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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과학과 신앙: 하느님은 위대한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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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2-20 ㅣ No.306

[과학과 신앙] 하느님은 위대한 과학자

 

 

자기조립의 개념

 

과학연구 분야에서 최근 가장 화두가 되는 용어 가운데 하나는 바로 ‘자기조립’이란 개념입니다. ‘무질서하게 존재하던 기존의 구성요소들이 외부의 지시 없이 구성요소 간의 상호작용 때문에 자발적으로 조직적인 구조나 형태를 형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외부의 힘을 빌려 사람들을 억지로 모이게 하면 그 모임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오합지졸이 됩니다. 하지만 친구들끼리 사이좋게 힘을 합쳐 자발적으로 한자리에 모이게 되면, 없던 힘도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조립이라는 과학적 개념입니다.

 

자기조립 개념에서 이 자발성은 매우 중요한 전제가 됩니다. 올해 노벨 화학상을 받은 ‘분자 기계’란 개념도 이 자기조립 개념을 이용하여 분자 차원에서 움직일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기계를 고안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입니다.

 

네덜란드의 판화가인 에스허르(1898-1972년)의 작품을 본 적이 있으신지요? 물고기나 새 등을 반복적으로 대칭 배열하여 전체 틀을 구성한 초현실주의적인 작품이 그의 특성입니다. 그의 작품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거시세계의 예술품입니다만, 자기조립에 따른 최종 구조체의 아름다움도 그와 유사합니다.

 

나노 화학자들은 자기조립을 이용해 나노 세계에 이런 아름다운 구조체를 만드는 일을 합니다. 나노 세계란 10-9m 크기의 세계입니다. 곧 1m의 1억분의 1만큼 작은 크기가 나노미터(nm)단위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머리카락 10만분의 1 크기입니다. 이 나노 세계에 아름다운 구조체를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그 작은 크기로 아름다운 구조체를 왜 만드는지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름다움만 추구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작은 아름다운 구조체를 만들수록 그 기능은 놀라울 정도로 향상됩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모양이 기능이다.’라는 격언을 즐겨 사용합니다.

 

 

모양이 기능이다

 

화학적으로 같은 재료이지만, 그 기능은 상상을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힘을 발휘합니다. 이른바 ‘양자효과’ 때문입니다. 크기가 10나노미터 이상에서는 뉴턴의 고전역학으로 계산할 수 있지만, 이보다 더 작은 크기가 되면 고전역학이 더는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양자역학으로만 모든 물리적인 계산이 가능하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표면 대 부피의 비율이 증가하고 열에너지의 움직임이 비약적으로 활발하게 되어 고전역학의 세계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새로운 기능들이 발현되게 됩니다. 그래서 꿈의 신소재가 날마다 새롭게 탄생하게 되는 것이지요.

 

창세기의 말씀처럼 생명체를 보면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1,10-31 참조)라는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올 만큼 놀라운 모습이 많이 발견됩니다. 생명체를 구성하는 단백질이나 유전자는 물론이거니와 생명체를 구성하는 물질 하나하나의 모습에 비친 창조 질서의 아름다움은 놀라움 그 자체입니다. 특히 생명체를 구성하는 모든 물질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다 보면 어떤 생물체든, 자체 검사와 자체 교정 기능이 있어 최종적으로는 화학적으로 가장 안정한 생성물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 모든 기능이 모두 자발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신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절로 ‘하느님 찬미!’ 하고 노래하게 됩니다. 과학자들은 그런 생명체의 비밀을 조금씩 알아내어 우리에게 알려주는 역할만을 담당할 뿐입니다.

 

인공적으로 자기조립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연에서 볼 수 있는 그 아름다움의 비밀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인류에게 유용한 기능을 발현하도록 하려는 이유입니다. 많은 과학자가 자기조립을 응용하여 신물질을 만들고자 합니다. 그중에서도 화학 분야에서 자기조립을 이용하여 신물질을 만들고 그 응용분야를 확장하는 연구 분야를 나노 화학이라 부릅니다.

 

나노 화학 분야도 워낙 넓고 다양해서 모든 나노 화학을 일일이 설명하기엔 제 힘이 부칩니다. 따라서 제가 전공하는 나노 벌집을 통해 나노 화학, 자기조립, 기능 등의 예를 되도록 알기 쉽게 설명하고자 합니다.

 

 

나노 벌집

 

모리츠 코르넬리위스 에스허르의 Circle Limit III(1959년). 

 

 

정육각형으로 이루어진 벌집을 보신 분이 많을 것입니다. 벌집의 구멍 하나하나는 대개 손톱 또는 그보다 작은 크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다른 모양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아름다운 정육각형의 모양을 이루는 모습이 참 매력적입니다. 잘 알다시피 벌들이 꿀을 가장 많이 담을 수 있는 도형이 바로 정육각형이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고대 그리스의 기하학자였던 파포스의 이름을 딴 파포스의 정리입니다.

 

꿀벌은, 인간처럼 생각하지 않더라도 본능 자체로 위대한 수학자인 셈입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손톱 크기의 이 벌집 구멍 하나하나의 크기를 나노미터 크기로 만들 수만 있다면, 그것도 자기조립으로 가능하게 한다면, 훨씬 더 많은 꿀을 담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 기초가 되는 것이 바로 나노 벌집 만들기입니다. 중학교 시절부터 배워 알고 있듯이 비누 또는 세제는 물을 좋아하는 분자 머리와 물을 싫어하고 기름을 좋아하는 꼬리 분자로 되어 있습니다. 물속의 빨래에다 비누나 세제를 풀어 넣으면, 비누나 세제의 분자 속에 있는 머리 분자는 물로 향하려고 하고, 꼬리 분자는 기름때를 향해 가려고 합니다. 그러면 자동으로 비누나 세제 분자의 모습은 동그랗게 배열하게 됩니다. 이를 미셀이라고 부릅니다. 미셀 속에서 기름때가 고립되게 되고 탈수를 하게 되면 빨래에 있던 찌든 기름때는 다 깨끗이 씻겨나가게 되는 것이지요. 세탁의 원리입니다.

 

미셀 하나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겨우 세탁 정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물속에 이런 미셀들의 농도가 증가하게 되면 미셀들끼리는 자발적으로 모여서 어떤 일정한 모양을 만들게 됩니다. 미셀을 이루는 분자들끼리 밀고 당기는 힘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물속에 실리카 같은 무기물을 집어넣으면, 미셀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특수한 모양의 구조체를 둘러싸게 됩니다. 그런 다음 온도를 올려서 태우면 비누나 세제가 만든 미셀은 온도에 약하기 때문에 다 타서 없어지고, 바깥을 둘러싼 무기물 뼈대만 남게 됩니다. 그러면 구멍이 뚫린 무기물의 그물망으로 이루어진 벌집을 얻게 됩니다.

 

벌집.

 

 

그 미셀이 나노미터 단위의 크기이기 때문에 여기서 만들어진 벌집은 그야말로 나노 벌집입니다. 이 나노 벌집 속에 1억 개의 발광체를 집어넣으면 ‘스타워즈’란 영화에 나오는 광선 검보다 1억 배 센 고출력 레이저가 탄생하게 됩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만일 정상 세포는 죽이지 않고 암세포만 골라서 죽이는 나노 미사일 같은 약이 발명된다면 암은 치료가 완전히 가능한 질병이 될 것입니다. 나노 벌집을 만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나노 벌집 속에 필요한 항암제 약물을 집어넣으면, 그 크기가 워낙 작아서 정상 세포는 건드리지 않고 암세포만 골라서 죽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서 항암 효과는 1억 배가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나노 화학은 인류에게 매우 유용한(좋은)기술을 제공합니다. 나노 화학과 자기조립에서 중요한 핵심 단어들을 고리로 연결하면, 무리를 이루다 ? 자발적 ? 조직 - 좋은 것이 됩니다.

 

 

위대한 과학자이신 하느님

 

이 글을 쓰면서, 위의 핵심단어들과 관련된 몇 가지 중요한 성경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루카 6,17).

 

“이 일에 관하여 여러분에게 한 가지 충고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여러분에게 유익합니다. 여러분이 작년부터 이미 실천하기 시작하였고 또 스스로 원하여 시작한 것이니, 이제 그 일을 마무리 지으십시오. 자발적 열의에 어울리게 여러분의 형편에 따라 그 일을 마무리 지으십시오”(2코린 8,10-11).

 

“마카베오가 군대를 조직하자마자 이민족들이 그를 당해내지 못하게 되었으니, 백성에 대한 주님의 분노가 자비로 바뀐 것이다”(2마카 8,5).

 

“아무도 다른 이에게 악을 악으로 갚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서로에게 좋고 또 모든 사람에게 좋은 것을 늘 추구하십시오”(1테살 5,15).

 

먼저, 첫 번째 말씀에서 제자들이 모이고 군중이 모이게 된 연유는 두말할 나위 없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권위가 깃든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그 많은 사람이 무리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말씀에서 우리에게 유익한 하느님의 사업에 참여하려면 무엇보다 자발적인 열의가 중요하다는 점을 배우게 됩니다. 세 번째 말씀에서 우리는 조직의 힘을 깨닫습니다. 혼자서는 힘을 쓰지 못하지만, 조직적인 힘 앞에서는 이민족들도 당해내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우리가 추구하여야 하는 것은 늘 서로에게 좋을 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좋은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 네 가지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예수님의 권위 아래 자발적으로 모인 우리 교회조직을 통하여 이웃에게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이야말로 신앙이 의미하는 자기조립의 정확한 개념 정리라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홀로 신앙보다, 교회 활동을 통해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할 기회가 더욱 많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신앙인의 자발적 참여가 이웃에게 좋은 것을 주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성경 말씀은, 현대 나노 과학기술이 태동하기 수천 년 전부터 자기조립의 중요성을 미리 계시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정말 위대한 과학자이십니다.

 

* 한 해 동안 ‘과학과 신앙’을 집필해 주신 하창식 교수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 하창식 프란치스코 - 부산대학교 고분자공학과 교수. 부산가톨릭문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호주 퀸즐랜드대학교 명예교수, 한국접착 및 계면학회 회장, 부산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회장 등을 지냈다.

 

[경향잡지, 2016년 12월호, 하창식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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