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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일상 속 영화 이야기: 좋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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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1-10 ㅣ No.1072

[일상 속 영화 이야기] 좋은 영화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은 것은 모든 감독들의 바람일 것이다. 좋은 영화란 무엇일까? 무엇이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일까? 흥미로운 소재와 탄탄한 이야기, 캐릭터에 맞는 배우들의 연기와 감독의 개성 있는 연출력, 아름다운 영상을 담아내는 카메라 팀, 감각적인 편집과 효과적인 음악 등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조건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다 하더라도 단 하나의 조건이 빠지면 좋은 영화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바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공감’이다. 자기 혼자만 보기 위해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가 보여주는 이야기가 관객들의 공감을 얻어낼 수 없다면 다른 모든 조건들이 갖추어져 있다 하더라도 생명력을 얻지 못한다. 영화제작수업 때 각자의 시나리오에 대해 발표하고 그에 대해 선생님과 동료들의 피드백(feedback)을 받은 것에 많은 시간을 보내게 하는 이유는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영화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이야기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이브 더 캣!』(Save The Cat!, 2005)을 쓴 시나리오 작가 블레이크 스나이더(Blake Snyder)는 커피를 기다리는 줄에 서 있으면서도 뒤에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시나리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피드백을 얻으라고 했다. 그만큼 관객들의 공감을 얻어내기 위해서, 즉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사람들의 피드백은 필수조건이다.

 

한 달 전, 일본에 있는 아키타 국제교양대학으로 출장을 갔다. 북해도에 위치한 아키타현은 도쿄에서 신칸센 열차로 4시간이나 걸리는 작은 지방 도시인데 이 대학은 시내 중심가에서도 차로 30분이 걸리는 시골에 있다. 방문했을 때는 눈이 엄청나게 내리고 있었는데 학교를 벗어나 길을 잃으면 얼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 만큼 소위 말해 ‘깡촌’이었다. 그런데 이런 벽촌의 작은 대학이 일본 명문대인 도쿄대학과 와세다대학을 제치고 몇 년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고 일본의 많은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의 많은 학생들이 들어오고 싶어 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일본 전역 대학 취업률 1위, 취업률 100%로 유명하지만 정작 학교 당국도 취업을 강조하고 있지 않으며 학생들도 취업을 위해 입학한 것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대답한다. 이유는 단 하나 교육 콘텐츠 때문이다. 현대사회가 원하는 종합적이고 사고력과 창의력, 그리고 깊은 교양에서 비롯되는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인재를 기르는 교육 콘텐츠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육 콘텐츠를 위해 학교에서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수업에 대한 냉정한 피드백이다. 해마다 학생들에게 수업평가를 하게 하는데 정년이 보장된 교수라도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피드백이 좋지 않을 경우 연봉이 삭감될 수 있다. 얼마 전 비슷한 이야기를 우리나라 교수님께 했다가 이런 제도가 교육자들을 자본주의적 무한경쟁에 내모는 것이라고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정작 그러한 제도 속에 있는 아키다 국제교양대학의 교수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피드백은 당연한 권리이며 이를 통해 자신의 수업에 대한 준비와 질이 계속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는 계속 변화하고 발전해나가고 있다. 이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이루어지게 된 영화제작기술의 변화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소재와 이야기의 구성, 감독들의 연출 기법과 배우들의 연기도 전부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변화와 발전의 직접적인 원인은 ‘관객들의 변화’ 때문이다. 관객들의 변화는 공감의 변화를 의미한다. 변화된 시대에 변화된 관객들의 공감을 얻어내지 못한 영화는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감독들은 자신의 아이디어와 철학에 갇혀 작품을 만들 것이 아니라 관객들이 어떤 이야기를 보고 듣고 싶어하는지, 어떤 이야기에 공감을 하는지 끊임없이 피드백을 얻어야 한다. 피드백을 통한 변화와 발전은 영화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미래 교육학자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피드백과 사회의 변화를 무시한 채 마치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백성들의 고통이나 국제 정세의 변화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명나라에 대한 신의를 저버려서는 안된다는 자세로 자신의 안이한 수업방식을 학문적 순수성으로 변명하고 버티는 교육자들이 아직도 얼마나 많은가. 많은 대학생들이 어렵게 들어와 많은 돈을 지급하면서 다니고 있는 대학에 회의를 느끼고 이탈하는 이유는 교육 콘텐츠가 그들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키타 국제교양대학에서 ‘학생만 생각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이야기를 서로 나누었다. 학생들의 인기에 영합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것이, 취직이 잘 되는 자연계열학과 하나 없이 그것도 특정 전공도 없는 일본의 작은 지방대학의 성공비결이었다. 영화 역시 천문학적 자금으로 제작되었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투자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 성공하는 예를 적지 않게 볼 수 있듯이 우리 시대의 교육, 사회, 그리고 우리 교회도 변화하는 시대에 변화하는 사람들의 피드백에 귀를 기울일 때, 그래서 공감을 얻어낼 때 좋은 변화와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월간빛, 2018년 1월호, 한승훈 안드레아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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