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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서울 가재울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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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1-21 ㅣ No.305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41) 서울 가재울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종교적 상징에 지역 특색을 입히다

 

 

- 오순미 작, 가재울성당 스테인드글라스, 2014.

 

 

스테인드글라스 작가들에게 자신의 작품이 꼭 들어맞을 건축의 창까지 디자인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보다 더 큰 행운은 없을 것이다. 신축 성당의 경우 이와 같은 스테인드글라스 작가의 꿈이 실현될 가능성은 기존 성당에 작품을 설치하는 경우보다 상대적으로 크다.

 

이번에 소개할 서울 가재울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작가에게 이와 같은 행운이 주어진 대표적인 사례다. 가재울본당은 서울 가재울 뉴타운 재개발 지역 내에 위치한 이유로 기존의 성전(옛 가좌동성당)을 허물고 인근에 성당을 신축하여 2014년 6월 29일 새 성전 축복식을 가졌다. 성당 신축은 본격적인 건축이 시작될 무렵 새로 부임한 오승원 신부가 진행했다. 절충주의 양식으로 된 기존 설계 대신 새로 들어선 아파트 단지 등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한층 단순하고 현대적인 교회 건축으로 설계를 변경했고, 그 과정에서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인을 의뢰한 오순미 작가에게 스테인드글라스가 설치될 창호 디자인을 함께 논의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 결과 작가의 작업 의도를 최대한 살린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거울을 이용한 건축적 스케일의 설치 작업으로 무한한 공간을 연출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선보인 오순미 작가는 신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창 형태를 선택하기 위해 몇 가지 다른 디자인 안을 제시해 호응도를 조사한 뒤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시작했다. 작품 의뢰 당시의 요구 사항은 매우 단순했다. 지나치게 강렬한 원색은 피하고 구체적인 형상이 아닌 추상적인 표현으로 디자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표현할 주제들이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는 대부분의 경우와는 달리 두 가지 원칙 외에는 무한한 자유가 주어진 것이다. 때로는 그 자유로 인해 작업이 더 어려워지기도 하지만 가재울성당의 경우 이러한 조건들이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했던 프로젝트다.

 

우선 작가는 가재가 많아서 가재울이란 지명을 썼다는 지역적 특성과 인근에 모래내시장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 디자인을 전개했다. 제대를 바라보고 오른쪽 벽면에 신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창 형태를 벽면 전체를 가로지르는 물고기 형태로 구성하고 화면을 격자 형태로 나눠 무지개를 연상시키는 파스텔 조의 색 변화를 표현했다. 성당 제대를 향하고 있는 물고기 형태의 창틀은 구원을 상징하는 동시에 하느님 말씀을 실천하며 나아가는 가재울본당 신자 공동체를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화면을 채우고 있는 작은 격자 형태들 은 추상적으로 표현된 모래로서 신자 개개인을 상징한다. 하나하나의 모래알들이 모여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이루고 하느님께로 나아간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본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창 형태 자체를 신자들에게 친숙한 그리스도교적 상징으로 표현하고 지역적 특성을 함축하는 표현 방식으로 공감대를 이끌어 추상적이면서도 신자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이루는 디자인으로 완성됐다.

 

본당 스테인드글라스는 사진보다는 실제 현장에서 감상했을 때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자를 대고 그린 것처럼 똑바른 격자가 아닌 사람의 손맛이 남아있는 선들과 중간중간 예측을 벗어난 색을 사용한 튜닝 작업은 획일화되고 지루한 화면 구성에서 벗어나 생동감을 더하는 효과를 보여 주고 있다. 페인팅 없이 마우스불로운 글라스 자체의 그라데이션 효과만으로 색의 다양한 깊이를 표현한 장인의 솜씨도 돋보인다. 성당 내부는 최대한 색유리 고유의 느낌을 살린 작품으로 완성되었지만, 각 층의 로비에 위치한 창에는 거울을 부분적으로 함께 사용하여 오순미 작가만의 개성을 살리며 작품에 독창성을 더했다.

 

가재울본당은 기존 성당에 설치됐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사전 계획에 따라 미리 자리를 마련하고 새 성당으로 옮겨 설치해 성미술품 보존 관리의 모범적인 사례가 되기도 했다. 옛 성전 제대 옆쪽에 설치돼 있던 고 이남규 작가의 달드베르 작품 ‘예수 성심’을 벽체에서 분리해 보수 복원한 후 신축 성당으로 옮겨 설치했다. 작품 본연의 아름다움을 보장하기 위해 신축 성당 대성전 입구 맞은 편에 작품이 들어갈 창을 별도로 마련하고 작품을 이전했는데, 미사 후 신자들이 성당을 나서면서 마주하는 곳에서 많은 신자가 작품의 아름다움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했다.

 

가재울본당 새 성전 축복 미사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서 있는 필자에게 성당의 한 신자분이 진지하게 건네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이제 잠시 후 새 성전에 들어가셔서 눈여겨보실 것이 있는데 바로 스테인드글라스입니다. 다른 성당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스타일인데 신부님도 저희 신자들도 아주 만족하는 작품입니다. 꼭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꼭 찬찬히 잘 살펴보겠다고 대답하면서 마음속으로 큰 기쁨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평화신문, 2016년 11월 20일, 정수경 가타리나(인천가톨릭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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