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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성화로 만난 하느님1: 복되다! 찾고 기뻐하는 사람들 - 포르티나리 제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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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12-31 ㅣ No.599

[성화로 만난 하느님] (1) 복되다! 찾고 기뻐하는 사람들 - 포르티나리 제대화


닫았을 땐 수태고지, 펼쳤을 땐 예수 탄생이 한눈에

 

 

교회의 역사와 예술의 역사는 특별하다. 역사적으로 어느 시대에나 인간은 신에 대한 찬양과 그 믿음을 예술로 표현해왔다. 특히 그리스도교 미술사는 그 자체로 서양미술사가 될 정도로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성화로 만나는 하느님’은 서양미술사 중 교회적으로 가치 있다고 평가받는 성화(聖畫)를 선정해 그 안에 담긴 하느님 말씀을 격주로 전한다.

 

 

- 플랑드르의 거장 후고 반 데르 후스가 그린 ‘포르티나리 제대화’의 양쪽 날개 패널을 펼친 모습.1476년경, 목판에 유채, 253x445㎝, 우피치 미술관, 이탈리아 피렌체.

 

 

예수 탄생을 주제로 한 성화(聖畵)는 마태오 복음이 전하는 ‘동방박사의 경배’와 루카 복음이 전하는 ‘목자들의 경배’를 기초로 한다. 마태오 복음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동방 점성술사들이 메시아 도래를 알리는 별을 따라 베들레헴으로 찾아와 예수께 경배하며 선물을 바쳤다. 반면에 루카 복음은 예수가 마구간에서 태어났고, 예수 탄생을 알리는 천사의 부름을 받은 목자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와 경배했다고 전한다.

 

플랑드르의 거장 후고 반 데르 후스(Hugo van der Goes, 1435~1482)의 작품인 ‘포르티나리 제대화’(목자들의 경배)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경배하는 목자들을 주제로 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빛과 구원이신 아기 예수의 탄생에 경배하는 사람은 비단 목자들만이 아니었다. 이 작품의 주문자인 토마소 포르티나리(Tomaso Portinari)의 가족이 주님의 일에 동참하듯 양쪽 날개 패널에 등장한다. 이탈리아 사람인 토마소 포르티나리는 15세기 이탈리아의 부호인 메디치 가문이 브뤼헤(Bruges)에 설립한 은행의 지점장이었다. 그는 플랑드르 화가들의 사실적이고 상징적인 회화 특징에 커다란 관심과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포르티나리는 그림이 완성되자마자 피렌체에 있는 산타 마리아 누오바(Santa Maria Nuova)의 병원에 있는 성 에지디오(Sant‘Egidio) 제대로 그림을 옮겼다. 후스의 풍부한 색채와 치밀한 세부 묘사는 인물의 이상적인 유형을 추구하던 당시 이탈리아 피렌체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 ‘포르티나리 제대화’ 양쪽 패널을 닫아둔 모습.

 

 

성당에 놓여있던 세 폭 제대화는 평소엔 양쪽 날개 패널을 닫아놓았다가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열게 된다. 작품 구성이 성경을 기초로 전개되었기에 성경을 읽어 나가듯 바라보면 된다. 닫힌 두 패널에서 수태고지를 바라보고 있다가 이것을 펼쳤을 때는 아기 예수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장면을 바라보는 관람자는 주변의 목자들, 주문자 가족들, 그리고 그들의 수호성인들과 함께 아기 예수의 탄생을 경배할 수 있게 된다.

 

 

기쁜 소식을 듣고 달려온 복된 사람들

 

중앙에 성모 마리아는 맨바닥에 온몸에서 빛을 발하며 알몸으로 누워 있는 아기 예수를 바라보고 있다. 폐허로 묘사된 마구간 앞에는 다소 당혹스러울 정도로 많은 인물이 모여 있다.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주변으로 단순한 차림새의 천사들, 화려한 차림새의 천사들, 허름한 차림새의 목자들이 보인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와 조금 떨어진 한쪽에 요셉이 두 손을 합장하고 있다. 요셉의 앞에 놓인 벗겨진 신발은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 선 모세의 장면을 연상케 한다. 하느님께서는 모세가 서 있는 곳이 ‘거룩한 땅’이니 그에게 “신발을 벗어라”라고 말씀하신다. 신발을 벗는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 앞에 선다는 의미가 있다. 또한 맨발로 걷는다는 것은 위험과 불편을 감수하고 하느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간다는 고행의 뜻도 내포되어 있다. 요셉이 벗어 놓은 신발은 구세주 예수의 탄생 공간이 거룩한 곳이며, 요셉의 마음 의지를 드러낸 표식이다. 많은 천사도 아기 예수의 탄생 소식에 자신들의 벅찬 감정을 다양한 동작을 취하며 예수께 경배하고 있다. 하늘의 천사 군단은 누추한 바닥에 누운 아기 예수가 평화를 가져오실 분임을 미리 알고,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라 찬양하였다. 그러나 그림에서 누구보다 구원자 예수의 탄생 소식을 두려움과 놀라움으로 듣고 달려온 사람들이 있다. 바로 그림 중앙 패널 속 오른쪽 위의 목자들이다. 

 

다른 인물들의 잘 차려입은 모습과 근엄한 표정, 경직된 자세와는 달리 이들은 허름한 옷차림에 호기심과 경이로운 표정과 몸짓이 살아있는 듯 활기차다. 목자들의 뒤쪽 멀리 언덕 저편에는 천사가 양떼를 지키는 목자들에게 아기 예수의 탄생을 예고하는 장면이 그려 있듯이, 이미 천사는 이들 목자에게 예수의 탄생을 알렸다. 이들은 서둘러 베들레헴으로 달려와 가장 누추한 곳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고 있다. 이렇게 주님의 탄생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것이며 낮은 자로 오심을 볼 수 있다. 초라한 마구간 앞에서 목자들은 지극히 높은 하늘의 영광과 가장 낮은 땅의 가난함이 만나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차가운 바닥의 한가운데에 아기 예수가 스스로 빛을 발하는 모습에서 하늘의 모든 찬란함이 드러난다.

 

 

구원을 위한 사랑과 희생의 상징

 

화가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한 선물처럼 아름다운 꽃들을 그림 앞에 놓았다. 그림 앞에 놓인 도자기 화병은 스페인에서 주로 약병으로 사용되던 것이다. 당시 스페인의 지배 아래에 있었던 플랑드르 지방이었기에 이런 유형의 도자기는 흔했을 것이다. 도자기에는 예수의 피를 상기시키는 포도 문양이 그려져 있다. 꽃병 뒤에 놓인 밀 짚단은 히브리어로 빵집을 의미하는 베들레헴을 가리키며, 성체인 밀떡을 상징한다. 오른쪽에 사제복장을 한 천사의 모습을 통해 밀 짚단(빵)과 포도 문양(포도주)은 성찬식을 뜻함을 알 수 있다. 도자기에 꽂힌 오렌지 빛 참나리 꽃은 예수께서 흘린 피를 상징하고, 흰색과 남색의 아이리스는 마리아의 순결과 슬픔을 상징한다. 화병 옆 투명한 유리병에 꽂힌 매발톱 꽃과 엉겅퀴 꽃 그리고 카네이션은 각기 마리아와 예수의 슬픔과 수난을 상기시키며, 세 개의 카네이션은 성 삼위일체의 신성한 사랑도 상징한다. 아름다운 꽃들과 섬세하게 묘사된 밀짚과 화병은 아기 예수의 탄생을 환호하며 모인 사람들 속에 기쁨을 배가시키는 요소이자, 한낱 갓난아기로 태어난 분이지만, 장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희생과 사랑으로 이곳에 오신 것을 설명하고 있다.

 

 

찾고 기뻐하면서 경배하는 사람들

 

아기 예수 탄생의 기쁨은 주문자와 그의 가족들 경배로 이어진다. 왼쪽 패널에는 주문자 토마스 포르티나리와 그의 두 아들이 그들의 수호성인과 함께 있다. 성 토마스는 순교의 상징인 긴 창을 손에 쥐고 있고, 은수자의 아버지라 불리는 성 안토니오는 T자형 지팡이와 종을 손에 들고 있다. 성인은 악마의 유혹을 기도로 물리치며, 십자성호야말로 성인의 유일한 무기라 믿었다. 반면 오른쪽 패널에는 토마스의 아내인 마리아 막달레나 바론첼리와 딸 마르가리타가 그들의 수호성녀와 함께 있다.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는 오른손에 향유병을 들고 있고, 성녀 마르가리타는 책과 십자가를 손에 들고, 발로는 사악한 사탄을 밟고 있다. 성녀는 항상 품에 지니고 다니던 십자가로 용으로 변한 사탄을 물리쳤다고 한다.

 

성녀들의 뒤쪽 너머로는 동방박사들이 메시아의 탄생을 알리는 별을 따라 동방에서 예루살렘으로 긴 여정을 걸어오고 있다. 이들은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다.”(마태 2,2) 우리도 목자들과 동방박사들처럼 세상의 구세주인 예수의 탄생을 맞아 아기 예수를 찾고 기뻐하면서 엎드려 경배할 여정의 길로 들어선다.

 

* 윤인복 교수(아기 예수의 데레사 · 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교수) - 이탈리아 로마 국립대학교 ‘라 사피엔자’ 인문과학대에서 서양미술사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서양미술사학 석사와 문학박사 학위(서양미술사학)를 취득했다. 현재 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교수와 그리스도교미술 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9년 1월 1일, 윤인복 교수]

 

* 그림 파일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것입니다.

원본 : https://www.wga.hu/art/g/goes/portinar/1portina.jpg

원본 : https://www.wga.hu/art/g/goes/portinar/4portina.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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