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강론자료

2018-05-04.....부활 제5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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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8-05-03 ㅣ No.2208

부활 제5주간 금요일

사도 15,22-31            요한 15,12-17

2018. 5. 4. 이태원.

주제 : 우리가 원하는 삶

우리가 세상의 삶에서 다른 사람을 인정한다는 것은 어떤 생각이나 만날 수 있는 일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일반적으로 자신의 귀중함은 알아도 다른 사람의 귀중함을 나와 같은 품격으로 인정하는 일이 쉽지가 않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이 어려운 일이라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인정해서 내가 얻을 이익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생각하는 탓이고, 내가 다른 사람을 인정한다는 것은 내가 얻을 것보다 많은 것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가져야 만족하는 존재일까요? 그리고 내가 가졌다고 여기는 것에서 얼마나 주면, 내가 얻은 것보다 많이 주었다고 평가하겠습니까? 지금 말씀드린 표현에서는 내가 가졌다는 것을 남에게 주는 것을 먼저 말씀드렸습니다만, 입장을 달리 말하면, 내가 다른 사람에게서 얻어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의 기준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으면 만족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한계를 생각할 때, 사람의 마음이나 생각에 만족한다는 끝은 있을까요? 묻기는 쉬워도 대답은 쉽지 않은 것이 이 질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독서에서 현재의 이스라엘이 아닌 곳에 모여 살던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로 바뀌었을 때, 그들을 내 형제와 자매로 인정하는 사람의 한계에 대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독서에 나온 이야기와 이방지역에 살던 사람들을 인정하는 조건은 지극히 상식에서 마쳤습니다만, 독서에 나온 것과는 달리, 우리가 세상의 삶에서도 그렇게 행동할 것인지 질문해야 합니다. 삶이란 다른 사람이 실천하는 좋은 모습을 듣고 만족하거나 칭찬하는 일로 충분한 것이 아니라, 같은 처지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할 사람인지를 볼 수 있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랑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그대로 인정해야 할까요? 아니면, 내 생각을 예수님에게 알려드리고 예수님이 당신의 주장을 내려놓고 우리 사람의 생각대로 살기를 바라야 할까요?

 

삶의 모든 것은 상대적일 수 있습니다. 나만 다른 사람에게 너그럽고 이해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나를 향하여 너그럽고 이해심이 풍부하다는 것을 알아야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정확하다거나 올바르게 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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