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 (목)
(백) 부활 제3주간 목요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지] 신앙의 땅: 대전교구 대흥봉수산성지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10-09 ㅣ No.1857

[신앙의 땅] 대전교구 대흥봉수산성지


‘의좋은 순교자의 땅’

 

 

- 대흥봉수산순교성지 대흥형옥원.

 

 

200여 년의 순교 역사를 통해 대전교구는 한국 천주교회의 중심이자 많은 성인과 성지를 탄생시킨 신앙의 못자리이다. 한국의 산티아고로도 불리는 내포지역을 순례하다보면 여러 순교성지들을 만날 수 있다. 그 길에 아직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신설 성지가 있다. 백제와 후백제의 정기를 품은 봉수산과 예당호로 둘러싸여 배산임수 최적의 조건을 가진 순교의 땅, 대흥봉수산순교성지이다.

 

충청도 홍주의 대흥 출신이었던 김정득 베드로와 여사울 김광옥 안드레아는 사촌지간이었다. 이들은 ‘의좋은 형제’로 불리며 ‘내포의 사도’ 이존창 루도비코 순교자에게 교리를 배우고 입교했다. 1796년 여름부터 1800년 봄까지 주문모 야고보 신부는 서울을 피해 충청도에서 전교를 하며 교우들에게 미사와 성사를 집전하였고, 성물과 교회 서적들을 김정득 베드로와 ‘정산일기’를 쓴 정산 이도기 바오로를 비롯하여 내포 회장들에게 맡겼다.

 

김정득 베드로와 김광옥 안드레아는 박해를 피해 공주 무성산에서 기도와 교리를 실천하며 은수생활을 하던 중 포졸들에게 잡혀 김정득은 대흥옥에, 김광옥은 예산옥에 갇히게 된다. 심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그들은 끝까지 배교하지 않았고, 다른 교우들의 이름을 누설하지도 않았다. 그 후 홍주옥, 청주 병영옥, 한양 포청옥에 갇혀 모진 문초와 회유를 당하던 그들은 결국 신유박해로 1801년 8월21일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그리고 고향인 예산과 대흥으로 압송하여 참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내일 정오, 천국에서 다시 만나세!”

 

김정득과 김광옥은 오랜 시간동안 형벌로 인해 심신이 만신창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과 성모님께 의지하며 신앙을 지켰다. 처형되기 위해 귀향하던 중 예산과 대흥의 갈림길에서 두 사람은 손을 마주잡으며 “내일 정오, 천국에서 다시 만나세!”라는 짧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이튿날인 1801년 8월25일(음력 7월17일), 한날한시에 각기 읍내 물가에서 처형되어 ‘의좋은 순교자’가 되었다.

 

예산 대흥은 예산, 홍주, 아산, 공주, 청양 지역에 복음이 전해지는 길목이었으며 박해의 땅이기도 했다. 교우들이 심문과 고문을 당했던 대흥동헌, 교우들에게 배교를 강요했던 대흥옥은 현재 대흥농협 창고터였고, 조선시대 대흥 참수터는 예당호에 수몰된 내천변이었다.

 

대흥봉수산순교성지는 이러한 순교자들의 수형생활과 처형까지 순교성지의 고유한 특성을 보존하고 있다. 임시 성당과 더불어 ‘대흥형옥원’이라 명명한 ‘형옥원(刑獄圓)‘을 갖추었고 한옥에 3칸의 감옥을 둔 옥사와 참수대가 있으며, 형옥원에 저자거리를 재현하였다. 또한 오석에 부조한 순교자들의 수난과 처형도, 17처로 구성된 순교자 십자가의 길이 조성되어 있다.

 

2014년 8월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방문 당시 시복된 124명 순교자 중 49명 대부분이 내포지역에 살았고, 그 중 29명이 예산 출신이었다. 이를 계기로 예산 출신 순교자들과 김정득 베드로와 김광옥 안드레아 두 복자의 순교 신앙을 현양하며, 프란치스코 교황의 자연 환경과 생태 회칙 ‘찬미 받으소서’를 구현하기 위한 취지로 대흥봉수산순교성지가 설정되었다. 2015년 7월 1400여 평의 땅을 매입하였고, 8월19일 대흥봉수산성지에 초대 전담사제로 윤인규 라우렌시오 신부가 파견되었다.

 

이후 성지를 조성하면서 많은 우여곡절도 겪었다. 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신자가 아니었던 터라 반대도 심해 민원 제기와 집단 항의를 하며 성지 건설을 훼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어려웠던 상황에서도 이름을 밝히지 않고 묵묵히 후원해주셨던 분들과 봉사자들, 국가를 비롯한 지자체의 지원 등으로 지금의 성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 대흥봉수산순교성지 축복식.

 

 

순교자들의 ‘형벌의 고통’을 순례자들도 함께 느낄 수 있어

 

2019년 5월6일 대흥봉수산성지에서 교구장 유흥식 라자로 주교의 주례로 축복식이 거행되었다. 축복식에는 200명 정도 신자들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1400여 명이 넘는 교우들과 내외 빈들이 참례하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우리의 순교 선조들이 신앙심 하나로 견뎠던 ‘형벌의 고통’을 순례자들이 함께 느낄 수 있고, 그 믿음을 ‘신앙의 은사’로 지향하고자 했던 성지설립의 취지대로 하느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릴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대흥봉수산순교성지는 성지로서 개발된 지 얼마 되지 않지만 순교 복자 김정득과 김광옥이 목숨을 걸고 지킨 ‘순교자 3계’를 통해 순교자들의 신앙과 영성이 살아있음을 되새길 수 있었다.

 

一. 천주를 배반치 말라.

二. 교우를 일러바치지 말라.

三. 성물과 교회서적을 바치지 말라.

 

대흥봉수산순교성지 근처에는 대흥 슬로시티와 예당호 출렁다리, 예당호수변길, 예산황새공원, 봉수산 자연휴양림 및 수목원 등 둘러볼 만한 생태 관광지들이 많다. 예산군은 성지와 주변 관광지를 연계하여 성지순례와 관광 상품 개발 등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늦여름이 지나가고 가을 향 내음이 짙어지면서 날씨도 제법 선선하다. 가족들, 교우들, 친구들과 함께 성지 순례도 하고 나들이하기 참 좋은 계절이다.

 

취재에 많은 도움을 주신 윤인규 라우렌시오 신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대흥봉수산성지 미사시간: 월요일 오전 7시(순례 예약시 11시), 화요일~주일 11시

전화: 041-333-0202

홈페이지 주소: http://cafe.daum.net/bongsusan1801

위치: 충남 예산군 대흥면 의좋은 형제길 25-14(대흥동헌 옆)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10월호, 이희영 아녜스(대전 Re. 명예기자)]



1,779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