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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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생각하는 신앙: 때가 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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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7-11 ㅣ No.1222

[생각하는 신앙] “때가 차서…”

 

 

성경은 ‘때’와 ‘시간’에 대한 체험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때와 시간은 다릅니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때는 기다립니다. 신앙인은 흐르는 시간 속에서 의미 있는 ‘때’를 발견합니다.

 

 

‘때’의 신비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코헬 3,1) 코헬렛의 이 말씀은 ‘빨리빨리’를 요구하는 이 시대에 어리석은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한경쟁사회에서 남보다 먼저 목적지에 도달하려는 강박관념에 싸인 나머지,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서둘러 오히려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우리이기도 합니다.

 

자연을 자세히 관찰하다보면 때를 기다리는 지혜를 갖추고 있음을 보고 놀라게 됩니다. 어쩌면 이 시대는 때를 기다리는 법을 잊었는지 모릅니다. 때를 알고 기다리는 사람은 삶을 다른 방식으로 살 수 있습니다. 때를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매 순간이 소중하게 다가오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시간은 과거 속에 묻혀버리고 맙니다.

 

 

시간 속으로 들어오신 하느님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예수님은 공생활을 준비하며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어 오실 때 다 자란 성인이 아닌 태아에서 출발하셨음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실 때, 순전히 외부로부터의 힘으로 하고자 하지 않으셨음을 의미합니다. 마리아의 태중에 잉태되어 일정한 시간이 지나 세상에 태어나셨음은, 인간의 육신을 잠시 빌려 입은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조건 곧 잉태와 탄생에서 성장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당신 것으로 하셨음을 의미합니다.

 

 

때를 기다리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중에도 때를 준비하고 기다리셨습니다. 때를 안다는 것은 장차 펼쳐질 운명을 예견함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앞으로 걸어야 할 길, 곧 소명에 대한 인식입니다. 예수님은 공생활 여정 중에 앞으로 당신이 어떤 결말을 맺을 것인지 예견하고 계셨습니다. 어느 순간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시며, 발걸음을 예루살렘으로 옮기십니다. 복음서는 그 사실을 극적으로 표현합니다.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루카 9,51)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요한 13,1)

 

예수님은 당신이 어떤 종말을 겪을 것인지 아시고 제자들과 그 때를 준비하셨습니다. 그것은 만들어진 굴레를 뒤집어쓰는 것이 아닌, 스스로 선택한 자유로운 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분에게는 ‘용기’가 필요했고, 비록 겟세마니의 힘겨운 밤을 거쳐야만 했습니다.

 

 

우리의 때는?

 

때를 기다린다는 나를 향한 하느님의 계획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나는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때가 올 것이라고 믿습니까? 하느님은 나에게 어떠한 길을 열어 주시는가요? 하루하루, 매 순간을 때를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시간을 허비하며 살고 있는가요? 때를 준비하고 기다릴 때 분명 삶이 변화할 것이며, 우리가 보내는 시간이 질적으로 변할 것입니다.

 

 

기도 체험에서

 

우리는 기도하며 종종 하느님께 묻습니다. 왜 나의 기도는 들어주지 않으시는가요? 그에 대한 답은 하느님께서만 아실 것입니다.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내가 아직 준비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시간 안에서 성장합니다. 시간은 우리를 성장시켜주고 정화시켜줍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이미 만들어진 답이 아니라, 답을 찾는 여정 안에서 변화하고 성장하기를 바라십니다. 하느님의 침묵은 때로는 야속하고 나를 불안하게 하지만, 시련을 견디어내며 항구하게 기도할 때, 우리의 바람을 순수하게 하고 정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성장의 시간을 창출하며, 우리의 바람이 더욱 간절해지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바람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평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다른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그것은 이미 주어졌는지 모릅니다. 하느님의 침묵 앞에서 변화의 과정은 우리가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을 뜨게 할 것입니다.

 

 

시련 속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과도 같은 시련 속에서 우리는 묻습니다. 왜 시련이 끊이지 않은 것일까? 나는 영원히 버려진 걸까? 하느님은 나를 잊으신 걸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신앙은 때를 기다리는 지혜를 청하라고 합니다. 때가 올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포기하지 않고 시련을 다르게 대합니다. 때를 안다는 것은 하느님의 지혜에 다다르는 길입니다. 때가 있음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은 시련 속에서 견디어낼 줄 압니다. 필요한 것은 항구함이며 용기와 신뢰입니다. 하느님께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함께 하신다는 것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때 내딛는 단 한 걸음이야말로 우리의 삶에 놀라운 기적을 일구어내는 위대한 행위입니다. 시련이 지난 후 아름답게 빛나는 보석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외침, 2018년 7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한민택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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