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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작가를 감동시킨 작품: 리옹미술관에서 만난 여인의 얼굴 메듀사,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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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5-06 ㅣ No.538

[작가를 감동시킨 작품] 리옹미술관에서 만난 <여인의 얼굴 '메듀사', 빛과 그림자>

 

 

<여인의 얼굴 ‘메듀사’, 빛과 그림자>, 1923년, 알렉세이 폰 야우렌스키(Alexei von Jawlensky, 1864-1941), 마분지에 유채, 42x31cm, 리옹미술관, 프랑스.

 

 

작년 11월 초 늦가을의 정취가 한창일 무렵, 저는 프랑스 중부에 위치한 산업도시 리옹(Lyon)에 4일간 머물렀습니다. 유럽 벨기에, 프랑스 문화권에서 성장한 저에게 프랑스는 매우 친숙한 나라지만, 어찌 미루다 보니 이번이 리옹의 첫 방문이었습니다. 15세기에 시작된 직물산업(비단)의 중심지이자 폴 보퀴즈(Paul Bocuse)라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요리사의 본고장 등 경제와 문화가 균형있게 발전한 도시 리옹의 발견은 이번 프랑스 여행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 중 하나였습니다.

 

이들이 정신문화적으로 풍족해서일까요? 리옹 시를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과 마주치면서 길을 묻고 귀찮게 하며 질문을 쏟아내는 동양 관광객에게 조금도 귀찮은 기색을 보이거나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하나같이 밝은 미소로 친절히 대해준 리옹 시민의 모습은 아름다운 도시 리옹의 매력보다도 더욱 인상 깊게 남아 있습니다. 이같이 리옹 시민의 밝은 에너지를 듬뿍 받은 나의 리옹 체류는 유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리옹 시 중심부에는 서울 남산과 같이 높은 언덕이 있고, 그 정상에는 성모에게 봉헌된 성당인 ‘푸르비에르 성당’(Basilique de Fourvière)이 우뚝 서있습니다. 성모의 보호와 축복 아래 언덕 양편으로 손(La Saône)과 론강(Le Rhône)이 흐르고 있어 리옹 시의 고풍스러운 운치와 매력을 더해줍니다. 리옹은 다양한 미술관, 인형극 극장, 맛있는 레스토랑 등 다채로운 ‘프랑스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인데, 그중 매우 인상 깊었던 리옹 미술관(Musée des Beaux-Arts de Lyon)을 소개하고 자 합니다.

 

고대이집트 유물에서 중세 및 20세기에 이르는 방대하고 아름다운 컬렉션을 자랑하는 이 미술관이 특히 놀라웠던 점은 바로 그 건축물이 다른 미술관과 차별화된 기품 넘치면서도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치형의 정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정원 중앙에 분수대가 나타나고, 그 뒤로 미술관 입구가 등장합니다. 직사각형의 안뜰은 푸른 잔디와 나무, 그리고 조각상들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고, 여기저기 놓여있는 벤치는 일상에 지친 시민 모두에게 잠시나마 쉬어가라고 환영하며 기다리고 있는 듯 느껴졌습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벤치에 앉아 책을 읽으며 가을 풍경을 만끽했을 텐데…” 하는 즐거운 상상을 멈추고, 설레는 마음으로 미술관 안으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이 미술관의 역사를 읽어본 후에야 이 미술관이 특별하고 매력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17세기에 세워진 프랑스 왕립 성 베드로 수녀원(Abbaye Royale des Dames de Saint-Pierre) 건물이었던 것입니다. 도미니코 수도회 소속인 이 수녀원은 프랑스 왕족 및 귀족 여성들이 주로 머물렀던 수녀원으로 사용되었는데,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 굶주림에 시달리던 시민들에 의해 종교인과 귀족의 재산이 몰수되고 국가 소유로 통합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1793년 이 수녀원 건물은 시민을 위한 ‘미술관’으로 개조되어 모두를 위해 ‘열린 공간’으로 재탄생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같이 프랑스에서 미술관은 벌써 18세기 말에 탄생하였습니다. 참으로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프랑스를 일컬어 문화선진국이라고 하는 것은 국민 다수의 삶 속에 ‘예술’이 들어온 역사가 이렇게 오래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예술이 소수의 지식층 또는 부유층의 전유물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만연한 슬픈 현실을 생각하면 매우 안타깝습니다. 그러면서도 ‘미술관’이라는 공간에 대한 인식이 아직 우리 삶 속에 깊이 침투하지 못한 것은 짧은 역사 때문이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 미술관에서 놀란 점은 우아미가 돋보이는 건축물만이 아니었습니다.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우수한 컬렉션과 훌륭한 작품 디스플레이, 그리고 활발하게 진행되는 교육 프로그램 등 모두가 경탄스러웠습니다. 제가 반나절 이 미술관에 머무는 동안 관람객들의 모습을 살펴보니 이는 시민 다수가 즐겨 찾는 매우 익숙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옛 수녀원 건물의 특징과 분위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 전시실은 매우 훌륭한 조각 작품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이 높은 천장의 아름다운 공간은 바로 수녀원 소속 성당이었다고 합니다.

 

미술관의 수많은 걸작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을 들자면, 1923년 그려진 <여인의 얼굴 ‘메듀사’, 빛과 그림자>라는 다소 난해하고 추상적인 제목의 작품을 손꼽고 싶습니다. 1917년 러시아 붉은 혁명의 소용돌이에 고통스러워한 화가 야블렌스키는 일찍이 자유를 찾아 서유럽 독일과 프랑스로 건너와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하였습니다. 작품 제목을 치명적인 죽음으로 이끄는 존재인 ‘메듀사’이자 ‘빛과 그림자’라고 명명한 것은 그가 추구하는 예술철학, 즉 빛과 그림자, 선과 악 등의 절대적인 가치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야수파(Fauvisme)를 연상시키는 순수하고 강렬한 색채와 형태로 표현된 이 그림은 마치 화면의 깊은 곳으로부터 은은히 뿜어 나오는 빛, 즉 신비롭고 종교적인 기운이 배어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야수파적인 특징이 두드러지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이는 그의 정신문화적 뿌리인 러시아의 ‘이콘(Icon)’을 연상시키는 것입니다. 이는 야블렌스키가 고안해낸 ‘20세기형 현대 이콘’인 것입니다. 오색찬란한 빛으로 빛나는 살아있는 얼굴, ‘천상과 지상계’의 ‘빛과 그림자’의 신비를 반영하는 신성한 얼굴입니다. 그 시대에는 그 시대에 맞는 언어로 표현된 예술작품이 만들어집니다. 이는 바로 예술을 일컬어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라 하는 이유입니다.

 

프랑스 리옹미술관 방문은 저의 21세기형 미술관에 대한 생각을 더욱 굳혀주는 멋진 표본을 제시해줌과 동시에 결정적인 자극을 주었습니다. 아직 다수의 한국시민이 느끼는 ‘미술관’에 대한 인식은 그 문턱이 너무 높고 멀게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문화를 향유’하는 정서적 여유의 부족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낮고 열린 자세로 문턱을 낮춘 열린 공간’이 거의 부재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우리 가톨릭교회에서 ‘열린 소통의 공간’인 미술관을 만들어 신자들에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 모두에게 제공해줌으로써 진정한 ‘정신적 휴식처’를 제공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생각합니다. 리옹의 수녀원 건물이 멋진 미술관으로 태어났듯이, 명동의 계성여고와 같이 고유의 역사성을 가진 건축물이 미술관으로 탄생한다면, 그 역사적 가치가 배가됨은 물론 진정 살아있는 역동적인 공간으로 기능할 것입니다. ‘돈’이 모든 가치판단의 척도가 되어 버린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회가 진정 내어주는 모습의 본보기를 보여준다면, 이보다 더 값진 하느님 사랑의 실천이 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평신도, 2018년 봄호(VOL.58), 박혜원 소피아(서울가톨릭미술가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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