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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과학과 신앙: 패러데이와 파스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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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0-20 ㅣ No.300

[과학과 신앙] 패러데이와 파스퇴르

 

 

과학과 신앙

 

1992년 10월 31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중세에 지동설을 주창한 갈릴레오를 단죄한 교회의 재판이 잘못되었음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350년 만에 갈릴레오의 명예를 회복시킨 이 역사적 사건에 대해, 일부 사람은, ‘종교에 대한 과학의 승리’라는 평가를 하기도 했습니다. 과학과 종교, 나아가 과학과 신앙 간의 갈등에 관한 대표적인 예이지요.

 

동료 과학자 가운데엔 뜻밖에 무신론자들이 많습니다. 그런가 하면 종교생활을 열심히 하는 과학자도 많습니다. 그런데 개신교 신자인 동료 과학자 중에는, 자신의 본디 전공과 관계없이 성경 말씀의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분들은, 특히 창세기에 나오는 6일간의 천지창조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분들의 관점이 다 같지 않다는 점입니다. 어떤 분들은, ‘젊은 지구 창조론’, 또 어떤 분들은, ‘오랜 지구 창조론’을 주장합니다. 그런가 하면 ‘지적 설계론’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합니다. 조금씩, 하지만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주장을 펴지만, 아무튼 그분들은 과학과 신앙을 하나로 묶으려는 노력을 하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글짓기와 발표 수업에서, ‘과학과 신앙’이란 용어에 대해 떠오르는 생각을 말해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갈릴레오의 예를든 학생도 몇몇 있었지만, 대부분은 다윈의 진화론과 창조론의 논쟁에 관한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무신론을 주장하는 동료들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신앙심이 지나친 동료들의 그런 노력에 대해 제가 ‘옳다.’ ‘그르다.’ 말할 처지는 못 됩니다. 가톨릭 신자이면서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저는, 신앙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는 동료보다 자신의 과학연구 활동에 힘이 되어주는 신앙의 신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어린이와 같은 신앙인이 되려는 동료에게 더 호감이 갑니다.

 

이런 점에서 이번 호에서는 세기의 업적을 남긴 과학자들 가운데 언제나 제 삶의 모범이 된 두 분의 ‘과학과 신앙’에 대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하느님의 지혜

 

성경을 통해 하느님에게서 듣는 음성은 저마다 다르겠지요? 성경을 읽을 때마다 성경 말씀 속에 숨어있는, 족집게 같은 그 음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더구나, 이 세상 어떤 과학자보다 더 멋진 과학자의 지혜로 들려주시는 하느님의 소리에 때때로 경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정녕 “모든 이에게 모든 것”(1코린 9,22)이 되어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신앙생활이 성숙한 사람들에게는 지혜를 말합니다.” 「공동번역 성서」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2,6)의 말씀입니다. 저는 과학적 연구를 수행하면서 왜냐하면 하느님께선 ‘신앙생활이 성숙하면’, 저에게 필요한 ‘지혜’를 주시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지혜나 이 세상에서 곧 멸망해 버릴 통치자들의 지혜와는 다른 이 지혜, 심지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께서 천지창조 이전부터 미리 마련하여 감추어두셨던 지혜”(1코린 2,6-7 참조)를 주시겠다는 어마어마한 약속을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없는 과학자 중에서도 물론 세속적 의미에서 엄청난 지혜를 가진 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신앙생활이 성숙한 과학자들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지혜는 그렇지 않은 분들에 비해 더욱 풍성한 것 같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두 분의 위대한 과학자, 영국의 마이클 패러데이와 프랑스의 루이 파스퇴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깊었던 그들의 경건한 신앙심 덕분에, 자신들에게 주어진 인간적인 과학적 지혜에 ‘하느님의 지혜’가 덤으로 주어져, 그런 위대한 업적을 남겼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이클 패러데이

 

화학사에 남긴 패러데이(1791-1867년)의 업적은 실로 대단합니다. 다양한 기체를 액화하는 데 성공하고 광학유리를 제작하였으며, 특히 전자기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남겼습니다. 패러데이는 전기분해와 자성체의 성질 등을 연구하며 패러데이 법칙과 패러데이 상수가 만들어질 정도로 유명합니다.

 

그는 대장간 집안의 3남으로 태어나 열두 살 때 신문 배달을 하고 열세 살 때부터 7년간 인쇄소에서 일했으며, 겨우 야간학교에 다닐 수 있었던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났습니다. 자기가 살던 동네에 강연 목적으로 들렀던 한 유명한 화학자(데이비, 1778-1829년)의 강연장에 우연히 참석하였다가 그의 제자가 되어 삶의 진로가 바뀌게 된 분입니다.

 

그는 영국성공회에 반발하면서 생겨난 개신교 근본주의 분파인 샌더매니언 교파 신자로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 분입니다. 결혼도 같은 교파 신자와 할 정도로 신앙심이 두터웠던 분입니다.

 

하지만, 패러데이는 과학은 과학, 신앙은 신앙이라는 태도를 가지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과학적 연구를 하는 그 자체의 활동에서 하느님의 지혜를 발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1859년 69세가 되었을 때 그는 「화학과 물리학에서의 실험적 연구」라는 책을 펴내게 되는데, 그 책 끝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깁니다.

 

“인간이 자기 자신의 정신 작용으로 알 수 있는 지상의 일과 정신 작용으로도 알 수 없는 내세의 문제 사이에서, 나는 아무런 모순과 당착을 느끼지 않는다.”

 

그의 지극한 신앙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그는 76세에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기 직전 그의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냅니다.

 

“나는 만물의 조물주인 하느님 앞에 엎디어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대로 나를 당신 곁으로 불러갈 때까지 인내로써 살아가려 하네. 이렇게 하여 나중에 하느님의 거룩한 모습을 마주 뵈올 수 있는 무상의 약속을 삼가 기다리면서 여생을 살고 있네.”

 

참으로 존경할 만한 과학자입니다. 그는 마치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웅장한 저녁노을을 보고 하느님을 찬미하였다고 합니다. 본인에겐 자녀가 없었지만, 아이들을 무척 사랑한 분입니다. 환갑 때는 어린이들을 위한 「양초 한 자루의 화학사」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세계적인 대학자가 아이들을 위한 대중적 과학강연도 즐겨 행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루이 파스퇴르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파스퇴르(1822-1895년)는 발효과학의 선구자, 저온 살균법의 창시자, 백신 접종에 따른 전염병의 예방법 등 생명과학 분야에 수많은 업적을 남긴 분입니다. 수많은 영광 뒤에 아픔도 많은 분입니다. 말년엔 두 딸을 자신보다 먼저 하느님의 품으로 보내고, 자신 또한 반신불수의 병에 걸려 고생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고난 중에도 깊은 신앙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엔 요독증에 걸려 1년 남짓 고생하다가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숨이 멎는 그 순간, 한 손엔 아내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엔 십자가를 쥐고 천사와 같은 얼굴로 하느님의 품속에 안겼습니다.

 

그는 “준비된 사람에게만 행운이 온다.”는 유명한 경구를 남길 만큼 매사에 열심이었습니다. 그의 책상엔 ‘공부하라, 공부하라, 언제나 어디서든지!’라는 표어가 걸려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는 늘 과학과 신앙 간에는 모순이 없다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학술의 영역은 오관적인 현상을 관찰하여 그 상호의 연락을 짓는 것이고, 종교의 진리는 오관의 감각을 초월한 영적인 것으로, 영적인 눈으로만 알게 된다고 믿었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걷는 사람은 언제든지 축복받게 된다는 확신이 굳은 분이었습니다. 그의 시신이 묻힌 파스퇴르연구소 지하실 천장엔 네 천사의 그림과 함께 ‘과학, 자비, 신앙, 희망’, 네 글자가 뚜렷이 새겨져 있습니다.

 

 

과학자로서 기대하는 하느님의 지혜

 

사실 앞에서 말한 두 과학자 이외에도 신앙심이 투철한 과학자가 적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서 신앙인의 한 사람이자 과학자로서 활동하는 저에게, 또한 과학자가 되고자 공부하는 우리 가톨릭교회 내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지혜에 대해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저는 성경 말씀에서 과학자로서 지녀야 할 ‘지혜’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웁니다. 특히 구약성경의 지혜서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말씀은 신앙을 가진 과학자가 지녀야 할 마음가짐을 잘 드러내어 준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적 발견을 이루려는 간절한 소망이 있어야, 빛이 나는 그 발견도 알아보게 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바래지 않고 늘 빛이 나서 … 그를 찾는 이들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지혜는 자기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미리 다가가 자기를 알아보게 해준다. 지혜의 시작은 가르침을 받으려는 진실한 소망이다”(지혜 6,12-13.17).

 

믿음이 없는 과학자들보다, 지나치지 않은 믿음과 함께, “성령을 통하여 그 모든 지혜를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시게 하는 하느님”(1코린 2,10 참조)과 함께 과학자의 길을 걷는 저 같은 사람들이 더 행복한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패러데이나 파스퇴르 같은 대과학자가 아니면 어떻습니까? 늘 과학을 사랑하는 저 같은 자녀에게, ‘눈으로 본 적이 없고 귀로 들은 적이 없으며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을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련해 주셨다.’(1코린 2,9 참조)라는 희망찬 말씀을 전해주시는 하느님을 믿으면, 과학연구 활동에도 더욱 신명 나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처럼 신앙 안에서 과학연구를 열심히 하다보면, 제 전공분야에서, 언젠가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 없는 거울이며 하느님의 선하신 모습인 영원한 빛의 광채인 지혜’(지혜 7,26 참조)를 얻을 수 있겠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느님의 지혜는 세상의 지혜와는 차원이 다른 지혜이겠지만요.

 

* 하창식 프란치스코 - 부산대학교 고분자공학과 교수. 부산가톨릭문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호주 퀸즐랜드대학교 명예교수, 한국접착 및 계면학회 회장, 부산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회장 등을 지냈다.

 

[경향잡지, 2016년 10월호, 하창식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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