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 (수)
(백) 부활 제4주간 수요일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프란치스칸 영성8: 프란치스코, 사라센군 진영에 들어가 술탄을 만나다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9-07 ㅣ No.1470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인격 그리고 프란치스칸 영성] (8) 프란치스코, 사라센군 진영에 들어가 술탄을 만나다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술탄 앞에서 불에 의한 시험’(성 프란치스코), 1482~1485년, 프레스코화, 산타 트리니타, 이탈리아 피렌체.

 

 

성녀 클라라가 마음에 품은 봉쇄의 개념

 

클라라가 프라하의 아녜스에게 보낸 세 번째 편지에서 말하는 바가 바로 성녀 클라라가 마음에 품었던 봉쇄에 대한 개념을 잘 설명해 줍니다.

 

“이제 하느님의 은총으로, 모든 피조물 가운데 가장 고귀한, 믿는 이의 영혼이 하늘보다 더 위대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늘들과 모든 피조물을 다 합쳐도 그 창조주를 담을 수 없지만(2역대 2,5; 1열왕 8,27 참조), 오직 믿는 영혼만이 그분의 거처이고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없는, 사랑만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진리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며, 나 또한 그를 사랑하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21.23) 그러므로 동정녀 중에 영화로우신 동정녀께서 육신으로 그분을 품으셨듯이, 그대도 그분의 발자취, 특히 그분의 겸손과 가난의 발자취를 따른다면 의심할 여지 없이 그대의 순결한 동정의 몸 안에서 영적으로 그분을 항상 품을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대와 모든 사물을 담으시는 분을 그대가 담을 것이며 이 세상의 덧없는 다른 어떤 소유물보다 더욱 확실하게 가질 수 있는 것을 갖게 될 것입니다.” (21-26절)

 

 

술탄과 만남 우주적, 보편적 대화

 

프란치스코와 이 운동에 대한 주목할 만한 특징 중 하나는 프란치스코와 그의 추종자들이 우주적인 대화에 열려 있고자 노력했다는 점이다. 프란치스코는 이단자나 사라센인 그리고 강도도 만나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는 1211년 사라센인들의 땅을 향해 떠났다. 이전에 그가 갖고 있었던 기사의 꿈과 십자군으로서의 영광은 이제 사라센인들에게 평화를 설교하는 평화로운 십자군으로서 출정하고자 하는 진심 어린 열망으로 변하였다. 그러나 이런 그의 계획은 처음엔 실패하였다. 그가 타고 갔던 배가 폭풍을 만나 달마시아 해안에서 난파되어 프란치스코는 안코나(Ancona)로 되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219년 프란치스코는 십자군 전쟁 역사 안에서 가장 잔혹했던 제5차 원정의 중심지였던 이집트의 다미에타로 가는 데 성공하였다. 프란치스코가 이 전쟁터에 들어가고자 했던 첫 번째 이유에 대해 그의 전기 작가들은 그가 술탄과 이슬람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다 순교하려는 열망에서였다고 전한다. 하지만 프란치스코가 이슬람 진영으로 들어가 술탄과 만나고자 했던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다는 점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는 그리스도교 십자군과 이슬람군 진영에 모두 이 전쟁이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며, 하느님의 뜻은 오로지 서로가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형제적인 삶을 사는 것임을 선포하기 위해 무장한 군인으로서가 아니라 무장하지 않은 ‘평화의 사자’로 이 전쟁에 참여하였다. 결과적으로 볼 때, 이 화해와 평화의 선포를 어느 정도라도 이해하고 받아들인 쪽은 십자군 진영이 아니라 이슬람 진영이었음은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그해 가을 다미에타에 도착한 프란치스코는 당시 교황대사(펠라지오 갈바니 추기경)에게 사라센군 진영으로 들어갈 허락을 청했다. 여러 번의 거절 끝에 허락을 얻은 프란치스코는 일루미나토 형제와 함께 사라센군 진영으로 들어가 말렉 알 카밀 술탄과 대화까지 하였다. 그 술탄은 프란치스코의 이야기를 기꺼이 듣고자 하였고 프란치스코에게 성지를 방문할 허락까지 해줬다.

 

 

서로 안에서 공통의 하느님 인식

 

실질적으로 당시의 술탄은 프란치스코를 사랑으로 맞아주었을 뿐 아니라 프란치스코의 말에 크게 공감하여 프란치스코와 그리스도인들에게 크게 호의를 보여준 반면, 십자군 진영에서는 프란치스코의 이 평화의 설교에 냉대한 반응을 보였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프란치스코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난 후 술탄은 그리스도교의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감탄해 마지않았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프란치스코는 이 술탄과의 대화를 통해 이슬람인들이 믿고 있는 하느님이 생명과 사랑과 자비의 원천이신 우주 전체의 하느님임을 깨달았다. 술탄 역시도 하느님을 경외하고 믿는 이로서 어려서부터 이슬람교의 하느님에 대한 신심을 키우며 성장했던 믿음과 자비의 사람이었다. 이 두 사람은 서로 안에서 공통의 하느님을 인식했을 것이다.

 

프란치스코가 이곳을 방문한 후 쓴 일련의 세 개의 성체성사와 관련된 편지들(백성의 지도자들에게 보낸 편지, 보호자 형제들에게 보낸 편지1, 2, 성직자들에게 보낸 편지)과 인준 받지 않은 수도규칙(1221년, 특히 23장)에서는 하느님의 우주적 보편성이 더더욱 강하게 드러나고 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프란치스코가 술탄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이 믿는 하느님이 자신이 믿음으로 고백하는 하느님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 아니라, 그 지역 이슬람인들의 믿음과 그들의 신앙 행위를 바라보면서 그들이 믿는 하느님을 통해 참으로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하느님을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9월 6일, 호명환 신부(작은형제회)]



1,724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