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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다름과 같음: 영화 두 교황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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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3-07 ㅣ No.1195

[놓치면 후회할 인생영화] 다름과 같음 - 영화 ‘두 교황’에 부쳐

 

 

대학 시절 인문대 옥상에 오르면 골목길을 밝혀주는 노란 가로등이 검푸른 밤하늘을 가르는 별처럼 빛나 보였습니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다가서면 하루의 고단한 발걸음이 내려앉은 달동네라는 것을 시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됐습니다. 사람이 너무나 좋았던 그 시절, 우리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기쁨과 희망, 그리고 슬픔과 아픔을 나누고 싶었던 거죠.

 

본당에서만 10년을 지내다가 문화홍보국으로 발령을 받고는 주님의 뜻이 무엇일까 고민했습니다. 지금 와서 보니 대학에서의 꿈들을 삶으로 녹여내라는 뜻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영화나 드라마 대본 감수를 여러 차례 부탁받았는데, 모든 작품을 도와드리진 못했습니다. 무턱대고 맡았다가 감당하지 못할까 걱정되었고, 교우분들에게 마치 교회가 인정한 영화나 드라마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두 교황’은 걱정이 많았던 작품입니다. 실화를 기반으로 제작된 영화이긴 하지만, 영화적 상상력으로 두 분의 만남과 대화를 재구성한 작품이기에 그랬습니다. 그래서 일단 먼저 대본을 보고, 이 작업을 계속할지 말지를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대본을 읽기 시작했는데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제 걱정과 달리 너무나 감동적이었고, 울림이 컸습니다. 역시나 하느님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를 이끄시는 것 같습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영화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두 교황’은 베네딕도 16세 교황님과 프란치스코 교황님, 두 분의 대화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성향도, 철학도 다르기에 한 치의 양보 없는 싸움을 벌이면서도, 서로를 포용하고 껴안습니다. 그래서 액션영화 못지않은 긴장감을 주면서도 마음을 녹이는 따스함이 담겨 있습니다.

 

영화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뒷골목을 보여줍니다. 이 허름한 뒷골목은 당시 사회가 겪고 있던 문제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빈부격차, 군사독재와 부패, 경제적 빈곤 등등. 이 뒷골목을 지나 넓은 광장에 들어서면 많은 이들이 제대 앞에 모여 있습니다. 고통받고 상처 입은, 위로가 필요한 이들입니다. 아마 이들은 세상이 겪고 있는 많은 문제들에 교회가 적극적으로 참여해, 억압과 차별로부터 해방될 수 있도록 앞장서길 바라는지 모르겠습니다.

 

교회는 아주 오래전부터 자신의 사명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는 세상과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짊어지고 하느님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의 징표를 읽고 해석해야만 합니다.

 

“모든 시대에 걸쳐 교회는 시대의 징표를 탐구하고 이를 복음의 빛으로 해석하여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각 세대에 알맞은 방법으로 교회는 현세와 내세의 삶의 의미 그리고 그 상호 관계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물음에 대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헌장 4장>

 

‘시대의 징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어떤 삶으로 하느님을 증거할 것인가?’에 대해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 듯합니다. 두 교황님께서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말씀을 건네십니다. 저는 두 교황이 ‘다름과 같음’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각자 다른 방식이지만 두 분 모두 시대의 징표를 읽으며 하느님의 뜻을 찾고 구하는, 같은 모습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세상은 이 모습에 진보 혹은 보수라는 잣대를 들이댑니다. 하지만 교회에는 진보도, 보수도 없습니다. 오직 하느님의 말씀만이 있을 뿐이죠. 물론 말씀을 삶으로 살아가는 방식을 두고 여러 목소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두가 하느님 나라를 향한 길을 걷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볼 때 교회는 보수적일 수도, 진보적일 수도 있는 거겠죠.

 

사임을 청하는 베르골리오 호르헤 추기경(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베네딕도 교황님을 찾아와서 나누는 대화 장면이 기억납니다. 베네딕도 교황님이 “주님은 변하지 않아요”라고 말하자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주님도 변합니다”라고 맞받아칩니다. 두 분 다 맞는 말씀이죠. 주님은 존재론적으로 변화하지 않으시지만, 늘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방법론적으로는 변화하시죠. 변치 않는 하느님이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진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늘 하나이고 변치 않지만, 늘 변화하는 세상 속에 진리를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할지는 변화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러 갈림길로 나뉘는 여정일지라도, 결국은 한곳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하느님 나라이니까요.

 

한편 영화는 두 교황님의 만남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격려하며, 옛 과거의 상처를 주님 앞에 내어놓고 치유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베네딕도 교황님에게 고해성사를 주면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진실은 중요하지만, 사랑이 없는 진실은 견딜 수 없습니다.” 이는 베네딕도 교황님의 회칙 ‘진리 안의 사랑’에서 인용한 말입니다.

 

베네딕도 교황님은 복식과 절차에 엄격하고, 철저하게 격식을 지키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베네딕도 교황님이 젊은 시절에는 개혁적인 신학자였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역시 개혁파였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요? 교회의 전통을 지키면서도 교회를 개혁하기 위한 교황님의 노력이 영화에는 잘 표현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교황님의 모습이 더 외로워 보였습니다. 더구나 주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교황님의 고백은 더욱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영화에서 교황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음성을 듣지 못했던 이유는 주님이 날 버려서가 아니라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인 것 같소. ‘가거라, 내 충성스런 종이여’”. 어떻게 해야 할지 이미 알고 있지만, 막상 용기가 나지 않아 망설이던 당신의 모습을 발견하신 거죠.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던 어둠 속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과의 만남을 통해 베네딕도 교황님은 주님의 음성을 다시 깨닫게 되고, 그렇게 주님의 뜻에 따라 교황직을 내려놓으십니다. 당신의 부족함을 고백하며, 교회를 위해 교회를 이끌 적임자를 선별해 자리를 내어주는 것. 하느님의 이끄심이 없다면 가능하지 않았겠죠. 역시나 하느님은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를 이끄시고, 길을 떠나도록 용기를 불어넣어주십니다.

 

이번에는 프란치스코 교황님 이야기를 해볼까요? 너무나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교황님이시지만, 털어내기 어려운 과거의 아픈 상처가 있으십니다. 예수회 신부들과 신자들이 군부독재에 맞서 싸울 때, 교황님은 교회를 지키기 위해 그들 편에 서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독재정권과 타협한 배신자라고 비난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아픔으로 괴로워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에게 베네딕도 교황님은 이렇게 위로를 해주십니다. “우리는 인간일 뿐입니다. 형제여, 믿으세요. 자신이 설교하는 자비를요.” 옛 동료들에게 용서를 청하고 함께 미사를 봉헌하는 장면에서 저는 눈물이 터져버렸습니다. 평화의 인사를 나누며 서로의 품에 안겨 우는 교황님의 모습 속에 우리의 죄를 하느님께서 어떻게 용서하시고, 우리를 당신 품에 안아주시는지가 겹쳐졌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죄 많은 우리를 그렇게 용서하시고, 어루만져주시죠.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의 아픈 상처를 치유해주십니다.

 

긴박하게 달려왔던 영화는 두 분의 마지막 헤어짐을 유머러스하게 그리며 보는 이들을 웃음 짓게 해줍니다. 서로를 안은 채 어설픈 탱고 춤이라니요! 하나, 둘… 하나, 둘… 그렇게 두 분이 박자를 맞춰 발을 내딛는 장면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갈등들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생각하게 합니다. 어떻게 서로 딱 맞을 수 있을까요? 조금은 다르더라도 이해하고 보듬을 때, 그렇게 한 박자 한 박자 맞추려 노력하면서 우리는 주님 보시기에 좋은 공동체를 만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또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 무엇을, 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답은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늘 귀 기울이며, 이끄심에 몸을 맡기는 거죠. 이천 년 전 하느님께서 아기 예수님으로 이 세상에 오셨던 것처럼, 오늘은 지금 우리 앞에서 손을 내밀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다 함께 몸을 맡겨볼까요?

 

* 황중호 -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 소속 사제로 영화 ‘두 교황’ 외에도 다수의 국내외 영화와 드라마 대본을 감수했다.

 

[생활성서, 2020년 3월호, 황중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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