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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농장동물도 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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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4-05 ㅣ No.1382

[새로봄] 농장동물도 생명입니다

 

 

식탁에는 늘 고기반찬이 있었다. 국이나 찌개도 고기로 국물을 냈다. 어렸을 때는 그저 맛있게 먹기 바빴던 것 같다. 밖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회식은 종종 연기가 피어오르는 고깃집에서 이뤄졌으며 늦은 밤 친구들과 술 한잔이 아쉬울 때는 근처 치킨집을 찾았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이 모든 게 불편해졌다. 동물에 대한 막연한 연민이 먹는 것을 바꾸는 실천으로 연결되기까지는 10년 가까이 걸렸다.

 

육식하지 않게 된 것은, 순전히 인간의 필요로 태어나고 죽임당하는 동물들의 희생이 자본주의 체제와 더불어 아무런 규제 없이 - 설사 그것이 생명을 앗아야 가능한 일일지라도 인간의 수요가 있기만 하다면 공급은 언제나 그에 맞춰 채워질 수 있다는 듯 - 가속화되는 게 옳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동물보호단체 활동가가 된 지금 농장동물의 현실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서면서 더욱 많은 고민이 싹텄다.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동물의 삶과 죽음에 대한 진실은 비단 고기뿐만 아니라 달걀, 우유, 치즈 등 일상 속 모든 축산물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게다가 먹는 것뿐만 아니라 동물의 가죽과 털을 이용한 입는 것, 신는 것, 드는 것, 베는 것, 꾸미는 것 등 생활 속 많은 측면에 동물 착취를 당연시하는 부적절한 상품들이 숨어 있었다. 육식을 끊은 실천이 끝이 아니라 작은 시작에 불과했음이 판명된 순간, 실천적 활동가로서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이 땅의 동물들이 처한 비참한 현실에 비하면 그것이 얼마나 장난 같은 푸념에 불과한 것인지 고개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인간을 위한 축산? 비인간적인 축산 환경!

 

축산업은 ‘인간 동물’이 산업적으로 ‘비인간 동물’을 착취하는 대표적인 분야로 다양한 축산물 공급과 직결된다. 그러나 오늘날 농장동물들이 사는 곳은 차마 ‘농장’이라 부르기조차 민망할 만큼 삭막한 모습이다.

 

햇빛 한 줌, 바람 한 줄기 들지 않는 거대한 차폐시설은 외견상으로도 정말 ‘공장’ 같다. 수익 극대화 원칙에 따라 동물의 습성을 철저히 억제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신체훼손이나 강제 임신 같은 것들이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고 수익구조상 아프면 치료대신 폐기처분당하기 일쑤다.

 

가축 살처분은 이러한 폐기처분의 일환이다. 어떤 가축이 전염병에 걸리면 격리돼 치료받는 것이 아니라, 그 가축과 같은 농장에 있는 동물 모두를 개체별 진단 없이 똑같은 병에 걸린 것으로 기정사실화하여 집단 살처분한다. 집단 살처분의 범위는 발병 농장 반경 500m 이내나, 3km 이내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 현장에서는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인도적 살처분 원칙을 지키지 않고 있으며 동물들은 대부분 아비규환 속에 생매장된다.

 

얼마 전 발생한 조류독감(AI)으로 피해가 가장 컸던 산란계(알낳는 닭)의 경우 무려 32%가 사라졌다. 닭들은 죽기 전 어떤 환경에서 살고 있었을까. 국내 산란계 사육방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케이지’(cage) 사육이다. 철창 케이지 한 칸의 크기는 가로 50cm, 세로 50cm. 이 좁은 케이지 한 칸에 5-6마리나 되는 닭이 들어가 매일매일 달걀을 낳는다.

 

닭 한 마리당 공간을 환산하면 416cm². A4용지(623.7cm²) 크기의 3분의 2밖에 되지 않는다. 날개조차 제대로 펼 수 없다. ‘공장’에는 이러한 케이지들이 종횡으로 연결돼 6-8층까지 겹겹이 쌓여 있다. 이러한 공장형 사육형태를‘배터리 케이지’(battery cage)라고 하는데 농가당 적게는 1만 수에서 10만 수의 닭을 사육한다. 유럽연합은 2012년부터 ‘배터리 케이지’ 사육을 금지했지만, 국내에서는 배터리 케이지가 아닌 곳을 찾기 힘들다.

 

배터리 케이지의 닭들은 만성 스트레스로 건강할 수가 없다. 몸은 항생제의 힘으로 간신히 유지되는데 항생제는 공장식 축산에서 필수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스트레스로 찌든 이 연약한 개체들은 항생제 없이 어떤 바이러스나 세균에도 저항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장식 축산 환경에 있는 닭들은 면역력이 현저히 떨어져 조류독감(AI)과 같은 전염병에 취약하다. 또한 이러한 개체들이 대거 밀집돼 있기에 바이러스 역시 급속히 전파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동물복지에 부합하는 사육환경의 개선 없이는 조류독감(AI)과 같은 가축전염병 문제를 해소할 수 없다.

 

개탄스러운 것은 정부의 정책 방향이다. 정부는 해마다 거의 상시적으로 발발하는 조류독감(AI) 및 구제역 등 가축전염병 방역에계속 실패하고 있다. 방역은 축산 정책의 근본적 전환 없이 농가 중심의 대량 살처분에만 의존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앙정부는 이렇게 많은 생명을 죽이고도 여전히 정책 방향을 잡지 못한 채, 현재 99%에 달하는 공장식 축산을 동물복지 농장으로 전환하는 작업에 머뭇거리고 있다. 축산 규모와 기조를 수정하지 않고도 더욱 대대적인 현대화와 기계화로써 조류독감(AI)과 같은 가축전염병을 차단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 때문이다.

 

 

공장식 축산에서 동물복지로

 

동물들은 대량생산 지향 속에 더 빨리 살찌워지고 더 일찍 도축되고 있다. 닭의 자연수명은 20-30년이지만 산란계는 1년 4개월 정도면 생산성이 떨어져 도축된다. 고기를 얻기 위해 사육되는 육계는 태어난 지 35일 만에 도축된다.

 

돼지의 자연수명은 15-20년 정도다. 하지만 고기를 위한 수퇘지는 어릴 때 거세당하고 꼬리를 잘리며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도축장으로 보내진다. 번식용 암퇘지의 경우 태어난 지 7개월이 되면 임신을 할 수 있는데 이때부터 좌우로 몸도 돌릴 수 없는 ‘스톨’에 갇혀 인공수정과 출산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다 생후 3-4년이 지나 번식력이 퇴화할 무렵 도축된다.

 

‘스톨’이란 어미돼지를 가둬 두는 폭 60cm, 길이 200cm의 쇠로 된 감금 틀인데 유럽연합은 동물복지 저해를 이유로 2013년부터 스톨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한편 소는 30-40년을 살지만, 고기용 소는 실제 2-3년, 젖소는 5-6년이면 도축되고 만다.

 

우리나라의 1인당 육류소비량(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 기준)은 1975년 6.4kg, 1995년 27.4kg을 거쳐 2013년 42.7kg까지 증가했다. 반복되는 가축 살처분 사태에도 육식은 한국 사회에서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치부된다. 반면 채식은 여전히 특이한 소수의 선택적인 돌출행동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채식하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왜’라는 질문이 따라다닌다.

 

2015년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에서는 《왜 우리는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의 저자인 사회심리학자 멜라니 조이(Melanie Joy)를 초청해 ‘육식주의 매트릭스 깨뜨리기’ 대담과 ‘소박한 채식밥상’ 등 일련의 프로그램을 기획·진행했다. 멜라니 조이는 채식 대신 오히려 ‘육식’에 대해 ‘왜’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리고 채식이라는 말 대신 은둔해 있는 ‘육식’, ‘육식주의’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사용할 것을 권했다.

 

조류독감(AI) 사태로 전국의 알 낳는 닭 32%가 사라졌는데도 우리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매일 똑같이 달걀을 먹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달걀 수요를 줄이려는 노력부터 해야 할 터인데 오히려 배터리 케이지에서 대량생산된 미국산 달걀을 부족한 분량만큼 그대로 수입해 왔다. 마치 공장식 축산과 조류독감(AI) 사태는 아무 관계도 없으며, 먹거리를 비롯한 우리의 생활방식은 조금도 변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는 공장식 축산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시민소송, 공장식 축산의 상징인 배터리 케이지와 스톨 폐지를 위한 서명운동 등을 전개하고 있다. 동물 학대 없는 음식 만들기 캠페인을 벌이며 공장식 축산방식을 동물복지로 전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제라도 진정한 변화가 시작되었으면 한다.

 

* 김현지 팀장은 시민사회 활동가로 성균관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환경운동연합 캠페이너,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연구원 등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소속으로 농장동물 캠페인과 더불어 정책팀 팀장 역할을 맡고 있다.

 

[성서와함께, 2017년 3월호,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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