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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고통받는 교회를 도웁시다: 파키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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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6-10 ㅣ No.458

[고통받는 교회를 도웁시다] 파키스탄 (1) 차별과 박해 I

 

테러 공포가 일상인 신자들… 믿음 있어 두렵지 않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지금 많이 아프다. 이슬람 영토에서는 차별과 박해에 시달린다. 그리스도인 희생 소식이 들릴 때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로마 박해시대보다 순교자가 더 많다”고 통탄한다. 아프리카와 남미 교회는 찌든 가난 속에서 신앙 형제들의 도움을 호소한다. 교황청 산하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와 함께 차별과 박해, 가난에 신음하는 교회를 찾아간다. 이 기획은 ACN 총재 마우로 피아첸차 추기경의 간절한 호소에서 영감을 얻었다. “교회는 한 몸이기에 지체 한 군데가 아프다는 것은 결국 전체가 아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외국 교회의 많은 도움을 받아 발전한 한국 교회가 어려움을 겪는 다른 나라 교회를 위해 나서주십시오.”(2015년 방한 인터뷰) 첫 순서로 차별과 폭력에 굴하지 않고 신앙을 증언하는 파키스탄 교회를 간다.

 

 

그들의 얼굴에서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슬픔은 찾아볼 수 없다.

 

부모는 자식을 잃으면 슬픔의 강을 건너가 화석처럼 굳어버린다는데, 아카시 바시르(Akash Bashir)의 부모는 그렇지 않다. 라호르 변두리에 있는 그리스도인 마을 요한나바드에서 만난 아버지는 “아들이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고 죽었으니까 천국에 갔을 것이다. 슬픔은 신앙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한다. 

 

몸을 던져 폭탄 테러를 막은 ‘성 요한 성당의 의인’ 아카시 바시르의 묘. 맨 오른쪽 청년 스칸다르도 테러 당시 한쪽 눈을 잃고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다쳤다.

 

 

2015년 3월 15일, 20살 청년 아카시는 평소처럼 성 요한 성당 문을 지키고 있었다. 성당 청년들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에 대비해 주일이면 새벽부터 나와 경비 봉사를 한다. 그날 미사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낯선 사람이 다가오더니 총을 쏘며 성당에 진입하려고 했다. 테러범임을 직감한 아카시는 달려가서 괴한의 허리를 꽉 껴안고 저지했다. 테러범은 이미 문 안으로 한 발을 들여놓은 상황이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두 사람은 씨름하듯 서로 밀면서 소리쳤다. 

 

“놔, 폭탄을 갖고 있어. 너도 죽고 싶어?”

“죽어도 못 놔. 한 발짝도 못 들어가!” 

 

두 사람은 엉켜서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그 순간 테러범이 폭탄 조끼를 터뜨렸다. 성당 안에서는 1500여 명이 미사를 봉헌하고 있었다. 인근 성공회 성당에서도 폭발음이 들렸다. 이날 두 성당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테러로 17명이 사망하고, 7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성 요한 성당은 아카시의 희생 덕에 사망자가 2명에 그칠 수 있었다.

 

아카시 바시르의 부모가 아들의 사진이 실린 잡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아들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카시의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꿈을 꿨다. 아카시가 무덤가에서 자고 있길래, 일어나라고 했더니 일어나더라. 내가 옷에 묻은 흙을 털어주면서 ‘그동안 어디 있었냐?’고 물으니까 ‘아버지 아브라함의 품에 있었다’고 말했다.”

 

‘성 요한 성당의 의인’ 무덤은 성당 근처에 있다. 신자들은 최대한 정성 들여 대리석으로 묘를 단장했다. 그리고 아카시가 부활의 영광을 누리길 기원하며 성경 한 구절을 돌판에 새겼다.

 

“예수님에 대한 증언과 하느님의 말씀 때문에 목이 잘린 이들의 영혼을 보았습니다. … 그들은 살아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다스렸습니다.”(묵시 20,4) 

 

요한나바드는 가톨릭과 개신교 신자 15만 명이 모여 사는 파키스탄의 최대 그리스도인 밀집 지역이다. 이날 테러 발생 직후 그리스도인들이 거리로 뛰쳐나가 항의 시위를 벌였다. 현장에서 많은 그리스도인이 경찰에 체포됐는데, 2년 넘도록 42명이 풀려나지 못하고 있다. 무슬림 2명에게 폭력을 가한 죄목이다.

 

테러 후 폭발로 날아간 성당 대문을 ACN의 지원으로 다시 만들었다.

 

 

이들의 석방 운동을 벌이는 라호르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엠마누엘 유사프 신부는 “상대 측 변호사가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사람은 풀려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지만, 지금까지 개종자는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파키스탄은 2억 인구의 95%가 이슬람을 믿는다.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이슬람 인구가 많다. 그리스도인은 2%, 가톨릭은 0.65%(130만 명)다. 이 ‘소수의 양 떼’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흔하디흔한 일상이다. 단적인 예로, 그리스도인이 아이스크림을 팔면 “청소나 해서 먹고 사는 인간들이 더럽게 먹을 것을 판다”며 손가락질하는 지경이다.

 

몇 년 새 발생한 충격적 사건은 다 열거하기가 힘들다. 그리스도인 가운데 정부 내각에 유일하게 등용된 사바즈 바티 장관은 신성모독죄로 사형선고를 받은 가톨릭 여성의 구명 운동을 벌이다 암살당했다. 지난해 예수 부활 대축일에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공원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해 72명이 숨졌다. 이슬람 경전 코란 훼손 혐의를 받은 부부는 폭도로 돌변한 주민들에 의해 벽돌공장 불가마에서 화형당했다. 파키스탄은 코란을 훼손한 자는 종신형, 예언자 마호메트의 이름을 모독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 이 신성모독죄(형법 제295조)는 무슬림까지 옥죈다.

 

청년사목을 담당하는 자한제브 신부가 벽돌공장 화형 테러 사건(2014년) 직후 다급했던 상황을 회고했다. 

 

“청년들이 울분을 토하며 거리로 몰려나가는 것을 간신히 막았다. 더 큰 피해가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하느님은 자비하신 분이다, 그리스도인은 초대 교회 때부터 많은 피를 흘렸다. 그들이 흘린 피가 우리 신앙의 씨앗이 됐다’며 눈물로 설득했다.”

 

라호르대교구장 세바스찬 쇼우 대주교는 “우리는 ‘2F 정신’으로 살아간다”고 말했다. 두려워하지(Fear) 않고, 싸우지(Fight) 않는 것이다.

 

 

새카맣게 탄 마을, 아이들만이 희망 - 빈민촌 사목자 조셉 샤자드 신부

 

파키스탄의 그리스도인 빈민촌 조셉 콜로니의 아이들.

 

 

라호르 시내 그리스도인 빈민촌 조셉 콜로니(Joseph Colony)에서 사목하는 조셉 샤자드 신부가 한국 교회에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300가구가 살던 이 마을은 2013년 3월 무슬림들이 불을 질러 새카맣게 타버렸다. 사건은 친구 사이였던 그리스도인과 무슬림 청년이 술자리에서 벌인 사소한 언쟁에서 촉발됐다. 무슬림 청년이 이슬람 지도자에게 달려가 그리스도인 친구를 신성모독죄로 고발하자, 그 일대 성난 주민들이 몰려와 마을을 불태웠다. 주택 180가구와 교회 2개가 전소됐다. 마을이 불타는 광경은 TV에 생중계됐다.  

 

그때 피란 갔던 주민들 가운데 절반 정도가 잿더미로 변한 마을로 돌아왔다. 대부분 날품팔이 노동자다. 그나마 시내에 살아야 일거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셉 신부는 “주민들은 짐꾼과 청소부, 식당 설거지 일을 하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산다”며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미사 집전 외에 아무것도 없다”고 털어놨다.

 

그의 소망은 방치된 아이들을 위해 작은 학교를 여는 것이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20%도 안 된다. 공립학교에서는 그리스도인도 이슬람 교리를 외워야 하고, 툭하면 ‘왕따’를 당한다.

 

그는 주민들과 머리를 맞대고 “아이들 교육이 먼저냐, 입에 풀칠하는 게 먼저냐” 토론하지만 결론은 없다. 그는 “학교를 여는 게 여의치 않으면 우선 똑똑한 아이들을 뽑아 학비라도 대고 싶다”고 말했다.

 

성금 계좌 : 우리은행 1005-303-232450

(예금주 사단법인 에이드투더처치인니드)

 

고통받는 교회 돕기(Aid to the Church in Need)는 어려움을 겪는 가톨릭교회를 지원하는 교황청 직속 단체로, 한국 교회도 1960, 70년대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2015년 아시아 최초로 한국 지부(이사장 염수정 추기경)를 개설했다.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 · 가톨릭평화신문 공동 기획>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6월 11일, 글 · 사진=김원철 기자]

 

 

[고통받는 교회를 도웁시다] 파키스탄 (2) 차별과 박해 II

 

종교적 편견 · 증오가 야기한 ‘21세기 순교사’가 펼쳐지는 곳

 

 

파키스탄 교회에서 7년째 종교 간 대화위원회에 몸담고 있는 리아즈 고살 신부와 차를 타고 가다가 휴게소에 들렀다. 

 

TV에서 영국 맨체스터 공연장 폭탄 테러 뉴스가 쉬지 않고 흘러나왔다. 극단주의 무장 세력을 추종하는 이슬람 청년들의 눈먼 증오심이 공연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부상자들이 피범벅이 된 채 울부짖는 장면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파키스탄 국민은 저 사건을 어떻게 보느냐”고 고살 신부에게 물었다.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통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대다수 국민이 영국과 미국 등 서구 국가들을 적으로 생각한다.”

 

한 신자가 ‘파키스탄의 루르드’라 불리는 마리아마바드(마리아의 도시) 성지에서 촛불을 켜고 있다.

 

 

‘눈먼 증오심’의 뿌리를 봐야 

 

우리는 서구 세계의 눈으로 이슬람을 보는 데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맨체스터 테러도 극단주의자들의 광기라고 맹비난할 뿐 그 원인이나 실체에 대한 고민은 피하려 한다. 그들의 폭력은 용납될 수 없지만, 그 증오심의 뿌리를 들여다봐야 한다. 그래야 이슬람 세계에서 고통받는 그리스도인을 이해할 수 있다. 

 

십자군 전쟁 이후 크고 작은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슬람과 서구 사회는 적어도 19세기까지는 오늘날과 같은 적대적 관계가 아니었다. 우리가 수니파 시아파 구분하지 않고 이슬람을 중동 종교로 보듯이 무슬림들은 가톨릭 개신교 가리지 않고 그리스도교를 서구 종교로 간주한다. 따라서 무슬림과 그리스도인은 1300년 동안 그런대로 평화롭게 공존했다고 말할 수 있다.

 

라호르대교구의 한 원로 사목자는 “멀리 갈 것도 없이 내가 사목 현장에 있을 때만 해도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관계가 이 정도는 아니었다”며 “극단주의자는 소수이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항상 크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라호르대교구장 세바스찬 쇼우 대주교가 사무실 캐비넷에 붙여놓은 사바즈 바티 장관의 사진을 가리키고 있다. “우리는 당신의 순교를 통해 용기와 희망을 얻습니다”라는 문구는 파키스탄 교회의 신앙 고백이다.

 

 

본격적인 갈등은 서구 열강, 특히 영국이 제1차 세계대전 후 중동에 친서방 국가들을 인위적으로 세우면서 시작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이 몇몇 이슬람 국가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벌인 테러와의 전쟁은 불더미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됐다. 이슬람 정치 지도자들이 정치적 이익을 위해, 때로는 강력한 신정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종교를 이용한 점도 가볍게 볼 수 없다. 

 

그리스도인을 억누르는 반그리스도교 정서는 반서방 제국주의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테러리즘은 종교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 궁지에 몰린 이들의 정치적 표현 수단일 뿐이다. 폭력을 정당화하고, 지지를 얻기 위해 신의 이름을 외칠 따름이다. 

 

익명을 요구한 A 신부는 전국에 1만 개가 넘는 이슬람 사립학교 마드라사(Madrassa)를 극단주의 온상으로 지목했다. 마드라사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면서 편향된 이슬람 사상을 주입한다. A 신부는 “일부 학교들이 테러범을 영웅으로 칭송하고, 힌두인이나 그리스도인과 대화하는 것은 수치라고 가르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차별과 폭력에 짓눌린 그리스도인들 

 

파키스탄 교회는 가난보다 차별과 폭력으로 인한 고통이 더 크다. 근본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인을 서슴없이 배척하고 모욕한다. 마호메트의 이름을 더럽히는 언행은 죽음으로도 씻을 수 없는 죄악으로 간주하고 반발한다. 타 종교인 암살과 그리스도인 마을 방화가 횡행하는 이유다. 

 

대표적인 희생자가 2009년 동네 아낙네들과 말싸움을 하다 신성 모독죄로 체포돼 사형수가 된 가톨릭 여성 아시아 비비(Asia Bibi)다. 

 

사람들 눈을 피해 그의 남편과 두 딸을 만났다. 하지만 입을 다물고 있는 게 낫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외국 언론과 인권단체들이 이 사건을 집중 조명하면서 석방 압력을 가하는 바람에 형 집행과 석방 어느 쪽도 쉽지 않은 상황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사법부가 석방 결정을 내릴 경우 이슬람주의자들의 반발과 동요는 걷잡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그의 석방을 호소하던 정치인 두 명이 살해됐다. 펀자브 지방의 살만 타시르 주지사와 소수인종(종교)부 사바즈 바티 장관이다. 

 

비비의 둘째 딸이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엄마가 개종을 선언하면 밖에 나가 새살림을 차리게 해주겠다는 제안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어도 신앙을 버리지 않을 분이다. 그런 엄마가 자랑스럽다.”

 

시내 모처에서 비비 가족을 보호하고 있는 교구 정평위 관계자는 “교도소는 외부 물품 반입 금지이기 때문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2년 전 비비에게 전해 주라고 한 묵주를 여태껏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사바즈 바티 장관도 기억해야 할 인물이다. 인권과 종교 자유 증진을 소명으로 여기고 살아온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자신도 언젠가 광기의 희생자가 될 것을 예견했기에 독신으로 살면서 약자 편을 들었다. 파키스탄 교회는 그를 순교자로 인정하고 시복시성을 추진 중이다. 

 

성당에서 만난 그의 누나는 “동생은 하느님의 일을 하다 쓰러졌다”며 “동생의 안식과 파키스탄 교회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편견과 증오의 희생 제물이 된 동생을 떠올리는 늙은 누나의 얼굴이 무척 슬퍼 보였다.

 

 

맨손으로 정의 위해 싸우는 사람들 - 라호르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 유사프(오른쪽) 신부가 김수환 추기경 예방 때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고인을 ‘정의로운 목자’라고 소개하고 있다.

 

 

라호르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의 하루하루는 ‘악전고투’라는 말이 딱 맞다. 경찰서와 법원으로 뛰어다니며 종교적 편견의 희생자들 변호하랴, 교육자료 만들어 배송하랴 정신이 없다. 몇 안 되는 직원들은 언제 어디서 테러를 당할지 모른다. 목숨 걸고 일한다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그러나 근본주의자들의 위협보다 바닥난 통장 잔액을 더 힘들어한다. 꼭 필요한 사업이지만 여력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다 단념하는 일이 허다하다. 

 

무일푼인 피해자가 나타나면 변호사 비용을 구하러 다닌다. 수감된 그리스도인들의 옥바라지와 재판도 거들어야 한다. 최근 초중고교 교과서에서 종교적 편견을 조장하는 부분을 찾아내 시정을 촉구하는 일을 시작했다. 출판 비용을 마련하면 이를 바로잡아 알리는 책자도 찍어낼 계획이다. 

 

아이들에게 A는 ‘Apple’, B는 ‘Boat’하는 식으로 영어 알파벳을 가르치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J에 ‘Jihad(성전)’라는 단어를 달아놓은 책이 많다. 이슬람 신앙을 수호하기 위해 벌이는 성스러운 전쟁을 뜻하는 단어다. 과학책도 “산소와 수소가 결합하면 알라의 뜻에 따라 물이 된다”는 식으로 서술한다. 

 

1990년대 말 김수환 추기경이 파키스탄 사형수 석방 노력을 기울일 때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 정평위 담당 유사프 신부는 “우리는 맨손으로 정의와 평화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라며 “한국 신자들이 응원해 주면 할 수 있고, 또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너무나 많다”고 말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6월 18일, 글·사진=김원철 기자]

 

 

[고통받는 교회를 도웁시다] 파키스탄 (3) 가난하지만 풍요롭다

 

담장 속에 갇힌 성당, 교류도 막혀 신앙 공동체 위기

 

 

- 소도시 부레왈라에 있는 성 베드로 성당에서 담장 공사를 하다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 신자들. 이 본당은 담을 쌓고 철조망을 설치하지 않으면 올해 예수 성탄 대축일 미사를 봉헌할 수 없다. 김원철 기자.

 

 

“서울엔 신부가 몇 명이나 있습니까?”

 

“900명 가까이 됩니다. 교구 소속 신부만.”

 

물탄(Multan)교구청의 앨버트 신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니냐?”며 믿지 않기에 스마트폰으로 「한국 천주교 교세 통계」를 검색해 보여줬다. 

 

입을 다물지 못하기는 기자도 매한가지였다. 파키스탄 내륙에 있는 물탄교구의 관할 면적은 상상을 초월한다. 교구청에서 최남단 도시 사디고바드에 가려면 차로 6시간이 걸린다. 최북단 도린칸까지는 5시간. 그런데 신부 수는 고작 15명이다. 본당은 19개가 있었으나 사제가 부족한 데다 성당 치안 유지 비용이 없어 4개를 폐쇄했다. 물탄교구는 파키스탄에서 가장 가난한 교구다.

 

 

교황은 벽 허물라는데… 담 높이 쌓아야 

 

요즘 물탄 신부들은 담장과 철조망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치안 담당자들이 툭하면 찾아와 담 높이를 2.4m까지 올리고 그 위에 철조망을 설치하라고 재촉한다. 자체적으로 경호 전문 인력을 고용해야 하는 건 필수다. 테러 방지와 치안 강화를 위해서다. 가톨릭계 학교도 예외가 아니다. 

 

이 때문에 신부들은 “성당과 학교를 교도소로 만들려고 하느냐”며 불만을 토로한다. “교황님은 벽을 허물라고 하시는데…. 경찰 고위 간부 친척 중에 철조망 제조 공장 사장이 있는 것 같다”는 농담도 주고받는다. 성 베드로 본당의 살렘 신부는 “경찰이 담과 철조망 공사를 안 하면 올해 성탄절 야외 미사를 불허하겠다고 통보했다”며 “어쩔 수 없어 담부터 쌓고 있는데 돈이 부족해 공사를 마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파키스탄 성당들은 대부분 영국 식민지 시절에 서양인들이 지은 것들이다. 영국군이 주둔했던 부대 근처에 많다. 영국군 부대는 가급적 종교적 공통점이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역 인부로 채용했다. 지금도 옛 군부대 근처에 그리스도인 밀집촌이 많은 이유다. 그때 지은 성당들은 터가 넓어서 담을 쌓고 철조망을 설치하려면 돈이 여간 많이 드는 게 아니다. 

 

교구장 베르니 트라바스 주교는 성당 4개를 폐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성당은 신앙 공동체의 구심점이다. 신부는 고사하고 성당마저 문을 닫아버리면 신자들이 개신교로 넘어간다. 미국과 한국 등지에서 지원하는 복음주의 계열의 개신교 선교 열기는 매우 공격적이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가슴 아픈 결정을 내렸다. 우리는 물질적으로 가난하다. 교구민 6만 5000명은 대부분 남의 땅에서 품을 팔아 먹고산다.”

 

트라바스 주교는 “며칠 전에 20여 가구가 모여 사는 공동체에서 성당을 지어 달라고 요청해 왔지만 아무런 답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 공동체가 요청한 성당은 우리나라 시골에 있는 마을회관 정도의 공소 건물을 말한다. 거기에 평신도 선교사(교리교사)가 상주해 활동하면 공동체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한국에 ‘신앙의 선물’ 요청할 수 있는 날 오길 

 

파키스탄 교회는 보편 교회와 인적 교류를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파키스탄 정부는 2년 전 프랑스 파리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 이후 외국인에게 선교 비자를 내주지 않는다. 그나마 남아 있는 국제 수도회의 신부와 수녀들도 비자 만기일이 다가오면 갱신이 안 될까 봐 걱정한다. 한 신부는 “미국과 아일랜드 수녀들은 샤를리 에브도 테러 이후 ‘쥐죽은 듯’ 조용히 있다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며 안타까워했다.

 

반면 트라바스 주교의 말대로 개신교는 우려될 정도로 공격적이다. 그리스도인 밀집촌에서 개신교인들은 “기도해 주러 왔다”면서 가톨릭 가정의 문을 마구 열고 들어와 교리ㆍ성경 논쟁을 유도한다. 가톨릭인들은 이들을 ‘그리스도교의 탈레반(이슬람 원리주의 무장 세력)’이라고 부른다. 

 

트라바스 주교는 “추후 여건이 좋아지면 한국 교회에 ‘신앙의 선물(Fidei donum)’을 나눠달라는 요청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비오 12세 교황의 회칙 제목에서 따온 피데이 도눔은 사제가 부족한 지역에 파견되는 타 교구 사제를 가리킨다.

 

 

"피의 박해 이겨낸 한국 교회 보며 위안" - 물탄교구 5년 전부터 소신학교 운영

 

- 성 요셉 소신학교 학생들과 교구장 트라바스(가운데) 주교. 사제 양성은 물탄교구의 가장 큰 도전이다. 김원철 기자.

 

 

물탄교구는 5년 전부터 자체적으로 소신학교를 운영한다. 성 요셉 소신학교에서 12명이 사제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이 학교 출신 4명이 현재 카라치에 있는 대신학교에서 사제 수업을 받고 있다. 

 

소신학교장 임란 벤자민 신부는 “교회는 가난하지만, 신자들 신앙심은 오랜 세월 가난과 차별 속에서 단련된 터라 매우 강하다”며 “어린아이를 데리고 와서 하느님께 봉헌하고 싶다는 신자도 많다”고 말했다. 소신학교 1년 예산은 약 2800만 원. 교황청과 스위스 교회에서 지원금을 받고, 교황청에서 보내주는 주교관 운영비를 갖다 써도 ‘자로 잰 듯’ 매년 절반이 부족하다. 학부모들은 가난해서 학비를 보탤 형편이 안 된다. 부족분은 교구장과 신부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구해오는 수밖에 없다.

 

사제 양성은 교구의 가장 중요한 도전이자 최대 사업이다. 본당 신설보다 오지 본당에서 홀로 외롭게 고생하는 사목자들에게 보좌 신부를 보내주는 게 더 급한 실정이다. 

 

사제 수가 15명밖에 안 되는 교구의 빈자리는 평신도 교리교사들이 맡고 있다. 교구는 5개월 과정으로 교리교사들을 양성해 본당과 공소에 파견한다. 물탄의 교리교사 64명은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활동비를 받으며 복음을 전하러 다닌다. 

 

교통수단은 비포장길을 달리면 바퀴가 언제 빠져 달아날지 몰라 불안한 낡은 오토바이다. 트라바스 주교는 “순교 정신으로 일하는 교리교사들은 교구의 척추”라며 그들에게 오토바이라도 몇 대 사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로마에서 한국 영상물 ‘동정부부 요안ㆍ루갈다’(가톨릭평화방송 제작)를 봤을 때 피의 박해를 이겨내고 눈부시게 성장한 한국 교회를 통해 큰 위로를 받았다”며 “박해의 고통을 아는 한국 교회가 박해받는 파키스탄 교회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6월 25일, 김원철 기자]

 

 

[고통받는 교회를 도웁시다] 파키스탄 (4) 우리는 대화한다

 

라호르대교구장 쇼우 대주교에게 듣는 종교 간 대화

 

 

- 세바스찬 쇼우 대주교(왼쪽에서 두번째)와 이슬람, 힌두교 지도자들이 바드샤히 모스크 앞에서 올리브 나무를 심고 평화를 기원하는 기도를 바치고 있다. 쇼우 주교는 “올리브 나무가 성장하는 것보다 속도가 느리더라도 종교간 대화 노력을 중단할 수 없다”고 말한다.

 

 

라호르대교구는 180년 전에 지은 교구 청사를 헐었다. 교황청 재단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  도움을 받아 그 자리에 새 청사를 건축 중이다. 액자 속 옛 청사 사진은 그림엽서가 따로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역사 보존’, ‘가난한 교구의 사업 우선순위’ 같은 비판적 생각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섣부른 비판 의식이었다. 교구청에서 80m쯤 떨어진 연방 정보국(FIA) 건물에서 차량 폭탄 테러가 발생했을 때 폭발 충격으로 교구청 지붕이 무너졌다고 한 신부가 귀띔했다. 극단 무장조직 탈레반이 정보 당국에 체포된 조직원의 자백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트럭에 폭탄을 싣고 돌진한 2008년 3ㆍ11 테러 사건 때다. 이날 테러로 28명이 숨졌다. 길가에 있는 카리타스 건물에서도 3명이 목숨을 잃었다.  

 

다행히 교구청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지붕 잔해가 출입구를 막는 바람에 바로 탈출하지 못한 신부들이 있었다. 그래서 교구는 신축 사무실마다 출입문을 앞뒤로 2개씩 내고 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아

 

지난해 라호르대교구의 예수 부활 대축일은 ‘악몽’이었다. 그날 초저녁 주교좌 대성당에서 3㎞쯤 떨어진 시내 공원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해 75명이 숨지고, 340여 명이 다쳤다. 부활절 행사를 위해 모인 그리스도인들을 겨냥한 테러였다. 교구장 세바스찬 쇼우 대주교는 비보를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경찰이 출입을 막아 발만 동동 구르다 돌아왔다. 

 

이튿날 아침 일찍 다시 병원으로 달려갔다. 진료부장이 주교 복장을 한 쇼우 주교를 보더니 “면회하고 싶은 (가톨릭) 부상자 명단이 있으면 달라”고 요청했다. 쇼우 주교는 “그런 명단은 없다. 그리스도인이건 무슬림이건 모두 만나 위로하러 왔다”고 말했다. 

 

쇼우 주교는 그 다음 날 테러에 희생된 어느 친자매의 장례 미사를 집전해야 했다. 그는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날 강론에서 위로와 용기, 용서를 주제로 말해야 했다. 특히 유가족에게 어떻게 용서에 대해 말해야 할지 몰라 고민했다. 결국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옮겼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이 주제를 자비의 해 특강에서도 얘기했는데, 강의가 끝나자 젊은 부부가 다가오더니 ‘이제 용서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축복을 청했다. 부활절 테러에 어린 아들을 잃은 부부였다.”

 

그는 “우리는 모욕을 모욕으로,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다”며 “파키스탄 신자들은 진정 ‘자비의 챔피언’이다”고 말했다. 이어 “파키스탄 교회만큼 그리스도의 참행복 선언(마태 5,3-12)을 믿고 따르는 교회도 드물 것”이라며 개인적으로도 그 가르침을 강하게 믿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회 닿는 대로, 때로는 명분을 만들어서라도 이슬람 지도자들과 만나 대화하려고 노력한다. 그리스도교는 무슬림을 개종시키려는 의도가 전혀 없고, 세상의 평화를 위해 함께 일하고 싶다는 점을 그들에게 거듭거듭 말한다.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 위원이기도 한 그는 “우리는 종교 간 대화로 박해와 싸우는 수밖에 없다”며 종교간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오늘 한 그루 올리브나무를…

 

그는 취재 일정 마지막 날에도 파키스탄 이슬람을 대표하는 바드샤히 사원을 찾아가 압둘 카비르 아자드 이맘(최고 지도자)을 만났다. 그리고 이슬람, 힌두교 지도자들과 평화를 상징하는 올리브나무를 심었다. 신문·방송사 취재진이 몰려와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 “차이와 다름을 존중하면서 조화로운 파키스탄을 건설하자”고 호소했다. 

 

물론 한계는 있다. 이 같은 만남이 ‘엘리트들의 대화’라는 지적이 있다. 삶의 대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또 일부 이슬람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수장이 타 종교 지도자를 만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그런 모습이 신문·방송에 자꾸 비치면 자신들의 양 떼가 다른 곳에서 더 풍요로운 풀밭을 발견할까 봐 두려워서다.

 

쇼우 주교가 교구청으로 돌아와 말했다.

 

“선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한데 모으는 것이 나의 임무다. 거기서 공존과 평화가 시작된다. 겉모습은 쉽게 바꿀 수 있지만, 마음의 변화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오늘 심은 올리브나무가 성장하는 속도만큼 느릴지도 모른다.” 

 

이어 “파키스탄 교회는 작고 가난하지만 한 가지 사명이 있다”며 “우리가 그 사명을 포기하지 않도록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사명이란 시련 속에서 정체성을 잃지 않는 신앙인,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인, 그리고 악을 선으로 대응하는 신앙인 모습을 세상 모든 교회에 보여 주는 것이다.

 

 

젊은이에게 다가갈 유일한 희망은 가톨릭 TV

 

모리스 자랄 신부.

 

 

2억 인구 중에서 이슬람 신자가 95%이고, 그리스도인은 가톨릭과 개신교를 통틀어 2%밖에 안 되는 파키스탄에서 가톨릭 케이블 TV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복음 전파 매체다. 특히 극단주의에 빠질 우려가 있는 젊은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하지만 운영 여건은 너무나 열악하다. 프로그램 제작 인력이 고작 7명이다. 영상 편집기 한 대 없이 개인용 컴퓨터로 편집하고 있다. 나머지는 자원 봉사자들이 맡고 있다. 교회가 가난하니까 방송국 사정은 말할 것도 없다. 

 

대표 모리스 자랄(카푸친수도회) 신부는 위성방송 채널 하나 확보하는 것이 꿈이다. 개신교는 위성채널을 포함해 채널이 9개인데, 가톨릭에 대한 오해를 조장하는 프로그램이 적지 않다. 한국 개신교단의 성령 기도회 자막 방송도 많다. 개신교 방송국은 주로 미국과 한국 교단에서 지원받고 있다. 자랄 신부는 “더 넓은 지역으로 가톨릭과 복음을 전파하려면 위성 채널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톨릭 TV는 특히 청소년 교육에 비중을 두고 있다. 이슬람 청소년에겐 가톨릭이 어떤 종교인가를 알려주고 그리스도인 청소년에게는 사목자 부족으로 인해 생기는 공백을 채워 준다. 

 

자랄 신부는 농담으로 가톨릭 TV를 문 닫게 하는 두 가지방법을 얘기했다.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가 지원금을 끊는 것, 다른 하나는 방송에서 정치나 이슬람을 비방하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는 “세계 가톨릭은 어느 종교보다 크고 풍요롭다”며 “우리가 각 가정의 거실까지 찾아가 하느님에 관해 말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7월 2일, 김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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