돌에 맞아 죽습니다. “없애 버리시오. 없애 버리시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요한 19,15). 권력자들의 음모에 부화뇌동한 군중이 소리칩니다. 그리하여 무죄하신 예수님께서 참혹하게 십자가에 매달리십니다.

 

말이라고 다 같은 말이 아닙니다. 진실을 밝혀 살리는 말이 있고, 진실을 감춰 죽이는 말이 있습니다. 말 덕분에 사람이 살고, 말 때문에 사람이 죽습니다. 조안 키티스티 수녀는 「십계명 마음의 법」 (성찬성 옮김, 성바오로)에서 말의 이중성을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이야기합니다.

 

“말은 신을 닮은 까닭에 신성하다. 말이 우리네 세상을 창조한다. 말은 새 생명을 낳기도 하고 데려가기도 한다. 말은 약속하고 보증하는가 하면, 세상을 모진 곳으로 만들기도 한다. 말은 신뢰를 만들고 공동체를 이루는가 하면, 그것을 파괴하기도 한다. 실로, 말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의 인간 유형으로 만든다. 진실하거나 거짓되거나, 신을 닮거나 닮지 않거나, 어떤 국민을 하나의 국민으로 만들어 가는 말을 거들거나 무지르거나 하는 인간으로 만들어 간다.”

 

 

언론, ‘죽임의 칼날’인가 ‘살림의 밑거름’인가

 

“너희는 헛소문을 퍼뜨려서는 안 된다. 악인과 손잡고 거짓 증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너희는 다수를 따라 악을 저질러서는 안 되며, 재판할 때 다수를 따라 정의를 왜곡하는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또 힘없는 이라고 재판할 때 우대해서도 안 된다”(탈출 23,1-3).

 

여덟째 계명은 특별히 법정, 언론, 선거 등 공적 영역에서 발설되는 말에 대해서 신중해야 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공적 영역에서 잘못 발설된 말은 누군가에게 더욱 치명적이기 때문입니다. 여러 공적인 말 가운데 언론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대중 매체의 세계에서는 흔히 이데올로기, 이익 추구, 정치적 통제, 집단 간의 경쟁과 알력, 기타 사회악들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분야 고유의 어려움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간추린 사회 교리」, 416항).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이 그러했듯 불의한 권력은 언론을 탐합니다. 거짓 정보를 흘리고 언론을 조작하고 통제합니다. 불의한 언론은 불의한 권력에 빌붙어 권력의 단맛을 즐깁니다. ‘선을 악이라, 악을 선이라 말하도록 강요하는 이’, 이들과 한패가 되어 ‘기꺼이 선을 악이라, 악을 선이라 말하는 이’ 모두 하느님을 닮아 존엄한 사람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를 훼손시킵니다.

 

“대중 매체를 통한 정보 전달은 공동선을 위한 것”이고 “사회는 진실과 자유와 정의와 연대 의식에 근거한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494항).하지만 불의한 권력과 이에 기생하는 언론은 거짓으로 가득한 왜곡된 정보를 주입함으로써 자유 의지에 따른 사람들의 올바른 판단을 흐리게 하고, 이로 말미암아 개인과 사회에 치명적인 결정을 다수결의 논리로 관철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진실의 길을 걸어요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사건 이후에 우리의 뇌리에 각인된 구호입니다. 진실을 감추려는 이들로 말미암아 무고한 이들이 희생되고 고통받았습니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진실을 밝히려는 선한 이들의 지난한 투쟁은 서서히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루카 8,17)입니다.

 

진실은 살리지만, 거짓은 죽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벗님들, 우리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힘차게 진실의 길을 걸어요, 십자가의 여정에서 최고 의회와 총독의 검은 의도에 맞서 힘차게 진실을 증언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 상지종 베르나르도 - 의정부교구 신부. 교구 제8지구장 겸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8년 9월호, 상지종 베르나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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