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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37: 이탈리아 라벤나의 갈라 플라치디아 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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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9-19 ㅣ No.475

[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37) 이탈리아 라벤나의 ‘갈라 플라치디아 묘당’


황제의 딸 잠든 곳에 ‘영원한 생명’ 담은 작품들 가득

 

 

- ‘갈라 플라치디아’ 묘당.

 

 

이탈리아 북동쪽 해안에 위치한 라벤나는 역사와 예술의 도시로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다. 로마 황제 호노리우스 2세는 402년에 이곳을 서로마제국의 수도로 정했으나, 역사의 변화 속에서 부침(浮沈)을 거듭해왔다. 

 

이곳에는 로마시대의 궁전과 요새, 비잔틴시대의 유적지와 유물이 많이 남아 있다. 

 

비탈레 성당, 성 아폴리나레 누오보 성당, 성 아폴리나레 인 클라세 성당이나 세례당 같은 교회 건축물도 볼 수 있는데, 그 안에서는 아름다운 모자이크가 빛난다. 특히 성당 안을 장식한 모자이크는 세계 도처에 있는 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나고 보존이 잘 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 가운데서 가장 오래되고 예술적이면서도 잘 보존된 모자이크 작품은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의 딸인 ‘갈라 플라치디아(Galla Placidia, 388~450) 묘당’에서 볼 수 있다. 예술의 적극적인 후원자였던 갈라 플라치디아는 생전에 자신과 가족의 무덤을 장식하기 위해 이 묘당을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5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십자가 성당 형태의 붉은 벽돌조 건물의 규모는 매우 작다. 그러나 그 안의 모자이크는 죽음을 극복한 영원한 생명의 승리를 장엄하게 나타낸다.

 

- ‘양들을 돌보시는 착한 목자 예수님’ 모자이크 작품.

 

 

비잔틴시대에 만들어진 모자이크에는 구상과 추상 작품이 섞여 있다. 사람의 눈높이에 있는 곳에서는 구상 작품을, 더 높은 곳이나 천장에서는 추상 작품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성 라우렌시오의 순교’와 ‘양들을 돌보시는 착한 목자 예수님’과 성인이나 여러 상징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그 가운데서 가장 유명한 것은 북쪽 입구의 반달형 아치에 장식된 ‘양들을 돌보시는 착한 목자 예수님’이다.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바위에 앉아 신자를 상징하는 양을 돌보신다. 한 손으로는 승리의 십자가를 쥐시고 다른 손으로는 양에게 풀을 먹이신다. 머리 뒤에 빛나는 황금색 후광은 착한 목자가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나타낸다. 

 

예수님의 얼굴이 수염도 없는 젊은이로 표현된 것은 초기 그리스도교 미술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분 안에 영원히 시들지 않는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이렇게 표현했다. 또한 이 작품에서는 음영을 사용해 모자이크가 마치 회화 작품처럼 풍부한 느낌을 준다.

 

목자 그림 위 반월형 벽면에는 푸른 모자이크 바탕에 작은 원형의 장식이 박혀 있다. 이것은 에덴동산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천장엔 황금빛 별들이 가득 장식돼 있고, 가운데에서는 예수님의 승리를 나타내는 황금빛 십자가가 빛난다. 각 네 면에서는 네 복음사가의 상징물을 볼 수 있다. 황금빛별과 십자가는 천상의 하느님 나라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 승리의 십자가와 수많은 별이 장식된 천장의 모자이크.

 

 

착한 목자 모자이크의 맞은편에는 갈라 플라치디아의 주검을 담은 석관이 있다. 사람들은 석관의 주인공이 죽음 이후에도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돌보심을 받으며 하늘나라로 들어가기를 바라면서 이런 모자이크를 제작했을 것이다. 

 

묘당의 내부 모자이크뿐 아니라 1500여 년 전에 벽돌조로 만들어진 외부도 잘 보존돼 있다. 이처럼 라벤나에 있는 유적지들이 잘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세월 속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유적지나 유물의 가치를 알고 잘 돌보며 관리했기 때문이다. 

 

서로마 제국의 수도로서 한때는 화려함을 자랑했던 라벤나의 시대는 지나갔지만 그곳에는 여전히 빼어난 유적지와 성당이 남아서 그 시절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속삭여 준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많은 성당과 교회 기관이 건축되고 있다. 하지만 신축되는 건물의 수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짧은 경우가 많다. 아직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성당이나 교회 건물을 허물고 더 크고 편리한 건축물을 올리는 일은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그 결과 우리 곁에서 역사성을 지닌 건물을 찾아보기는 점점 어렵게 된다. 건축에 있어서도 실용성만 따지다 보면 오늘날 살아남을 오래된 건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건물이 담고 있는 역사성과 예술성도 함께 평가해야만 그나마 오래된 건물이 우리 주변에 남을 수 있다. 성당이나 교회 건축에서는 역사성과 예술성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신앙과 추억의 가치도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역사와 예술의 도시 라벤나를 거닐다보면 도시 전체가 유적지나 박물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곳에 유적지들이 자리 잡아 서로 사이좋게 공존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 도시의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 같다. 오래된 유적지와 성당은 비록 실용성은 떨어지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신앙과 예술, 역사와 문화, 추억과 아름다움을 전해 주며 우리의 메마른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 정웅모 신부(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유물 담당) -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1987년 사제품을 받았다. 홍익대와 영국 뉴캐슬대에서 미술사·박물관학을 전공했다. 서울대교구 홍보실장과 성미술 감독, 종로본당 주임, 장안동본당 주임 등을 역임한 바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9월 17일, 정웅모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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