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6일 (화)
(백) 부활 제3주간 화요일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레지오ㅣ성모신심

새 번역 교본 읽기: 레지오의 봉사 · 레지오 신심의 개요(4-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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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3-02 ㅣ No.679

[새 번역 교본 읽기] 레지오의 봉사 · 레지오 신심의 개요(4-5장)

 

 

한국세나뚜스협의회는 ‘레지오 마리애 공인교본(2014년 영문판)’에 대해 광주대교구 소속 안세환 신부께 번역을 의뢰하였습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번역 교본은 1993년 영문판을 번역한 것으로 1993년 이후로 수차례 부분 수정이 있었습니다. 교본 전체를 새로운 시각으로 번역한 교본의 내용을 본 코너를 통해 계속 게재할 예정입니다.

 

단원들께서는 새로 번역된 교본의 내용을 검토하시고 내용에 대해 건의가 있을 경우 상급 평의회나 월간지 편집실로 의견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보내주신 내용은 검토하도록 하겠으며, 타당한 의견이나 건의에 대해서는 추후 새로운 교본의 인쇄가 결정될 경우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제4장 레지오의 봉사

 

5. 달릴 길을 다 달려야 한다(2티모 4,7)

 

이처럼 레지오는 한계를 두지 않고 아낌없이 봉사하도록 부름을 받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봉사 활동을 완전하게 하라는 충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완전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최고의 목표를 겨냥하지 않는 단원은 오래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평생 사도직 활동을 꾸준히 지속하는 것 자체가 바로 영웅적 행위이며, 그러한 경지는 끊임없는 영웅적 활동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평생을 변함없이 사도직 활동에 몸 바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에 대한 보상이다.

 

그러나 단원 각 개인에게만 그러한 지속성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레지오의 전반적 임무와 업무 하나하나에도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의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물론 필요에 따라 변화가 있을 수 있으며, 각기 다른 장소와 사람들을 새롭게 찾아다니며, 한 가지 활동을 마치고 나면 또 다른 새로운 활동이 전개된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는 우리의 활동 중에 자연히 생기는 안정된 변화일 따름이며, 결코 흥미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필요한 변화가 아니다. 만일 단원이 호기심이나 취미로 새로운 활동 거리를 찾아 나선다면, 그러한 기분에 따른 행위는 아무리 훌륭한 레지오 규율이라도 끝내는 깨뜨려 버린다. 이렇게 변화만을 좇는 정신을 염려하여 레지오는 좀 더 엄격한 기풍을 지니도록 끊임없이 호소한다. 그리하여 레지오는 연속되는 회합을 통하여 단원들에게 이 정신을 ‘굳게 지키라.’는 불변의 구호를 강조하면서 활동 임무를 배당하여 파견한다.

 

줄기찬 노력만이 참된 성공을 보장하며, 줄기찬 노력은 이기고 말겠다는 굳센 의지로부터 시작된다. 이기고 말겠다는 굳센 의지는 어떤 경우에도 굽히지 않아야 끝까지 지탱될 수 있다. 그러므로 레지오는 산하 조직체와 단원들에게 패배를 받아들이지 말고, 활동 내용에 대하여 ‘가망 있다·가망 없다·절망적이다.’ 등의 등급 매김으로 실패를 합리화하는 것을 거부하는 일관된 태도를 취할 것을 강력하게 지시한다. ‘희망이 없다’는 낙인을 쉽사리 찍는 것은, 레지오의 입장에서 보면, 더없이 귀중한 영혼이 아무 거리낌 없이 지옥으로 치달아도 알 바 아니라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게다가 ‘희망이 없다’는 낙인을 쉽사리 찍는 것은, 더 고귀한 목적들보다는 다양한 활동을 행하고 일이 진척되는 표지를 보려는 경솔한 바람이 활동 이유를 대신하려 한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 결과, 씨를 뿌리자마자 수확을 보지 못하면 실망하고 조만간 그 일을 포기하게 된다.

 

다시 강조하지만, 어떤 활동에 대하여 ‘가망이 없다.’는 낙인을 찍게 되면 자동적으로 다른 모든 활동에 임하는 단원들의 태도를 약화시킨다. 그렇게 되면,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모든 활동에 착수할 때마다 애써 해야 할 가치가 있는지를 의심하게 되며, 조금이라도 의심이 들게 되면 활동은 위축된다.

 

그런데 레지오 사업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불행한 일은, 단원들의 신앙심이 제대로 구실을 하지 못하고 배당 받은 활동이 이성적으로 용납될 때에만 하는 척하게 된다는 것이다. 레지오의 믿음이 이처럼 속박 받아 결단력을 잃게 되면, 억눌려 있던 본성적인 비겁함이나 인색함 그리고 세속적인 소심증이 당장에 고개를 쳐들게 된다. 그렇게 되면 레지오의 활동은 간간이 마음이 내킬 때에만 하게 되므로, 하느님께 드리기에는 너무나 부끄럽고 어설픈 봉사가 되고 만다.

 

그렇게 때문에 레지오는 활동 계획에 관한 것보다는 오히려 활동의 목적에 쏟는 열의에 더 관심을 갖는다. 레지오가 단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재력이나 개인적인 영향력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 눈에 띄는 행동이 아니라 느슨해지지 않으려는 노력, 재능이 아니라 시들지 않는 사랑, 거대한 힘이 아니라 한결같은 규율이다. 레지오 단원의 봉사는 지속적이어야 하며, 위기를 맞더라도 바위와 같이 튼튼하고 언제나 변함이 없어야 한다. 성공하기를 바라지만 일단 성공하면 겸손해야 하며, 성공 여부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실패하지 않으려고 싸워야 하나 실패하더라도 낙담하지 않으며, 계속 싸움을 벌여 마침내 실패를 이겨내야 한다. 또한 온갖 어려움과 단조로움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 온갖 어려움과 단조로움은 믿음을 실천하고 지속적인 공격을 할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소집될 때를 대비하여 항상 준비하고, 소집되지 않더라도 마음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며, 싸움이 없어 적이 눈앞에 띄지 않더라도 늘 하느님을 위하여 지칠 줄 모르는 빈틈없는 파수꾼 노릇을 해야 한다. 불가능한 것이라도 해내겠다는 마음을 지니고 보잘것없는 임무에도 만족해야 한다. 너무 커서 감당할 수 없는 일도 없고 너무 작아서 하찮게 보이는 임무도 없으므로, 매사에 똑같이 세심한 관심과 똑같이 지치지 않는 인내심과 똑같이 꿋꿋한 용기를 불어넣어야 하고, 모든 임무를 똑같이 최고의 끈기로 수행해야 한다. 늘 영혼을 돌보기 위하여 일하면서, 나약한 이들 가까이에서 그들이 어려운 순간을 보낼 때마다 지탱해주고, 완고한 이들을 깨어 지켜보다가 그들의 마음이 온화해지는 흔치 않은 기회를 틈타 접근하여야 한다. 방황하는 사람들을 찾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자신의 일에는 신경 쓰지 말고, 늘 다른 사람들의 십자가 곁에 서서 할 일이 다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 지켜 서 있어야 한다.

 

성실하신 동정녀께 봉헌되어 명예로울 때나 곤욕을 당할 때라도 그분의 이름을 지니고 있는 우리 레지오의 봉사는 한결같아야 한다.

 

 

제5장 레지오 신심의 개요

 

레지오 신심의 개요는 기도문에 나타나 있다. 레지오는 우선 하느님을 향한 깊은 믿음과 하느님께서 당신 자녀인 우리에게 쏟으시는 사랑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쏟는 노력에서 영광을 이끌어 내고자 하시며, 우리의 노력을 정화시켜 풍성한 열매를 맺고 꾸준히 지속하도록 해주신다. 우리는 무관심과 지나친 불안이라는 양극단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활동과는 동떨어져 계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깨달아야 할 사실은, 우리가 선한 목적을 가지는 것은 오로지 하느님께서 그런 마음을 우리 안에 심어 주셨기 때문이며, 하느님께서 늘 도와 주셔야만 우리의 그 선한 목적이 비로소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수행하는 사업의 성공은 우리보다도 훨씬 더 하느님께 달려 있다. 우리가 열망하는 것보다 무한히 더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변화를 열망하신다. 우리는 성인이 되기를 추구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자신보다 백만 배나 더 우리가 성인이 되기를 갈망하신다.

 

자기 성화와 이웃에 대한 봉사라는 이중 활동을 수행할 때 선하신 아버지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동반하신다는 것을 아는 것, 그것이 레지오 단원들을 지탱해주는 핵심적인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 성공을 방해할 수 있는 것은 믿음의 결핍뿐이다. 우리에게 오로지 충분한 믿음만 있다면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위해 세상을 정복하는 일에 우리를 사용하실 것이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1요한 5,4)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판단은 얼마나 헤아리기 어렵고 그분의 길은 얼마나 알아내기 어렵습니까?’(로마 11,33)라는 사실을 알고 겸손되이 인정하면서, 살아 계신 하느님의 말씀의 진리에 ‘자신을 내어 맡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영원한 뜻에 따라 하느님의 ‘알아내기 어려운 길’과 ‘헤아리기 어려운 판단’의 한복판에 서 계시다고 할 수 있는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의 계획 안에 들어 있는 모든 것을 준비된 마음으로 온전히 받아들이시면서, 희미한 믿음의 빛 안에서 하느님의 알아내기 어려운 길과 헤아리기 어려운 판단에 자신을 내어 맡기시는 것입니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 14항)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3월호,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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