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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 칼럼: 라이프 오브 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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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7-25 ㅣ No.1218

[영화 칼럼] 라이프 오브 파이[2013년(2018년 4DX로 재개봉), 감독 리안]

 

 

믿음과 관계를 저버리지 않으면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열여섯 살 인도 소년 파이는 ‘단지 신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를 모두 믿습니다. 그러나 신에 대한 그의 믿음과 사랑은 벵골 호랑이와 단둘이서 작은 구명보트로 태평양을 표류하면서 파도처럼 출렁입니다. ‘신은 어디에 있는가. 저 멀리, 아니면 아주 가까이, 아니면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인가. 너무나 간절할 때에 신의 침묵은 무관심인가, 시험인가. 기적은 신이 주시는 것인가, 인간이 만드는 것인가.’

 

동물들을 가득 싣고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가던 화물선이 침몰하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지옥으로 변한 현실 앞에서 파이는 “난 죽게 될 거야”라고 울부짖습니다. 구명보트에는 언제 자신을 집어삼킬지 모를 호랑이가 으르렁거리고, 바다에는 상어가 어슬렁거리고, 하늘에서는 폭풍우가 몰아칩니다. 절망과 공포가 엄습할 때마다 소년은 신을 원망하고, 신에게 화를 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려 227일 동안 망망대해를 떠돌면서도 끝까지 믿음과 관계만은 저버리지 않습니다. “의심을 인생철학으로 선택하는 것은 운송수단으로 ‘정지’를 선택하는 것과 비슷하다”면서 기도를 통해 신과 대화하고, 내면 성찰로 자신의 존재감과 목적의식을 만들어 갑니다.

 

호랑이와의 관계와 믿음도 저버리지 않습니다. 혼자가 되면 어느 쪽도 결국 살아남지 못할 것이란 ‘생존방식’을 서로 깨달으면서 공간을 나누고, 시간을 공유하고, 조금씩 소통하면서, 서로 필요한 존재가 됩니다. 파이가 바다에 빠진 호랑이를 구하고, 호랑이는 파이를 위해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물고기를 잡습니다. 아누타섬 사람들의 공존 법칙인 연민, 사랑, 나눔, 협동의 ‘아로파’가 인간과 맹수 사이에서 생겨납니다.

 

기도와 성찰, 환상만으로 파이는 그 긴 시간을 버티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가 말한 ‘정말 신의 존재를 믿게 하는’ ‘거짓말 같은 일’을 호랑이와 함께 한 셈이지요. 호랑이야말로 어쩌면 파이가 그토록 찾던 신의 다른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알았기에 멕시코 해안에 도착한 후에 호랑이가 조용히 사라지자 파이가 눈물을 흘린 것은 아닐까요. 신(주님)은 이렇게 늘 가까이에 계십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할 뿐….

 

원작인 스페인 출신의 작가 얀 마텔의 동명 소설(국내에서는 ‘파이 이야기’로 출간)과 마찬가지로 영화에서도 파이는 자신의 경험담을 두 가지 버전으로 만듭니다. 하나는 지금까지 이야기한 ‘인간과 호랑이의 기적과도 같은 표류기’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위한 ‘구명보트에서 살아남으려는 인간들의 살육전’입니다.

 

영화는 어느 것이 진실이라고 단정하지 않고, “당신은 어떤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듭니까?” 하고 우리에게 맡깁니다. 어차피 영화는 사실이 아닌 허구입니다. 이왕이면 그 안에서 믿음의 힘, 희망과 공존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조금 더 멋진 이야기’를 선택하면 좋지 않을까요.

 

[2020년 7월 26일 연중 제17주일 서울주보 4면, 이대현 요나(국민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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