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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ㅣ교회음악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127번 십자가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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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3-19 ㅣ No.2307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9) 127번 십자가 바라보며


독일 시인 노이마르크 작곡, 바흐 칸타타 · 영화 등에도 사용

 

 

「가톨릭성가」 127번 ‘십자가 바라보며’ 악보. 한국어 가사와 라틴어 가사가 함께 수록돼 있는 점이 흥미롭다. 이 곡의 작곡자 또한 바흐로 표기돼 있지만, 본래 작곡자는 노이마르크이다.

 

 

우리는 흔히 사순절을 속죄와 보속의 시기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고통과 체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의 목적은 고통과 죽음이 아니고 부활과 새 생명이었듯 사순의 목적도 새로운 생명, 변화된 새로운 삶에 있는 것이다. 「가톨릭 성가」 127번 ‘십자가 바라보며’는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고통과 극진한 사랑을 깨달으며 변화된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겠다는 다짐을 노래하는 곡이다.

 

127번 성가는 바흐의 칸타타 93번 ‘누구든지 사랑하는 주님의 이끄심을 허락하는 자’(Wer nur den lieben Gott lßt walten)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것 때문인지 작곡자가 J. S. 바흐로 표기되어 있지만 이는 사실 잘못된 표기다. 그는 이 곡을 빌려 자신의 많은 작품에서 편곡해 사용했을 뿐 이 선율의 본래 작곡자는 17세기 독일의 시인이자 음악가였던 노이마르크(G. Neumark, 1621~1681)이다.

 

독일의 랑겐살자에서 출생한 그는 20세가 되던 해인 1641년에 공부를 위해 여행하던 도중 강도들을 만났다. 당시에는 가톨릭을 따르는 국가들과 개신교를 따르는 국가들 사이에 벌어졌던 ‘30년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사회 질서가 문란하고 강도가 많았다. 가진 것을 다 빼앗기고 기도서와 돈 몇 푼밖에 남지 않았던 그는 여러 도시를 전전하며 고생하다가 어느 판사 집안의 가정교사 자리를 얻게 된다. 이때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위로의 노래’(Trostlied)라는 제목의 시를 쓰고 선율도 붙였다고 한다.

 

그의 이름을 따서 타이틀이 ‘노이마르크’인 이 선율이 우리 성가 127번이다. 그 가사가 되었던 이 시는 “주님께 믿음과 희망을 두는 이는 단단한 바위위에 집을 짓는 자와 같으며, 하느님에게서 풍성한 축복과 은총을 받을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시는 1657년 독일의 제나에서 처음으로 출판됐다. 

 

이후 이 선율은 아주 유명해지면서 많은 음악가에 의해 신자용 성가 선율로 계속 사용되었다. 바흐는 칸타타 93번을 비롯해 84번, 166번 등 여러 작품에서 이 선율을 이용했다. 이외에도 텔레만, M. 하이든, 리스트, 멘델스존, 브람스 등이, 1988년에는 독일 작곡가 그뢰슬러(R. Grssler)가 미사곡에 이용했으며, 영화 ‘신과 함께 가라’(Vaya con Dios)의 영화 음악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우리 성가책에는 서양의 경우에서 찾아볼 수 없는 흥미로운 점이 있다. 사순 시기 가사가 우리말로, 그리고 성체 찬미가의 하나인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지존하신 성체 앞에’(Tantum ergo)가 라틴어 가사로 함께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1954년에 나온 「가톨릭 성가집」에는 ‘Tantum Ergo’가 우리말 발음으로 수록되어 있고, 1975년에 나온 「새 전례 가톨릭 성가집」에는 ‘오, 자애론 우리 주여…’라며 우리 말 가사로 서로 다르게 수록되어 있는데, 이 두 곡을 현재 성가집에서 합쳐서 수록한 것으로 보인다.

 

“바보들은 항상 결심만 한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백번 결심을 하더라도 행동이나 실천이 따르지 않는다면 바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이 성가를 부를 때 실천하고 행동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보여 주신 아버지에 대한 의탁을 깊이 묵상해야 하겠다.

 

[평화신문, 2016년 3월 20일, 이상철 신부(가톨릭대 교회음악대학원 교수)]

 

* 가톨릭성가 곡들은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www.catholic.or.kr)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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