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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99: 20세기 (3) 독립 학문으로서의 영성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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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11-13 ㅣ No.1266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99) 20세기 ③ 독립 학문으로서의 영성신학


‘영성’이라는 새 옷 입은 그리스도인의 영성생활

 

 

- 과도한 수덕생활과 신비생활에서 발생한 이단으로 사람들은 ‘수덕’, ‘신비’라는 단어에 경계심을 나타냈다. 교회는 ‘영성’이라는 새로운 단어 사용으로 그리스도인의 영적 여정을 편견 없이 전달하고 영성을 학문적으로 탐구하는 전환점을 마련한다. 사진은 미사 집전을 위해 입당 전 제의를 입는 사제의 뒷모습. 가톨릭평화신문 DB.

 

 

20세기 가톨릭교회는 ‘영성’이라는 새로운 단어가 17세기 과도한 수덕생활과 잘못 이해한 신비생활에서 발생한 이단 때문에 ‘수덕’과 ‘신비’라는 용어에 경계심을 나타내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영적 여정을 편견 없이 전달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조직신학에 포함되었던 영성신학

 

‘영성(spirituality)’이라는 단어는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교회 안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됐습니다. 물론 라틴어 명사 ‘spiritualitas(영성)’가 이미 5~6세기에 사용됐지만, 학문 분야에서 이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들어서였습니다. 프랑스 학계에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개인적인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spiritualit(영성)’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영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전부터 그리스도인의 영적 여정을 지칭하기 위하여 수덕생활, 신비생활, 내적 생활, 신심생활, 완덕의 삶 등 다양한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이러한 용어는 그리스도인이 삶 안에서 영적 여정을 걸어가는 실천적인 모습을 성찰할 때에 사용하기 적절한 표현이었습니다. 하지만 신학자들은 그리스도인의 영적 여정이 이론적인 체계를 갖춘 학문 연구 분야에서도 성찰돼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영성생활이 이단에 물들지 않고, 가톨릭 정통 신앙 안에서 올바른 영적 여정을 향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5세기 말경에 위(僞)디오니시우스(Pseudo-Dionysius, 500년경)가 저서 「신비신학(De Mystica Theologia)」을 저술하면서 교회 안에서 하느님을 향한 영적 여정에 대한 학문적인 관점이 알려졌으나,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않았습니다. 중세 중기, 유럽에서 대학이 설립되고 세상 학문들이 발전하기 시작할 무렵에 가톨릭교회도 스콜라신학을 마련하면서 하느님을 알아가는 신학도 세상 학문과 동일한 체계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가톨릭교회는 교의신학과 윤리신학을 포함하는 조직신학의 틀을 마련했으나, 영성신학은 조직신학에 포함됐고, 영성신학의 일부 주제는 교의신학에서, 또 일부 주제는 윤리신학에서 다루면서 독립적인 신학 분야로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교의신학과 윤리신학에서 독립되는 영성신학

 

20세기 초반에 교회에서 그리스도인의 영적 여정을 다루는 학문을 수덕신학과 신비신학으로 귀결시키는가 싶더니,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전환점으로 ‘영성’과 ‘영성신학’이라는 용어가 등장했습니다. 1965년 공표된 사제 양성에 관한 교령 「온 교회의 열망(Optatam Tptius)」은 다양한 맥락 아래에서 영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특히 사제를 양성하는 신학생들의 교육 현장에서 신학생들의 영성생활을 심화시킬 수 있는 ‘영성교육(institutio spiritualis)’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사제 양성 교령, 4ㆍ8ㆍ16항 참조) 비록 교령은 ‘영성신학(theologia spiritualis)’이라는 용어를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교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공의회에 참석한 주교들과 신학자들이 이 용어를 사용하길 바라면서 교령 초안에 영성신학이라는 표현을 담았습니다.

 

또한, 가톨릭교육성은 1970년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Ratio Fundamentalis Institutionis Sacerdotalis)」을 발표하면서 신학교육 과목을 설명하는 가운데 교의신학 및 윤리신학과 분명하게 구분해서 영성신학을 언급했습니다. 특히 영성신학이라는 과목은 사제 및 수도자의 영성생활을 연구해 그들이 처한 신분에 따라 각자 완덕의 길로 나아가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강조하면서(「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79항 참조), 독립 학문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하게 만들었습니다.

 

한편,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Ioannes Paulus PP. II, 재임 1978~2005)은 1979년 교회 대학 및 대학교의 운영 규정을 담은 교황령 「그리스도교적 지혜(Sapientia Christiana)」를 발표하고, 2주 후 교황령의 가르침이 올바로 시행될 수 있도록 가톨릭교육성이 발표한 「시행 규칙(Norme Applicative)」에서도 교의신학 및 윤리신학과 더불어 영성신학을 언급했습니다.(「시행 규칙」 제51조) 따라서 영성신학은 수덕신학과 신비신학을 대신해 교회에서 사용하는 공식적인 명칭으로 자리 잡게 됐으며, 교의신학 및 윤리신학과 분명하게 구분되는 독립된 학문 분야의 지위를 공고히 했습니다. 이후 교회 문헌에서는 영성신학이 보편적인 용어가 됐습니다.

 

 

영성신학 용어 정착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기점으로 하여 ‘영성’ 및 ‘영성신학’이라는 용어가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공의회 이전에 이미 다양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프랑스 출신 신학자 피에르 푸라(Pierre Pourrat, 1871~1957)는 1927~1931년 저서 「그리스도교 영성(La spiritualit chrtienne)」을 출판하면서 책의 서문에 교의신학은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을 가르치고, 윤리신학은 우리가 해야 하는 것과 죄를 제거하기 위해서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가르친다면 이 두 신학을 기초로 해서 영성신학이 나온다고 언급했습니다. 또 영성신학은 수덕신학과 신비신학으로 나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다만 푸라가 서문에서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저서에서 사변적인 관점으로 영성신학의 내용을 다루지 않고 고대부터 근세까지 그리스도교 영성 역사를 통시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이 다소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한편, 프랑스에서 1928년 조제프 드 기베르(Joseph de Guibert, 1877~1942)를 포함한 예수회의 몇몇 사제들은 「영성 사전(Dictionnaire de spiritualit)」을 출판할 계획을 마련했습니다. 1932년 그 첫 권이 출판된 이후 1995년까지 거의 60여 년 동안 총 17부로 구성된 45권의 영성을 주제로 한 백과사전이 출간됐습니다. 그리고 출판 중에 ‘수덕 및 신비, 교의 및 역사(asctique et mystique, doctrine et histoire)’라는 부제를 첨가했습니다. 이 백과사전은 영성신학에서 다룰 수 있는 모든 주제를 다뤘기에, 가톨릭교회에서 영성신학 및 영성 역사와 관련된 저서가 출판될 수 있는 밑거름이 됐습니다.

 

다양한 신분과 배경을 가지고 있는 학자들도 영성신학 분야에 관심을 가졌는데, 그중에서 프랑스 출신 철학자 자크 마리탱(Jacques Maritain, 1882~1973)은 개신교 가정에서 성장했으나, 1906년 가톨릭으로 개종한 후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 사상을 접하면서 평신도로서 가톨릭 신학에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리스도교적 인본주의를 펼쳤던 마리탱은 영성신학 분야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을 접목해 연구하는 가운데 성령의 은사가 인간의 정감적 기능을 통해 작용하면서 신비체험에 다다르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영성과 영성신학이라는 용어가 불과 반세기 전 교회 안에 정착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교회는 영성이라는 용어를 선택하면서 교회 역사 안에서 영성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편견과 선입견 때문에 발생했던 문제들을 극복하고 해소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게다가 많은 교의 신학자들도 차차 영성신학 분야에 관심을 두고 연구에 참여하면서 영성신학 분야는 점점 풍성해졌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11월 11일, 전영준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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