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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주교 임명 역사를 통해 바라본 교황청 - 중국 주교 임명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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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10-07 ㅣ No.920

[특별기고] 주교 임명 역사를 통해 바라본 교황청 - 중국 주교 임명 합의

 

 

지난 9월 22일 교황청과 중국은 ‘주교 임명에 관한 잠정 협약’을 체결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발표되지 않았지만 그간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로는 ‘베트남 모델’이 채택됐을 가능성이 높다. 

 

‘주교 임명’은 2000년 교회사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첨예한 문제였다. ‘주교’는 ‘정통 신앙의 수호자이며 교회 일치의 보증인’(프란치스코 교황, ‘중국과 보편교회 신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3항, 2018년 9월 26일)이기에, 교회는 완전한 자유로 주교를 임명하기를 바랐지만 오랜 기간 세속 권력의 불의한 간섭과 맞서야 했기 때문이다. 

 

초세기 교회에서는 ‘성직자들과 백성이 선출한다’는 원칙이 통상적으로 적용됐다. 제1차 니케아공의회(325년)는 같은 관구 소속 주교들이 주교를 지명하도록 규정했고 이를 추인하고 새 주교를 축성하는 임무를 관구장 주교에게 부여했다. 

 

그러나 유럽 사회의 그리스도교화, 민족의 대이동, 서로마 제국 멸망, 유럽 내 여러 왕국들의 등장으로 정치사회적인 상황이 급변하고, 주교가 정치사회적으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자, 세속 권력이 주교 임명 문제에 개입하는 일이 많아졌다. 일례로, 카를 대제(742~814)는 신설 교구의 초대 주교를 직접 임명했고 그 밖의 주교를 임명할 때에도 결정적으로 관여하였다. 유럽이 봉건 제도화되자 대영주들은 자기 영토 내 주교 임명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고, 신성 로마 제국의 오토 1세 황제(912~973)는 이 권한을 자신에게 유보시키기도 했다. 

 

그레고리오 7세 교황(재임 1073~1085년)은 주교 임명권을 세속 권력으로부터 되찾기 위해 노력했고 이는 ‘서임권 투쟁’의 발단이 됐다. 서임권 투쟁은 보름스 정교 조약(1122년)을 통해 종식됐다. 이로써 교회는 주교 임명에서 황제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제4차 라테란공의회(1215년)는 주교 선출을 주교좌성당 의전 사제단(참의회)에 위임하고 다른 성직자들과 평신도들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했다.

 

2011년 6월 29일 교황청 승인 없이 주교로 서품된 중국 폴 레이 쉬윈 주교(앞줄 주교들 중 왼쪽에서 네 번째).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13세기부터 교황은 주교 임명권을 자신에게 유보하기 시작해 14세기에는 대부분의 주교를 직접 임명했다. 15세기에 서유럽 신생 근대 국가 가톨릭 군주들이 주교 임명 절차에 개입하기 시작하자 성좌는 많은 양보를 해야 했다. 하지만 성좌는 가톨릭 군주들의 권한이 그들의 일방적인 결정이 아닌, 성좌가 수여한 특전을 근거로 행사되도록 노력했다. 일례로, ‘갈리아주의’를 대표하는 부르주 국본조서(1438년)를 통해 프랑스 내 주교 임명권을 완전히 빼앗겼지만, 레오 10세 교황은 볼로냐 정교 조약(1516년)을 통해 프랑스의 모든 주교를 지명할 권한을 특전 형식으로 왕에게 부여했다. 이 시기에 ‘왕의 보호권’이라는 독특한 제도도 나타났다. 이는 ‘영토 회복’과 ‘해외 선교’라는 특수한 상황에 응답하기 위해 신설된 제도로서, 성좌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왕에게 관할 지역 내 모든 주교 후보자의 제청권을 수여했다. 물론 이렇게 제청된 자를 임명하는 일은 교황의 권한에 속했다. 19세기 초 라틴 아메리카의 신생 국가들은 스페인과 포루투갈 왕에게 주어졌던 ‘보호권’을 자신들이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성좌는 개별적인 정교 조약이나 협약을 체결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는 교황에게 3후보를 제청하는 방식(사전 천거 임명)과 성좌가 후보자에 대한 사전 정보를 각 정부에 보내 정치적으로 이의가 없는지 확인하는 방식(사전 동의 임명)이 사용되기도 했다. ‘교황이 주교들을 임의로 임명한다’는 원칙은 1917년 교회법전을 통해 보편 규율로 제정됐고(제329조 제2항), 1983년 교회법전은 이를 재확인하고 있다.(제377조 제1항) 

 

이번 ‘잠정 협약’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알 수 없기에 섣불리 논평하는 것은 위험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주교 임명 역사를 통해 보건데, 교회는 ‘정통 신앙의 수호자이며 교회 일치의 보증인’인 주교가 세속 권력의 입맛에 따라 임명되는 일은 반드시 피하고자 할 것이다. ‘잠정적’이기는 하지만 이번에 체결된 ‘협약’은 그 훌륭한 증거라 할 수 있다. 특히 현행 교회법전을 통해 처음으로 제정된, ‘주교들의 선출, 임명, 제청, 또는 지명의 권리와 특전은 앞으로는 국가 권위에게 전혀 허용되지 아니한다’(제377조 제5항)는 원칙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9월 26일 교황이 몸소 밝힌 바대로, 성좌는 오로지 “교회 본연의 영적이며 사목적인 목표를 실행하는 것 곧 복음 선포를 옹호하고 촉진하며 중국 가톨릭 공동체의 온전하고 가시적인 일치를 이루어내고 보존하는 것”(‘중국과 보편교회 신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2항)을 유념하면서 이 협약을 체결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가톨릭신문, 2018년 10월 7일, 안세환 신부(가톨릭대학교 교회법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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