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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수녀원 창가에서: 잡초를 뽑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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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6-18 ㅣ No.605

[수녀원 창가에서] 잡초를 뽑으며

 

 

잔디밭이 단정한 까닭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오면 막다른 골목에 수녀원이 자리하고 있다. 수녀원 정원으로 한 발 들어서면 푸른 잔디밭이 그 자체로 주는 평온함과 안식으로 맞아 준다. 수녀원을 찾아오는 손님들도 가장 먼저 푸른 잔디밭에서 평온함을 느낀다고 한다. 그리 넓지 않는 잔디밭이지만 볼 때마다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23,2)라는 시편의 노래가 절로 생각난다.

 

50년 전에 수녀원 건물이 들어설 때부터 있던 잔디는 수녀원의 역사와 같이한다. 여름이 시작되면 양성 중인 자매들과 본원의 수녀들은 이 잔디밭을 가꾸느라 부지런히 잡초를 뽑는다. 공기가 통하면 잔디가 잘 자란다고 하니 빽빽하게 엉킨 뿌리 사이로 호미질도 해 준다.

 

안타깝게도 수녀원 정원의 잔디는 오래되어서 싱싱하게 자라지 못하는데 잡초는 하룻밤 사이에 쑥쑥 올라온다. 잡초는 부지런히 뽑아도 끝없이 돋아난다. 가뭄에는 잔디가 누렇게 말라가는데 반갑지 않은 잡초는 새파란 싹을 보이며 올라온다.

 

더욱이 가물었을 때 잔디에 물을 주면 잡초가 더 많이 흡수하는 것 같아 마음이 얄궂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하느님은 모든 것에게 햇빛을 주시고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게 하시니 나도 넓은 마음을 가지려고 애쓴다.

 

해마다 5월부터 9월까지는 수녀원 텃밭뿐 아니라 정원에서 잡초 뽑기를 해야 한다. 정원 담당 수녀도 여름철의 잡초는 혼자서 감당할 수가 없다. 거의 다섯 달 동안 본원 가족들은 잡초와 소리 없는 싸움을 해야 잔디밭이 제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

 

초여름의 풀 뽑기는 상대적으로 쉽다. 햇볕이 그리 강하지 않고 푸른색이 생기를 주기 때문이다. 칠팔월에는 낮 동안 햇볕이 뜨거워 아예 밖에 나가지를 못하니 주중 하루는 이른 새벽에 묵상을 겸하거나 해 질 녘에 시간을 정해 공동 작업으로 풀을 뽑기도 한다.

 

성모송을 바치면서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침묵 가운데 묵상하면서 잡초를 뽑는다. 뿌리가 얕아 쉽게 뽑히는 잡초도 있지만 호미로 깊이 파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도 있다. 한더위에도 부지런히 풀을 뽑은 덕에 잔디밭은 늘 단정한 모습이다.

 

 

고구마 순과 잡초

 

요즘 아가씨들은 집에서 풀 뽑기나 호미질을 해 본 적 없이 수녀원에 오다 보니 지원자나 청원자 자매들의 해프닝도 종종 일어난다. 지난해 봄에는 성당과 식당을 오가는 수녀원 텃밭에 고추 모종을 심었다. 고추가 듬성듬성 심긴 밭이랑 사이사이에 재미 삼아 고구마 순 몇 포기를 심어 놓았다.

 

어느새 고구마 순이 뿌리를 내렸는지 줄기가 자라고 있었다. 여름에는 고구마 줄기를, 가을에는 고구마를 수확하는 즐거움을 생각하며 한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물과 퇴비를 주었다. 수확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도 즐겁지만 사실 조금씩 순이 커 가는 모습이 더욱 신기하고 사랑스러워 지나다니면서 관심 있게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어느 날 양성 자매들이 텃밭에 잡초를 뽑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 채 잡초 뽑기에 열심인 젊은 자매들을 대견하게 여기며 지나쳤다. 다음 날 새벽 성당 가는 길에 늘 그랬듯 고구마 순이 자라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내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는 풀 한 포기 없이 아주 깨끗했다.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고구마 순은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잡초와 고구마 순을 구별하지 못한 자매들이 전날 모조리 뽑아 버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설마 고구마 순과 잡초를 구별하지 못할 줄이야! 미리 일러 주지 못한 탓이라 자책하며 허전한 마음을 쓸어내렸다.

 

 

마음의 밭을 가꾸는 최고의 길

 

지난해 여름에는 성모상 주변에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작은 잡초가 마치 이끼처럼 확 퍼져서 잔디를 잠식하고 있었다. 그 뿌리들이 잔디 사이사이에 박혀 있어서 뽑기가 매우 힘들었다. 하절기에는 늘 잡초를 뽑는데 이 작은 것이 어떻게 해서 그토록 넓은 영역을 차지하게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주 작은 잡초라고 무심히 보아 넘겼던 것이 끝내 잔디를 파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넓게 번져 버렸던 것이다. 어느새 잔디밭의 큰 부분을 망가뜨려 결국 잔디를 갈아엎어야 했다. 작은 것을 미리 예방하지 못한 탓에 큰 손해를 본 셈이다. 이 일로 작은 것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배우게 되었다.

 

한여름 날 풀 뽑기는 매우 힘들 것 같지만 막상 풀밭에 앉으면 더위를 잊고 잡초 뽑기에 빠져든다. 식물 그 자체로 보아 잡초 하나하나는 참 예쁘다. 그 모습이 못나서 뽑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유익하지 않기 때문에 남도록 선택되지 않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악이 나쁘게만 보인다면 굳이 그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악의 유혹은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 갈 정도로 당기는 힘이 있다. 조용히 잡초를 뽑을 때면 내 내면에서 자라고 있는 잡초도 보인다. 풀 뽑기는 내 영혼의 밭을 관리하고 살피는데 매우 좋은 작업이다. 아무리 뽑아도 쉼 없이 돋아나는 잡초들을 보면서 내면을 비우고 또 비워야 함을 깨닫게 된다.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하찮은 것들에서 덕행을 실천하여 큰 성덕에 이르렀다. 이와 달리 작은 잡초가 큰 잔디밭을 망가뜨리는 것을 보면서 당장 몰아내지 못한 내 영혼의 작은 어둠이 소중한 행복을 빼앗아 갈 수 있음을 깨닫는다.

 

마음의 밭을 가꾸는 최고의 길은 양심 성찰이다. 일상의 성찰은 오늘 잡초를 뽑아도 다음 날이면 또 새로운 것들이 돋아난 풀밭을 날마다 손질해야 하듯이 나를 살피는 일이다. 성찰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지만 내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의 일을 의식하려면 날마다 꾸준하고 성실하게 기도해야 한다.

 

양심 성찰은 지속적으로 깨어 있는 삶을 살게 한다. 아무리 작은 악습이라도 깨어 있지 않으면 변화될 수 없다. 날마다 반복되는 성찰에 맛들이면 기도가 깊어진다. 내면에서 성령과 악령의 움직임을 식별하는 데는 깊이 잠심하는 것이 좋은 도움이 된다.

 

초보 단계에서는 잡초인지 고구마 순인지 분간을 못해도 몇 번 보면 구별되듯이 성령의 움직임을 식별하는 것은 반복적인 성찰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잡초를 없애고 잔디밭을 말끔하게 가꾸는 일이 즐겁듯이, 양심 성찰을 통해서 내면의 악습들을 몰아내고 성령의 움직임에 민감해져서 영적으로 성장해 가는 것은 기도 생활의 깊은 맛이다. “너희는 맛보고 눈여겨보아라, 주님께서 얼마나 좋으신지!”(시편 34,9)

 

* 전봉순 그레고리아 - 수녀. 예수성심전교수녀회 관구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8년 6월호, 전봉순 그레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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