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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ㅣ순교자ㅣ성지

[순교자] 마피아에 의한 첫 순교자 복자 풀리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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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9-16 ㅣ No.1784

마피아에 의한 첫 순교자 풀리시 신부


범죄조직 장악한 마을에 ‘희망의 나무’ 심다 선종, 15일 25주기

 

 

- 바티칸이 올해 초 발행한 피노 풀리시 신부 순교 25주년 기념 우표.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빈민가에서 사목하던 주세페 피노 풀리시 신부는 마피아 조직원이 불쑥 나타나 총을 겨누자 이렇게 말하고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였다. 1993년 9월 15일 아침, 그 날은 그의 56번째 생일이었다. 

 

풀리시 신부는 범죄조직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열혈 전사는 아니었다. 팔레르모의 가난한 마을 브란카치오(Brancaccio), 해변에 유리조각과 콘돔, 주사기가 널려 있는 그 마을에 ‘희망의 나무’를 심던 평범한 목자였다.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 미혼모, 마피아에게 가족을 잃은 여인들은 그곳을 ‘지옥’이라고 불렀다. 

 

풀리시 신부는 아이들을 불러모아 아름다운 꿈을 심어줬다. 마피아에 짓눌려 있는 마을에서 악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어떤 용기가 필요한지도 가르쳐줬다. 그는 “만일 지옥에 태어났다면, 지옥이 아닌 것의 한 조각을 봐야 해. 그래야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지”라고 말했다. 거창하게 사회복지사업을 벌인 것도 아니다. 그저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함께 웃고 울면서 복음에 깃든 사랑과 희망을 속삭였다. 

 

그의 꿈은 학교를 짓는 것이었다. 아이들과 주민들에게 학교는 어둠을 몰아낼 ‘작은 빛’이었다. 하지만 마피아의 방해와 관공서의 비협조 때문에 건축은 번번이 무산됐다. 그 무렵 시칠리아에서 검사와 판사가 마피아 조직원들에게 살해되자 이탈리아 정부는 마피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도 그들의 악행을 비난했다. 그러자 시칠리아의 마피아는 어둠을 몰아낼 빛을 밝혀가던 풀리시 신부를 희생 제물로 삼아 사제관 앞에서 살해했다. 그가 세우고자 했던 학교는 사후 7년 뒤인 2000년에 문을 열었다.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은 2012년 그를 마피아에게 희생된 첫 순교자로 선포하고, 이듬해 시복식을 거행했다. 평소 그를 영웅적 모범을 보인 목자라고 칭송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의 선종 25주기이자 생일인 15일 시칠리아로 날아가 ‘양 냄새 나는 목자’의 거룩한 희생을 기렸다. 

 

그의 일대기를 다룬 알레산드로 다베니아의 소설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도서출판 소스의 책)의 한국어판도 올해 초 발간됐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9월 16일, 김원철 기자]

 

 

교황, 팔레르모 미사 강론… “마피아로 있는 한 하느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마피아에게 살해당했던 복자 피노 풀리시(Pino Puglisi) 신부의 선종 25주기를 맞아 시칠리아를 방문했던 지난 9월 15일 토요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사에서 마피아 단원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확고하게 경고했다.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의 돈을 생각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하느님께로 회개하십시오.”

 

자기 형제를 증오하면서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다. 왜냐하면 (형제를 증오하면서) “사랑이신 하느님을 고백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9월 15일 토요일) 포로 이탈리코(Foro Italico)에서 거행된 미사 강론에서 했던 이 말을 시작으로 마피아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단죄를 거듭 강조했다. 피아차 아르메리나(Piazza Armerina)에서 헬기로 팔레르모에 도착한 교황은 “증오라는 말은 그리스도인 삶에서 지워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느님을 믿으면서 형제를 핍박할 수는 없습니다.”

 

“마피아 단원으로 있는 한, 하느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삶을 살기 때문에, 마피아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명예의 사람들이 아니라, 사랑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핍박하는 사람이 아니라, 섬기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여정은 진정으로 주님을 신뢰하며 마피아적 방식과 위협을 바꾸는 참된 회개를 필요로 한다.

 

“마피아의 후렴구가 ‘내가 누군지 당신은 모른다’라면, 그리스도인의 후렴구는 ‘저는 당신이 필요합니다’입니다. 마피아의 위협이 ‘반드시 당신에게 갚아주겠소’라면,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주님, 사랑하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입니다. 그러므로 마피아 단원들에게 말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변하십시오!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의 돈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수의(壽衣)에는 주머니가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니고 갈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하느님께로 회개하십시오! 저는 마피아 단원들에게 거듭 말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삶은 사라질 것이고 최악의 패배가 될 것입니다.”

 

 

복자 피노 풀리시 신부의 증거

 

섬김과 내어줌의 발자취를 따라 “자신의 지역에서, 가난한 이들 중의 가난한 이”로 자기 삶을 살았던 사람이 바로 복자 피노 신부였다. 교황은 그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살지 않았으며, 반-마피아 운동을 호소하지도 않았고, 악행을 하지 않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으며, 선을 씨 뿌렸다”고 상기시켰다. 복자 피노 신부는 ‘하느님-돈’이라는 패배 논리에 ‘하느님-사랑’이라는 아름다운 논리로 맞섰다고 교황은 강조했다. 복자 피노 신부의 이러한 논리는 죽음의 순간에도 미소로 봉인된 승리의 삶이었다.

 

“25년 전 오늘, 피노 신부님은 생일날에 돌아가셨고, 미소를 머금은 승리의 관을 쓰셨습니다. 그분의 미소는 살인범으로 하여금 밤에 잠을 들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살인범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미소 안에는 일종의 빛이 있었습니다.’  피노 신부님은 무방비 상태였지만, 그분의 미소는 하느님의 힘을 전했습니다. 눈이 멀 정도의 섬광이 아니라, 마음속에 파고들어 마음을 뒤흔드는 부드러운 빛이었습니다.”

 

 

미소의 성직자

 

교황은 복자 피노 풀리시 신부의 모범을 떠올리면서 한 가지 특별한 요청을 했다. “우리에게는 미소를 머금은 수많은 성직자가, 미소를 띤 그리스도인이 필요합니다. 일을 가볍게 여기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영광으로 풍요롭기 때문이고, 사랑을 믿고 섬기기 위해 살기 때문입니다.” 교황은 강론에서 복자 피노 신부가 “위험을 무릅썼다”면서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 것보다 안락하고 비굴한 지름길로 살아가는 것이 삶에서 정말로 위험하다는 걸 알았던 인물”고 설명했다.

 

“어중간한 진리에 자족하거나 밑바닥 삶을 사는 것으로부터 하느님께서 우리를 해방시켜주시길 빕니다. 어중간한 진리는 마음을 만족시키지 못하며 선을 행하지도 않습니다. ‘비천한’ 이들 주위를 돌고 있는 비루한 삶으로부터 하느님께서 우리를 해방시켜주시길 빕니다. 내가 좋다면 모든 것이 좋고, 다른 것도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부터 하느님께서 우리를 해방시켜주시길 빕니다. 불의를 반대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옳다고 믿는 것으로부터 하느님께서 우리를 해방시켜주시길 빕니다. 불의를 반대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정의로운 사람들이 아닙니다. 단순히 아무런 악도 행하지 않기 때문에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 것으로부터 하느님께서 우리를 해방시켜주시길 빕니다. 어느 성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선을 행하지 않는 것은 악한 일입니다’(성 알베르토 우르타도). 주님, 저희에게 선을 행하려는 열망을 주십시오. 거짓을 미워하고 진리를 찾으려는 열망을, 태만이 아니라 희생을 선택하려는 열망을, 복수가 아니라 용서를 선택하는 열망을 주십시오.”

 

 

패배의 삶

 

교황은 우리가 자기 자신을 위해 살거나, 혹은 생명이나 사랑을 주거나, 혹은 이기심을 선택하도록 부르심 받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어 승리의 삶이란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의 삶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비록 “세상의 눈에는 승리자로 보이더라도”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충분히 만족시키는” 사람의 삶은 옳지 않다. “사물, 돈, 권력, 쾌락”에 집착하며 이기주의적인 방식으로 살아갈 때, 패배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악마는 문을 열어놓았고” 이기주의로 “마음은 마비되어” “결국 속이 빈 채로, 홀로 남게 됩니다.” 세상의 악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돈이나 권력이 필요하지 않다. 교황은 “돈과 권력은 인간을 해방시키지 못하고 노예로 만든다”고 힘주어 말했다.

 

 

승리의 삶

 

승리의 삶이란, 잘못된 논리와 광고에서 등장하는 모델들을 뒤집어 엎으시는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삶이라고 교황은 상기시켰다. 따라서 승리의 삶은 “성공한 사람”의 삶이나 “자신의 매상을 올리는” 사람의 삶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길은 겸손한 사랑의 길이다. “오직 사랑만이 (마음의) 내면을 해방시키며 평화와 기쁨을 줍니다.” 교황은 이어 “참된 권력은 섬김”이라고 덧붙였다. “가장 강력한 목소리는 큰소리로 외치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기도입니다. 가장 위대한 성공은 자신의 명예가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한) 증언입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유일한 포퓰리즘이란 “외치거나 비난하거나 분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를) 듣고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목숨을 내어놓기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 복자 풀리시 신부의 무덤에는 예수님의 이 말씀이 새겨져 있다. 교황은 다음과 같이 강조하며 강론을 마무리했다. “(복자 풀리시 신부님은) 목숨을 내어주는 것이 승리의 비결, 아름다운 삶의 비결이었음을 모든 사람에게 상기시켜줍니다. 오늘 우리도 아름다운 삶을 선택합시다.” [바티칸 뉴스, 2018년 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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