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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과학과 신앙: 과학계의 금수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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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8-13 ㅣ No.294

[과학과 신앙] 과학계의 ‘금수저’

 

 

요즈음 한국 사회의 화두 가운데 하나는 단연 ‘수저론’입니다. 이른바 금수저, 흙수저 이야기입니다. 예전 우리 어릴 적만 해도 “개천에서 용 났다.”란 말을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즈음 한국 사회에서 개천에서 용이 나기란 정말 하늘에서 별따기보다 더 어려운 현실이 되었습니다.

 

흙수저나 금수저 비유가 적절하지는 않겠지만,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의 면면을 보면 또한 탁월한 과학자들 간에도 금수저인 엘리트 집단은 있습니다. 과학 업적 또한 흙수저를 가지고 태어난 과학자가 금수저를 사용하기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마르 10,25)보다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노벨상 수상자의 사제 관계

 

미국에서 과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들의 배출 학교 통계를 보면, 무려 85%가 상위 13개 명문대학 출신입니다. 그 가운데 55%가 5개 대학교, 곧 하버드, 컬럼비아, 존스 홉킨스, 시카고, 그리고 예일 대학교 출신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수상자들의 가족관계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수상자들의 아버지 68%의 직업이 전문직과 관리직, 대기업주 계층의 출신자이면서, 미국의 명문대학 출신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대표적인 금수저 집단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캐번디시연구소입니다. 기체의 방전에 관한 이론과 실험 연구 성과의 공적을 인정받아 1906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J.J. 톰슨은 6명의 제자를 노벨상 수상자로 길러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1908년에 노벨상을 받은 E. 러더퍼드는 무려 11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에 이릅니다. 톰슨은 나중에도 언급하겠지만, 그의 아들도 1937년에 노벨상을 받았으니 이보다 더한 금수저 집안이 어디 있겠습니까?

 

한 국가에서 한 명의 노벨상 수상자만 배출해도 신문 1면의 머리기사는 물론이고 온 나라가 떠들썩해질 만큼 야단법석일 텐데, 2대에 걸쳐 한 기관에서 무려 17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탄생한 사실은 아예 입을 다물지 못할 만큼 금수저 집단의 대표적인 보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노벨상을 받을 만큼 탁월한 과학 영재들이 그에 맞갖은 탁월한 스승을 잘 선택한 덕분임은 물론입니다. 성경에서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마르 1,37)라고 한 바와 같이, 적지 않은 과학자들이 모두 뛰어난 스승을 찾았고, 또 스승을 정확히 알아본 것이지요.

 

주님의 제자들이 “스승님이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마태 12,38)라고 간절한 바람을 이야기한 것처럼, 제자들은 뛰어난 스승과 함께 연구하면서 스승이 일으킨 성공적인 연구결과의 표징을 보게 된 덕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자들이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주십시오.”(마르 10,37)라는 바람을 가지고 연구에 임하였는지, 아니면 스승과는 무관하게 자신만의 연구로 노벨상 수상의 영광을 차지하게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아무튼, 제자들은 스승의 오른쪽과 왼쪽에 나란히 앉아 노벨상 수상자의 영광을 함께 누렸습니다.

 

물론 우리 신앙인들에겐 예수님만이 주님이시고 스승이십니다. 하지만, 노벨상 수상자들의 가계를 연구하다 보면 학문의 세계에선 한 명의 스승 대신 여러 명의 스승이 동시에 존재하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알바렛, 바딘, 왓슨 등은 두 사람의 노벨상 수상자를 스승으로 모셨고, 세그레, 콘버그, 폴링 등은 세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스승으로 모시고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성공적인 연구성과를 얻으려면 자신의 능력뿐만 아니라, 연구환경, 연구비 등의 제반 연구 기반이 잘 갖춰져야 합니다. 그러니 과학자의 세계에서는 애초부터 흙수저는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금수저가 되기가 그만큼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금수저 가족관계

 

사실 노벨상 수상자들 이외에도 역사상 유명했던 가족들의 가계를 보면 금수저 집안이 상당합니다. 이를테면 스위스의 베르누이 집안은 17-18세기에 걸쳐 저명한 수학자, 천문학자, 박물학자를 배출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19세기의 다윈가와 20세기의 헉슬리가는 몇 대에 걸쳐 뛰어난 과학적 천재들을 배출하였습니다.

 

1901년부터 배출하기 시작한 노벨상 수상자들 또한 예외는 아닙니다. 지금까지 주로 타인들과의 정예 집단을 살펴보았는데, 친족 정예 집단도 예외가 아닌 듯합니다.

 

스승과 제자 수만큼의 통계치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친족 관계의 노벨상 수상자도 적지 않습니다. 연구 동료로서 친족만큼 더 멋진 파트너도 없는 셈이지요. 물론 우수한 과학자들끼리의‘근친결혼’, 이를테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영국의 약리학자 엘런 호치킨은 미국의 노벨상 수상자 페이턴 라우스의 딸과 결혼하였습니다. 저명한 물리학자였던 그레고어 벤첼의 아들 도나트 벤첼은 노벨상 수상자 마리아 G. 메이어의 딸과 결혼하였습니다. 명문 집안끼리의 새로운 가족적 결합의 보기입니다.

 

 

가족 수상자

 

그보다 더 멋진 것은 직계 가족의 연이은 노벨상 수상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퀴리 부인(마리퀴리)은 1903년 남편과 함께 노벨상을 공동 수상하였습니다. 퀴리 부인은 8년 뒤 단독으로 두 번째 노벨상을 받게 되지요.

 

그뿐만 아니라 그의 딸도 사위와 함께 1935년에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 딸, 사위, 곧 한 집안에서 네 명이 모두 다섯 개의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가히 금수저 집안의 대표적 보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차례로 노벨상을 받은 경우도 있습니다. 양자역학 창시자의 한 명인 닐스 보어에 이어 53년이 지난 뒤 그의 아들인 오게 보어 또한 노벨물리학상을 받습니다. 톰슨 부자의 수상은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고, 1929년에 노벨상을 받은 아버지 한스 폰 오일러-켈핀에 이어 그의 아들도 1970년에 노벨상을 받습니다. 한스 폰 오일러의 대부 스반테 아레니우스도 1903년에 노벨상을 받았으니 얼마나 대단한 금수저 가문입니까?

 

호주의 윌리엄 헨리 브래그 부자는 엑스선(X-ray)에 따른 결정 구조 연구로 1915년 공동으로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아버지인 윌리엄은 전형적인 흙수저로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자신의 노력으로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 진학함으로써 금수저로 변신하게 되었지요. 정말 ‘개천에서 용 난’ 격입니다.

 

하지만 그의 아들은 아버지 덕분에 금수저로 태어나 약관 25세에 아버지와 공동으로 노벨상을 받아 가문의 영광을 드러내게 됩니다.

 

또한, 197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니콜라스 틴베르헌의 형 얀 틴베르헌은 비록 과학 분야는 아니지만,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습니다.

 

 

성경의 가계

 

노벨상 수상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서 그분들의 가계와 출신 학교 등을 분석한 통계에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금수저가 아니면 과학계 정예가 정말 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신앙인인 우리는 모두 주님을 스승으로 모시는 제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금수저도 없고 흙수저도 없다는 사실, 아니 흙수저도 금수저가 될 수 있고 금수저도 흙수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희망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다시하게 되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들의 가족관계에서 드러나는 대표적인 금수저의 보기를 위에서 보았습니다. 성경에는 심심찮게 예언자나 신앙 선조들의 가계가 등장합니다. 성경을 보면서 낯선 외국어 이름이 나열된 가계를 볼 때마다 웬만한 인내심이 아니라면 끝까지 읽기가 거북한 것이 사실입니다. 건너뛰고 싶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마태오 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족보입니다.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 …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1,1-16).

 

예수님의 족보를 훤히 꿰뚫지 못한다한들 어떻습니까?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이십니다. 비록 다윗의 자손인 정통 집안의 가계를 지닌 예수님이시지만, 그분 스스로는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와 구유에서 태어나셨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건네주는 성경 말씀은 늘 큰 위안이 되어줍니다.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루카 13,30).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3,15).

 

“낮은 사람이나 높은 사람이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이나 할 것 없이 모두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였습니다”(묵시 13,16).

 

노벨상은 꿈조차 꿀 수 없는 저 같은, 이류급 흙수저 과학자들에게도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는 누구보다 반짝거리는 금수저를 들 수 있다는 희망을 우리에게 줍니다.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루카 6,40 참조)수도 있다는 희망을 심어줍니다. 이 얼마나 희망찬 복음입니까?

 

아멘!

 

* 하창식 프란치스코 - 부산대학교 고분자공학과 교수. 부산가톨릭문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호주 퀸즐랜드대학교 명예교수, 한국접착 및 계면학회 회장, 부산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회장 등을 지냈다.

 

[경향잡지, 2016년 8월호, 하창식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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