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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 속 신앙 찾기: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한 투신 - 택시 운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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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17 ㅣ No.1038

[영화 속 신앙 찾기]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한 투신, 택시 운전사

 

 

때로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 말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말은 그저 몇 마디 단어의 조합이 아니다. 온 힘을 다했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순간이다. 그 지극함이 ‘말 없음’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할 말은 입이 아니라 몸에서 나오는 공기로 전해진다.

 

극 중 배우의 연기도 다만 ‘연기’가 아닐 때가 있다. 오래 보아 온 배우라고 해도 어떤 작품에서 어떤 임무를 맡았을 때, 아주 낯설게 보이면서 우리가 처음 만나는 그 배역 자체로 물들어 있는 경우다. 혼이 담겨 있다고 해야 할까. 그저 배역을 잘 소화하거나 형상화했다는 정도를 뛰어넘는 지점이다. 흔히 ‘빙의’라고 줄여 말하기도 하지만, 그런 딱딱한 낱말로는 이런 경이로운 순간을 담아내기 미안하다. 그런 순간을 만날 때, 관객으로서 보는 것만으로도 전율이 인다.

 

자기를 완전히 내려놓고 배역에 내맡긴 채 움직이는 어떤 ‘실존’을 보는 놀라움, 때로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주연은 물론 단역까지도 모든 배우가 온 힘을 다해 작품에 임했을 때, 영화는 어떤 한 세계를 완벽하게 그려 내면서 관객을 감탄하게 만든다. ‘택시 운전사는 그런 영화였다.

 

 

그날, 그 인연

 

사실 ‘택시 운전사’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경이로운 영화였다. ‘천의무봉’(天衣無縫)이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현재 상황에서 1980년 5월 광주를 담아낼 수 있는 최적의 방식으로, 마치 모든 것이 순조로이 펼쳐질 수 있는 이야기의 한 지점을 절묘하게 떠냈다고밖에는 여길 수 없는 작품이었다.

 

흥행은 천우신조였고, 제작의 험난함이야 미루어 짐작하는 수준을 능가하고도 남았으리라. 영화 시나리오보다 어쩌면 제작 후일담 또는 고생기가 더 길고도 긴 이야기일 법한 영화지만, 절대로 ‘재미’에 소홀하지 않았다.

 

초반부 한동안은 아주 유쾌한 장면들이다. 주인공 김만섭을 맡은 송강호의 친숙하지만 물리지 않은 연기가 빛을 발한다. 객석에서는 연신 웃음이 터지곤 했다. 웃음의 포인트는 뻔뻔함과 막무가내인데 그게 알고 보면 소시민 가장의 절절한 생존 전략이라 밉상이 아니다. 상처 뒤에도 실의에 빠지지 않고 어린 딸과 단둘이 어떻게든 살아 보려 애쓰는 가장의 모습에 정감이 가기도 한다. 고물이 다 된 택시가 유일한 재산인 만섭의 눈에는, 세상은 그저 나 먹고사는 데 유리한 게 좋은 것일 뿐이다. 시국이나 정세는 ‘밀린 월세 10만 원’이 발등의 불인 그에게 남의 나라 얘기처럼 멀었다.

 

그는 아무것도 몰랐다. 몰랐기에 갔고, 몰랐던 것을 보고 말았기에 달라지고 변했다. 그럴 수밖에 없을 충격이었다. 조금 알거나 많이 알았다면, 그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그런데도 이 모든 일은 일어날 수 있었을까?

 

아무것도 모르고 ‘그런’ 세상에 대한 일말의 짐작조차 하지 못하던 백지상태의 소시민은 사실 먹고살 궁리뿐이었다. 푸른 눈의 기자를 만나 동행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김만섭이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 분)를 택시에 태운 것도 돈 10만 원 때문이었다.

 

광주까지 갔다 오는 데 10만 원이나 주겠다는 이유도 모른 채, 신나게 광주로 달렸다. 길목마다 바리케이드가 있고 무장 군인들이 삼엄하게 막았지만, 이 분위기가 무엇을 뜻하는지조차 몰랐다. 그래서 어떻게든 가야 한다는 생각에 샛길과 산길을 물어물어 광주에 닿고야 만다.

 

역사의 격랑이 포화로 세상을 뒤흔들고 한 지점을 피로 물들여 갈 때, 그 순간 그 자리에서 하필 목격자의 구실을 해야만 했던 이의 고뇌를 생각한다. 사실 만섭은 페터를 내려 주고 ‘돌아가’ 버려도 그뿐이었다. 애초에 광주에 데려다주는 일이 중요한 거였고, 그는 택시 운전사의 임무를 절반은 한 셈이었다. 운전사 자신도 죽을 수 있는, 위험한 임무였는지 모르고 온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도망쳤다가, 자기도 모르게 ‘유턴’을 했다.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어떤 힘으로 말미암아 ‘두고 온 손님’을 데리러 다시 광주로 간다. 이번에는 거기가 살아 나오기 어려운 사지(死地)임을 뻔히 알고도 말이다.

 

 

위르겐 힌츠페터라는 사람

 

게다가 인상적인 것은 페터의 태도였다. 그는 만섭 앞에서 친절한 서양 신사도, 부드러운 외국인도 아니었다. 아주 까칠했다. 개인주의가 몸에 밴 이 독일 남자는 불필요한 말이나 친절에도 질색하는 상태였다. 그리고 실은 한국이나 ‘광주’에 대해 (시국) 뉴스 외에는 거의 아는 게 없는 무심함 또는 냉랭함마저 풍긴다. 초반에는 만섭에게마저 자신의 직업을 숨겨야 했기에 더욱 무뚝뚝하다.

 

한국말 한마디 할 줄 모르는 페터가 또렷하게 감지한 것은, 이 사태의 심각성이었다. 독일 공영 방송 일본 특파원이었던 그는 한국발 뉴스가 ‘날조’와 ‘통제’가 심해지고 있음을 깨닫고 이 상황이 가리키는 불행한 예감에 급히 서울로 온다. 행여 끔찍한 참사가 생기는 일만은 없기를 비는 초조함에, 실은 몸이 굳어 있다. 조심이 지나쳐 퉁명스럽다.

 

그런 그가 허술한 ‘베스트 드라이버’ 김만섭을 만났을 때 벌어지는 감정의 충돌은 이 영화의 초반 재미를 만들어 낸다. 부족한 회화 실력과 노후 차량의 불편함을 ‘너스레’와 눈치로 눙치려는 김만섭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손님’이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대충 넘어가려 드는 만섭의 능구렁이 태도는 페터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해하기 싫은 점이기도 했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엮인 동행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운명적 동행을 시작하게 된다.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도 모른 채 말이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갖가지 일들이 꼬이고 엉키면서 발생하고, 패터와 만섭도 내내 티격태격하면서 서로를 파악하는 동시에 ‘계약 조건’도 바뀐다. 본디 통금 전 ‘당일 코스’였다가 1박 2일로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평생 도저히 잊거나 지울 수 없는 기억 또는 내상을 나눠 갖게 되기도 한다. 그 모든 게 전혀 예상치 못한 일들의 연속이다.

 

그럴 때, 평범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값어치를 깨닫게 되는 위대한 일이다. 당시에는 그게 뭔지도 모르고 겪어 낸다. 마치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처럼 대수롭지 않게 느닷없이 다가와, 결코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할 중책을 평범한 이의 어깨에 지우고 간다. 극 중 만섭이 해낸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영화가 현실을 투과해 넘어올 때

 

그들이 만나 하필 그날 ‘광주’에 간 이야기는, 결과적으로 역사를 넘어섰다. 실제로 위르겐 힌츠페터는 광주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렸다. 그리고 2017년 그 이야기는 영화로 세상에 나와 현재 1,200만 이상의 관객을 돌파하며 올해 최고의 흥행작이 되었다. 우리 역사의 가장 가슴 아픈 일을 소재로 삼을 때부터 이 영화에 대한 관심과 기대치는 높았다. 의미라면 이미 차고 넘쳤다. 게다가 실화였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흥행에 대한 걱정이었다. 꽤 많은 제작비가 필요했던 소재의 특성상, 상업적 성공이 절실했다. 개봉 시기를 잡을 때만 해도, 판도는 아무도 점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안팎으로 천운이라고밖에 여길 수 없는 여러 가지 행운이 따랐다. 적어도 흥행 면에서는 말이다. 김만섭이라는 보통 사람을 내세운 장훈 감독의 전략은 통했다. 시국에 대해 모르쇠였던 만섭이 눈떠 가는 과정과 변화가 관객에게 주는 공감과 공명이 크다.

 

이 영화가 극장에 무사히 안착하는 데 가장 필요했던 것은 관객과의 ‘눈높이’였다. 광주 시민들이 덮어쓰고 살아온 오해와 누명의 억울함이나 역사의 원통함마저도, 일단은 현재의 관객이 받아들일 수 있게 전달되어야 했다. 그 어려운 임무를 영화 ‘택시 운전사’는 해냈다.

 

마지막 장면에서 ‘김사복’(페터가 기억하는, 영화 속 김만섭의 이름)을 그리워하는 고(故) 페터의 영상은, 관객을 눈물짓게 하면서 이 모든 이야기가 실제였음을 넌지시 일깨워 준다. 부채감마저 감동으로 바꾸는 순간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영화는 극장 밖의 현실에서 김사복의 아들을 뉴스에 등장하게 했다.

 

더 극적인 것은, 뉴스를 통해 5.18 당시 공군 조종사의 증언을 육성으로 듣게 된 사건이다. 이 고백을 기점으로 당시의 여러 문서를 ‘발굴’, 조사하고 있다. 영화 한 편이 세상과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 그 이어짐에 가슴 뜨겁게 화답한 관객들의 힘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꾸고 있다. 보통 사람들이 빚어낸 기적이다.

 

* 김혜원 로사 - 문화 평론가. 극예술을 통한 세상 읽기를 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7년 10월호, 김혜원 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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