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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문헌ㅣ메시지

교황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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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8-18 ㅣ No.974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1) 총론


“젊은 신앙인들, 그리스도만 보고 달려가십시오”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희망이시고 이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젊음이십니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이하 주교시노드) 후속 교황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는 이렇게 시작한다. 총 9장, 299항으로 이뤄진 이 권고는 세계의 젊은이들과 하느님 백성 모두에게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생명과 열정을 전한다. 본지는 청년·청소년 기획으로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한국어판 176쪽/6000원/한국천주교주교회의)를 각 장별로 해석하고, 실제 사목 현장에서 복음을 살아가는 이들을 만나 권고의 메시지를 생동감 있게 전하고자 한다. 이번 호에서는 권고 내용이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전체 기획의 총론으로 살펴본다. 전체 기획의 주요 구성은 ▲ 젊은이들에 대한 하느님의 말씀 ▲ 영원한 젊음이신 예수님 ▲ 청년은 하느님의 지금 ▲ 모든 젊은이를 위한 위대한 메시지 ▲ 젊음의 길 ▲ 뿌리 있는 젊은이들 ▲ 청년사목 ▲ 성소 ▲ 식별 등이다. 

 

제1장 - 하느님 말씀은 젊은이들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는가?

제2장 - 영원한 젊음이신 예수님

제3장 - 여러분은 하느님으 지금입니다

제4장 - 모든 젊은이를 위한 위대한 메시지

제5장 - 젊음의 길

제6장 - 뿌리 있는 젊은이들

제7장 - 청년사목

제8장 - 성소

제9장 - 식별

 

- 2018년 10월 6일, 제15차 세계주교시노드 일정 중 연설하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 CNS 자료사진.

 

 

‘젊은이, 신앙과 성소 식별’ 주제로 열린제15차 주교시노드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는 지난해 10월 ‘젊은이, 신앙과 성소 식별’을 주제로 열린 제15차 주교시노드의 후속 교황 권고다. 교황은 “이 권고는 주교시노드 여정의 표석”(3항)이라고 밝혔다.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를 살펴보기에 앞서 주교시노드 제15차 정기총회 최종 문서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총 167항으로 구성된 최종 문서는 불의와 가난, 폭력으로 점철된 젊은이들의 다양한 상황을 담았다. 또한 젊은이들의 이주와 성 정체성, 교회 안에서 자행되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과 여성의 역할도 드러냈다. 특히 교회의 의사결정구조 안에서 여성의 권한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전 세계적으로 불거진 성직자 성추행 문제도 다뤘다. 최종 문서 29~31항에서는 교회 내 학대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모든 형태의 학대를 인정하고 응답하기’라는 주제로 교회의 성 학대를 다루며 “교회는 진실을 행하고 잘못을 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외에도 디지털 시대와 이주, 동성애 등의 문제도 다룬다. 

 

 

젊은이와 하느님 백성 전체에게

 

주교시노드 후속 교황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는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며, 동시에 하느님 백성 전체에게 보내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다. 교황은 이 권고에 대해 “일부분은 젊은이에게 직접 전하는 말이며, 일부분은 교회의 식별을 위한 좀 더 일반적인 접근법을 제안하는 것”(3항)이라고 안내한다.

 

 

어떤 내용이 담겨 있나?

 

권고는 성경에서부터 출발한다. 제1장 ‘하느님 말씀은 젊은이들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는가?’는 구약과 신약성경 내용을 인용하며 젊은이들에 대한 살아계신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시선을 상기시킨다.

 

제2장 ‘영원한 젊음이신 예수님’은 예수의 젊음을 기준으로 교회의 역할을 제시한다. 교황은 “인생의 궁극 목적을 향하여 나아가는 교회야말로 세상의 진정한 젊은이”(34항)라고 교회의 젊은이상을 제시한다. 이러한 젊은 교회는 쇄신에 열려있어야 하고 시대 징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함을 강조한다.

 

제3장 ‘여러분은 하느님의 지금입니다’에서는 현대 세계의 젊은이들이 놓인 현실을 짚는다. 전쟁과 폭력, 범죄 등에 노출된 젊은이들을 언급하고 교회가 이들과 함께 여정을 걸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디지털 환경의 한계를 지적하고 이민 문제도 파고든다. 아울러 성직자의 성추문과 같은 민감한 문제를 드러내며 자성의 목소리도 낸다.

 

제4장 ‘모든 젊은이를 위한 위대한 메시지’에서 교황은 세 가지 위대한 진리를 선포한다. 즉 ‘사랑이신 하느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구원하십니다’,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라는 세 가지 진리 안에서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음을 밝힌다.

 

제5장 ‘젊음의 길’에서는 하느님의 선물인 젊음을 축복과 은총으로 받아들여 열정적이고 충만한 삶을 살도록 당부한다. 특히 젊은 시절, 신앙 안에서 예수님이라는 하나의 꿈을 간직하라고 강조한다. 또한 교황은 젊은이들에게 공동선 실현을 위해 사회 참여와 가난한 이들에게 다가갈 것을 촉구한다.

 

제6장 ‘뿌리 있는 젊은이들’은 세대 간의 조화를 강조한다. 교황은 “노인과 젊은이가 함께 여정을 걸어간다면, 우리는 현재에 굳건히 뿌리내릴 수 있으며 거기에서 과거를 돌이켜 보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199항)고 전망한다.

 

제7장 ‘청년사목’에서 교황은 청년사목이 사회적, 문화적 변화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에 대한 교회의 접근으로 공동체 전체가 젊은이들의 복음화에 동참해야 하며, 동시에 젊은이들은 사목 활동에서 더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제기한다.

 

제8장 ‘성소’에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해 설명하며, 젊은이들이 열망하고 고민하는 두 가지 주제 ‘가정’과 ‘노동’의 성소를 특별히 언급한다. 더불어 “사제직과 수도생활을 통해 하느님께 봉헌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말라”(276항)고 요청한다.

 

제9장 ‘식별’에서 교황은 젊은이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스스로 자신의 성소를 발견하도록 요구한다. 동시에 사제, 수도자, 전문가 등이 성소 식별을 위해 젊은이들의 여정에 함께할 것을 강조한다.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는 젊은이들에게 주는 권고이기 이전에 교회 스스로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데서 시작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15차 주교시노드 폐막미사 강론에서 미사에 참례한 청년들에게 “우리가 여러분의 말을 듣지 않고, 마음을 열지 않고 귀를 닫았다면 모든 어른들의 이름으로 용서를 청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우리는 사랑으로 여러분의 목소리를 듣길 원한다”며 “주님께서는 젊고, 젊은이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결국 권고는 교회 공동체 전체의 성숙함을 요구하는 동시에 젊은이들의 열정을 일깨우는 데 목적이 있다. 그리고 권고에서 말하는 모든 기준과 중심은 살아계신 그리스도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저의 기쁨과 희망은 여러분이 여러분 앞에 펼쳐진 길을 계속 달려가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모습만 바라보며 계속 달려가십시오.… 교회는 여러분의 추진력, 여러분의 통찰력, 여러분의 신앙이 필요합니다. 우리도 이를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직 도달하지 못한 곳에 여러분이 먼저 도착하면 거기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우리를 기다려 주십시오.”(299항) [가톨릭신문, 2019년 8월 18일, 박민규 기자]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2) 제1장 하느님 말씀은 젊은이들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는가?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젊은이야 일어나라”

 

 

교황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이하 권고)는 주님께서 젊은이들에게 다가가신 모습들을 가장 먼저 성경 안에서 보여준다. 제1장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 속 위대한 인물들도 젊은이였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그 당시 젊은이들에게 보였던 일반적인 사람들의 시선과는 다르게 접근하시는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도록 이끈다. 또한 성경 속 위대한 젊은이들이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모습들을 통해 시대를 초월한 젊음의 열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번 호에서는 구약과 신약성경에서 드러나는 하느님과 젊은이들의 관계를 살피고, 오늘날 현실을 살아가는 청년 평신도 신학생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구약성경 속 젊은이들

 

▶ 젊은이의 솔직함 - 기드온

 

기드온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땅에 정착해 많은 핍박을 받을 때 함께 싸웠던 지도자로서 약 40년을 판관으로 지냈던 인물이다. 하지만 권고에서는 그의 위대한 업적보다 젊은이로서의 솔직함에 초점을 맞춘다.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계시다면, 어째서 저희가 이 모든 일을 겪고 있단 말입니까?”(판관 6,13)라는 기드온의 대꾸에 하느님께서는 실망하지 않으시고 용기를 주신다. 권고는 “기드온에게서 현실을 미화시켜 받아들이는 데에 익숙지 않은 젊은이의 솔직함을 보게 된다”(7항)고 설명한다.

 

▶ 마음을 보시는 하느님 - 다윗

 

다윗에 대해 권고는, 임금으로 뽑히는 과정에서 소년 다윗을 소개한다. 사무엘 예언자는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1사무 16,7)며 양을 치고 있는 어린 다윗이 주님께서 뽑으신 이라고 밝힌다. 권고는 “젊음의 영광은 물리적 힘이나 다른 이들에게 주는 인상보다는 마음에 있는 것”(8항)이라고 말한다.

 

▶ 젊음의 자신감 - 예레미야 예언자

 

20대의 젊은 나이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예언자로서 활동을 시작한 예레미야는 남왕국 유다가 바빌론 제국에 의해 멸망하게 되는 시기까지 활동했다. 권고는 격동의 시기 속에서 예언직을 수행한 예레미야 예언자의 젊은 담대함과 하느님의 권능에 주목한다. 젊은 나이에 자기 민족을 일깨우도록 부르심을 받은 예레미야 예언자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해 주리라”(예레 1,8)라는 하느님의 약속이 따른다. 권고는 “사명에 대한 예레미야 예언자의 헌신은, 젊음의 자신감에 하느님의 권능이 더해지면 어떤 일이 가능한지 잘 보여준다”(10항)고 밝힌다.

 

 

신약성경 속 젊은이들

 

▶ 변화에 열려있는 젊은 마음

 

권고는 신약성경의 젊은이 중, ‘돌아온 탕자’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루카복음 15장에 나오는 작은아들을 가장 먼저 소개한다. 방종과 탕진으로 고독과 곤궁에 허덕였던 작은아들이 새 출발을 위해 힘을 찾은 것을 두고 권고는 젊은 마음의 전형이라고 일컫는다.(12항) 

 

▶ 영원한 젊음이신 그리스도

 

권고는 바오로 성인의 말을 빌려 참 젊음에 대해 설명한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입니다.”(콜로 3,14) 참 젊음은 바로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다.(13항) 또한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콜로 3,12-13)라는 바오로 성인의 말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젊음을 강조한다. 이로써 권고는 “영원한 젊음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젊은 마음을 주고자 한다”(13항)는 주제를 드러낸다.

 

▶ 젊은이들의 가치

 

그리스도의 젊음이 실현될 수 있기 위해 권고는 “희망을 빼앗기면 안 된다”(15항)고 젊은이들에게 당부한다. “젊은이들의 특징은 원대한 꿈을 지니고 넓은 지평을 찾으며 더 높은 목표를 추구하면서, 세상에 맞서고 도전을 받아들이며 더 나은 것을 이루려 최선을 다하는 것”(15항)이기 때문이라며 “아무도 그대를 젊다고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라”(1티모 4,12)고 강조한다. 아울러 “지혜로운 젊은이는 미래를 향해 열려 있으면서도 언제나 다른 이들의 경험에서 배울 수 있다”(16항)며 베드로 사도가 “원로들에게 복종하라”(1베드 5,5)고 했듯이 세대를 아우르는 지혜를 간직하라고 말한다.

 

성경 속 젊은이들을 소개하며 젊음의 중요성을 드러낸 권고는 1장 말미에서 무엇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중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러분이 내적 활력, 꿈, 열정, 희망, 관대함을 잃었을 때에… 부활하신 주님의 권능으로 이렇게 북돋워 주십니다”(20항).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루카 7,14)

 

 

서울대교구 청년연합회 정승아 부회장 - “주님 부활 기억하라는 권고 힘들때 가장 와닿았던 부분”

 

“세례를 받고 신학 공부를 하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30살, 비교적 늦은 나이에 세례를 받은 정승아(테레지아·36·서울 한강본당) 서울대교구 청년연합회 부회장은 말씀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지 않아 2017년에 서강대 신학대학원까지 입학했다. 지적 욕구 충족을 위해 신학대학원에 입학했다는 정 부회장은 5학기를 끝낸 지금 “신학공부는 지식을 쌓는 것으로 끝날 수 없는 작업임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이어 “신학의 완성은 삶 속에서 신앙 실천”이라며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를 교재로 청년들과 함께 진지한 논의의 장을 만들고 싶고, 실제로 모임을 준비 중이다”고 말했다.

 

정 부회장은 스스로를 나약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부활하신 그리스도지만, 죽음에 이르기까지 고통을 당했다는 사실에 내가 겪었던 고통 역시 그리스도의 죽음과 함께 부활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는 내적 활력을 잃었을 때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억하라는 권고 20항의 내용으로, 자신에게 가장 와 닿았던 부분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권고에서 강조하는 젊은 마음에 대해 정 부회장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긍정할 수 있는 마음”이라며 “긍정의 반대는 부정이 아니라 하느님을 모른 척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 이유로 “거부한다는 것은 거기에서 이유를 찾고 다시 긍정할 수 있는 변화가 존재하기 때문”이라며 변화에 열려 있는 젊은 마음을 설명한 권고 12항을 예로 들었다.

 

권고에서 소개하는 성경 속 젊은이들은 하느님 안에서 젊은 열정으로 성장해 갔고, 예수 역시 완전한 인간으로 태어나 양성의 과정을 거쳤다. 이에 대해 정 부회장은 “하느님 안에서 성장해 간 젊은이들과 예수의 양성 과정을 바라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런 과정이 곧 부활을 위한 준비 시간이고, 이 기간 동안 인내하고 고통을 끌어안는 것이 사랑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가톨릭신문, 2019년 9월 1일, 박민규 기자]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3) 제2장 영원한 젊음이신 예수님

 

 

교황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이하 권고)는 제2장에서 ‘영원한 젊음이신 예수님’을 주제로 젊은 예수님의 모습과 교회의 젊음을 얘기한다. 즉 젊음의 완전한 본보기로서 영원한 젊음이신 예수님을 소개하고, 교회도 쇄신하고 시대 징표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젊음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번 호에서는 오늘날 힘겹게 살아가는 젊은이의 현실을 편지 형태로 들여다 보고, 이에 대한 정순택 주교(주교회의 청소년사목위원회 위원장)의 답변을 통해 권고 내용을 상기시켜 본다.(정순택 주교의 답변은 권고 제2장 내용에 대해 본지와 인터뷰한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1991년생 노엘라씨의 편지

 

안녕하세요, 주교님. 저는 서울에 사는 1991년생 스물아홉 살 여성입니다. 현실의 높은 벽을 실감하고 이렇게 편지로나마 제 마음을 털어놓습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종교기관에서 1년 정도 직장 생활을 했습니다. 당시 제가 추구했던 생활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Work-life balance)이었고, 그 직장은 꽤 만족스러운 곳이었습니다. 평일에는 오후 6시에 정확히 퇴근했습니다. 종교기관이다 보니 주말에 출근해야 했지만, 그 다음 평일에 대체 휴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저녁 시간이 보장됐기 때문에 저는 평소 관심 있었던 포토샵과 일러스트 수업도 듣고 스피치 수업, 영어회화 수업도 들었습니다. 소위 ‘생산적 활동’에 제 시간을 썼습니다. 사실 급여는 최저임금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이었지만, 정시 퇴근이 보장된 곳이라 대체로 만족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개인 사정이 생겨서 그만두게 됐고, 얼마 후 패션브랜드의 홍보를 진행하는 회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게 됐습니다. 업계 특성상 야근이 잦다는 것은 알았지만, 막상 야근이 생활화되니 제 삶의 질은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기본 2~3시간씩 이어지는 수당 없는 연장근로는 사무실 모든 직원들을 날카롭고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사무실 분위기는 언제나 삭막했고 야근에 지친 몸은 다른 여유를 찾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가장 손쉽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인 폭식과 폭음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술자리가 주는 기쁨은 아주 잠깐이었고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마침 수습기간이 끝나고 정직원 계약 시기가 다가오고 있어서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여러 조건을 고려했을 때, 사회초년생으로서 적어도 2~3년 동안 버틸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주변에서 하는 말은 직장을 다니면서 이직할 곳을 알아보고, 이직이 확정되면 회사를 그만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매일 의미 없는 야근을 하면서 이렇다 할 구직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아 수습기간을 끝내고 퇴사했습니다.

 

그렇게 퇴사하고 지금 7개월 째 구직자로 지내는 중입니다. 예상보다 구직활동이 길어지면서 뚜렷한 고정 수입 없이 살아가는 현실이 힘듭니다. 부모님께도 죄송하고요.

 

자연스럽게 그동안 소홀했던 성당에 나가고 있습니다. 유아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성당에 들어서면 고향에 온 것 같은 포근함을 느낍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고 있자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그 순간은 예수님 품 안에 있는 것 같은 위로를 받습니다. 하지만 성당을 나서면, 다시금 밀려오는 압박감과 불안함에 사회에서 살아갈 용기가 선뜻 나지 않습니다. 제가 신앙심이 부족해서일까요? 교회와 사회 어느 곳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고 있는 제가 초라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젊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하면 더 성숙한 삶과 깊은 신앙을 간직할 수 있을까요?

 

 

정순택 주교가 노엘라 자매에게

 

노엘라 자매님, 편지 잘 받았습니다. 먼저, 그동안 힘들게 마음고생 한 것에 대한 위로를 건넵니다. 자매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오늘날 젊은이들은 현실의 높은 벽에 막혀 아픔을 안고 살아갑니다. 작은 일상에서부터 미래의 불안정성까지 늘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존재들이죠.

 

하지만 젊다는 사실 자체가 하느님의 큰 선물이기에 용기를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같은 상황에 직면해 있지는 않지만, 맞닥뜨리는 도전들은 삶을 더 무르익게 하고 성장시킵니다. 그리고 자매님이 지금 구직활동을 하며 문제를 인식했다면, 결국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도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울러 그 순간 하느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사실 역시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제가 지금 말씀 드리는 것은 사회생활을 위한 팁이 아니라 자매님 인생 자체를 위한 조언입니다.

 

인생의 나침반으로 예수님의 젊음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볼 때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모습들을 중심에 둡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죠. 하지만 완전한 인간이 되신 예수님께서는 자매님과 같은 젊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소 젊은이들과 함께 나누시는 당신의 젊음에서 출발하십니다. 참으로 사람들 한가운데 계셨던 예수님에게서 젊은 마음의 전형적인 여러 측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젊은 마음은 무엇을 뜻할까요? 바로 아버지에 대한 아무 조건 없는 충실한 믿음입니다. 그 충실한 믿음 안에 그분께서는 가장 약한 이들, 특히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 죄인들과 배척받는 이들에게 깊은 연민을 보이셨고, 당신 시대의 종교와 정치 권위들에 용감히 대항하셨습니다. 이렇듯 모든 젊은이는 예수님 안에서 자기 자신을 볼 수 있습니다.(권고 31항)

 

또한 예수님이 젊다는 것은 교회가 젊다는 것을 뜻합니다. 젊음은 나이라기보다 마음의 상태입니다.(권고 34항) 2000년의 나이를 뛰어넘어 교회는 풍요로운 문화와 전통을 전해 줍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성령이며, 성령은 교회를 세상의 빛으로 존재할 수 있게끔 이끌어 줍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은 교회를 등지고 있습니다. 부끄럽지만 교회가 젊음을 잃어가고 있다는 표징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젊음을 되찾기 위해 쇄신해야 합니다. 자매님과 같은 어려움에 처한 젊은이들이 교회에서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쇄신하고 시대 징표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노력하는 것이 교회가 젊음으로 나아가는 길이겠죠. 그러기 위해 저희 같은 사목자들이 먼저 권위를 내려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사제가 여러 부분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가르치는 입장에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고등교육을 받았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직이 존재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들어주고 공감하는 역할이 이 시대 사목자의 모습이라 생각합니다.(권고 41항) 젊은이들이 주체적으로 표현하고 문제를 스스로 풀어나갈 수 있도록 경청하고 동반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죠. 이것을 시노달리타스(Synodalitas·공동합의성)라고 합니다. 즉 함께 걷는 길을 뜻합니다.

 

자매님의 힘든 상황을 제가 대신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영원한 젊음이신 예수님께서 늘 함께하신다는 사실과 교회 역시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무엇보다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간다면, 자매님이 직면한 현실의 문제를 넘어 존재자체로서 찬란한 꽃을 피우리라 확신합니다. 노엘라 자매님 삶에 하느님의 축복이 함께하시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가톨릭신문, 2019 9월 22일, 박민규 기자]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4) 제3장 여러분은 하느님의 지금입니다


“임신했거나 낙태로 상처입은 이들의 처지에 공감을…”

 

 

교황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이하 권고)는 제3장에서 ‘여러분은 하느님의 지금입니다’를 주제로 위기에 처해 있는 수많은 젊음들을 드러내고, 상처 받은 젊은이들의 시선에 함께한다. 권고는 전쟁과 폭력으로 피해 받는 청소년, 이주민 등 오늘날 힘든 환경 속에서 살아 가는 젊은이들을 위로한다. 특히 “임신했거나 낙태의 상처를 입은 청소년과 젊은이들의 어려운 상황을 잊지 말아야 한다”(권고 74항)고 밝힌다. 이번 호에서는 청소년 양육미혼모와 학교밖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학교인 ‘자오나학교’를 통해 권고의 메시지를 상기시켜 본다.

 

 

상처투성이

 

◎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의 삶은 고통과 술수에 노출돼 있습니다.(권고 71항)

 

“아기가 왜 생겼는지 모르겠어요.”

 

한 10대 미혼모의 말이다.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현대 사회에서 이런 생각이 가능할까? 실제 10대 미혼모가 자오나학교 교장 정수경 수녀(원죄 없으신 마리아 교육 선교 수녀회)에게 질문한 내용이다. 성관계 과정을 적나라하게 설명하면서도 왜 아기가 생겼는지 모른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수많은 정보들이 공유되지만 성(性) 문제에 대해서는 즐거운 놀이, 즉 쾌락의 일종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분위기다. 이를 여과 없이 받아들인 청소년들은 일찍 어른이 된다.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청소년의 잘못일까?

 

정 수녀는 자오나학교에 찾아오는 학생들의 가정환경은 거의 비슷하다고 말한다. “부모가 이혼했거나 조부모 밑에서 생활한 아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제때 보살핌을 받지 못해 상처투성이인 아이들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죠. 상처를 더 키울 뿐입니다.”

 

김미연(가명·23)씨는 부모가 일찍 이혼해 엄마의 얼굴도 기억 못한다. 아버지는 트럭 운전을 해 친척 손에서 컸다. 김씨는 어느 순간 혼자 집을 보기 시작했고, 그때 상황이 비슷한 남자친구를 만났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던 해에 임신을 했다. 남자친구는 소년원에 들어갔다. 갑작스럽게 닥친 상황에 주변 지인들과 SNS상 익명의 사람들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돌아온 대답은 하나같이 아기를 지우라는 것이었다.

 

정 수녀는 “임신한 청소년들이 아기를 낳고 책임감 있게 기를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정보가 부족하다”며 “교회는 이런 부분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원론적이고 피상적인 가르침으로 접근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이유로 위기에 처한 많은 청소년들이 교회를 이해하지 못하고 떠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권고 81항)

 

 

함께 울어주기

 

◎ 누군가를 위해 눈물 흘릴 수 있습니까?(권고 76항)

 

김씨는 고민 끝에 아기를 출산했고, 갓난아기와 함께 자오나학교를 찾았다. 자오나학교에서는 김씨에게 가정환경 정도만 확인하고 특별한 과거를 캐묻지 않았다. 정서적 안정이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아기를 낳고 키우겠다고 결심한 사실 자체에 용기를 북돋아 준다.

 

정 수녀는 무엇보다 일상을 함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같이 일어나 밥 먹고 놀고 수업하고, 때때로 잔소리도 합니다. 옆에서 함께 있어 주고 울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인식할 때 점점 마음이 열리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이 아이들도 누군가를 위해 울어 주는 사람이 돼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일상을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이지만, 어릴 적부터 홀로 자라 온 이들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변화를 동반한다. 처음 자오나학교에 들어왔을 때 김씨는 그동안 쌓인 상처들로 인해 감정 표현이 서툴렀다. 스스로 통제하지 못할 만큼 감정을 억누르거나 때로는 물불 가리지 않고 터뜨려 버렸다. 순수한 의도를 왜곡해서 받아들이기도 일쑤였다. 그동안의 좌절과 실패, 아픈 기억들, 사랑과 인정 받지 못한다는 느낌에서 오는 상처들의 표현이었다.(권고 83항)

 

정 수녀와 자오나학교 교사들은 이 과정을 반복해서 겪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리 있게 말을 하고 있는 김씨를 발견했고, 김씨 스스로도 꿈을 꾸기 시작했다. 평소 메이크업에 관심 있었던 김씨는 제대로 공부를 해서 메이크업 강사를 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수업 시간에 끝까지 앉아 있어 본 경험도 없었던 김씨는 꿈을 가진 후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현재 장학금까지 받으며 대학교를 다니고 있다. 김씨는 자오나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앉아 있는 법을 배워 대학교에서도 자신이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든다고 자랑한다.

 

“교회의 젊은 자녀들이 겪고 있는 비극 앞에서 우리 교회는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눈물을 흘릴 줄 모르는 사람은 어머니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는 법을 알게 될 때에, 마음으로부터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권고 75~76항)

 

 

공동체의 힘

 

◎ 여러분이 하나가 된다면 놀라운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권고 110항)

 

김씨가 사회에 안정적으로 복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공동체와 함께했기 때문이다. 자오나학교에서는 아기 엄마에게 육아를 전적으로 맡기지 않는다. 공동육아 개념으로, 자신의 아기만이 아니라 다른 아기들도 함께 돌보고 성장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다. 또한 공동구역의 청소 등을 통해 희생하고 배려하는 법을 가르친다.

 

정 수녀는 “이곳에서 함께 아기를 돌보고 청소하며 타인과 관계 맺는 방법을 배워 간다”며 “대부분 혼자 생활했기 때문에 공동생활에 어려움을 많이 겪지만, 결국에는 사회생활도 가능해진다”고 밝혔다.

 

하지만 자오나학교에서 2년간의 과정을 거치고 졸업해 사회에 나가면, 또다시 ‘미혼모’라는 편견에 부딪쳐야 한다. 그동안 받은 상처들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많이 아물어지지만, 사회에 나가 사람들의 편견에 홀로 맞서기에는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이 밀려온다.

 

정 수녀는 마을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자오나학교를 졸업하면 대부분 임대주택에서 혼자 살아갑니다. 우리 사회는 갈수록 이웃에 무관심하게 되고, 만약 미혼모라는 것을 알게 되면 호기심의 대상으로만 바라봅니다. 그냥 이웃의 한 사람으로 편하게 대해 줬으면 합니다. 이 아이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관심 가지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마을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또한 정 수녀는 신앙인들의 역할도 강조한다. “나를 위한 개인의 신심활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내 이웃으로 누구를 보내 주셨는지 주변을 돌아봤으면 좋겠습니다. 어려움 가운데 있는 이웃을 위해 기도해 주고 함께 울어 주는 것이 우리 신앙인이 나아가야 할 길이라 생각합니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희생과 봉사가 필요하다. 하지만 희생과 봉사가 물질적 지원이나 큰 도움을 주는 것만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과 애정 어린 관심이다.

 

“여러분이 하나가 된다면 놀라운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공동체 생활에 열의를 가진다면, 다른 이들과 공동체를 위해 커다란 희생을 할 수 있습니다.”(권고 110항) [가톨릭신문, 2019년 10월 13일, 박민규 기자]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5) 제4장 모든 젊은이를 위한 위대한 메시지


"무한히 사랑받고 있음을 의심하지 말라"

 

 

교황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이하 권고)는 제1장에서 성경의 인물들을 통해 젊음의 열정을 드러냈고, 제2장에서는 젊은이들을 위해 교회가 쇄신돼야 함을 지적했다. 제3장에서는 위기에 놓인 청소년들에게 주목하면서 교회와 신앙인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리고 권고는 마침내 제4장에서 ‘모든 젊은이를 위한 위대한 메시지’를 주제로 젊은이들이 지속적으로 귀 기울여야 하는 세 가지 위대한 진리를 전달한다. 이번 호에서는 권고에서 말하는 세 가지 위대한 진리를 소개하고, 가난하고 위험 중에 놓인 청소년들을 위해 투신하고 있는 살레시오 나눔의 집 담당 김승욱 수사(살레시오회)의 살아 있는 이야기를 들어본다.

 

 

○ 사랑이신 하느님

 

권고는 첫 번째 진리로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권고 112항)를 선포한다. 가장 먼저 이와 같은 하느님의 사랑을 소개하며 “어떠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무한히 사랑 받고 있다는 이 진리를 의심하지 말라”(권고 112항)고 강조한다. 특히 하느님 사랑의 특성을 부모의 본능적이고 연인의 열정적인 관계에 빗대어 설명한다.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일 때 “순수한 기쁨으로 차오르는 사랑임을 깨닫게 해 준다”(권고 114항)고 밝힌다.

 

권고는 하느님 사랑을 압축해서 이 같이 말한다. “하느님의 사랑은 자유로우며 자유롭게 하는 사랑, 치유하고 일어나게 하는 사랑, 화해시키는 사랑, 단죄하지 않고 기회를 주는 사랑,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지향하는 사랑입니다.”(권고 116항)

 

 

○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구원하십니다

 

두 번째 위대한 진리는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시어 여러분을 구원하시고자 당신 자신을 온전히 희생 제물로 바치셨다는 것”(권고 118항)이다. 구원을 약속하는 두 번째 진리는 우리의 죄와 관련된다. 첫 번째 진리와 마찬가지로 일으켜 세우심, 즉 “죄를 지어 예수님에게서 멀어져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당신 십자가의 권능으로 여러분을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실 것”(권고 119항)이라고 밝힌다.

 

권고는 특히 젊은이들에게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구원을 강조한다. 이는 젊은이들 스스로가 소중한 존재임을 각인시키고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를 만끽하도록 돕는 것이다.(권고 122항)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에 대해 묵상하고 그 피로 깨끗해지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다시 새롭게 태어날 것입니다.”(권고 123항)

 

 

○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마지막 세 번째 진리는 권고의 제목이자 첫 문장인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권고 124항)이다. 권고는 그리스도가 2000년 전 우리를 구원하신 분, 과거의 좋은 모범 하나로만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도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살아 계시다는 사실에서 나아가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삶을 빛으로 채워주실 것이라 말한다.(권고 125항)

 

아울러 젊은이들에게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윤리적 선택이나 고결한 생각의 결과가 아니라, 삶에 새로운 시야와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한 사건, 한 사람을 만나는 것”(권고 129항)이라며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인생의 기준점으로 삼기를 제시한다.

 

 

살레시오 나눔의 집 담당 김승욱 수사 - "사랑과 관심 안에서 변화하는 아이들 보며 살아계신 그리스도 느껴"

 

“결국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살레시오 나눔의 집 담당 김승욱 수사(살레시오회)는 지금껏 청소년들과 함께한 시간과 수도생활을 반추하며 이 같이 말했다.

 

살레시오 나눔의 집은 부모가 없거나 집에서 자라기 힘든 상황에 놓인 중고등학생들에게 그룹홈(공동생활 가정)을 제공하고 안정된 가정환경을 마련해 주는 역할을 한다. 현재 일곱 집에서 30여 명이 생활하고 있다.

 

김 수사는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라는 권고 121항이 “젊은이들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들이 사랑 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야 합니다”라는 살레시오회 창설자 돈보스코 성인의 메시지와 일맥상통한다고 설명했다.

 

어린 시절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청소년들은 어른들을 경계하고 감정적으로 나오기 일쑤다. 김 수사는 “이런 아이들에게 무엇보다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줘야 한다”며 “표면적인 것에만 신경 쓰면 서로 감정적인 소모만 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면서 “나를 아프게 해도 진심을 계속 전달하다 보면 언젠가 아이들의 눈빛이 변하는 순간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 수사는 나눔의 집에 오기 전, ‘6호 보호처분’을 받은 청소년들이 머무는 살레시오 청소년센터에서 소임을 맡기도 했다. 그곳에서 인연을 맺은 한 청소년은 청소년센터에서 보낼 수 있는 기간이 만료돼 김 수사와 함께 이동하고 싶다고 밝혀 현재 나눔의 집에서 살고 있다.

 

누구보다 청소년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올바른 시민으로서의 성장을 강조하는 김 수사. 청소년들과 깊은 동질감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역시 돈보스코 직업학교 출신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공부보다 노는 것을 좋아했던 김 수사는 어머니의 권유로 돈보스코 직업학교에 입학했다. 김 수사는 “철없던 시절 같은 시선에서 바라보고 동반해 주는 살레시오회 신부님, 수사님들이 참 멋있어 보였다”고 말했다.

 

김 수사는 어느 날 새벽미사에 참례했고, 이후 그 시간이 좋아 매일같이 미사에 나갔다. 그러던 중 “우리랑 같이 살래?”라는 수사의 한 마디가 그를 수도성소의 길로 이끌었다.

 

수도회에 입회하고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종신서원까지 한 김 수사는 “수도생활을 하며 느끼는 것은 ‘결국 그리스도’라는 것이다”고 밝혔다. 이어 “아이들을 향한 돈보스코 성인의 열정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시작했고,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리스도께서 분명 살아 계신다는 것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러기 위해 감시자가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놀고, 공부하고, 운동하는 친구로서 옆에 있어 주고 있다”며 “자립한 후에도 찾아오면 반갑게 맞이하고 계속 지지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성실하게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그리스도를 발견한다”고 덧붙였다.

 

김 수사는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지만, 끝까지 믿고 지지해 주는 과정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구원을 체험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수도회 수사로서 기본적으로 존경 받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고 살아가려 노력한다”며 “그리스도만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원천이다”고 고백했다. [가톨릭신문, 2019년 11월 3일, 박민규 기자]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6) 제5장 젊음의 길 - 항공대 ‘아오스딩’ 모임을 찾아가다


“함께 꿈꾸고 연대하며… 청년들 교회 안에서 희망 얻길”

 

 

교황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이하 권고)는 제5장에서 ‘젊음의 길’이 무엇인지 제시한다. 교회 내 젊은이들, 특히 대학생들은 어떤 생각과 활동들을 하고 있을까. 11월 21일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담당 최봉용·김도연 신부, 이하 서가대연) 소속으로 가톨릭 대학생 모임을 열고 있는 경기도 고양 한국항공대학교 ‘아오스딩’을 찾았다. 10여 명의 학생들이 매주 모여 그날 주제에 맞게 성찰하고 나눔을 진행한다. 한국항공대학교 가톨릭 대학생 모임 ‘아오스딩’은 사제서품을 앞둔 수도회 소속 강보경 부제(작은형제회 (프란치스코회))가 담당해 열정을 더하고 있다. 강 부제와 한국항공대학교 ‘아오스딩’ 학생들이 주고받은 문답을 통해 권고의 메시지를 들여다 본다.

 

강보경 부제(작은형제회 (프란치스코회))와 한국항공대학교 가톨릭 대학생 모임 ‘아오스딩’ 회원들이 11월 21일 오후 6시 교내 동아리실에서 주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Q. 교황은 젊음의 특징을 “실현되어 가는 꿈, 더 일관되고 균형 잡힌 관계들, 시련과 시험들, 점진적으로 삶의 계획을 이루는 결정들로 나타난다”(권고 137항)고 밝혔다. 어떤 꿈들을 꾸고 있나?

 

박민재(프란치스코·21)

항공대 학생으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기계정비 기술을 익혀 공기업에 취업하는 것이다. 하지만 꿈에 대해 말한다면, 신앙인으로서 정체성을 찾고 청년의 입장에서 하느님 일꾼으로 쓰일 수 있는 일에 투신하고 싶다. 운이 좋게 내년에 서가대연 임원진을 맡게 됐다. 이 기회를 활용해 서울에 있는 많은 가톨릭 대학생들과 교리도 공부하고 서로의 삶을 나누며 교회 안에서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싶다.

 

육동주(도미니코·22)

개인적으로 여러 체험을 하며 느낀 바는 사회적 성공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정신적·육체적·영적 여유를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원동력은 신앙 안에서의 삶이라는 것을 작년 서가대연 임원으로 봉사하며 알게 됐다. 사회 안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청년들이 교회라는 공동체를 통해 많은 힘을 얻기를 희망한다. ‘아오스딩’도 그런 작은 공동체로서 좋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손승우(요셉·26)

가톨릭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함께 모인 동료들과 서로의 신앙을 나누며 많은 위로를 받고 있다. 그러면서 정말 행복하게 신앙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발견해 가고 있는 중이다. 물론 청년 실업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서 내가 노력하는 것보다 사회가 요구하는 것이 많아 한계와 어려움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하느님께 의탁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김영율(미카엘·22) 나는 어렸을 때 본당 공동체 활동을 하며 함께 더불어 사는 것에 대한 꿈을 꿨고 그 안에서 많은 위로를 얻었다. 하지만 동시에 어려움도 겪었다. 우선 학생의 입장에서 활동을 계획하고 추진했지만, 본당 신부님의 소임 이동으로 준비했던 일들이 변경되는 일도 있었고, 이로 인해 깊은 관계를 맺기 힘든 점도 있다. 또한 본당 신자들의 연령이 높아지는 것에 반해, 청년들의 수는 감소하고 있어 역량을 펼치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

 

강보경 부제(작은형제회 (프란치스코회))

교황은 “가장 아름다운 꿈들은 조급함이 아니라 희망과 인내와 노력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권고 142항)고 말했다. 지금껏 잘 해왔듯이,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만 맞추려 조급하게 달리지 말고 신앙 안에서 희망을 가지고 함께 살아갔으면 한다.

 

 

Q. 교황은 특히 공동선을 강조하며 젊은이들에게 사회와 정치에 적극 참여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권고 170항) 청년들의 사회·정치 참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감창희(마리오·24)

아직 학생이기 때문에 정치에 직접 참여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 안에서 정치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통용되고 있는 것 같다. 더욱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지는 많은 정보들은 정치를 편향된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 안에서 우리는 어떤 주제가 됐든 서로의 생각을 자주 나누고 공통점을 찾아 나가야 된다고 본다. 특별히 사회에서 소외된 약자들이 소리 낼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해 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조한결(프란치스코·23)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 집회에 참여한 적이 있다. 솔직히 무서웠다. 경찰들과 대치하며 구호를 외치는 것이 잘하는 일일까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잘한 것 같다. 어려움에 처한 약자들을 위해 함께 힘을 모으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회·정치 참여라면 우리 청년들도 그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박민재(프란치스코·21)

정의를 위해 사회·정치활동에 직접 참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신앙인으로서의 시각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올해 말부터 서가대연에서 임원진 활동을 시작하게 되는데, 가장 먼저 사회교리 공부를 함께 해 보고 싶다. 교회가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는지, 그 가르침에 따라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좋은 나침반이 될 것 같다. 이를 위해 신부님과 수도자들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본다.

 

정원준(프란치스코·25)

나는 본당 신부님의 한마디가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사 안에서 신부님이 들려 주시는 강론에서 개인적으로 많은 영감을 얻는다. 이런 말씀들 안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 것 같나요?”라는 질문은 내 삶에 큰 울림이 된다. 사회와 정치 참여 문제에 있어서도 미사 안에서 청년들에게 복음적 시각의 메시지를 던져 주면 어떨까 한다.

 

강 부제 각자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다. 특별히 교황님께서 젊은이들에게 사회·정치 참여를 독려한 이유는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따라 열정적으로 살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세상은 혼자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며 구경하는 곳도 아니다. 예수님의 시선으로 주변 이웃들과 연대할 때, 개개인 안에서도 살아 계신 예수님의 열정이 자리 잡고 드러날 것이라 본다. 교황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격려하고 권고한다.

 

“변화의 주인공 역할을 다른 이들에게만 맡겨 두지 마십시오! 미래의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참여하십시오! 예수님은 구경꾼이 아니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현실의 삶에 깊이 들어가십시오. 가난한 이들의 봉사자, 자선과 봉사의 혁신적 주인공이 되십시오.”(권고 174항)

 

박민재(프란치스코·21)

끝으로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그리스도는 분명히 살아 계신다. 개인적인 신앙체험을 나누자면, 수술을 한 적이 있었는데 두려움이 밀려와 진심으로 기도했다. 진심을 다해 하느님께 기도해 보니, 믿음이 부족하거나 의심이 많은 것과는 상관없이 예수님은 우리 곁에 늘 계시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나에게 젊음은 분명 ‘은총이고 축복의 시간’(권고 134항)이다. [가톨릭신문, 2019년 12월 1일, 박민규 기자]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7) 제6장 뿌리 있는 젊은이들


산 위에 뿌리 내린 선배들의 삶에서 가장 ‘나다움’을 찾다

 

 

교황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이하 권고)는 제6장에서 ‘뿌리 있는 젊은이들’을 주제로 세대 간의 조화를 강조한다. 오늘날 가족 형태는 3~4인 가구부터 아이를 낳지 않고 부부끼리만 사는 딩크족(DINK, Double Income No Kids)이 주를 이룬다. 또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사는 1인 가구도 증가하고 있어 세대 간 조화를 이뤄내는 가족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렇듯 세대 간 조화를 이루는 가족 형태가 점점 줄어드는 세태 속에 마을 전체가 가족 공동체의 이름으로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충북 단양군 소백산에 위치한 ‘산위의 마을’(대표 박기호 신부)이다. 산위의 마을은 ‘지상에서 천국처럼’을 모토로 노동과 기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따라 살고자 하는 신앙공동체다. 그 중심에 청년 장길산(요한 사도·28)씨가 있다. 신앙 안에서 어른들과 아이들을 아우르며 살아가는 장씨를 만나기 위해 주님 성탄 대축일을 앞둔 12월 23일 산위의 마을을 찾았다.

 

12월 23일 ‘산위의 마을’에서 만난 장길산씨. 마을에서의 생활이 자유롭고 행복하다고 말하며 미소 짓고 있다.

 

 

획일화 탈피한 나만의 뿌리

 

“농사짓고, 가축 돌보고, 아이들 가르치고, 전례에 참여하고…자유롭고 행복합니다.”

 

비탈진 산길을 헤치고 어렵게 도착한 산위의 마을에서 만난 장길산씨는 밝은 미소와 함께 이같이 말했다.

 

또래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평온함이 깃들어 있는 장씨는 “현대 사회는 돈을 모든 것의 중심에 두고 돌아가는 것 같다”며 “따라서 각자의 고유한 환경과 생각이 스며들기 어려운 세상이 됐다”고 지적했다. 반면 “하느님과 자연, 사람들과의 관계성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산위의 마을에서 지내다 보면 도시에서 체험할 수 없는 자유와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밝혔다.

 

장씨는 어머니가 산위의 마을 설립자 박기호 신부와의 인연으로 2002년 마을 초창기 준비 모임부터 함께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준비를 했지만, 중학교를 기숙형 대안학교로 진학하게 돼 졸업 후 2006년 16살부터 산위의 마을에서 살았다.

 

장씨는 “처음 입촌했을 당시 오전은 개인공부, 오후는 어른들을 도와 농사일을 했다”면서 “학생 신분이었지만 한 사람의 몫을 살고 있다는 만족감이 들었고, 공동체 안에서 격려와 지지를 받으며 성장하고 있음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이어 “일상 안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며, 삶의 방향성을 정립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19살이 되던 무렵 장씨와 함께 살던 어머니와 동생은 교육 등의 이유로 마을을 떠나기로 결정했고, 장씨에게는 선택권을 줬다. 장씨는 “어머니는 서운해 하셨지만, 마을에 남는 것을 택했다”며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순간들이 더 소중하다 생각했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고 결정 사유를 밝혔다. 그렇게 마을에 남은 장씨는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검정고시와 수능을 보고 대학에 진학했다.

 

“오늘날 우리는 젊은이들이 ‘획일화’되는 경향을 봅니다. 자신의 출신과 배경만의 고유한 특성이 모호해지고 젊은이들을 일종의 조작 가능한 신상품처럼 획일화시켜 버립니다. 이러한 것은 문화적 파괴를 가져옵니다. 여러분의 뿌리를 보살피십시오. 그 뿌리에서 여러분이 성장하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힘이 나오기 때문입니다.”(권고 186항)

 

이같은 교황 권고에서 알 수 있듯이, 마을에 남기로 한 장씨의 결정은 획일화된 현대사회에 울리는 경종과 같았다.

 

세대를 아우르며 살아가는 ‘산위의 마을’에서는 자리에 함께하는 모든 공동체 식구들이 식사 전 손을 잡고 감사의 기도를 바친다.

 

 

모든 세대가 어울려 사는 삶

 

산위의 마을에서는 ‘산촌유학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산촌유학센터에 신청한 아이들은 6개월에서 1년간 산위의 마을 체험을 한다. 마을 아래 보발분교에서 기초교육을 받고, 방과 후 교육과 숙식은 마을에서 이뤄진다.

 

장씨는 대학졸업 후 지난해 1월 산촌유학 선생님으로 다시 산위의 마을에 들어갔다. 어린 시절 어른들을 통해 마을에서 경험한 것들을 아이들에게도 전해주고 싶다는 이유였다.

 

장씨는 “아이들과 함께 자그마한 농사일과 가축 돌보기, 악기연습 등을 한다”며 “다시 도시로 돌아갈 아이들에게 자연 안에서의 자유로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고, 아이들 서로 간의 관계를 깊이 맺어주고 싶다”고 소망했다.

 

기자가 방문한 12월 23일에는 성탄을 맞아 마을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선물할 묵주를 만들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묵주 알을 꿰는 아이들 옆에서 함께 묵주를 만드는 장씨를 바라보며 마을 어른들은 흐뭇한 미소를 보냈다.

 

김정하(베네딕토·56) 가족대표는 “고령화가 심각한 농촌의 상황과 마찬가지로 산위의 마을도 젊은이들이 귀하다”며 “청년 장길산의 존재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고 밝혔다. 이어 “젊은 친구들이 들어오면 공동체 전체가 젊어지면서 활력이 생기고, 또 그 친구들에게는 신앙 안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전해져 서로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요소가 매우 많다”고 강조했다. 마을 공동체 식구들은 김 대표와 같이 장씨를 향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입을 모았다.

 

- 성탄을 맞아 ‘산위의 마을’을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장길산씨는 마을 아이들, ‘산촌유학생’들과 함께 묵주를 만들고 있다.

 

 

한편 성탄을 맞아 마을 식구들은 자체적으로 성탄 특송을 준비했다. 이번 특송에서 지도를 맡은 장씨는 “피아노 반주는 했지만, 지도를 해 본 경험은 처음이라 걱정이 앞섰다”며 “하지만 공동체의 지지와 격려로 잘 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서로 간의 지지와 격려가 있기 때문에 공동체가 모여 무엇인가를 함께하는 자체로 기쁘고 모든 순간이 소중하다”고 밝혔다.

 

산위의 마을 설립자이자 대표인 박기호 신부(서울대교구)는 “오늘날 우리는 삶과 노동이 분리되고, 비혼과 출산 문제 등으로 고립되고 단절된 시대를 살고 있다”며 “이런 시대에 청년이 전통적 삶과 호흡을 같이 하면서 맥을 잇는다는 것은 시대의 치유를 위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어린 시절부터 길산이의 삶을 보면서, 또 함께 사는 공동체 식구로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감사함을 느낀다”고 밝혔다.

 

장씨는 “언제까지 이곳에서 살지 모르겠지만, 마을에 사는 동안 할 수 있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세대 간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공동체들이 집단적 기억을 가지고 있음을 내포합니다. 그리하여 각각의 세대는 이전 세대의 가르침을 받아 다음 세대에게 그 유산을 물려주게 됩니다. 이렇게 하여 새로운 사회를 굳건히 다지는 기틀을 놓습니다.”(권고 191항)

 

“노인과 젊은이가 함께 여정을 걸어간다면, 우리는 현재에 굳건히 뿌리내릴 수 있으며 거기에서 과거를 돌이켜 보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습니다. 함께라면 우리는 서로에게서 배우고 마음이 따뜻해지며 복음의 빛으로 감화되어 우리의 손에는 새로운 힘이 실릴 수 있습니다.”(권고 199항) [가톨릭신문, 2020년 1월 5일, 박민규 기자]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8) 제7장 청년사목 (상)


‘나는 사랑받는 존재’ 깨닫도록 가정과 교회 힘 모아야

 

 

- 지난해 1월에 열린 수원교구 어농성지 복사학교에서 초등부 복사단 어린이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수원교구 홍보국 제공.

 

 

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이하 권고)는 제7장에서 ‘청년사목’을 주제로 젊은이들과 동반하는 교회의 역할을 강조한다.

 

청소년·청년들에 대한 사목은 시대를 막론하고 늘 어려움을 호소해 왔다. 특히 오늘날은 사회, 문화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세대 간 단절이라는 큰 혼란을 겪으며, 교회 안팎에서 여러 대책을 내놓고 있다.

 

이에 이번호에서는 권고의 큰 틀 안에서 젊은이들에 대한 보편교회와 한국교회의 사목적 관심을 살피고 동반하는 교회의 필요성을 상기시킨다. 이어 청년사목(하)에서는 실제로 젊은이들과 동반하고 있는 교회의 구체적인 모습을 들여다 본다.

 

 

청소년사목

 

권고에서 ‘청년사목’이라고 번역되는 ‘Youth’라는 단어는 UN에 따르면 ‘아동기의 의존성에서 벗어나 성인기의 독립성으로 전환해 나가는 시기’라고 정의된다. 이 개념은 우리나라에서는 청소년에 속하기 때문에 청소년사목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 ‘청소년’이란 용어는 20세기 근대화 과정에서 세대 개념이 세분화되는 가운데 성인과 구분되는 연령대를 지칭하기 위해 등장했다. 한때 중고등학생만을 의미하는 것처럼 여겼지만 오늘날은 미성년 시기 대부분의 연령대를 포함한다. 즉 어느 정도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아동기 후반 연령부터 온전한 성인으로 독립하기 이전의 청년기까지를 포괄한다. 오늘날에는 심리적, 경제적 독립이 늦춰지고 있어 30대까지도 넓은 의미에서 청소년기로 포함시킨다. 따라서 청소년사목은 성인기로 진입하기 이전의, 넓게는 30대까지를 대상으로 하는 모든 사목적 노력을 의미한다.

 

- 산교구 김해 율하본당 주일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2019년 5월 25일 가족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보편교회의 청소년사목

 

주교회의는 한국청소년사목지침서 제1부 「복음화 사명과 청소년사목」에서 청소년사목에 대해 “청소년이 청소년과 세상 복음화의 주역이 되도록 교육적으로 동반하는 사도직 활동”이라고 정의한다. 이는 “공동체 전체가 젊은이들의 복음화에 동참해야 하며, 젊은이들이 사목 활동에서 더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권고 202항의 내용과 맥을 같이하면서 보편교회의 청소년사목 흐름과도 연관된다.

 

보편교회 역사 안에서 오늘날 청소년사목에 해당하는 개념은 6세기부터 실시된 교리교육에서 시작했다고 본다. 즉 교리지식 중심의 청소년사목이다. 19세기에 이르러 성 요한보스코(1815~1888)는 젊은 세대를 단지 교리지식을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사랑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면서 전인격적인 성장을 사목의 목적으로 삼았다. 20세기 초 벨기에의 조셉 카르딘 추기경(1882~1967)은 당시 노동자의 많은 수를 차지하던 청소년들이 그리스도교 신앙을 자기 삶 안에서 직접 실천하는 사도가 돼야 한다면서 ‘가톨릭노동청년회’(JOC)를 창설했다. 이로써 청소년의 주체성과 사도성이 강화됐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카르딘 추기경으로부터 비롯된 청소년사도직을 명시하면서, 성 요한보스코의 사목적 의도를 계승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역시 권고 「현대의 교리교육」을 통해 “모든 요소에 있어서 청소년이 주체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같은 흐름을 종합하면, 오늘날 보편교회의 청소년사목은 젊은 세대를 사랑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면서 그들 스스로 복음화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양육하는 교회의 모든 사목적 노력을 총칭한다.

 

 

한국교회의 청소년사목

 

보편교회의 흐름에 한국교회는 어떻게 발맞춰 왔을까.

 

지난해 서울대교구 청소년국이 마련한 청소년사목 심포지엄에서 햇살사목센터 소장 조재연 신부(서울 면목동본당 주임)는 한국교회 안에서 청소년사목 흐름을 시대별로 구분했다.

 

한국교회 초기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는 교리지식 학습 및 암송 위주의 문답식 교리교육과 가톨릭 학생 운동이 주를 이뤘다.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는 교구 중심의 주일학교 체제 구축과 신앙 교육의 체계화가 이뤄졌다. 이런 흐름 속에 서울대교구는 1996년을 ‘청소년사목의 해’로 발표하고 기존 교육국 산하 중·고등부 주일학교 교사연합회를 ‘본당 중·고등학생 사목부’로 확대 개편하면서 보다 넓은 시선에서 본당 청소년들을 아우를 수 있는 사목적 방안을 모색했다.

 

이어 2000년대 초 각 교구 시노드에서 ‘청소년사목’을 주요 논제로 다루면서 한국교회 안에서 ‘청소년사목’이라는 용어와 개념이 공식적으로 널리 쓰이게 됐다. 이후 2000년대 중반을 전후해 각 교구는 ‘교육국’이라는 명칭을 ‘청소년국’ 혹은 ‘청소년사목국’ 등으로 변경하고, 보다 통합적인 시선으로 교구 청소년사목을 총괄했다. 2006년에는 주교회의가 ‘청소년사목위원회’를 출범시켜 각 교구 청소년국 등과의 연대와 협력을 강화하고 청소년사목의 활성화를 도모했다.

 

- 2016년 7월 햇살부부모임 가족캠프 중 참가자들이 공동체 미사에 참례하고 있다. 햇살사목센터 제공.

 

 

함께하는 교회

 

이처럼 한국교회는 시대 흐름에 맞춰 청소년사목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오늘날 청소년사목을 바라볼 때 문제 혹은 위기라고 말한다.

 

주교회의가 내놓은 ‘한국 천주교회 통계’에 따르면, 1999년 주일학교 초등부와 중고등부에 출석하는 학생은 총 28만8191명이었지만 2017년에는 14만2987명으로 절반 정도로 줄었다.

 

조 신부는 “청소년사목의 위기는 한국교회와 사회 전체의 맥락 안에서 봐야 한다”며 “저성장, 고령화로 인한 경직된 분위기가 교회 안팎으로 확산됐고, 보편교회의 흐름에 비해 한국교회는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동안 매우 급격하고 압축적인 변화를 겪었다”고 지적했다.

 

햇살사목센터 허아란(로사리아) 책임연구원은 “저성장, 고령화로 인해 젊은이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일어나 계속해서 학생들 수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일어났고, 급격한 사회·문화 변화로 인해 세대 간 소통이 어렵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어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의 변화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가정을 비롯해 교회 전체적으로 세대를 구분하지 않는 통합적인 사목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세대살림연구소 소장 정준교(스테파노) 교수 역시 지난해 열린 청소년사목 심포지엄에서 “가정과 청소년을 중심에 두는 통합사목적 관점이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 부모들도 청소년사목 현장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동의했다.

 

앞서 2018년 살레시오회 한국관구와 인천교구가 공동으로 개최한 ‘청소년을 위한 영적동반’ 국제 학술 심포지엄에서 로사노 살라 신부(교황청립 살레시오대학)는 “오늘날 청소년들은 무엇보다 관계 맺는 것에 민감하다”며 “교회는 제도에서 벗어나 관계적이어야 하며 개방적이고 환대하는 공동체, 경청한다고 느낄 수 있는 가정 같은 곳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곧 오늘날 청소년사목은 ‘통합적 관점’에서 가정과 교회 전체의 동반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젊은이들에게는 동반이 필요합니다. 가족은 그러한 동반의 첫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까닭에, 청년사목과 가정사목은 성소 여정의 지속적이고 적절한 동반을 목적으로 서로 협력하여 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권고 242항) [가톨릭신문, 2020년 2월 2일, 박민규 기자]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9) 제7장 청년사목 (하)


가정과 주일학교 통합사목 현장, 의정부교구 별내본당 방문기

 

 

- 2월 2일에 봉헌된 의정부교구 남양주 별내본당 어린이가족 졸업미사에서 가족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이하 권고) 제7장 청년사목(상)에서는 보편교회와 한국교회의 청소년사목 흐름을 살펴보고 현재 상황을 진단했다. 오늘날 청소년사목을 위기라고 진단하는 것은 교회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세대 간 단절이라는 시대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이를 위한 해결책으로 전문가들은 가정사목과 결합을 통한 통합적 사목을 제시했다. 권고 242항에서도 “가족은 젊은이들 동반의 첫 자리가 돼야 한다”며 “청년사목과 가정사목은 서로 협력해 통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청년사목(하)에서는 ‘어린이가족 사목협의회’라는 이름으로 가정과 주일학교의 통합적 사목에 앞장서고 있는 의정부교구 남양주 별내본당(주임 김성길 신부)을 찾았다.

 

 

어린이가족 사목협의회

 

“높은 곳을 향해 주를 찬양~”

 

여느 어린이 미사와 같이 아이들의 우렁찬 성가 소리가 들린다. 여기에 특별한 모습이 더해진다. 엄마가 지휘하고 아빠가 기타 치고 가족들이 함께 성가를 부른다. 별내본당 ‘어린이가족’ 미사에서다.

 

‘어린이가족’이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단순한 어린이 미사가 아니라 부모들이 함께하는 가정 미사 개념이다. 주일학교 교리교사의 역할도 부모들이 담당한다.

 

“이모~ 삼촌~” 아이들이 교리교사 역할을 하는 부모들을 부르는 명칭이다. 선생님이 아닌 이모, 삼촌이라고 부르며 대가족 같은 모습을 띤다.

 

별내본당 ‘어린이가족 사목협의회’(이하 어사회)의 목적도 여기에 있다. 교사회와 자모회, 어린이복사단과 복사자모회 등이 통합된 어사회는 기존 주일학교 교사 혹은 소수 전문가들이 책임지는 신앙교육 방식에서 부모 모두가 공평하게 책임을 나누는 방식으로 변화를 추구한다. 이른바 ‘품앗이’ 방식의 아동 신앙교육을 지향하고 있다. 기존 주일학교는 교사 한 명이 열 가지 책임을 혼자 졌다면, 어사회는 부모 열 명이 열 개의 짐을 하나씩 나눠지는 ‘십시일반’(十匙一飯)의 모습으로 마을공동체와 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 어사회는 회장단을 비롯해 행사기획팀, 어린이교육팀, 가정신앙생활지원팀, 전례팀, 성가팀, 어린이자부모팀, 영유아자부모팀으로 나눠 체계를 갖추고 있다. 또한 어사회 회장은 사적인 감정과 이익에 치우치지 못하게 어린이 자녀를 두지 않은 외부인사 교우를 영입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 2월 2일에 봉헌된 의정부교구 남양주 별내본당 어린이가족 졸업미사에서 가족들이 함께 기도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어사회의 형태를 중고등부 주일학교에도 적용해 ‘청소년가족 사목협의회’(이하 청사회)를 출범했다.

 

오랜 시간을 통해 굳어진 오늘날 주일학교의 형태에서 탈피해 새롭게 시도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별내본당은 2013년 별내신도시에 신설된 본당이다. 신도시에 설립된 본당 특성상 기존 신자들이 적고 대부분 새로 전입한 교우들이어서 기존 통념과 방식에서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었다. 아울러 본당 주임 김성길 신부는 ‘가정과 함께하는 어린이 신앙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여러 방안들을 검토했고, 부모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오늘날 어사회의 형태를 갖추게 됐다.

 

어사회 초창기부터 활동한 황종영(스콜라스티카) 어린이·청소년가족분과장은 “특히 아빠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큰 힘이 됐다”며 “자모회가 아닌 자부모회의 이름으로 많은 부분에서 아빠들이 든든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밝혔다. 청사회 김현정(엘리사벳) 회장은 “초창기에는 기존 주일학교의 모습과 자부모회의 역할분담 문제 등으로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지금은 함께하는 공동체의 모습으로 체계가 잡혔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청사회도 청소년기 특성상 여러 시행착오를 겪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사회와 같이 가족 공동체의 모습으로 정착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 2월 2일에 봉헌된 의정부교구 남양주 별내본당 어린이가족 졸업미사에서 성가대가 노래하고 있다. 엄마가 지휘하고 아빠가 기타 치고 가족이 함께 노래하고 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성장하는 신앙

 

어사회의 교육은 색종이 접기, 중국어 노래 비우기, 화분 심기 등 자부모들의 온전한 재능기부로 운영되고 있다. 즉 양성이 아닌 함께하는 것 자체에 중점을 두면서, 아이들과 부모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는 쌍방향 소통을 통해 자발적 참여를 유도한다.

 

별내본당 어사회 이채원(클라라·예비 중1)양은 “공부하고 교육 받는 시간이 아니라 이모, 삼촌들과 즐겁게 노는 시간 같다”며 “청사회에서도 이런 시간들이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이지훈(프란치스코·예비 중1)군 역시 “어사회를 통해 친구들은 물론 친구 부모님들에게도 친근함이 생겨서 좋았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는 가족 공동체의 형태 속에서 자연스럽게 신앙의 씨앗이 심어짐과 동시에 부모들의 신앙심도 함께 고취됐다.

 

별내본당 어사회를 분석한 가톨릭평신도영성연구소 박문수(프란치스코) 소장은 “자녀 덕분에 본당과 신앙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부모 자신의 인생관에도 변화가 일어났다”며 “신앙이 자신의 삶에서 주변적 가치였는데 점차 중요한 가치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자녀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가정에서도 공동체 의식이 더 커지고 있고, 가족이 함께하는 신앙 활동이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어사회 시행 초기에는 부모들이 주도하기 때문에 편부모 가정에 있는 아이들이 소외될 수 있다는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처지의 아이들에게 공동 양육의 마음으로 이모, 삼촌들이 더 관심을 가지면서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있었다.

 

김성길 신부는 “가족해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시대상황이 바뀌었다”며 “최초의 신앙 전수자이자 가장 밀접한 교육자는 부모이기 때문에 어사회와 같이 세대가 통합된 형태가 오늘날 청소년사목에 적절한 제도”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사목자는 영적인 협력자의 역할을 유지해야 하고, 가족을 중심으로 사목이 돌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면서 “이러한 장이 마련될 때 부모와 자녀가 주도적으로 활동하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위기를 맞은 오늘날 청소년사목의 대안으로 통합적 사목을 제시했고, 그 구체적인 모습을 별내본당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청사회 김 회장은 “하지만 지금의 형태는 아직 과정 중에 있다”며 “가장 큰 이상은 현재 어사회 소속 아이들이 청사회에서 활동하고, 졸업 후에는 청년으로서 어사회와 청사회 학생들의 멘토가 돼 주는 것이다”고 밝혔다.

 

“한 가정은 모두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한 사람도 무관심하거나 따로 떨어져 있을 수 없습니다. 저마다 집을 짓는 데에 필요한 한 장 한 장의 벽돌이기 때문입니다.”(권고 217항) [가톨릭신문, 2020년 2월 9일, 박민규 기자]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10) 제8장 성소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청년부 봉사자들의 생각은?

 

 

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이하 권고)는 제8장에서 ‘성소’를 주제로 젊은이들을 부르심의 길로 초대한다. 권고는 성소를 주님과 나누는 우정에 기초해 다른 이들을 향한 봉사와 희생의 측면에서 강조한다. 특히 다른 이들을 위해 동반하고 봉사하는 근본적인 문제와 연관해 ‘가정’과 ‘노동’을 오늘날 젊은이들이 열망하고 고민하는 두 가지 큰 주제로 제시한다. 오늘날 교회 내 젊은이들은 가정과 노동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또한 축성생활로 부르심을 받은 수도자는 젊은이들에게 어떤 초대의 말을 건넬까.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청년부(담당 이원석 신부)에서 봉사하고 있는 청년들은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를 교재로 자발적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청년 사도직에 관심이 많았던 김정현 수사(예수회)도 모임에 참석해 성소의 여정을 함께하고 있다. 권고 메시지에 대한 이들의 진솔한 생각을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들어 본다.

 

 

Q. 권고의 ‘性과 혼인’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

 

권고는 가정을 꾸리는 것에 대한 특별한 가치를 언급한다. 나눔의 가장 아름답고 기쁜 경험은 가정을 통해 실현할 수 있다고 밝히며, 자녀 출산 역시 자연스러운 사랑의 결실이라고 말한다. 반면, 혼인이나 봉헌생활에 부르심을 받지 않은 이들에 대해서도 개인의 성장 여정을 통해 성소의 특별한 증인이 될 수 있다고 밝힌다.(259~267항) 권고가 말하는 성(性)과 혼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A. “‘性은 주님 선물’ 우리 안에 깊이 인식됐으면”

 

권고는 “성은 하느님의 선물, 곧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261항)이라고 한다. 하지만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나 신앙 활동을 하며 느끼기에 교회 안에서 성에 관한 대화는 경직돼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성은 거룩하고 아름다운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교회의 본래 가르침이 왜곡돼 오히려 성의 억압된 측면을 다루는 것 같이 느껴진다. 많은 대화를 통해 성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라는 교회의 가르침이 우리 가슴 깊이 자리 잡았으면 한다.

 

아울러 인간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가정을 꾸리는 행복 역시 서로 간의 충분한 노력과 하느님 은총에 기댈 때 좋은 결실을 맺으리라 생각한다. 김예슬(아기 아가타·31)

 

 

A. “혼인이든 독신이든… 하느님 뜻에 맡겨요”

 

성소 여정에 있어 혼인과 독신,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누구보다 나의 행복을 바라고 계신 하느님의 이끄심을 따르려 한다.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매순간 기도하다 보면 내게 맞는 행복의 길로 이끌어 주시리라 생각한다. 김세경(펠리치타스·26)

 

 

A. “세상과 타인에게 위로와 지지 되길 바라”

 

혼인은 분명 축복의 여정이다. 하지만 ‘비혼’을 반(反)교회적이라고 치부하지 않았으면 한다. 상당수의 젊은이들은 가부장 중심적 문화 등 아직 해소되지 않은 사회·문화적 관습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결과로 비혼을 선택한다.

 

“우리의 지상 삶은 하나의 봉헌이 될 때 충만해 진다”(254항)와 “삶 속에서 ‘다른 이들을 위하여 있어 주는 것’”(258항)이라는 내용이 다가온다. 개인적으로 신학학위 취득을 준비하고 있는데, 공부하며 얻은 약간의 지식이 어떤 식으로든 세상과 타인에게 위로와 지지가 되기를 바란다. 이것이 다른 이들을 위한 나의 봉헌이다. 정승아(테레지아·36)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를 교재로 자발적 모임을 진행하고 있는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청년부 봉사 청년들과 수도자.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청년부 양서희 간사 제공.

 

 

Q. 노동 안에서 어떤 가치 추구하나

 

권고에서 ‘노동’은 자기 정체성과 자기의식을 확립하는 데 영향을 미치며, 관계를 쌓아가는 으뜸자리라고 말한다. 또한 노동을 통해 꿈과 전망의 의미를 찾을 수 있고 성취를 추구할 수 있다고 한다. 동시에 심각한 사회문제와 결부된 청년 실업에 대해서 우려를 표명한다.(268~271항) 현재 노동을 하고 있는 자신의 상황은 어떠하며, 어떤 가치를 추구하면서 살아가는가.

 

 

A. “일하면서 ‘가진 것 나누는 사람’으로 변화”

 

한 직장에서 7년째 일하고 있다. 입사 당시 나에게 일은 적성과 전공을 살린 직업에 불과했다. 하지만 진급을 할 때마다 받는 교육과 꾸준한 개인 신앙 활동을 통해 현재 나에게 일은 ‘내가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게끔 한다.

 

그리고 “노동은 우정과 다른 관계들을 쌓아 가는 으뜸자리”(268항)라는 말씀처럼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맺음에서 ‘인간적인 나’도 성장하는 것을 발견한다. 물론 관계 때문에 힘들기도 하지만 하느님께 의탁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정나(크리스티나·29)

 

 

A. “힘겨운 노동이지만 ‘모두가 행복한 삶’ 추구”

 

직업을 선택하는 과정에 있어 많은 청년들은 자아실현과 경제적 활동 사이에서 줄다리기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둘 다 만족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고단한 노동을 통해 생활을 이어간다. 나에게도 노동은 힘겨운 일이지만 주어진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면서 주변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아 보고자 한다.

 

한편 “취업 시장의 가혹한 현실은 자신의 열망과 능력과 선택을 뛰어넘기도 한다”(272항)는 말처럼 이제 막 경제 활동을 시작하는 청년들에게는 부족한 경험으로 인해 진입 장벽이 높고, 약자의 위치에서 받는 불합리한 처우가 있는 것을 발견한다. 사회 전체가 힘을 합쳐 고민해 봐야 할 문제라고 본다. 박영민(베드로·36)

 

 

Q. 수도자로서 성소 여정을 소개한다면?

 

권고는 ‘특별한 축성의 성소’를 언급하며, 모든 젊은이들에게 이 길을 따를 의향이 있는지 자문해 보라고 권유할 용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274항) 수도자의 입장에서 함께 성소 여정을 걷자고 초대의 말을 건넨다면.

 

 

A. “하느님 사랑 안에 초대합니다”

 

수도여정이 늘 쉽지만은 않지만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셨고, 지금도 이끌어 주시고 있다는 믿음이 있다. 이러한 믿음에 기초하면 하느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 깨닫게 된다. 그 사랑의 힘으로 기도하고 이웃을 만나며 공동체 형제들과 친교를 나누면서 살아간다. 이렇듯 내 삶을 온전히 예수님께 봉헌함으로써 스스로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이 된다.

 

하느님께서는 때론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길로 우리를 부르신다. 하느님과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 안에 머무를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 사랑이 우리를 이끌어 줄 것이며 용기를 가지고 그 분의 부르심에 귀 기울이길 바란다. 김정현 수사

 

 

Q. 모임에서 주님과 우정 어떻게 맺어가나

 

이 모든 성소의 길은 결국 주님과 나누는 우정의 부르심이라고 말한다.(248항) 모임 안에서 주님과의 우정을 어떻게 맺어가고 있는가.

 

 

A. “그리스도의 뜻 우리 삶에서 적용 고민”

 

영적 독서모임 형태로 모임을 시작했다. 단지 권고를 읽고 좋은 감정으로만 끝내는 것이 아니라, 권고에서 전하고 있는 메시지가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 필요한 경우 신학적 지식과 함께 묵상과 관상기도, 서로를 위한 축복의 기도 등으로 성령의 지혜도 함께 청하고 있다.

 

이 모임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하고, 그리스도는 저 멀리 하늘에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 현존하심을 느끼도록 이끌고 있다. 나아가 “우리 삶의 모든 것이 주님께 응답하는 길이 될 수 있다”(248항)는 말씀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드러내길 희망한다. 양서희(가타리나·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청년부 연구 간사) [가톨릭신문, 2020년 3월 22일, 박민규 기자]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11) 제9장 식별 - 신소희 수녀가 설명하는 ‘식별’


현실에서 하느님 일과 세속의 일 구분해야… 식별 기준은 ‘그리스도’

 

 

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이하 권고)는 마지막 제9장에서 선택의 순간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식별’을 주제로 올바른 신앙의 길을 제시한다.

 

권고는 첨단 기술의 발달로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젊은이들의 현실을 조명하고, 그 안에서 참된 선택의 기준이 무엇인지 밝힌다. 동시에 젊은이들과 동반하는 어른들이 지녀야 할 자세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20년 가까이 ‘영적 식별’을 연구하고 가르쳐 온 신소희 수녀(성심수녀회)와 함께 권고가 말하는 ‘식별’을 되짚어 본다.

 

2012년 성심수녀회 수녀들이 젊은이들과 함께 침묵 중에 기도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는 성소를 발견하려는 노력을 식별의 한 형태로 소개하며, 침묵 속에 기도하기를 강조한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식별, 하느님의 일과 세속의 일

 

“얼마 전, 한국사회를 뒤흔든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주동자는 10대까지 포함된 젊은 청년들입니다. 높은 수준의 지식과 기술을 갖고 있지만, 가치 기준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보다 약한 인간을 쾌락의 도구로밖에 보지 않았습니다. 극단적인 사건이지만, 통신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오늘날 눈여겨봐야 할 내용입니다.”

 

신 수녀는 “우리는 둘 또는 셋의 가상현실 속에서 동시에 교류하고 있습니다. 식별의 지혜가 없다면, 우리는 모두 지나가는 유행에 좌우되는 꼭두각시가 되기 쉽습니다”(권고 279항)라는 권고 내용을 해석하며 이 같은 우려를 표했다.

 

권고는 수많은 정보가 오가는 오늘날 현실의 상황 안에서 하느님의 일과 세속의 일을 구분하는 식별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신 수녀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식별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라며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을 보면 그 기준이 명확히 드러난다”고 밝혔다. 즉 하느님의 일은 예수님이 행한 것처럼 생명을 살리고, 용서하고, 화해시키는 것이며 대척점에 있는 세속적인 일은 실용주의, 효용주의, 과도한 경쟁, 가짜뉴스 생산과 유포 등 ‘자기중심적 태도와 선택’이다.

 

권고는 하느님의 일과 세속의 일을 구분하기 위한 중요한 도구로 ‘양심’을 말한다.(권고 281항) 신 수녀는 양심을 ‘자기를 비추는 거울’에 비유하며 “자기중심적이 되다 보면 어느 순간 ‘이게 뭐지?’라는 질문과 함께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면서 “자기 모습을 발견하는 찰나의 순간을 주의 깊게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양심성찰은 죄에 대한 반성이나 윤리적 기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행복의 길로 나아가고자 하는 사랑의 이끌림이라고 밝혔다.

 

“양심의 형성은 온 생애에 걸쳐 이뤄지는 여정입니다. 이 여정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선택에 바탕이 된 기준들과 그분 행동에 담긴 의향들을 본받으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기르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권고 281항)

 

 

성소 식별, 침묵과 기도 안에서

 

권고는 성소를 발견하려는 노력을 식별의 한 형태라고 소개하며 무엇보다 고독과 침묵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성소 식별의 기로에서 고독과 침묵이 왜 중요할까.

 

신 수녀는 “수녀원 입회 전 교리교사를 하면서 먹고 마시는 데 참 많은 시간 보낸 것 같다”며 “그런 와중에 예수님과 함께 고요히 혼자 있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고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어른들의 조언에 따라 침묵 가운데 성경을 읽기 시작했는데, 점점 예수님이 구체적으로 살아있는 분으로 느껴지면서 그 분을 따르고 싶은 열망이 커졌고 어느새 그분과의 관계성에 투신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어떠한 식별이든 내면에 귀 기울이고 싶은 열망이 생긴다면, 이는 성령께서 내면으로 인도하는 광야에서의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권고 역시 침묵은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삶으로 이끄는 부르심이라고 말한다.(284항)

 

“침묵하고 기도하다 보면 전망이 달라집니다. 내가 나를 보는 시선, 동료에 대한 이해, 세계관 등이 예수님으로부터 영향을 받게 되고 점점 닮아갑니다. 예수님과 동질화 되는 것이죠. 피상적인 취향이나 감정들 너머에 있는 마음의 깊은 이끌림과 궁극적 지향에 기울이게 되며, 주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동반자들에게… 경청하라!

 

권고는 침묵과 기도 가운데 새로운 관계성으로 나아갈 것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동반하는 사람들의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젊은이들의 성소 식별에 동반할 수 있는 이들로는 사제, 수도자, 평신도, 전문가들이 있습니다. 다른 이들이 인생의 행로를 식별하도록 도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청입니다.”(권고 291항)

 

신 수녀는 개인 면담을 진행할 때 내담자가 내적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거룩한 땅’에 비유했다. “동반자는 동반을 청하는 이가 선택을 위해 고심하며 기도하는 과정을 나누는 시간과 공간, 즉 거룩한 땅에 함께 서 있게 됩니다. 그 거룩한 땅에서 일어나는 일에 온전히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동반자들의 가장 중요한 역할입니다.”

 

영적 지도자 훈련 과정에서는 경청을 방해하는 자신의 습성을 알아차리도록 지속적으로 훈련한다. 신 수녀는 “동반하다 보면 본능적으로 판단하면서 가르치려고 하거나 집중을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경청해 주려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며 “가장 기본적인 일이지만 참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경청은 하느님의 은총과 세속의 유혹을 식별할 수 있도록 돕는다.(권고 293항) 아울러 참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어디인지도 식별하게 된다.(권고 294항)

 

신 수녀는 “동반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많은 자질이 필요하다”며 “교회 전통 안에 축적돼 있는 영적 식별에 관한 지식을 이론적으로 습득할 때, 성령께서 하시는 일과 세속의 유혹을 구분하며 대화할 수 있게 된다”고 밝혔다. 동시에 인간은 매우 복잡한 역사와 과정 안에 던져져 있어 동반자 스스로 자기이해가 깊은 사람이 돼야만 다른 사람들의 내면을 깊이 있게 들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나이와 상관없이 치열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인생을 알면 존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사람과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사실은 더욱 놀랍습니다. 이러한 사람들과 여정을 함께하는 동반자들은 겸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한편 권고는 이 모든 식별의 중심을 예수 그리스도와의 우정에 있음을 밝힌다.

 

“모든 율법과 모든 의무를 떠나 가장 먼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선택하라고 제시하시는 것은 바로 당신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마치 친구들이 순수한 우정으로 서로를 따라가고 찾고 함께 지내는 것과 같습니다. 인생에서 맛보는 실패조차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이 우정을 체험하는 소중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권고 290항) [가톨릭신문, 2020년 5월 10일, 박민규 기자]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12 · 끝) 기획을 마무리하며


젊은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교회 실현되길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희망이시고 이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젊음이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이하 권고) 제1항은 이렇게 시작한다.

 

총 9장, 299항으로 구성된 권고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도를 통한 희망과 젊음을 이야기한다. 교회 내 젊은이들과 어른들은 이러한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실현시켜 왔을까. 본지는 지난해 8월부터 대학생부터 주교까지 각 장의 주제와 관련된 총 9팀의 젊은이들과 어른들을 만나 권고 내용을 현실적으로 드러내고 조명했다. 교황의 메시지와 함께 이들의 응답을 종합해 본다.

 

 

젊음, 은총과 축복의 시간

 

교황은 “젊다는 것은 하나의 은총이고 축복”(134항)이라며 젊음의 시간을 격려하고 응원한다.

 

교황의 메시지에 젊은이들은 어떻게 응답했을까.

 

“그리스도는 분명히 살아 계십니다. 진심을 다해 하느님께 기도해 보니, 믿음이 부족하거나 의심이 많은 것과 상관없이 예수님은 늘 우리 곁에 계시다는 것을 느낍니다.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젊음은 은총이고 축복의 시간입니다.”

 

제5장 ‘젊음의 길’에서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담당 최봉용·김도연 신부) 산하 한국항공대학교 ‘아오스딩’ 소속 박민재(프란치스코)씨가 말한 내용이다.

 

서울대교구 청년연합회 정승아(테레지아) 부회장은 제1장 ‘하느님 말씀은 젊은이들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는가?’에서 “젊은 마음은 하느님 부르심에 긍정할 수 있는 것”이라며 “거부하는 것도 긍정의 한 측면”이라고 밝혔다. 그 이유로 “하느님을 모르는 척하는 것은 변화의 가능성이 없지만 부정, 거부한다는 것은 거기에서 이유를 찾고 다시 긍정할 수 있는 변화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렇듯 교회 내 젊은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현재 살아가고 있는 시간에 대해 나름대로 답을 찾아가고 있다.

 

한편 젊음의 시각에서 교회에 대한 아쉬운 점도 드러냈다.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청년부 소속 김예슬(아기 아가타)씨는 제8장 ‘성소’에서 성(性)에 대해 경직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교회의 모습을 지적하며 “성은 하느님의 선물, 곧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라고 하지만 교회 안에서 성에 대한 대화는 경직돼 있다고 생각한다. 성은 거룩하고 아름다운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교회의 본래 가르침이 왜곡돼 오히려 성의 억압된 측면을 다루는 것 같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많은 대화를 통해 교회의 가르침이 우리 가슴 깊이 자리 잡았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오랜 역사를 이어온 교회의 가르침과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이들 사이에는 간극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교황은 이러한 현상을 우려하며 제6장 ‘뿌리 있는 젊은이들’에서 세대 간 조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산위의 마을’(대표 박기호 신부)에서 세대를 아우르며 살아가는 장길산(요한 사도)씨는 “일상 안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며, 삶의 방향성을 정립할 수 있었다. 서로 간의 지지와 격려가 있기 때문에 공동체가 모여 무엇인가를 함께하는 자체로 기쁘고 모든 순간이 소중하다”며 마을 어른들,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가치를 설명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1월 23일 파나마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에 참가해 젊은이들과 인사하고 있다. CNS 자료사진.

 

 

젊음의 길을 동반하는 어른들

 

교황은 서로 간 조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젊은이들뿐 아니라 “사목자들과 신자들을 아우르는 하느님 백성 모두”(3항)에게 권고 메시지를 전한다.

 

교황의 권고에 교회 내 어른들은 어떻게 응답했을까.

 

자오나학교 교장 정수경 수녀(원죄 없으신 마리아 교육 선교 수녀회)는 제3장 ‘여러분은 하느님의 지금입니다’에서 10대 미혼모들이 자라 온 환경을 안타까워하며 일상을 함께 살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같이 일어나 밥 먹고 놀고 수업하고, 때때로 잔소리도 합니다. 옆에서 함께 있어 주고 울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인식할 때 점점 마음이 열리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이 아이들도 누군가를 위해 울어 주는 사람이 돼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살레시오 나눔의 집 담당 김승욱 수사(살레시오회)는 제4장 ‘모든 젊은이를 위한 위대한 메시지’에서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리스도께서 분명 살아 계시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기 위해 감시자가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놀고, 공부하고, 운동하는 친구로서 옆에 있어 주고 있다”며 “아이들이 성실하게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그리스도를 발견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교회 내 어른들은 젊은이들의 상처에 공감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무엇보다 겸손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신소희 수녀(성심수녀회)는 제9장 ‘식별’에서 “나이와 상관없이 치열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인생을 알면 존중할 수밖에 없다. 그 사람과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사실은 더욱 놀랍다. 이러한 사람들과 여정을 함께하는 동반자들은 겸손해야 한다. 그리고 기도해야 한다”며 동반의 길을 제시했다.

 

주교회의 청소년사목위원회 위원장 정순택 주교는 제2장 ‘영원한 젊음이신 예수님’에서 “어려움에 처한 젊은이들이 교회에서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쇄신하고 시대 징표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노력하는 것이 교회가 젊음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기 위해 사목자들이 먼저 권위를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젊은이들이 주체적으로 표현하고 문제를 스스로 풀어나갈 수 있도록 경청하고 동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본당 차원에서도 젊은이들을 위한 사목에 집중하는 모습도 드러났다. 제7장 ‘청년사목’에서 의정부교구 남양주 별내본당(주임 이재정 신부)은 위기에 직면한 청소년사목을 극복하고자 ‘어린이가족 사목협의회’(이하 어사회)라는 이름으로 가정과 주일학교의 통합적 사목 형태로 접근했다. 어사회를 창설할 당시 별내본당 주임이었던 김성길 신부는 “가족해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시대상황이 바뀌었다”며 “최초의 신앙 전수자이자 가장 밀접한 교육자는 부모이기 때문에 어사회와 같이 세대가 통합된 형태가 오늘날 청소년사목에 적절한 제도”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러한 장이 마련될 때 부모와 자녀가 주도적으로 활동하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기획을 통해 만난 교회 내 청년들과 사목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한 고민과 함께 그리스도를 드러냈다. 교황이 전하고자 하는 모든 메시지도 그리스도를 향하며 함께 동반할 것을 약속한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저의 기쁨과 희망은 여러분이 여러분 앞에 펼쳐진 길을 계속 달려가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모습만 바라보며 계속 달려가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계속 앞으로 달려 나갈 수 있는 힘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여러분의 추진력, 여러분의 통찰력, 여러분의 신앙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직 도달하지 못한 곳에 여러분이 먼저 도착하면 거기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우리를 기다려 주십시오.”(299항) [가톨릭신문, 2020년 6월 28일, 박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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