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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3: 초세기 (2) 신약 시대의 영성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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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2-12 ㅣ No.865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3) 초세기 ② 신약 시대의 영성 생활


영성 생활 몸소 실천하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전하는 복음서와 사도들의 편지가 포함된 신약 성경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인 영성 생활의 뿌리를 알려 줍니다. 물론 신약 성경은 예수님 시대의 정서와 언어로 그리스도인이 걸어야 할 영적 여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공생활 동안 보여 주신 행동과 가르치신 내용을 통해서, 그리고 사도들의 가르침을 통해서 신약 성경 시대의 그리스도인 영성 생활을 추적해 볼 수 있습니다.

 

- 제라르 다비드 작 ‘예수 세례’, 16세기 초,  벨기에, 브뤼헤 그로닝헤 미술관.

 

 

회개의 세례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3,2). 구약 시대의 마지막 예언자이자 신약 시대를 여는 요한 세례자는 유다 광야에서 살면서 “요르단 부근의 모든 지방을 다니며,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루카 3,3)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온 유다 지방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이…자기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마르 1,5) 받았습니다.

 

‘공관(共觀) 복음서’가 전하는 요한 세례자의 메시지는 ‘회개’였습니다. 가까이 다가오는 하느님 나라에 참여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우선적으로 세상의 유혹과 우상에게서 눈을 돌려 하느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권고를 접한 유다 백성은 자신을 성찰하고 죄를 고백하며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이 영성 생활을 시작하는 시점은 세례성사를 준비하면서부터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세례성사에 참여하는 첫 회심을 통해서 영적 여정을 시작합니다. 여기서 영세자는 그리스도인으로 새로 태어나기 위하여 세례성사 예식에서 마귀를 끊어 버리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는다고 고백해야만 합니다. 결국 그리스도인의 영성 생활은 죄를 고백하며 자신을 정화하는 단계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거룩함에로의 부르심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먼저 자신이 걷는 영적 여정의 마지막 단계를 파악해야 합니다. 만약 도착점을 잘 알지 못하면, 영적 여정 내내 엉뚱한 곳을 헤매다가 잘못된 곳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시어 사람들을 가르치신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구약 시대에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해 하신 말씀을 떠올리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 하느님께서 거룩하시고 완전하시니 우리도 거룩하고 완전하게 되어야 한다는 권고는 열두 제자들이나 산 위에 모인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 모든 구성원에게 해당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거룩해지도록 하느님께 불렸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영성 생활입니다. 따라서 영적 여정의 마지막 단계는 그리스도인이 완덕을 완성하여 하느님과 하나 되는 일치의 순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점을 공생활 초기부터 모든 사람에게 강조하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코시모 로셀리 작 ‘산상설교와 나병 환자의 치유’,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애덕 실천

 

회개와 함께 시작된 그리스도인의 영성 생활은 하느님과 일치하는 마지막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서 영적 발전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지만 발전 단계는 단순하지 않고, 주님의 은총 속에서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적 발전을 위해서 먼저 ‘애덕’ 실천을 강조하셨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에게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지 질문을 받았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 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마태 22,37~39; 마르 12,29~31 참조; 루카 10,27).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이중 계명이야말로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을 이어받은 가장 큰 계명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인에게 조금 더 구체적인 덕행 실천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는 먼저 갈라티아인들에게 육의 욕망을 채우려 하지 말고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라고 권고했습니다(갈라 5,16 참조). 그리고 그는 로마인들에게도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인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라고 권고했습니다(로마 13,12.14 참조). 결국 바오로 사도의 권고는 육과 어둠의 행실(갈라 5,19~21 참조; 로마 13,13)인 나쁜 악습을 끊어 버리고 성령의 열매(갈라 5,22~23 참조)인 좋은 덕행을 증진하는 수덕 생활을 실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오로도 영성 생활에서 마지막 단계는 애덕에로 수렴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1코린 13,13).

 

요한 복음서는 예수님과 그리스도인 사이에 서로 머무는 것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소개했습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요한 15,4). 우리가 주님 안에 머무르면 주님께서도 우리 안에 머무르시면서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다만 우리가 주님 안에 머무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요한 15,10).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계명을 지킬 때, 주님을 사랑할 수 있고 영성 생활도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기도 생활

 

그러나 정말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늘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고 나신 후에 기도하셨고(루카 3,21), 카파르나움에서 하루 일정을 마치시고 기도하셨으며(마르 1,35), 오천 명가량의 군중을 돌려보내신 후에 따로 산에 가서 기도하셨고(마태 14,23; 마르 6,46), 나병 환자를 고치신 후에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습니다(루카 5,16).

 

또한 예수님께서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도 늘 기도하셨습니다. 즉, 열두 사도를 뽑으시기 전에 산에서 기도하셨고(루카 6,12),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기 전에 기도하셨으며(루카 11,1), 마지막 수난의 길에 앞서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셨습니다(마태 26,36; 마르 14,32; 루카 22,41). 예수님께서 몸소 실천하신 기도 생활은 그리스도인 영성 생활의 중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 생활에서 힘을 얻어 회개의 삶을 시작으로 수덕 생활을 실천하고, 주님 은총 속에 하느님과 일치하는 영성 생활을 추구해야 합니다. 결국 신약 성경의 가르침은 오늘날 영성 신학이 가르치는 영성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6년 12월 11일, 전영준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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