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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탄핵과 대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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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5-17 ㅣ No.1397

[경향 돋보기 - 탄핵과 대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보호자로서의 소명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을 보호하기, 모든 피조물을 보호하기, 모든 사람, 특히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이는 로마의 주교가 수행하도록 요청받은 봉사입니다. 그런데 이 봉사는 또한 희망의 별이 밝게 빛나도록 하는 데 우리 모두가 요청받은 것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을 사랑으로 보호합시다!”

 

2013년 3월 19일 성 요셉 대축일에 봉헌된 교황 즉위 미사 중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하신 강론 일부이다. 교황님은 요셉 성인이 성모님과 예수님의 보호자가 된 것처럼 우리도 보호자로서의 소명을 받았다고 하시며, 우리가 피조물과 사람들, 특히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할 때에 성모님과 예수님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신다. 이는 마태오 복음의 ‘최후의 심판’에 대한 말씀(25,31-46)을 떠올리게 한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25,37)이렇게 묻는 의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25,40).

 

이후 교황님의 행보는 줄곧 이 강론 내용의 실천으로 보인다. 첫 방문지는 아프리카의 불법 이민자들이 유럽으로 건너오다가 잦은 사고로 목숨을 잃는 이탈리아 남단의 람페두사 섬이었다.

 

2014년 한국에 오셨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방한 기간 중 교황님은 거의 매일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셨다. 첫날은 공항에서, 둘째 날은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서, 셋째 날은 광화문 광장에서, 넷째 날은 교황 대사관에서 그들을 만나셨다. 다섯째 날은 명동대성당에서 위안부 할머니, 쌍용차 해고 노동자, 제주 강정 마을 주민, 밀양 송전탑 건설 예정 지역 주민, 그리고 용산 참사 피해자들을 만나셨다.

 

최근 언론을 통해 당시 청와대가 교황님이 세월호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으시도록 주도면밀하게 노력해 온 정황이 드러났다. 그러나 교황님은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기회에 유가족들을 만나 위로하셨다. 특별히 8월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시복식 미사 전 단식 중이던 유민 아버지를 위로하신 일은 전 세계인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한 외신은 이를 교황 방한 중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았다. 어느 유가족은 말한다, 지난 3년 동안 그때가 ‘유일하게’ 위로받은 순간이었다고.

 

 

평화는 정의의 결과

 

‘교황 방한을 계기로 한국 천주교회가 쇄신될 것으로 전망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질문이 잘못된 것 같다고 답했다. 나 자신도 한국 천주교회의 일원인데, 쇄신될 것이라거나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제삼자나 관찰자의 입장에 서겠다는 자세가 아니겠느냐며, 적어도 나 스스로는 쇄신되려 한다고 했다.

 

이제 그 질문을 다시 해야 할 것 같다. ‘한국 천주교회는 쇄신되고 있는가? 하느님께서 교황까지 파견하셔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 바를 충실히 알아듣고 응답하고 있는가?’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우리나라에는 많은 일이 일어났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발표, 한일 위안부 협상, 개성 공단 폐쇄, 테러 방지법 통과, 백남기 농민 사망, 한일 군사 정보 보호 협정 체결,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사드)배치 결정 등 하나같이 큰일이었다. 이어 4년간의 국정농단 사태가 드러났고, 결국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교회는 안팎의 크고 작은 반대에도 사안마다 입장을 표명하며 참여하려 노력했고, 마침내 6개 신학교의 학생들이 시국 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대통령이 탄핵된 것도 헌정 사상 처음이지만, 이처럼 많은 신학생이 시국 선언에 나선 것도 한국 교회 역사상 처음이다. 그 성명서들을 보면, 단순히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한 항의에 머물지 않고,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수많은 사안에 대해 함께 아파하고 고민하며 기도해 오던 그들의, 세상에 대한 공감과 연대의 영(靈)을 성령께서 이끌어 주신 결과라는 사실을 읽을 수 있다.

 

갖가지 사안에 대해 교회 내 기구와 단체들의 성명서도 쏟아져 나왔는데, 거기에서 가장 자주 인용된 구절은 ‘평화는 정의의 결과’(Opus iustitiae pax, 이사 32,17 참조)라는 말씀이었다.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방한 첫날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공직자들에게 하신 연설에서 인용하신 말씀이기도 하며, 비오 12세 교황님의 좌우명이기도 했다. 정의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안정이라는 구실을 내세우며 억눌러 왔던 권력을 향해, 거짓 평화의 허상을 고발하며 참된 평화는 정의와 공정의 열매임을 외치는 예언자적 말씀이었다.

 

 

정보와 관심은 다르다

 

교회의 이러한 노력을 모든 교우가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가 지난해 ‘가톨릭신문사’의 의뢰를 받아 실시한 설문 조사의 결과를 보면, 교회의 사회 현실 문제에 대한 참여를 71.7%가 동의하지만 28.3%는 반대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희한하게도 더 소수인 반대의 목소리가 교회 내에서 더 크고 과격하게 들리는 듯하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 교황님의 말씀이 모든 교우의 마음속에 자리하지는 못한 것으로 느껴진다. “어느 누구도 종교를 개인의 내밀한 영역으로 가두어야 한다고 우리에게 요구할 수 없습니다. 종교는 국가 사회 생활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말라고, 국가 사회 제도의 안녕에 관심을 갖지 말라고, 국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건들에 대하여 의견을 표명하지 말라고, 그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요구할 수 없습니다”( 「복음의 기쁨」, 183항).

 

“왜 사제가 되었는가?”라는 물음에 “하느님을 위해서, 그리고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서”라고 대답하면 “참 기특한 생각을 했다.”며 칭찬한다. 그러나 막상 강론에서 ‘세월호’나 ‘백남기’, ‘위안부’ 등을 말하면 “왜 강론 때에 정치 얘기를 하느냐?”며 항의한다.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은 그저 추상적인 단어로만 머물러야 하는 것일까? 국민을 보호해야 할 정부로부터 배척받아 더욱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에 대해 말하면 ‘정치 이야기’라며 거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마음의 평화에 방해가 되기 때문일까? 성경, 교리서, 교회 문헌보다 자신의 스마트폰이 전해 주는 가짜 뉴스를 더 믿어 온 탓일까?

 

교황님은 지난해 세계 평화의 날 담화문에서 ‘정보와 관심을 혼동하지 말라.’고 하셨다. “어떤 사람들은 라디오를 듣고 신문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보면서 정보를 잘 얻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의 중독이나 된 듯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인간을 괴롭히는 비극에 대하여 막연한 생각만을 지니며 그것이 자신과 무관하다고 여겨 아무런 연민도 느끼지 못합니다. … 우리가 연대의 정신으로 의식을 개방하지 않으면, 바로 우리 시대의 특징인 정보의 증가가 문제에 대한 관심의 증가를 의미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유감스럽게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안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으면 자신이 그것에 대한 관심이 있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정보와 관심은 분명 다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분향소나 팽목항을 찾았을 것이다. 진실을 알리고자 전국을 돌며 하소연하는 유가족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였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많은 이가 정부의 발표나 왜곡 보도, 가짜 뉴스에만 귀를 기울였다. 관심보다는 정보만 쌓아 왔던 것이다. 자신이 접한 정보의 진위(眞僞)는 따지지도 않은 채, 수많은 거짓말로 말미암아 결국 탄핵되고 만 정부가 제공해 온 거짓 정보를 관심의 척도로 삼았던 것이다.

 

 

대선을 맞이하며

 

대통령을 뽑는 대선이 다가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는 간절한 기도와 함께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가?’라는 정치 · 사회적 식별이 절실히 요청된다.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구원은 “개인적 사회적, 정신적 육체적, 역사적 초월적인 인간의 모든 차원을 포함하는 구원이다. 이 구원은 역사 안에서 이미 실현되기 시작했다”( 「간추린 사회 교리」, 38항).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고 계시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세계와 역사의 주인이시라는 것”( 「가톨릭교회 교리서」, 314항)을, “성령께서 모든 인간의 상황과 모든 사회적 관계에 파고들어 가려하신다.”( 「복음의 기쁨」, 178항)는 사실을 진정 믿는가? 대통령의 탄핵과 고위 공직자들과 재벌 총수의 구속은 성모님의 노래와 상관없는 일인가?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루카 1,52-53).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찾아오셔서 그들의 고난을 살펴보셨다는 말을 듣고, 무릎을 꿇어 경배하였다”(탈출 4,31). 이처럼 우리는 오늘 우리의 역사 안에서 하느님께서 하고 계신 일과 앞으로 우리를 통해 하기 원하시는 일을 알아차리고 거기에 응답해야 한다. 고통받는 이웃의 보호자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가 이 소명에 응답하는 일 가운데 하나는 복음의 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우리는 정치에 참여해야 합니다. 정치는 공동선을 추구하기 때문에, 가장 뛰어난 자선의 형태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2013년 6월 7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탈리아와 알바니아의 예수회 학교 학생들에게 행한 연설).

 

“주인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지난 2014년 2월, 이러한 메모와 함께 현금 70만 원을 남기고 목숨을 끊은 ‘송파 세 모녀’의 이야기는 많은 이를 울렸다. 그러나 2017년 정부 예산안에서 실직이나 질병 등으로 위기에 놓인 저소득층에 지원하는 ‘긴급 복지’ 예산은 200억 원 이상 감액되었다. ‘저소득 장애인 의료비 지원 사업’의 예산도 141억 원 이상 감액되었다.

 

내가 직접 자선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정책을 펼 정부를 선출하는 일이다. 남북한의 화해를 위해 기도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일은 경색된 남북 관계를 화해로 이끌고, 실제로 평화통일을 위한 길을 준비할 정부를 선출하는 것이다. 생명 수호를 위해, 피조물 보호를 위해 개인적으로 노력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은 생명 수호와 생태 보호를 위해 일할 정부를 선출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각 후보의 공약을 면밀히 검토할 뿐 아니라 그것을 수행할 진정성과 능력을 갖춘 인물인지에 대한 검증도 해야 한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산하의 4개 위원회는 공동으로 ‘제19대 대선정책 공약을 위한 한국 가톨릭교회의 질의서’를 대선 후보들에게 보냈고, 그 결과를 전산망과 주보 등의 지면에 게재하기로 했다. 어떤 후보가 자신의 마음에 더 드는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어떤 후보가 ‘교회를 통하여 현대인들 안에 울려 퍼지는 복음’인 가톨릭 사회 교리의 가르침에 더 부합하는 공약을 말하고 그것에 대한 실행 의지가 있는지를 따져보자. 자신에게 좀 더 이익을 가져다줄 이보다는, 평화를 위해 일하려는 이, 피조물과 사람들, 특히 가난한 이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이가 누구인지 복음의 영으로 식별해 보자.

 

“정치권력은 모든 사람들의 권리, 특별히 가정과 불행한 사람들의 권리를 존중하면서 인간적으로 정의가 실현되도록 하여야 한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2237항).

 

* 김유정 유스티노 - 대전교구 신부. 대전가톨릭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총무도 맡고 있다.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영성신학을,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사제 양성을 공부하였다.

 

[경향잡지, 2017년 5월호, 김유정 유스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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