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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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그륀 신부의 계절 편지: 분노 다스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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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4-25 ㅣ No.931

[그륀 신부의 계절 편지] 분노 다스리기

 

 

지난 2월 대만에서 ‘감정의 변화’라는 주제로 여러 차례 강연을 했습니다. 동양 사람들은 감정을 중요한 주제로 여기지 않습니다.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대만 강연에서 보인 청중의 반응은 동양 사람들 역시 감정을 잘 다루려고 애쓴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습니다. 감정을 맘껏 펼치며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감정을 억압하기만 해서도 안 됩니다. 그러면 감정은 해소할 분출구를 찾기 마련이니까요. 몸이 아프거나 우리가 원하지 않은 때와 장소에서 그 감정이 올라옵니다.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분노를 예로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우리는 간혹 동료들과 삐걱거리는 상황에서 화를 내곤합니다. 고대 수도승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 돌연 떠오르는 감정에 책임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우리 책임입니다.’ 내 안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막을 길은 없습니다. 하루 종일 혼잣말을 하면서 분노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 것인지, 아니면 분노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인지는 자신에게 달렸습니다. 모든 감정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분노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저는 분노에서 세 가지 의미를 발견합니다.

 

첫째, 분노는 다른 이가 나의 경계를 넘어 들어왔다는 신호입니다. 분노는 그와 거리를 두라고 신호를 보냅니다. 내게 상처 준 그에게 내 안의 공간을 허락하지 말라는 신호이지요. 날마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기가 무섭게 남편에게 직장 상사의 험담을 늘어놓는 분을 만났습니다. 제가 충고했지요. “그 상사를 출입 금지시키세요. 상사가 중요한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녀가 매일 당신네 저녁식사를 방해하게 놔두지 마세요. 출입 금지란 우리 집에서는 더 이상 그 상사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는 결심입니다. 우리 집은 우리 거니까요.”

 

둘째, 분노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일을 보여 줍니다. 어떤 일은 착착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럴 때 생기는 분노는 그 사안을 잘 다루고, 더 조화롭게 진행시켜 나가라는 자극제입니다. 공동체에서 어떤 일이 잘못 진행되어 화가 나면 대화가 필요하다는 신호라고 여기십시오. 이때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을 대화로 초대하면 일이 한결 투명하고 매끄럽게 진척됩니다.

 

셋째, 분노는 때로 내 안의 예민한 부분을 보여 줍니다.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면 흥분하지 않는다.” 항상 자신을 중심에 두려는 사람을 보면 화가 납니다. 왜 그런지 우리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압니다. 이런 사람은 우리에게 자기를 우선순위로 두려는 갈망을 드러냅니다. 우리도 같은 갈망을 가지고 있지만 억압했을 겁니다. 다른 이는 그것을 펼쳐 내는데 우리는 그것을 보고 갈망을 억누르는 덮개를 벗겨 버리지 않고 오히려 화를 냅니다. 중요한 것은 상처와 갈망을 드러내어 그것과 화해하는 것입니다.

 

분노를 어떻게 변화시킬까요? 저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대화합니다. 분노와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벌써 분노와 거리를 두게 됩니다. 분노가 나에게 말하고 싶어 하는 게 무언지 알아차립니다. 분노를 하느님께 바치는 것도 분노를 변화시키는 다른 방식입니다. 저는 하느님께 제가 느끼는 분노를 보여 드리고, 도저히 분노를 떨쳐 버리지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분의 사랑이 분노를 몰아내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그러면 저는 더 이상 분노를 느끼지 않습니다. 그 대신 분노를 뚫고 내 안으로 흘러 들어 온 하느님의 사랑을 느낍니다. 수도승 전통에서 예수 기도는 분노를 변화시키는 좋은 방법입니다. 분노와 대면할 때면 저는 이렇게 되뇝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드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이 기도를 15분 정도 반복하면 분노가 가라앉습니다.

 

문제는 자신의 감정을 너무 늦게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분노가 폭발했을 때라야 분노를 진지하게 받아들입니다. 많은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른다고 저에게 털어 놓습니다. 그러지 않으려고 갖은 시도를 했지만 도움이 되지 못한답니다. 의지만 가지고는 분노가 폭발하지 않도록 막지 못합니다. 오히려 상황을 고려해야합니다. ‘분노가 폭발하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지? 이미 화가 나 있었나? 아니면 직장에서 기분 나빴던 일을 집으로 가져왔나? 그 전부터 화가 났거나 뭔가 불만족스러웠나? 아니면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부정적 감정을 아들이나 딸과 사소한 언쟁을 하는 동안에 폭발시켜 버렸나?’ 이러한 자기 성찰은 주의 깊게 감정을 다루며 존중하라고 요구합니다.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잠시 멈추고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면 좋습니다. ‘내 자신과 화해했는가? 직장에서 생긴 갈등에 여전히 매여 있지 않는가’ 직장 문제를 개운하게 털어 버려야 마음 편한 귀가길이 됩니다. 그래야 아이들에게 신경을 더 쓰겠지요.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결코 통제하지 못합니다. 감정을 조심스럽게 다뤄야합니다. 부정적 감정을 긍정 에너지로 바꾸는 방법을 찾아야합니다. 부정적 감정은 긍정 에너지로 변화될 때 자연스럽게 해소되는 법이니까요.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7년 봄호(Vol. 37), 글 안셀름 그륀 신부(성 베네딕도회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 번역 김혜진 글라라(분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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