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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기도] 주님의 기도와 교부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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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8-14 ㅣ No.1239

[주님의 기도와 교부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오늘’의 의미

 

주님의 기도는 우리에게 늘 넉넉하고 풍부한 양식을 청하라고 가르치지 않고, 다만 오늘을 위한 하루치를 청하라고 가르치신다. 제한을 두시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자가 물었다. “어째서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 광야를 지날 때 날마다 하루 먹을 만나만 취하도록 하셨을까요?”

 

스승은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 대답하였다. “옛날에 한 임금에게 아들이 하나 있었다. 임금이 아들에게 일 년 동안 필요한 물품을 한꺼번에 주자 아들은 일 년에 한 번만 아버지 앞에 나와 인사를 드렸다. 어느 날부터 임금이 그날 필요한 물품만을 주자 아들은 날마다 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리러 나왔다. 하느님의 은혜로 우리가 날마다 살아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시려고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기도 안에 그 가르침을 담아 주신 것이다.”

 

요즘은 일용할 양식을 전혀 걱정하지 않고 사는 이가 많다. 따라서 많은 사람이 하느님 앞에 나와 인사드리는 것을 잊고 산다. 이런 상황에서 곤경에 빠진 이들에게 도움을 베풀고, 그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라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저희에게’의 의미

 

주님은 양식을 청하는 기도를 가르치실 때 ‘나에게’라고 하지 않으시고 ‘저희에게’라고 강조하셨다. 주님의 기도는 모든 인간 공동체를 위해서 드리는 기도여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시려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는 공적이고 공동체적입니다. 평화와 일치의 스승께서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개별적으로나 사적으로나 마치 각자가 자기를 위해서만 기도하듯이 기도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 또는 ‘오늘 나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라고 하지 앟습니다.

 

또한 죄의 사함을 청할 때 ‘나의 죄만을 용서해 주시고’, ‘나만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또는 ‘나만 악에서 구해 주소서.’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공적이고 공동체적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이기 때문에 기도할 때 온 백성을 위해 기도합니다.

 

일치의 유대를 가르치시고 화목과 평화의 스승이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아드님 안에 모든 이를 하나로 모으셨듯이 우리 각자도 모든 이를 위해 기도하기를 원하셨습니다”(치프리아노, 「주님의 기도 해설」, 8-9).

 

 

‘양식’의 의미

 

‘양식’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주님께서 이 양식을 하느님께 청하도록 가르치신 이유는 우리의 생명 유지가 하느님의 도우심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려 주시려는 것이다. 인간은 양식 없이는 살 수 없다. 양식에는 육신의 건강과 생명 유지에 필요한 양식과 인간 영혼의 양식이 있다. 하느님께서는 이 두 종류의 양식을 다 주시는 생명의 아버지이시다.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동안 광야의 길을 갈 때 하늘에서 내려 주시는 만나와 메추라기로 살았다(탈출 16,8 이하 참조).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던 수많은 군중을 빵의 기적으로 배불리 먹이셨다(마태 14,13 이하 참조).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당신의 몸과 피를 영원한 생명을 위한 양식으로 주시며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으셨다(마태 26,26-29 참조).

 

“이 말씀은 영적인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고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 모두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구원에 도움이 됩니다. 그리스도는 생명의 빵이십니다. 그리고 이 빵은 우리의 빵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이들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하듯이,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몸의 지체들인 우리의 빵이시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우리의 양식’이라고 부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양식으로 날마다 성체를 영하는 우리는 중한 죄에 빠져 천상의 빵을 영하지 못하게 되거나 그리스도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이 양식을 주십사고 날마다 기도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 6,51).

 

주님께서 당신이 주시는 양식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산다고 말씀하실 때 영원히 사는 이들이란 당신의 몸을 이루기에 합당한 자로서 성체를 영하는 이들임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누가 성체를 영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면 구원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늘 두려워하고 이렇게 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친히 이 위험을 되새겨 주셨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요한 6,53).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그분의 은총과 몸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우리의 양식 곧 그리스도를 날마다 주십사고 청합니다”(치프리아노, 「주님의 기도 해설」, 18-22).

 

 

하느님의 섭리에 신뢰심으로 드리는 기도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염려해 주시는 하느님의 섭리에 신뢰심을 가지고 맡기라고 명하신다. 세상의 질서나 자신의 능력에 의존하지 말고 하늘에 계신 하느님의 선하심에 의지하여 청하라고 가르치신다. 주님의 기도는 이런 의미에서 믿음이 있는 사람만이 드릴 수 있는 기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버림받은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더라도,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늘 염려하신다는 것을 확신하라고 가르쳐 주시는 기도이다. 믿음으로 살라고 가르쳐 주신다.

 

“하느님의 나라와 의를 찾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곁들여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니 하느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하느님을 저버리지 않는 한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왕의 명령으로 사자 굴에 갇힌 다니엘(다니 6장 참조)이 하느님의 섭리로 먹을 것을 얻게 되었으며, 이 하느님의 사람은 굶주렸지만 유순하게 된 맹수들 사이에서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또 엘리야가 피신하여 사막에 있을 때 까마귀들이 먹을 것을 갖다 주었고(1열왕 17,5 이하 참조) 박해를 받고 있었을 때 새들이 음식을 날라다 주워 먹을 수 있었습니다”(치프리아노, 「주님의 기도 해설」, 21).

 

아모스 예언자는 주님 말씀의 양식으로도 깨달아야 함을 알려 주었다. “주 하느님의 말씀이다. 내가 이 땅에 굶주림을 보내리라. 양식이 없어 굶주리는 것이 아니고 물이 없어 목마른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 굶주리는 것이다”(아모 8,11).

 

예수님의 말씀도 이 뜻을 분명히 전해 주신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 4,4).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 저희에게 날마다 필요한 당신의 말씀을 주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일용한 양식은 성체성사

 

교부들은 양식을 성체성사로 해석하였다. 말씀의 빵과 성체의 빵은 우리를 위한 생명의 양식이다. 성 아우구스티노 교부는 이렇게 강론했다. “성체는 우리의 일용한 양식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이 양식에는 일치의 힘이 들어 있습니다. 성체의 힘은 우리를 주님의 몸과 하나 되게 하고 우리를 그분의 지체가 되게 합니다. 이 일용한 양식은 또한 여러분이 날마다 교회 안에서 들으시는 성경 말씀 안에 들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순례 여행을 위해 필요합니다”(「설교집」, 57,7,7).

 

페트루스 크리솔로구스 교부는 이보다 더 자세하게 말씀하신다. “그리스도 친히 빵이십니다. 동정 마리아 안에 뿌려지고, 육신 안에 발효되어, 수난 중에 반죽이 되었으며, 무덤의 난로 속에서 구워진 다음, 교회 안에 간직되고, 제대 위에서 봉헌되는 빵이십니다. 이 빵을 그리스도께서는 날마다 천상 양식으로 신자들에게 나누어 주십니다”(「강론」, 67).

 

 

결론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할 때, ‘오늘’이라는 말로 현세를 뜻하고, ‘양식’이라는 말로 사람이 살아가는 데 근본적인 것만을 표현하지만, 삶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청할 뿐 아니라, 현세의 행복이 아닌 영원한 행복을 얻고자, 믿는 이들이 현세에서 필요한 성사를 청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아우구스티노, 「프로바에게 보낸 편지」, 130,12,22).

 

* 장인산 베르나르도 - 청주교구 신부. 원로 사목자로 강화꽃동네 성녀 헬레나 성당에서 통일을 기원하며 지낸다. 독일 본대학교에서 교부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대구가톨릭대학교와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경향잡지, 2018년 8월호, 장인산 베르나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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