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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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신학ㅣ사회사목

[가정사목] 가정, 세상을 위한 복음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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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1-01 ㅣ No.1070

가정, 세상을 위한 복음이 되다

 

 

하느님께 기도하며 서로를 사랑하고자 노력하는 그리스도인 가정은 교회와 사회의 건강한 기초가 된다. 예수님도 요셉과 마리아와 함께 성장했고, 초대교회도 각 지역 가정교회의 헌신 속에서 뿌리 내렸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폐해가 심각해지는 오늘날, 세상에 희망을 주는 가정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어둡고 추운 12월의 겨울밤, 사람들은 2000년 전 팔레스티나 베들레헴의 작은 외양간에서 태어난 한 아기의 출생을 기념하고 기뻐한다. 그 아기는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주기”(이사 61,1)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다. 그의 생명은 어둠을 밝히는 참 빛이 되었다(요한 1,4-9 참조). 마리아는 예수님을 성령으로 잉태할 것이라는 천사의 알림을 받았다(루카 1,26-38 참조). 예수님은 예루살렘 북쪽, 갈릴레아 산간지역인 나자렛에서 요셉과 마리아에게 순종하며 자라났다. 이곳은 바로 예수님이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까지, 하느님의 뜻을 잘 깨닫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준 신앙의 요람이었다. 이들은 혈연을 뛰어넘어 하느님의 뜻이 이 세상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예수님은 이 가정에서 점점 지혜가 충만해졌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를 받았다(루카 2,40 참조).

 

 

가정, 신앙의 요람

 

이집트땅, 종살이 하던 집에서 하느님은 당신의 종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내셨다. 모세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자손들이 지켜야 할 계명과 규정들을 알려주었다.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며,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4-5)라는 계명이었다. 신앙의 선조인 이스라엘 백성은 이 말을 마음에 새겨 자녀들을 교육하였다. 자녀들이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 약속의 땅에서 오래 살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칭송하는 다윗 왕의 할아버지 오벳도, 이방 여인 룻의 아름다운 신앙을 통해 태어났다. 모압 여인 룻은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고 자신의 신과 겨레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가지 않았다.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님이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룻 1,16)”라며 시어머니를 따라 유다 땅 베들레헴으로 갔다. 시어머니를 향한 그녀의 선행은 죽은 남편의 친족 보아즈에게 알려졌고, 그들은 신앙 안에서 새로운 가정을 이루었다.

 

마카베오 하권에 나오는 “한 어머니와 일곱 아들의 순교 이야기”는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믿음을 권고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녀의 아들들은 모세의 율법에 금지된 돼지고기를 먹으라는 강요를 받았지만 거부했다. 어머니는 일곱 아들이 단 하루 만에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주님께 희망을 두고 있었기에 아들들의 믿음을 평소와 같이 북돋울 수 있었다(2마카 7장 참조). 이 이야기들은 세속적 가치 앞에서 점점 중요성을 잃어가고 있는 오늘날 가정의 신앙교육을 되돌아보게 한다.

 

교회는 가정 안에서 신앙의 전수가 중요함을 알려준다. “흔히 신앙에 대해 무관심하며 적의까지도 품는 이 세상에서, 이 시대의 신앙인들의 가정은 활력이 넘치고 빛을 발하는 신앙의 요람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정에서 부모들은 말과 모범으로 자기 자녀들을 위하여 최조의 신앙 선포자가 되어야 하며, 각자의 고유한 소명을 특별한 배려로 육성하여야 한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656항 참조).

 

 

가정교회, 세상을 위한 희망

 

프란치스코 교황은 “네 집 안방에는 아내가 풍성한 포도나무 같고 네 밥상 둘레에는 아들들이 올리브 나무 햇순들 같구나”(시편 128,3)라는 말씀을 인용하며 ‘주님을 경외하는 가정’의 모습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주님을 의지하는 가정의 생활공간은 가정교회로 바뀔 수 있음을 알려준다. 예수님도 태어나자마자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신하였고, 아픈 사람이 있는 가정의 고통, 집을 떠난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기다림 등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모든 가정의 기쁨과 고통에 함께 하며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을 약속했다(「사랑의 기쁨」, 14-15항; 21-22항 참조).

 

예수님을 믿고 기도하는 가정은 교회가 된다. 초대 교회 때부터도 교회의 핵심을 이룬 이들은 흔히 “온 집안이 함께” 신앙을 받아들인 가정이었고, 이들이 사는 곳이 바로 교회의 모임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되었다(사도 16,40; 18,8, 1코린 1,11참조). 직계가족을 포함하여 종과 일꾼, 때로는 소작인과 동업자들까지 포함하는 이 대가족은 신자들의 신앙유지와 사도들의 선교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가정교회는 콘스탄티누스 황제(272~337년)에 의해 313년 그리스도교가 공인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우리나라의 순교자들도 박해를 피해, 가족들과 숨어살며 신앙을 지키기 위해 함께 기도하였다.

 

18세기부터 시작된 산업혁명은 대가족 제도를 해체했다. 과학과 정보통신기술의 혁명은 다양한 직업과 여성의 사회진출을 낳았고,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21세기 핵가족의 형태마저도 위협하고 있다. 발터 카스퍼 추기경(Walter Kasper, 1933년~)은 이러한 시대에 가정 교회가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우리는 새로운 종류의 대가족을 이루어야 합니다. 가족과 같은 이웃과 친구들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둘이나 셋이 모인 곳에 주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마태 18,20). 가정교회는 공동체의 영성으로 서로를 받아들이며 사랑과 용서를 나눕니다. 이러한 가정은 세상에서 누룩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발터 카스퍼 추기경의 가정에 관한 복음」, 바오로딸, 2016년).

 

자녀들은 가정을 통해 생애 처음으로 사랑과 신앙을 익힌다. 서로를 위해 자신을 온전해 내어주며 한 몸을 이루는 부부는, 이러한 나눔과 일치를 자녀들과도 함께 해야 한다. 자녀들도 효성과 신뢰를 부모에게 드린다. 가정은 타인에 대한 배려를 배우고 공동체의 요구와 자신의 뜻을 조화시키는 곳이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인 가정은 무엇보다 먼저, 주님의 이름으로 함께 기도해야한다.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온 가족이 모여 말씀을 읽고 자신의 고민을 나누면 깊은 친교를 체험할 수 있다. 나아가 함께 전례에 참여하여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고, 이웃과 어려움을 나누어갈 때 가정은 세상을 위한 기쁜 소식, 희망을 나누는 복음이 될 것이다.

 

[외침, 2017년 12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도희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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