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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터를 찾아: 가톨릭목공예 - 내가 만든 성물로 신앙유산을 대물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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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3-17 ㅣ No.74

[배움터를 찾아] 가톨릭목공예


내가 만든 성물로 신앙유산을 대물림한다

 

 

“태풍에 무너진 담을 세우려 목수를 불렀다. 나이가 많은 목수였다. 일이 굼떴다. 답답해서 일은 어떻게 하나 지켜보는데 그는 손으로 오래도록 나무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못 하나를 박았다. 늙은 목수는 자신의 온기가 나무에 따뜻하게 전해진 다음 그 자리에 차가운 쇠못을 박았다. 그때 목수의 손이 경전처럼 읽혔다. 아하, 그래서 木手(목수)구나. 생각해 보니 나자렛의 그 사내도 목수였다. 나무는 가장 편안한 소리로 제 몸에 긴 쇠못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정일근의 시‘  목수의 손’)

 

시를 읊듯 나무의 결을 어루만지고, 나무의 냄새를 맡으며, 나무의 색을 바라보고, 나무의 굽이에 감탄하며 나무를 다루는 일을 업으로 하는 목수. 그래서 목수는 겸허히 고독을 견디는 한 그루 나무를 닮았다. 목수처럼 느긋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나무를 다듬어 성물을 만드는 이들, 서울대교구 ‘가톨릭목공예’ 사람들을 만났다.

 

 

나무 조각으로 신앙선조의 삶을 표현한다

 

“수백 년을 살아온 생명력에서 하느님에 대한 경외가 묻어나는 나무는 우리 조상들이 애용하던 소재입니다. 잘만 보관하면 천 년 넘게 소장할 수 있지요. 그만큼 나무로 만든 성물은 자손 대대로 물려줄 수도 있습니다.” 장재덕 바실리오 회장의 말처럼 가톨릭목공예는 ‘내가 만든 성물로 신앙유산을 대물림한다.’는 정신을 바탕으로 나무를 이용한 성물을 제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가톨릭교회에서 목공예는 그리 대중화된 편은 아니다. 그래서 본당이나 성물 판매소에 있는 성모상이나 십자고상은 금속이나 석고로 제작된 작품이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나무로 조각한 성물은 초대교회 때부터 즐겨 쓰였다. 예수님 시대에는 나무로 가구와 농기구 등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들었고, 심지어 예수님께서도 아버지 요셉에게 목공을 배우셨을 것이다.

 

가톨릭목공예 회원들은 나무를 소재로 성물을 만들고 이러한 환경친화적 성물을 보급하고 확산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성물은 재료와 표현, 내용에 이르기까지 거룩한 물건이기에 생태환경을 해치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신앙심과 기도가 바탕이 되어야

 

지난 2월 7일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92-8번지에 자리한 지하 30여 평의 작업실을 찾았다. 조용히 조각에 몰두하는 회원들, 음악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지만 고요하고 적막한 느낌이다. 예수님상이나 성가정상을 조각하는 이도 있고, 그림을 보고 나무에 스케치하는 이도 있다. 조각칼을 가는 이도 보인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성물을 만드는 과정, 나무를 잘라 깎고 쪼아서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은 흡사 하느님의 창조과정을 연상시킨다. 회원들의 손에 쥐어진 조각칼이 호흡을 맞추며 사랑과 정성으로 깎고 다듬는 과정을 통해 나무는 새 생명을 얻는다. 그래서 목수는 죽은 나무에 두 번째 생명을 주는 이라고, 목공예는 구도와 닮았다고 한 것일까?

 

“‘성물’은 교회의 거룩하고 성스러운 사건을 묵상과 기도 안에서 재현한 형상입니다. 기도와 묵상을 통해 생겨난 마음을 조각으로 구체화하면 정신이 그 속에 투영되어 창작자에게는 애착을 느끼게 하고 보는 이에게는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성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장재덕 회장은 “나무라는 재료 속에 깃든 신앙의 역사를 찾아 들어가 나무를 깎고 쪼아내는 작업은 신앙심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보라 사비나 씨(서울 서교동본당)도 “성물 조각은 기도에 기반을 두어야 하며, 내 안에 하느님을 채우기 위해 나를 비우는 숭고한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무의 물성을 이해하는 것부터

 

가톨릭목공예의 시발점은 2007년 서울 청담동성당에서 열린 제1회 가톨릭 목공예 작품 전시회를 마치면서다. 전시회를 통해 깊은 인상을 받은 교우들의 요구로 목공예 문화교실이 청담동본당에 처음 개설되었다. 그 뒤로 취미반과 전문 과정을 꾸준히 운영했고 2011년 1월에는 서울대교구 평신도 단체로 인준도 받았다. 그동안 회원 작품 전시회도 하고 어린이 목공교실도 열었다.

 

지금까지 목공예 수업을 들은 이는 400명 남짓, 그 가운데 현재 20명 정도가 작업실을 이용한다. 주 3회 참여하는 평생 회원은 13명, 주 1회 작업을 하는 일반 회원은 7명이다. 언제든지 입회가 가능하고, 처음 접하는 이들도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다.

 

회원이 되면 ‘나무를 조각하는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고 게을리한다.’는 조각칼을 사포에 가는 일부터 시작한다. 날 각도와 숫돌 평면이 완전히 밀착이 되도록 반복해 갈고, 손이 칼을 기억하게 한다. 세속적 인내의 한계를 체험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조각칼 갈기가 끝나면 평면과 경사면 조각부터 시작해 인체의 얼굴을 만드는 기초가 되는 환조, 곧 구를 조각하는 과정으로 넘어가고 그런 다음에야 식물이나 꽃을 조각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기초과정이다.

 

심화과정에서는 성화와 성상, 인체의 조형을 표현하고 십자고상이나 성모상을 조각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평면 그림을 입체감 있게 읽는 교육도 받는데 여기까지 6개월가량 걸린다.

 

“나무도 사람의 근육과 같아 칼을 잘 받아들이는 결이 있고, 칼을 거부하는 결도 있어요. 저항감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아파하는 모습이 그대로 느껴져요. 그런 나무의 물성을 이해해야 비로소 조각을 할 수 있지요.”

 

 

성물 조각은 인내가 필요하다

 

해마다 목공예를 배우겠다며 문을 두드리는 이는 백여 명, 이들 가운데 끝까지 남는 이는 얼마 되지 않는다. 빨리빨리 결과를 내는 문화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오랜 시간 꾸준히 해야 하는 목공예를 느리고 답답하게 느낀다.

 

성물 조각은 하나에서 열까지 인내를 요구하는 작업이다. 느린 활동과 기다림의 시간과 하느님의 지혜가 어우러져야 마침내 무형의 나무 덩어리는 하나의 작품이 된다. 그런데 서둘러 기교만 배우고 빨리 끝을 보려는 마음가짐이 기초를 다 배우기도 전에 그만두게 만든다.

 

“종이도 잘라지지 않는 칼을 가지고 조각하겠다는 욕심이 딜레마를 낳고 불만 어린 표정으로 칼을 탓하게 되고 쉽게 그만두는 이유가 되기도 하죠.”

 

지상석 바오로 씨(서울 신정동본당)는 “느긋하게 기다려야 한다는 걸 깨닫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고 고백했다. “요즘은 일주일에 하루만 조각도를 잡아요. 성물 조각은 자신과의 싸움 같아요.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성취감은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에요.”

 

직업적인 성물 조각가가 아니라 신앙의 깊이만큼 깨달음을 주십사고 기도한다는 김철웅 베드로 씨(서울 가락동본당)도 마찬가지다. “결과물을 빨리 보고 싶어서 날마다 조각을 했어요. 빨리 만드는 게 대수라고 생각했죠.” 그이는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의 속도에 몸과 마음을 맡기지 말고 자연의 속도에 맞춰 더디 가더라도 오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위로와 용서를 받는다

 

나무 조각의 장점은 나무를 계속 만지면서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목공예를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되고 나무의 향을 맡으면 저절로 ‘힐링’이 된다. 스트레스도 날아가고 기분도 좋아진다.

 

회원들은 “나무의 물성과 대화하다 보면 배울 게 많다.”고 말한다. “조각도 한 번 스칠 때마다 위로와 용서를 받는다.”는 이도 있고 나무 조각을 하면서 정신적 황폐함을 극복했다는 이도 있다.

 

교육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고민이 많았다는 김보라 씨는 강좌를 들은 뒤부터 자신을 힘들게 했던 고민이 사라졌다고 한다. “성물 조각을 하면서 아픔도 슬픔도 시름도 화도 모두 사라졌어요.” 그이는 자신도 행복하고 사람들에게 감동도 줄 수 있겠다 싶어 아예 일을 그만두고 성물 조각을 하는 나무 조각가를 평생 직업으로 선택할 용기까지 얻었다.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회원 가운데는 세 시간 수업을 위해 수도권은 물론 대전이나 춘천에서 오는 이도 있다. 직장에 다니는 이들은 일을 마치고 저녁 시간에 서둘러 작업실을 찾는다.

 

교사들이 많은데 방학 중에만 집중적으로 수업에 참여한다. 교사 박보연 레지나 씨(경기도 동탄시)도 그 가운데 하나다.

 

“예수님상을 조각할 때는 그냥 나무를 깎는 게 아니라 예수님의 고통을 느끼면서 작업을 해요. 영성체할 때 하느님과 친교하는 걸 조각할 때도 느껴요. 칼을 잘 다루진 못해도 나무를 만지고 조각하고 기도하는 순간이 행복합니다. 하느님과 만나며 침묵하는 시간이 좋아요.” 그이는 “나무 조각은 삶에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시어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러자 그들은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마태 13,54-55)

 

목수는 요셉 성인이다. 요셉 성인은 어긋난 것은 맞추고, 흔들리는 것은 굳게 했으며 부족한 것은 새로 만들면서 세상을 살맛 나게 하는 ‘사랑의 목수’로 살았다.

 

3월, 성 요셉 성월이다. 요셉 성인을 따라 목공예로 나만의 성물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가?

 

* 문의 : 가톨릭목공예 카페(http://cafe.naver.com/cmc04)

 

[경향잡지, 2017년 3월호, 글 · 사진 김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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