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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 속 신앙 찾기: 오! 마이 파파 - 소명과 사랑, 용기와 실천, 그리고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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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1-21 ㅣ No.980

[영화 속 신앙 찾기] 소명과 사랑, 용기와 실천, 그리고 희망 오! 마이 파파

 

 

필리핀 소녀들이 장례미사에서 눈물을 훌쩍이며 ‘오! 마이 파파’를 부른다. 파파는 바로 소 알로이시오 신부다. 그의 이름은 몰라도, 대한민국 중년들은 부산 ‘소년의 집’을 알고 있다. 한때 축구를 잘해 전국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서만은 아니다. 전쟁과 가난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의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그 ‘희망’을 만든 소 알로이시오 신부가 주인공인 ‘오! 마이 파파’는 박혁지 감독과 조미혜 작가의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낡은 사진과 자료를 뒤지고, 그와 함께했던 사람들의 추억과 기억을 끄집어내고, 그가 남긴 흔적들을 찾아가면서, 그의 시간들이 얼마나 우리에게 소중한지 확인해 준다.

 

‘오! 마이 파파’는 과장도 없다. 소 신부에 대한 너그러운 미화도, 상업적 계산으로 집어넣은 극적인 장치도 없다. 카메라와 마이크는 마치 구경하듯 가난한 아이들의 아버지 소 신부의 소명과 사랑, 용기와 실천, 그리고 희망을 소박하게 담을 뿐이다.

 

 

소명

 

주님의 일을 하다 보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소 신부는 성모 발현지인 벨기에 바뇌에 있는 성모상을 자주 찾았고, 성모님의 가르침에 따라 ‘가장 어렵고 가난한 나라에서 봉사하겠다.’고 약속한다.

 

1957년 27세에 사제품을 받자마자 이 땅을 찾은 것부터가 우연이 아니었다. 소명이 아니라면, 수많은 가난한 나라 가운데 왜 하필 한국이었을까? 소명이 아니라면, 이 땅에서 끝내지 않고 평생 성모님의 뜻을 따라 가난한 아이들을 찾아나설 수 있었을까?

 

여동생의 말이다. “가난한 아이들을 위하여 학교를 세우려고 후원자를 찾아 돌아다니며 애태우던 오빠가 미국에서 모금을 위한 강연을 했는데, 오빠의 아파트에서 모금 전문가를 만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사랑

 

소 신부에게는 사랑이 있었다. 만일 사랑이 없었다면, 종교와 인종과 국적을 떠나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라는 성모님의 가르침대로 살 수 없었을 것이다. 1957년 12월 8일, 처음으로 부임한 부산에서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고아원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었다. 누구의 눈에도 그들은 보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을 그냥 지나치거나 피했다.

 

필리핀 마닐라에서도 냄새와 파리 떼로 눈을 뜰 수 없는 쓰레기 더미 속에서 생활하는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소 신부가 막사이사이상을 받으러 간 1983년에만 그들이 그곳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전에도 있었고, 그 이후에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들을 보았다. 그러나 사랑으로 보는 눈이 아니었기에 보이지 않았고, 보았어도 가슴까지 다다르지 못했다.

 

‘오 마이 파파’는 사랑을 가진 사람은 눈부터 다르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눈으로 자신이 손잡아주어야 할 사람, 함께 가야 할 사람을 모두 담는다고 말한다.

 

소 신부는 사랑의 눈으로 가난한 한국의 고아들을 보았고,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래서 1964년 ‘마리아수녀회’를 창설해 고아들에게 가장 간절한 엄마의 사랑을 선물했다. 20년 뒤인 1984년 필리핀 마닐라에도 쓰레기 더미 속에 사는 아이들의 엄마가 될 수녀 두 명을 파견했다.

 

그는 형식적인 엄마를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마리아수녀회 수녀들에게 강조했다. “늘 아이들 곁에 같이 있어라. 기도 중이라도 아이가 부르면 달려가라. 아이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께 먼저 봉사하라.”

 

소 신부는 ‘오! 마이 파파’를 통해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가난한 사람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 답이 사랑임을 알고 있다. 다만 실천하지 못할 뿐이다.

 

 

용기와 실천

 

‘오! 마이 파파’에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감동적인 장면은, 멋지게 지은 필리핀과 과테말라의 소년 · 소녀의 집이 아니다. 1992년 그가 선종한 지 23년 만인 지난해 교황청이 결정한 ‘가경자’ 선포식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다큐멘터리 중간에 정지 흑백 화면으로 담은 소 신부의 표정이다.

 

따스하면서도 강렬한 눈빛. 거기에서 가난한 아이들에 대한 그의 사명과 실천의지를 읽은 것은 지나친 감정이입 때문은 아닐 것이다. 우리를 숙연하게, 부끄럽게 하는 또 한 장면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부산에 판자로 지은 그의 오두막 사제관과 필리핀 알로이시오 메모리얼센터에 유품으로 보관하고 있는 군데군데 기운 허름한 단벌 수단, 낡은 구두, 그리고 빛바랜 안경. 가난한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바치면서도, 정작 자신에게는 지독히 가난하고 검소했던 소 신부의 오두막 사제관. 1982년 미국의 도티 부부는 이 사제관을 보고 감동하여 무려 25만 달러를 아이들의 수영장 건설을 위해 선뜻 내놓았다.

 

그는 정말 새 것이 싫어서 마다하고 낡은 것을 고집했을까? “차라리 애덕은 어렵지 않으나, 스스로 가난하게 사는 것은 진짜 어려운 일”이라는 한 수녀의 고백이 소 신부의 존재를 더욱 아름답게 느끼도록 해준다.

 

소 신부는 말했다. “제 희망은 평범한 한국 가정의 아이들처럼 우리 아이들이 교육을 잘 받아서 건강하게 사회에 나가서 사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지금도 세계 여섯 나라의 10개 도시에 아들딸 2만여 명이 있다. 또한 멕시코 과달라하라 소년의 집에서 봉사하는 수련 수녀인 안나 히메네스처럼 그의 뜻을 따르며 오늘도 어떻게 하면 이 가난한 아이들을 도울 수 있을지 고민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다.

 

 

희망

 

소년 우리엘은 소 신부의 이야기를 들은 뒤 희망을 안고 이틀을 걸어서 소년의 집을 찾아왔다. 산베드로의 빈민가 양철판잣집에 사는 소녀 루셀로는 중학생이 되어 이제는 의사가 되는 꿈을 갖게 되었다.

 

희망은 우리 인간의 존재 이유이고 힘이다. 희망이 없으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에게 오너라.”(마태 11,28)하셨고, 가난한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보살피라고 하셨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를 쳐다보고, 누구를 외면하고 있느냐?’ ‘오! 마이 파파’는 이렇게 우리에게 묻는다.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하루라도 빨리, 더 많은 학교를 짓고 싶었던 소 알로이시오 신부를 주님께서는 이제 그만 주님 곁에 와서 쉬라고 부르셨다. 치유 불가능한 루게릭병에 걸려 예정된 죽음이 다가오는 시간에도 소 신부는 ‘주님 안에서 내 일을 다한다.’는 자세를 한시도 잃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걱정했다. ‘지금까지 주님의 뜻보다 내 뜻대로 행동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그의 마음에 주님께서는 ‘네가 시작은 하지만 끝낼 필요는 없다. 이것은 너의 미완성 교향곡이다.’라는 메시지를 주신다. 어쩌면 그 메시지야말로 살아있는 우리를 향한 것인지도 모른다.

 

소 신부는 굳게 믿었다, 복음대로만 한다면 주님께서 계속하게 해주실 것이라고. 실제로 모든 것이 그의 뜻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오 마이 파파’는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소 신부에게 복음은 사랑이다. 그 사랑은 실천이다. 담아두지 말고 달려가 전할 때, 우리는 하나가 된다. 언젠가는 그런 세상이 올 것이라고 믿기에 그는 우리에게 “하느님은 축복이십니다.”라는 작별인사를 한 것인지 모른다.

 

* 이대현 요나 - 영화평론가이며 국민대학교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이다. 한국일보 문화부장과 논설위원을 지냈다. 저서로 「소설 속 영화, 영화 속 소설」,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가 있다.

 

[경향잡지, 2017년 1월호, 이대현 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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