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강론자료

루카복음 15,1-10 회개와 하늘나라 (2016. 9. 11. 연중 24주일)

스크랩 인쇄

남충희 [korangpo] 쪽지 캡슐

2016-09-10 ㅣ No.2140

어느 날 많은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의 말을 들으려고 모여왔을 때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투덜거렸다. “이 사람은 죄인들을 환영하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그래서 예수는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하였다.

 

여러분 중 어떤 사람에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 한 마리를 한 마리를 잃어버렸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다른 아흔아홉 마리를 들판에 놓아둔 채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을 때까지 돌아다니지 않겠습니까? 양을 찾으면 당신은 기뻐하며 그것을 어깨에 메고 집으로 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으니 함께 축하합시다.’ 내가 말하거니와. 이처럼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입니다.

 

또 어떤 여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한 닢을 잃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겠습니까? 그녀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잃었던 은전을 찾았으니 함께 축하합시다.’ 내가 말하거니와, 이처럼 하느님의 천사들은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기뻐합니다.”

 

 

죄인은 무뢰배나 건달 정도의 뜻이다. 세리는 로마를 위해 봉사하는 매국노로 간주되었으므로 성서저자는 세리는 물론 세리와 어울리는 사람들을 모두 죄인이라고 한 것이다. 아무튼 죄인은 자신이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사람이므로 감히 자신을 의인이라고 주장하지는 못한다. 그들은 죄인이기 때문에 의로움에 목이 말라 있다. 예수는 바로 이런 사람들을 환영하고 성령을 함께 나눈다. ‘음식은 상징적으로 성령을 가리킨다. 성령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누구나 의인이다

 

세리가 의인이 된다면 세리라는 직업을 버릴까? 꼭 그렇지는 않다. 그것은 개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다. 직업을 계속 유지하는 경우라면 업무를 수행하는 태도가 크게 변화할 것이다. 세리들도 와서 세례를 받고 물었다. “선생님,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요한이 대답하였다. “정해진 것보다 더 많이 거두지 마시오.”(루가복음 3:12-13) 의인과 죄인은 사람의 잣대로 판단할 수 없고 오직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였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의로움은 오직 하느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들판은 세상이며, ‘아흔아홉 마리는 회개하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며, ‘잃어버린 양 한 마리는 회개한 사람이다. 회개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홀로 하느님 앞에 서는 일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이것은 마치 한 마리 양이 무리에서 떠나 광야를 헤매는 것처럼 위험천만하게 보인다. 예수는 회개한 사람을 제자로 삼아 하늘나라로 이끄는 스승이다. ‘백 마리는 하늘나라를 가리킨다. 100 = 10(하느님) × 10(사람). 들판에 있는 아흔아홉 마리는 결코 백 마리가 될 수 없고 잃었던 양 한 마리가 더 해져야만 백 마리가 된다. 이를 풀어 말하면, 회개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하늘나라가 출현한다.

 

은전 열 닢은 영적 자아이며 잃어버린 한 닢은 회개이다. 나머지 아홉 닢은 사람의 지혜, 곧 학문이다. 사람은 학문으로 인생길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참된 자아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하느님의 도움을 청하기 위하여 찾아 회개하는 것이다. 회개는 사람이 발휘할 수 있는 가장 큰 지혜이다.

 

사람의 참된 자아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영적 자아이다. 욕망을 따르는 육적 자아는 거짓 자아이다.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자신의 참된 자아를 발견할 수 없다. ‘집안은 자아를 가리키며 샅샅이 뒤지는 것은 자아 성찰을 가리킨다. 회개는 거짓 자아를 헤쳐내면서 자아의 내면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 참된 자아인 를 찾는 일이다. 10은 완전함을 상징한다. 사람은 영적자아를 회복함으로써 완전한 만족을 누린다.

 

백 마리 양의 비유는 사람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건(하늘나라)을 강조하며, 은전 열 닢의 비유는 자아를 회복하는 사건(영적 자아, 하느님의 아들)을 강조한다. 물론 둘은 같은 사건의 양 측면이다. 두 개의 비유를 나란히 배치하여 하늘나라는 자아의 깨달음을 통하여 확증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하늘나라는 막연한 추상적 개념도 아니고 죽은 다음에야 도달할 수 있는 상상의 장소도 아니며 바로 지금 여기에서 시작되는 사건이다.



4,594 1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