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6일 (화)
(백) 부활 제3주간 화요일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강론자료

2019-04-20.....부활성야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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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9-04-16 ㅣ No.2299

부활성야(復活聖夜) - 다해

1독서 : 창세기 1,1-2,2      2독서 : 창세기 22,1-18      3독서 : 탈출기 14,15-15,1

4독서 : 이사야 55,5-14     5독서 : 이사 55,1-11         6독서 : 바룩 3,9-15.32-4,4

7독서 : 에제키엘 36,16-17.18-28     신약독서: 로마 6,3-11     복음: 루카 24,1-12

 

2019. 4. 20. (). 이태원

주제 : 예수님의 부활을 대하는 자세

오늘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위대하고도 놀라운 밤, 부활성야입니다. 오늘이 특별하게 된 역사적인 배경에는 하느님의 힘이 히브리민족을 위하여 이집트에서 3500년 전쯤에 살던 사람들에게 적용된 일에서 시작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그 놀라운 일을 밤-시간에 기억합니다. 세상에 통용되는 말로 '세상의 중요한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혼인한 사람이 첫날을 지내는 놀라운 일도, 세상에서 몇몇 사람이 자기의 뜻을 몇몇 사람들에게 알리고 자기의 생각만이 옳다고 주장하고 행동하는 혁명도, 남의 것을 내 것으로 가져오는 도둑질을 실행하는 일도 일반적으로 밤에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오늘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이집트백성의 탈출과 예수님의 부활에 담긴 의미가 세상에서 이뤄지는 일들과 같은 의미만 있지는 않습니다. 오늘 거행하는 전례의 의미를 만든 놀라운 일이, 하느님의 뜻에 맞섰던 파라오가 다스리던 이집트민족에게는 재앙이었지만, 그 뜻을 따르던 히브리민족에게는 구원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2019년의 현실에서 이루어진 일은 아닙니다. 지금부터 3500년쯤 전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세상에 이루신 하느님의 일에, 사람은 어떤 대가를 내야 했을까요? 물론 하느님이 대가로 생각하는 일과 인간이 대가로 생각하는 일은 다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세상에서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크게 생각하고, 다른 대상이 한 일의 의미를 낮추어 봅니다. 그래서 내가 한 일의 어려움이나 영향은 크다고 할 것이고, 다른 사람이 한 같은 일에 관한 판단은 작다고 말하기가 쉽습니다.

 

우리가 알 수도 있는 이러한 기준을 적용하면, 오늘 밤에 우리가 기억하는 하느님의 일은 인간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이겠습니까? 그리고 그 놀라운 일이 실현되기를 원하는 날에 실제로 인간이 한 일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지도 못했으면서 힘겨운 일을 당한 이집트의 백성에게는 서글픈 일이었습니다. 세상의 현실에서 눈에 거슬리던 사람을 죽이기만 하면 모든 것이 자기들의 승리라고 생각했을 사람들처럼, 왜곡된 심성을 가졌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이집트의 왕, 파라오의 처지에서는 다른 민족을 위해서 하느님이 하는 일을 무조건 따라고 왜 복종해야 하는지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죽어야만 할 죄인으로, 예수님이 하느님을 모독했다고 죽어야 한다고 판단했던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이루신 예수님의 부활이 도대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사람의 선택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라서 만들어지는 결과는 내가 감당해야 할 일입니다.

 

세상의 창조, 하느님의 구원, 갈대바다를 건넌 일과 그리고 새로운 민족으로서 지켜야 할 삶의 규정들, 그리고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예수님이 놀라운 일을 하실 거라고 예상했던 제자들의 황당했던 꿈이 실현되는 일이었던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가 독서와 복음을 통해서 들은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놀라운 일은 많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그 모든 놀라운 일을 대하면서도 사람은 놀랍다고 여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놀라운 일을 놀랍게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놀라운 영광을 얻을 수 있는 법이지만, 그것도 모든 사람이 똑같이 행동하는 일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시신을 모셨던 돌무덤의 문이 열리고, 그 안을 살펴본 제자들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신앙에서 설명하는 예수님의 부활이지만, 현실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찬란한 빛과 함께 무덤을 막았던 돌을 밀치고 나오는 부활의 모습은 아닙니다. 부활은 설명하는 자세에 따라서 차이가 있을 일입니다. 그 차이를 우리의 삶으로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세상에 드러나는 나의 삶이 달라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이신 부활의 영광이 우리를 가득 채우시라고 청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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