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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신학ㅣ사회사목

[문화사목] 일상 속 영화 이야기: 영화와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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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6-21 ㅣ No.1013

[일상 속 영화 이야기] 영화와 배우

 

 

영화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한다. 그들 중 가장 관객들을 사로잡고 관객들의 기억 속에 남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바로 ‘배우’다. 영화를 창조하는 감독의 역할이 가장 크다고 할지라도 그 감독이 창조해낸 인물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배우의 영향력은 직접적이다. 그래서 어느 감독이 그 작품을 연출했느냐 하는 것보다는 어느 배우가 그 작품에 출연했느냐가 관객들이 영화를 선택하는데 더 큰 영향을 준다. 그렇지만 유명한 배우가 나온다고 해서 모든 영화들이 흥행하지는 않는다. 아주 훌륭한 배우라 할지라도 작품의 캐릭터(Character, 등장인물)와 맞지 않아 실패하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그래서 유명한 배우라고 할지라도 오디션(Audition)이라는 과정을 거친다.

 

 얼마 전 필자가 일하는 대구가톨릭대학교 홍보실에서 학교 홍보영화에 출연할 배우를 선발하기 위한 오디션을 열었다. 64명의 학생들이 지원했는데 안타깝게도 영화에 맞는 캐릭터를 발견할 수 없었다. 전원탈락이라는 사실에 놀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흔한 경험이다.

 

유학시절, 영화를 공부하면서 어려웠던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배우를 뽑는 일이었다. 뉴욕 맨해튼에 있는 레스토랑 홀에서 일하는 종업원의 절반이 배우 지망생이라고 할 정도로 연기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학생작품이라 해도 자신의 필모그래피(Filmography, 배우가 출연한 영화의 리스트 혹은 경력)를 쌓고자 많은 사람들이 오디션에 지원한다. 그러나 감독이 원하는 캐릭터를 소화할 만한 배우를 캐스팅하기는 정말 어렵다. 도저히 원하는 배우를 구할 수 없어 차선책으로 캐스팅했다가 현장에서 원하는 연기가 나오지 않으면 정말 난감하다.

 

배우(Actor)는 흉내(Pretend)내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Acting)하는 사람이다. 감독의 생각 안에 존재하는 그 캐릭터의 인물을 행동으로 드러내는 사람이다. 그런데 행동이 바뀌려면 마음이 바뀌어야 하고 마음이 바뀌려면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즉 내면의 변화가 있어야 진짜 연기가 나온다. 가끔 영화나 드라마에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연기가 미숙한 아이돌 스타들을 출연시키는 것을 볼 때 관객들이 느끼는 어색함은 그것이 acting이 아니라 pretend이기 때문이다. 많은 관객들이 감독이 배우에게 ‘손동작은 이렇게, 표정은 저렇게’ 하는 식으로 연기를 지시한다고 오해한다. 한국에서 공부한 경험이 없어서 단언할 수는 없지만 미국에서는 굉장히 금기시 되는 디렉션 (Direction, 연기지도)이다. 배우를 디렉션하는 수업에서 선생님들은 우리에게 대본을 주지 않거나 설사 준다고 해도 아주 짧은 대사들로 이루어진 것을 주었다. 그리고 디렉션을 할 때 배우들에게는 각자에게 맡겨진 캐릭터와 상황만 알려줄 뿐 다른 배우들의 캐릭터나 상황을 알려주지 않게 하였다. 심지어 각각의 배우들을 따로 데리고 나가 따로 디렉션을 주게 했다. 그리고 나서 배우들을 무대에 세우고 연기를 하게 하면 상대방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는 채 실제상황처럼 자연스러운 반응과 행동(Improvised acting)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배우는 감독의 아바타가 아니기 때문이다. 배우가 스스로 그 캐릭터를 창조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다. 그래서 촬영 전 많은 시간들을 감독과 배우들은 주어진 캐릭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창조하는 작업을 해 나간다. 이러한 감독의 역할은 이 시대의 교육과 우리의 신앙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구가톨릭대학교 홍보실에서는 광고 카피를 “The University, 대구가톨릭대학교”로 정했다. 독일의 모 자동차 회사가 Das Auto, 즉 독일어로 ‘자동차’를 뜻하는 단어를 광고 카피로 정해 그 회사가 생산한 자동차가 바로 모든 자동차의 본질 그 자체라는 것을 강조한 것처럼 대구가톨릭대학교도 대학교육의 본질 그 자체로 돌아가겠다는 새로운 리더의 교육철학과 경영방향을 드러냈다. 자의적으로 해석된 취업률과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는 교육부 정책을 획득했다는 것을 광고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재능을 발견하고 올바르고 건강한 인간으로 성장시키겠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교육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우려와 걱정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취업률과 교육부 정책에 매달린 지금의 대학들이 얼마나 성장했는가라는 질문에 누구도 긍정적인 대답을 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진짜 교육을 통해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좋은 인성과 재능을 갖춘 사람을 배출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도전하는 이유는 교육의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 미래를 위한 가장 좋은 대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육을 뜻하는 영어 단어 ‘education’의 라틴어 어원은 ‘밖으로’를 뜻하는 ‘E’와 ‘이끌어내다’를 뜻하는 ‘ducare’이다. 즉 교육은 아무것도 없는 백지 상태에 새로운 것을 적어 넣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미 심어주신 재능을 발견하고 성장시키는 것이다. 마치 감독(Director)이 배우(Actor)에게 일방적으로 원하는 캐릭터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들 스스로가 자연스럽게 그 인물을 창조해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하는 것처럼 학생들에게 하나의 잣대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안에 있는 창조적 능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자 역할이다.

 

하느님은 창조자이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창조자이신 당신을 닮아 (하느님의 모상, Imago Dei) 우리 안에 숨겨져 있는 재능을 발견하고 성장시키는 또 다른 창조자가 되길 원하신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지켜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며 불평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하느님의 뜻을 창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고 그저 하느님의 아바타가 되어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시간과 돈을 교육에 투자하면서도 행복해지지 못하고 점점 나빠지는 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재능을 발견하고 성장시켜 스스로를 창조해나가는 교육의 본질, 나아가 하느님 모상으로서의 본질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1914년 유스티노신학교에서 시작해 103년의 전통으로 이어지는 우리 교구가 설립한 대구가톨릭대학교가 세상이 말하는 최고의 대학은 아닐지라도 진짜 교육을 하는 진짜 대학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월간빛, 2017년 6월호, 한승훈 안드레아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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