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레지오ㅣ성모신심

허영엽 신부의 나눔: 이 세상에서 할 일이 있다,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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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1-06 ㅣ No.547

[허영엽 신부의 ‘나눔’] “이 세상에서 할 일이 있다, 나도!”

 

 

“내가 사흘간 볼 수 있다면… 첫날에는 나를 가르쳐준 고마운 앤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 그 분의 얼굴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산으로 가서 아름다운 꽃과 풀과 빛나는 노을을 보고 싶습니다. 둘째 날에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먼동이 터오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저녁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별을 보겠습니다. 셋째 날에는 아침 일찍 큰 길로 나가서 부지런히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표정을 보고 싶습니다. 점심때는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저녁에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쇼윈도의 상품들을 구경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 사흘간 눈을 뜨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헬렌 켈러 ‘사흘 동안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 중에서>

 

헬렌 애덤스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 1968) 여사는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 삼중 장애를 지닌 장애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신체적 장애와 그에 따른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의 의지로 큰 성공을 거두었기에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본래 아무런 장애도 없었던 헬렌 켈러는 태어난 지 만 2년도 되지 않아 위와 뇌에 심한 출혈이 생겼고, 그 휴우증으로 시각과 청각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운명은 그녀를 어둠 속에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헬렌이 7세 되던 해, 평생의 동반자가 되어 준 앤 설리번을 만나게 됩니다. 사실 앤 설리번도 어렸을 때 눈병을 앓아 시력이 매우 나빠졌고, 이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행히 시력을 회복한 후에도 평생 실명의 불안과 싸우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앤 설리번의 체험은 헬렌과 함께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앤 설리번은 엄마가 아기에게 말을 걸듯이 끊임없이 헬렌의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말을 써 주었습니다. 그렇게 언어를 배우기 시작한 헬렌은 1904년 래드클리프 대학을 우등생으로 졸업했고, 3중장애의 몸으로 대학 교육을 마친 세계 최초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런 성과를 얻기까지 앤 설리번 선생님의 도움은 절대적이었습니다.

 

또한 헬렌 자신도 도움에만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깨어 있는 동안, 1분 1초를 아껴가며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헬렌은 스스로 “하루 동안 살고 마치는 하루살이처럼 일평생 나의 생활은 매우 바빴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삶에 대해 “무엇이든지 강력하게 바라는 마음만 있다면 반드시 어떻게든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고 회고하였습니다.

 

- 키릴 악셀로드 신부.

 

 

몇 년 전 우리에게 헬렌 켈러를 떠올리게 하는 한 성직자가 우리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시청각장애인 가톨릭 사제인 키릴 악셀로드 신부님입니다. 그는 지난 2015년, 자신이 직접 쓴 자서전 ‘키릴 악셀로드 신부’의 국내 출판을 기념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내한 기간 내내 강의와 인터뷰 등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본래 키릴 악셀로드 신부는 1942년 남아프리카에서 유다인 집안의 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독실한 유다인 부모는 당연히 그가 훌륭한 랍비가 되기를 소망했지만, 그는 세 살 때 선천성 청각장애 진단을 받게 됩니다. 이후 가톨릭 계열 농아학교에서 수화를 배우고 언어훈련을 받았습니다. 특별한 체험을 계기로 가톨릭 신자가 되었고, 이어 신학교에 진학해 마침내 1970년에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내가 가진 장애는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도록 하느님이 주신 선물

 

물론 사제가 된 그가 넘어야 했던 장벽은 장애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정통 유다교 가문 출신에서 가톨릭으로 개종을 하고, 심지어 사제가 된 것은 가족들과 공동체가 받아들이기 힘든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변의 몰이해와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사제가 되어 세계 각지에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사목 활동을 왕성하게 펼쳤습니다.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잃었던 그는 불행하게도 지난 2000년에 시력마저 완전히 잃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키릴 악셀로드 신부는 장애에 굴하지 않고 종교와 지역을 초월하여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목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한국을 방문했던 키릴 악셀로드 신부는 ‘이 세상에 할 일이 있다. 나도!’ 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가졌습니다. 그는 강의에서 “눈마저 보이지 않게 되자 도대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는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내 인생에 ‘아주 특별한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자 하느님께서는 제게 인생의 ‘새로운 문’을 보여 주셨습니다.”라고 겸손하게 말했습니다. 그는 청중들에게 “앞으로 어떤 장애가 닥쳐올지, 어떻게 사제 생활을 이어갈지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장애를 통해 어떤 일을 하시려는지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가진 장애는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도록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을 열고 바라보면 어떤 어려움과 불행이 닥치더라도 이겨낼 수 있고, 그 안에서 소중한 뜻을 찾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강의를 마쳤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보고 듣고 말하는 일상생활에 대해 특별한 감흥을 느끼지 못합니다. 큰 어려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지금의 순간은 너무나 귀하고 소중합니다. 만약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만나 삶에 어려움을 겪더라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새로운 문’을 열어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에 감사하며 행복하게 보내시기를 기도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7년 11월호,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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