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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11: 생트 샤펠의 찬란하게 빛나는 유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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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3-18 ㅣ No.344

[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11) ‘생트 샤펠’의 찬란하게 빛나는 유리화


빛으로 가득한 천상의 세계로 인도하다

 

 

- 생트 샤펠 경당 외부 전경.

 

 

프랑스 파리 중심부에 자리 잡은 시테(Cite)섬에는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고, 맞은 편 가까이에 생트 샤펠(Sainte-Chapelle)이 있다. 이 건물의 규모는 노트르담 대성당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지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당으로 꼽힌다. 그 안에 있는 유리화도 13세기 작품 가운데 최고로 평가된다.

 

생트 샤펠의 유리화를 통해 들어오는 빛은 그 안을 신비로운 공간으로 탈바꿈 시킨다. 경당 안에 들어가면 눈부신 빛의 세계에 빠진 듯한 착각이 든다. 이곳의 아름다운 작품은 중세교회 유리화의 꽃이라 할 수 있다. 왕실 경당이었던 이곳은, 후에 루브르 궁전이 건설돼 이전하게 되자 특별한 용도로만 사용됐다. 옛날 궁전은 파리 재판소로 사용되고 있고, 경당은 그 안에 자리 잡고 있다.

 

프랑스 고딕 양식의 생트 샤펠은 1242년부터 1248년까지 건축됐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깊었던 루이 9세(Louis Ⅸ·1214~1270년) 왕은 예수님의 유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수집하였다. 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을 때 머리에 쓰신 가시관 유물과 십자가 부분을 갖게 됐는데, 이런 유물을 보관하며 경배하기 위해 이 경당을 지었다.

 

매우 날렵한 형태의 이 건축은 주로 돌과 유리창으로 구성돼 있다. 2층 건물이지만 각 층에는 불과 100여명이 들어갈 수 있다. 1층은 궁전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위한 경당으로 건축됐는데, 이곳에는 규모가 작은 유리화와 루이 9세의 조각상 등이 있다. 2층은 왕과 귀족이 기도할 수 있는 특별한 경당으로 건축됐다. 높고 긴 15개의 뾰족 창문에 가득히 장식된 유리화는 매우 아름다우면서도 화려하다.

 

생트 샤펠 2층 내부는 기둥과 천장, 회중석의 벽 부분을 제외하고는 전체가 유리화로 장식됐다. 동쪽의 제대 뒤편이나 남북 쪽의 벽 양쪽도 건물이 완성되던 시기에 함께 제작된 화려한 유리화로 뒤덮여 있다. 그러나 서쪽의 불타오르는 듯한 원형 창문은 240여 년이 지난 1490년경에 제작돼 표현 기법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

 

- 생트 샤펠 경당 내부 제단과 유리화.

 

 

유리화 곳곳에는 ‘채찍질을 당하신 예수님’을 비롯한 1000여 개의 성경 장면이 묘사돼 있다. 유리화의 주제는 대부분이 신·구약의 주요 장면과 관련된다. 제대 쪽에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과 수난 등이 묘사돼 있고, 회중석 양쪽에는 창세기를 비롯한 구약성경의 장면이 담겨져 있다.

 

이 유리화를 둘러보는 것은 신·구약성경을 읽는 것과 같다. 그러나 성경을 단숨에 다 읽을 수 없는 것처럼, 이 유리화도 짧은 시간에 다 볼 수 없다. 또 이 경당의 모든 기둥은 화려한 색으로 꾸며져 유리화와 멋진 조화를 이룬다. 회중석의 양쪽 기둥에는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조각상이 설치돼 빛으로 가득한 이곳이 세상에서 미리 볼 수 있는 천상의 세계임을 알려 준다.

 

생트 샤펠도 오랜 세월 동안 프랑스의 역사 현장을 지켜보며 운명을 같이 했다. 특히 프랑스 대혁명(1789~1794년) 때, 이 경당 유리화도 많이 손상됐지만 후에 부분적으로 보수됐고 1862년에는 국가 역사기념물로 지정됐다. 197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는 본격적인 보수 작업이 진행됐다. 도심의 공해와 많은 사람들의 방문으로 건축물과 유리화가 급속히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건물 보수와 깨진 유리와 납선 교체, 보호 유리창의 설치, 방문객 숫자 등을 제한한다. 생트 샤펠과 유리화의 보수 작업에 들어간 비용은 예술을 아끼고 사랑한 사람들의 기부를 통해 대부분 마련됐다.

 

‘채찍질을 당하신 예수님’ 유리화.

 

 

이 경당의 유리화는 제작된 지 87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빛을 뿜어내며 사람들의 마음을 신비로운 빛으로 감싸며 어루만져 준다. 또한 그 빛은 세상에 깊이 물들어 사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과는 전적으로 다른 세계, 즉 빛으로 가득한 천상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중동이나 유럽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유리로 자신의 집이나 공간을 꾸미곤 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고딕 시대부터 성당 장식에 유리화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고딕 건축의 기술로 성당을 더욱 높고 날렵하게 지을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내부 창문도 더욱 넓고 높게 만들었다. 그 창을 통해 많은 양의 빛이 눈부실 정도로 쏟아져 들어왔다. 눈부신 빛을 적절히 조절하기 위해 유리화를 많이 활용했다. 일반 회화와 달리 유리화는 빛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 예술가가 유리화를 제작하지만 그 작품은 자연의 빛을 통해서 비로소 생명을 얻는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성당에는 아름다운 유리화가 설치돼 있다. 이처럼 주변에서 유리화를 쉽게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복락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성당의 유리화가 제대로 보존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유리 자체의 색은 변하지 않지만 공해로 찌들거나 깨지기도 하고 유리의 틀인 납선이 손상되면 유리화 전체가 쉽게 망가진다. 때로는 성당을 재건축하면서 기존 유리화를 떼어 방치하거나 버리는 안타까운 일도 일어난다.

 

유럽교회에서는 본래의 자리에서 벗어난 유리화를 신축하는 성당에 재설치하거나, 교회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보존하고 전시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 그 유리화들은 새로운 자리에서나마 생명을 계속 이어간다. 교회의 유리화는 한번 설치하고 방치해도 되는 값싼 물건이 아니다. 예술 작품인 유리화를 언제나 소중히 다루며 잘 관리하고 보존해야 한다. 유리화만이 아니라 교회의 모든 유물은 세심한 관리를 통해서 생명을 유지한다. 교회 예술품도 살아있는 생명과 같아 사람들로부터 잘 보호를 받으면 수천 년도 유지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한 세대가 가기도 전에 허무하게 사라져버린다.

 

* 정웅모 신부(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유물 담당) -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1987년 사제품을 받았다. 홍익대와 영국 뉴캐슬대에서 미술사·박물관학을 전공했다. 서울대교구 홍보실장과 성미술 감독, 종로본당 주임, 장안동본당 주임 등을 역임한 바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3월 19일, 정웅모 신부(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유물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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