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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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이스라엘 성지: 피땀 흘리며 기도하시고 붙잡히신 겟세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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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7-08 ㅣ No.1832

[예수님 생애를 따라가는 이스라엘 성지] 피땀 흘리며 기도하시고 붙잡히신 겟세마니

 

 

예루살렘 도성 안 이층 방에서 제자들과 함께 최후 만찬을 드신 예수님은 키드론 골짜기를 건너 올리브산으로 가십니다. 만찬을 드신 후니까 이미 어둠이 깔린 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올리브산 너머 마르타와 마리아 그리고 당신이 소생시키신 라자로가 있는 베타니아로 가신 것이 아니라 올리브산기슭 겟세마니로 가십니다. 예루살렘에서 베타니아로 가려면 거쳐야 하는 곳이어서 제자들도 잘 알고 있는 곳이었습니다(요한 18,1-2 참조). 겟세마니란 ‘기름을 짜는 곳’이라는 뜻인데, 올리브나무가 많은 동산 혹은 정원 같은 숲이었습니다.

 

겟세마니에 이르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여라” 하고 말씀하시고 나서 “돌을 던지면 닿을 만한 곳에” 혼자 가시어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고뇌와 번민에 싸여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셨는지 “땀이 핏방울처럼 되어 땅에 떨어졌다”라고 루카 복음서는 전합니다(루카 22,39-44).

 

- 겟세마니 대성당 제대와 뒷벽.

 

수난을 앞둔 예수님께서 피땀을 흘리시며 간절히 기도하셨다고 전해지는 그 바위 위에는 대성당이 우뚝 솟아있습니다. ‘겟세마니 대성당’ 혹은 ‘예수님의 고뇌 기념 성당’이라고 부르지요. 1919년부터 짓기 시작해 6년이 걸려 완공된 이 대성당은 또한 여러 나라의 재정적 지원과 관심으로 지어졌다고 해서 ‘민족들의 대성당’이라고도 부릅니다.

 

대성당 안의 분위기는 무겁고 어둡습니다. 제대 앞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뇌와 번민 속에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셨다는 바위입니다. 바위는 제대 쪽을 제외하고 올리브가지를 곁들인 가시관 형태의 철로 된 화관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화관은 정면이 가시나무 새 두 마리가 잔을 향해 있는 모습으로 돼 있는데, 예수님 수난의 잔을 함께 마시고자 하는 영혼들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제대 뒷 벽면에는 겟세마니 동산에서 고뇌에 차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린 모자이크화가 있습니다.

가시 화관이 둘러쳐진 바위 앞에 무릎을 꿇으면 2000년 예수님께서 겟세마니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시며 간절히 기도하시는 그 모습이 생생히 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제대 앞에서 내가 하고 싶지 않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있다면 떠올려 보십시오. 그리고 예수님과 한마음이 되어 기도해 보십시오. ‘하실 수만 있다면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십시오. 다만 그 잔을 기꺼이 받게 해 주십시오.’

 

간절히, 열심히 기도하시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이 대성당에서는 특별히 소지품을 도난당하거나 분실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어두컴컴한 분위기를 타서 손버릇이 좋지 않은 손님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 겟세마니 대성당 외벽의 부조(좌) 제대와 바위(우).

 

 

겟세마니 대성당 제대 앞에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다는 바위 있어

 

대성당이 세워지기 전 이 자리에는 비잔틴 시대부터 기념 성당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당의 화려한 모자이크 바닥의 일부가 지금도 대성당 바닥 유리면 아래에 보존돼 있습니다.

 

대성당 안에서 기도를 바치고 나오면 대성당 정면 상부 외벽의 화려한 모자이크 그림을 주의 깊게 올려다보는 것도 좋습니다. 하느님과 중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중앙에 있고 오른쪽에는 비천한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께 다가서는 모습이, 왼쪽에는 지혜롭고 힘 있는 이들이 역시 자신들의 부족함과 나약함을 고백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모자이크화 바로 아래 네 기둥 위에는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의 네 복음사가 상이 예루살렘 도성을 바라보며 서 있습니다.

 

- 올리브 정원.

 

 

성당을 나오면 오른쪽에 올리브나무들이 우거진 정원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아주 오래된 고목들도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는 않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이 정원에 있던 올리브나무들은 기원 후 70년 로마 장군 티투스가 예루살렘을 점령했을 때에 다 베어 버려서 없어졌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올리브나무들이 예수님 시대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올리브나무는 베어버린 그 밑동에서 새싹이 돋아 새로운 올리브나무로 자라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에 이곳의 올리브나무들 연대를 방사성 탄소로 측정한 결과 어떤 것은 2300년이나 됐다고 하지요. 현재 겟세마니에 있는 올리브나무들 가운데 오래된 나무는 모두 여덟 그루인데, 나무 수명을 조사한 결과 세 그루가 12세기의 것이라고 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여덟 그루의 고목이 모두 한 나무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 올리브나무들이 어쩌면 예수님 시대에 있던 나무에서 나온 후손일 수 있다는 얘기지요.

 

 

제자들이 예수님을 기다리다 지쳐 잠든 곳에 동굴 경당

 

이 올리브나무 정원에서 북쪽으로 조금 더 가면 양쪽이 돌로 된 벽으로 처진 통로를 만날 수 있습니다. 통로 끝에는 문이 나 있고 문 위에는 ‘동굴’ ‘겟세마니’라는 글씨와 성경 구절을 적은 팻말이 붙어있습니다. 겟세마니 동굴 경당입니다. 이 자리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이 기도하는 동안 기다리라고 하신 곳, 제자들이 예수님을 기다리다 지쳐서 잠이든 그곳입니다. 배반자 유다스가 이끌고 온 무리에게 예수님께서 붙잡히신 바로 그곳이기도 하지요.

 

- 겟세마니 동굴 경당 입구(좌) 제대(우).

 

사도들의 경당이라고도 하는 이 동굴 경당의 중앙 제대 뒤에는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기도하시는 예수님 모습을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옆 제대들에서는 성모님의 승천과 유다스가 스승에게 입맞춤하는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경당 한쪽에는 잠들어 있는 두 제자의 모습을 담은 청동상이 있고, 벽면 등에는 이 경당 안에는 비잔틴 시대의 모자이크화와 십자군 시대 때의 벽화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동굴은 부분적으로는 훼손되기는 했지만 예수님 시대의 체취를 거의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단체 순례객들은 겟세마니 정원을 둘러보고 대성당을 순례하는 것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된다면 잠깐이라도 겟세마니 동굴 경당에 들러 지쳐 잠든 사도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묵상하시기를 권합니다. 예수님을 기다리자 지쳐 잠든 제자들 모습은 바로 우리 모습이기도 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7월호, 이창훈 알퐁소(가톨릭평화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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