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전례ㅣ미사

[축일] 성체 성혈 대축일 : 전례학회, 성화해설, 교황님 강론 둘, 오늘의 말씀묵상,

스크랩 인쇄

성경주 [kyungju46] 쪽지 캡슐

2016-05-30 ㅣ No.1492

 

 

[성체 성혈]

 

 

 

 

 

성체 聖體 ; 라틴어 Eucharistia / 영어 Eucharist 

 

빵과 포도주의 외적인 형상 속에 실제로, 본질적으로 현존(現存)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말한다.

어원적으로는 희랍어 '유카리스티아'(eucharistia)에서 유래되었는데 이 말의 본래의 뜻은 '감사하다'는 것이다.

이는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은혜에 감사함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수난 전날 제자들과 함께 한 만찬에서 빵과 포도주라는 표징을 통하여 당신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실 음식으로 내어 주심으로써 ‘많은 사람’을 위하여 구원과 생명의 근원이 되는 성체성사를 설정하시고,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의식을 제정하셨는데 “그리스도의 파스카는 수난과 죽음뿐만 아니라 부활도 포함”47>되기 때문이다. 당신의 살과 피를 받아 모심으로써 제자들은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하며, 생명의 양식과 구원의 음료를 통해 성장하도록 하셨다. 성체를 통하여 주신 그리스도의 살과 피는 파스카 잔치의 정점을 이루며, 성체성사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다. 결국 성체성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써 이룩하신 수난과 부활을 기념하여 구약의 파스카 개념과 구별되는 새로운 파스카의 개념을 주신 성사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수난과 부활을 재현하는 파스카 기념제를 마련하셨으며, 이를 재현하는 것이 성찬례이다. 결국 성체성사 성찬례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파스카 개념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은총의 선물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이 거룩한 신비의 성사는 “하느님 자비의 성사이며, 인간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느님과 인간이 하나 되는 일치의 표징이요, 사랑의 끈이며, 그 안에서 그리스도를 받아 모시어, 마음을 은총으로 가득 채우고 미래 영광의 보증을 받는 파스카 잔치이며, 구세주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파스카의 기념제를 맡기신 것이다”(전례헌장 47항).
파스카의 개념에서의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의 과 를 통해 하느님에게 감사와 찬미를 올리며, 성찬례는 파스카를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하여 교회에 주신 선물을 통해 감사를 표현하는 제사가 되는 것이다.
성찬례에서 기념하는 파스카는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선물에 대한 재현(representation)이 지금 이 순간에(hic et nunc)에 이루어짐을 보여주는 파스카 현재화라고 할 수 있으며, “성찬례로 고조되는 종말론적 긴장은 천상교회와 이루는 친교를 표현하고 강화한다”48>. 아울러 성체성사 역시 구원을 위해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와 찬미의 제사이며, 그리스도의 파스카를 현실화하는 기념이며 희생제사가 되는 것이다.

 

 

카르파초, <그리스도와 수난의 도구>, 1496, 캔버스에 유채, 162x163cm, 역사와 미술 시립박물관, 우디네 

 

 

중앙의 두 천사는 하늘에서 커다란 붉은 장막을 잡고 있고, 그것을 배경으로 예수님이 서 계신다. 장막은 예수님의 육화(肉化)를 의미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는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장막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예수님은 왼쪽 팔에 순교의 상징인 십자가를 안고 있으며, 오른쪽 팔은 발아래 성작을 가리키고 계신다. 예수님의 양손과 가슴에서 한 줄기씩 흘러내리는 피는 바닥에 놓인 성작으로 모이고 성체 모양으로 변한다. 성체성사의 신비를 상징한다. 예수님의 손발과 옆구리에서 흘러내리는 피는 인류에게 흐르는 사랑의 표징이다.

 

창으로 찔린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와(요한 19,34) 세상 모든 사람을 다시 살아나게 하실 것이다. 성령의 표징과도 같은 예수님의 피와 물은 우리에게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내어주는 것이다.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 이는 당신을 믿는 이들이 받게 될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다.”(요한 7,38-39)  

예수님 양옆에 대칭적으로 자리한 네 명의 천사는 망연자실과 슬픈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다. 이들 각자의 손에는 예수님의 수난도구들을 들고 있다. 그림 왼쪽부터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옆구리를 찔렀다는 창, 예수님의 손과 발에 박은 못들, 고문할 때 사용한 채찍, 그리고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시기 전 갈대에 신포도주를 적셔 마시게 한 해면이 있다. 또한 십자가 위에는 ‘유다인들의 임금(INRI)’이라는 죄명 패와 가시관이 걸려있다. 결국, 이러한 예수님의 고통과 죽음의 상징 도구는 우리 모두를 구원하기 위한 사랑(희생)의 도구가 된다. 화가는 이러한 예수님의 희생을 그림 중간 오른쪽에 표범이 사슴을 찢어 피가 흐르는 모습으로도 가시화시키고 있다. 


 

 

 

 

 

우리의 삶

 

성체성사는 생명의 성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저녁에 빵과 포도주를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며 새로운 생명의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오천 명을 먹이시는 빵의 기적은 육적인 양식을 주시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그 기적은 영원한 생명의 양식에 대한 예표입니다(요한 6,54 참조).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당신의 영원한 생명을 나누어 주고 계십니다. 매일 미사 때마다 우리는 예수님의 거룩하신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써, 그분의 현존과 생명을 느낍니다. 그 생명은 우리 삶 안에서 살아 숨 쉬게 됩니다.
성체성사는 사랑의 성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대로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셨고 다시 얻으셨습니다(요한 10,17 참조). 그리고 우리에게 당신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고 명하셨습니다(요한 15,12 참조).
우리는 성체성사로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고 그분의 크나큰 사랑을 받아 모십니다. 이로써 벗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자라게 됩니다.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사랑의 성사는 우리를 나눔과 섬김의 삶으로 이끕니다. 우리는 세상의 온갖 것을 사랑으로 대하게 됩니다.
성체성사는 믿음의 성사입니다. 예수님께 믿음을 두지 않은 유다인들은 생명의 양식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믿음 없이는 성체성사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인 믿음 안에서 우리는 성체성사를 기념하며 이렇게 노래를 부릅니다. “모든 교우 믿는 교리, 빵이 변해 성체 되고, 술이 변해 성혈 된다.”

 

 

 

 

 

 

 우리는 오늘날 주님에게서 떨어져 나오는 것, 겁쟁이처럼 우리의 죄 많음에 절망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기도하는 교회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이 비겁함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때, 우리가 우리 안에서 형제애를 갖고 살지 않을 때, 우리가 첫째 자리를 차지하려고 경쟁할 때, 우리가 주님 사랑의 증인이 되는 용기를 찾지 못할 때, 우리가 희망을 주지 못할 때, 우리는 그분에게서 떨어져 나옵니다. 성체성사는 우리가 그분에게서 떨어지지 않게 해 줍니다. 왜냐하면 계약의 완성이자 우리를 위해 그분 자신을 낮추시고 죽으신 그리스도 사랑의 살아 있는 징표가 바로 성체와의 결합이기 때문입니다. 성체성사에 참여함으로써, 그리고 그것을 먹음으로써 우리는 분열을 허용하지 않는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빵과 포도주의 기적 안에서 우리 가운데에 계시는 그리스도께서는 사랑의 힘이 모든 고뇌를 뛰어 넘기를 요구하시고 동시에 그것이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친교, 약한 자들을 위한 지지와 매일의 삶에서 짐을 지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형제애에 기반한 관심이 되기를 요구하십니다.  

 

우리가 오늘날 비겁한 것, 우리의 죄 많음에 절망하는 것, 즉, 우리 그리스도인의 존엄성을 희석시키는 것, (또는 우리 자신을 불순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우리 자신을 우리 시대의 우상 숭배에 영향을 받도록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겉모습, 소비, 모든 것의 중심에 있는 자기 자신, 하지만 또한 경쟁적이고 이겼다는 태도로 거만한 것, 실수를 절대 인정하지 않거나 결핍된 자신을 결코 발견하지 못하는 사고 방식. 우리의 존엄성을 손상시키는 모든 것은 우리를 그저 그런, 미적지근하고 김빠진 그리스도인을 만든다.                        

\

 

 

 

프란치스코 교황의 코르푸스 도미니(성체 성혈 대축일 미사) 강론의 바티칸 라디오 번역문을 다음과 같이 게재합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무한한 사랑의 희생을 우리에게 남기시기 위해 빵과 포도주로 당신의 몸과 피를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넘치는 은총으로 가득 찬 이 노자 성체(viaticum)에서 역사 전체를 통해 하느님 나라를 모든 이에게 전파하기 위해 나아갈 그들의 긴 여정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게 되었습니다. 빛과 힘은 십자가에서 스스로 원하신 희생을 하시면서 주님께서 몸소 만드신 그들을 위한 은총이 될 것입니다. 이 생명의 빵은 우리에게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교회는 이 실체 앞에서 끝없는 경외심 ― 끊임없이 관상과 흠숭, 기억을 자라게 하는 경외심 안에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 말씀 전례의 아름다운 구절, 공식 독서의 제2독서 응답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빵 안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피를 보아라. 그리고 이 잔 안에서 그분의 옆구리에서 흘렀던 피를 보아라. 그분의 몸을 들어 먹어라. 그분의 잔을 들어 마셔라. 그리하면 너희는 그분의 일원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은 너와 그분을 하나로 묶어준다. 그것을 먹어라. 그러지 않으면 너는 그분의 아무것도 받지 못한다. 그분의 피는 너희의 몸값으로 치르신 값이다. 그것을 마셔라. 네가 너의 죄 많음에 절망하지 않도록.”

 

 

 ▲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최후의 만찬’, 1904~1989, 내셔널 갤러리, 미국 워싱턴.

 

 

 (바티칸 라디오) 프란치스코 교황은 목요일 저녁, 코르푸스 도미니(Corpus Domini) ― 성체 성혈 대축일―을 기념하며 성모 대성전(St Mary Major)을 향해 가는 횃불 행렬에 앞서 로마의 성 라테라노 성당(Rome’s Cathedral Basilica of St. John Lateran)에서 미사를 집전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강론에서 영적 양식인 성체에 초점을 맞추었고 합당하게 하느님을 숭배하는 자유를 기념하는 성체성사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코르푸스 도미니(Corpus Domini)의 축일에 우리는 성체 성사의 신비를 경축하는 기쁨만이 아니라 또한 하느님께 찬미하고 우리 도시의 거리에서 노래하는 기쁨을 또한 누립니다. 우리가 미사의 끝에 하게 될 이 행렬이 그분의 성체 성혈 성사를 통해 그분의 사랑으로 우리를 키우심으로써 우리를 노예살이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려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우리 빈곤의 사막을 통해 가는 모든 여정에 감사를 표현할 수 있기를.”

 

교황 성하는 이렇게 할 자유가 없는 사람들과 연대할 것을 요청하며 강론을 마쳤습니다. 교황은 말했습니다. “당분간 우리는 그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표현할 자유가 없는 우리의 많은 형제, 자매들과 함께 성체 안에 있는 우리를 느낍시다. 그들과 함께 하는 우리 자신을 느낍시다. 그들과 함께 노래하고 그들과 함께 찬미하고 그들과 함께 흠숭합시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위해 목숨을 희생해야 하는 형제, 자매들을  마음으로 공경합니다. 주님의 성혈과 일치를 이루는 그들의 피는 전 세계 평화와 화해의 약속입니다.”

 

성찬 전례와 교황 성하의 축복 후에 신자들은 성체 찬미가(빤제 린과, Pange lingu)를 노래했고 성체 안에 계신 우리 주님과 함께 도시 중앙을 지나 메룰라나 거리를 따라 행렬을 시작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모 대성전에서 신자들과 만났는데 그들은 종을 크게 울리고 딴뚬 에르고(Tantum ergo)를 크게 부르며 성체 되신 주님을 맞이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교황은 성체 강복을 했으며 모인 신자들은 마지막 환호송을 바치고 성모님의

보호를 간구하면서 찬미 노래, 당신의 보호 아래로(sub tuum Praesidium)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나서 신자들은 밤에 흩어져 자리를 떠났습니다.

 

 

 


편집 : 불광동성당 미디어팀 그림자

 

 

 

요즘 트위터 페이스북 더보기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8,602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