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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 그리스도교 수도생활의 맥: 동 · 서방의 가교, 요한 카시아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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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4-13 ㅣ No.459

[그리스도교 수도생활의 맥] 동 · 서방의 가교, 요한 카시아누스

 

 

다소 발음하기 민망한 ‘병신년’ 새해가 밝은 지도 두 달이 지났다. 벌써 한 해의 1/6이 지났다고 생각하니 세월의 빠름을 더욱 실감한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잠시 멈추고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17세기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려고 한다. 작년 봄 호부터 우리는 고대 수도교부들과 함께 그리스도교 수도생활의 맥을 짚어 나가고 있다. 이번 호에 소개하는 교부는 특별한 이력을 지닌 인물로 동방과 서방의 가교 역할을 했던 요한 카시아누스(356년경-435년)이다. 그는 동방 수도승 전통을 서방에 전달하는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삶의 여정

 

요한 카시아누스는 356년 경 오늘날의 루마니아에서 태어났다. 당시 루마니아는 동로마 제국과 서로마 제국이 걸쳐 있던 지역으로 라틴어와 그리스어가 공용어로 쓰였다. 라틴 세계와 그리스 세계 모두에 속해 있었던 카시아누스는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능통했다. 이러한 특별한 배경은 그가 동방과 서방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카시아누스는 십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친구 게르마누스와 함께 고향을 떠나 파란만장한 삶의 여정에 들어선다. 그들은 먼저 팔레스티나로 가서 베들레헴 수도원에서 수도승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다 이집트 수도승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장상에게 이집트로 여행을 가겠다고 허락을 청한다. 당시 이집트는 한창 피어나고 있는 수도승 생활의 성지와도 같아 더 깊은 내적 갈망을 지닌 사람들이 이집트로 몰려들었다. 집요한 청으로 장상에게 2년간의 말미를 얻은 그들은 이집트 전역을 여행하며 이집트의 매력에 깊이 빠져든다. 카시아누스는 『담화집』에서 자신이 이집트로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완덕 추구를 위한 영적 동기에서 비롯되었다고 밝힌다. 약속한 2년이 지났는데도 그들은 돌아갈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한 원로에게 조언을 구하여 약속을 지키는 것보다 이집트에 머무는 것이 더 좋다는 확신을 얻고 10년을 더 머문다(『담화집』 17참조).

 

이집트에서의 체험은 훗날 서방에 동방 수도승 영성의 꽃을 피우는 밑거름이 된다. 카시아누스는 이때 켈리아에서 오리게네스의 노선을 따랐던 에바그리우스를 만나게 되고 에바그리우스의 제자이자 동료가 된다. 그 후 오리게네스 논쟁으로 오리게네스의 노선을 따랐던 수도승들이 켈리아에서 추방될 때 카시아누스도 그들과 운명을 함께 한다. 399년, 그들은 콘스탄티노플로 가서 요한 크리소스토무스의 보호를 받게 된다. 카시아누스는 거기서 부제로 서품되고, 요한 크리소스토무스가 유배를 가게 되자 이 불의한 사정을 알리러 로마로 파견된다. 로마에서 안티오키아로 갔다가 다시 로마로 파견된다. 안티오키아에서 뜻하지 않은 일을 당하는데, 총대주교가 그를 사제로 서품한 것이다. 이런 체험에서 “수도승은 여성과 주교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야 한다.”(『제도서』 11,18)는 그 유명한 구절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카시아누스 여정의 종착점은 갈리아다. 언제, 무슨 이유로 갈리아로 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어느 날 그는 배를 타고 마르세유에 도착한다. 이 일은 서방 수도승 생활의 역사에서 결정적 전환점이 된다. 당시 갈리아에도 수도승 생활을 위한 시도들이 여럿 있었지만 뚜렷한 방향을 못 찾고 있던 상태였다. 이때 카시아누스의 출현은 획기적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수도승 생활의 성지로 간주되었던 이집트에서 직접 수도승 생활을 했고 다양한 체험을 통해 수도승 생활의 본질과 목표를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시아누스는 지역 주교의 요청에 따라 『제도서』와 『담화집』을 저술하는데, 이 두 작품은 동방 수도승 생활과 영성을 서방에 전해주고 꽃피운 대표작이다.

 

 

불후의 명작

 

카시아누스는 421년 경 『제도서』를, 426년 경 『담화집』을 저술했다. 갈리아 수도승들에게 이집트에서 자신이 체험한 바와 사막 교부들의 가르침을 전달함으로써 도움을 주려는 의도에서였다. 이 두 작품은 단일 작품처럼 계획되었는데, 수행을 통해 관상으로 나아가는 전통적 가르침에 부합한다. 총 12권으로 된 『제도서』는 주로 외적 인간의 양성을 위한 수행 생활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제1권에서 4권까지는 수도원의 제도에 대해서, 그리고 제5권에서 12권까지는 수행 생활의 구체적 내용인 여덟 가지 악습을 차례로 다루고 있다. 반면 24개의 담화로 구성된 『담화집』은 관상과 더욱 진보한 영성생활의 단계와 관련된 내적 인간의 양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담화집』은 크게 3부분, 즉 담화 1-10, 담화 11-17, 담화 18-24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부분은 서언으로 시작된다. 특히 제1부 서언에서 수행생활과 관상생활의 개념이 야곱과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통해서 상징적으로 언급된다. 카시아누스는 야곱을 수행생활로, 이스라엘을 관상생활로 해석하는 이전 수도승 전통에 따라 외적 생활과 내적 생활의 개념을 설명한다. 담화 9와 담화 10에서는 기도에 대한 사막 교부들의 전통적 가르침을 전한다. 카시아누스는 자기 작품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상투적인 표현을 즐겨 사용했는데, 곧 “이집트에서 이렇게 한다. 이집트는 수도승 생활의 발상지이다.”라는 구절이다. 이처럼 이집트 사막교부들의 삶과 가르침을 전하는 카시아누스의 이 두 작품을 통해 서방 수도승 생활은 참된 방향을 잡고 본격적으로 꽃을 피워나가게 된다. 성 베네딕도 역시 카시아누스의 이 작품들을 읽었다. 그는 이 작품들 안에서 에바그리우스가 종합한 사막 교부들의 풍부한 영적 가르침을 통찰했다. 그래서 베네딕도의 수도 규칙은 카시아누스의 작품들을 읽도록 권고하고 있다(성규 42,3.5; 73,5 참조). 카시아누스의 작품은 서방 수도승 생활의 길을 준비했고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교 영성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가르침

 

『제도서』와 『담화집』에 나타난 카시아누스의 가르침의 핵심은 내적 생활의 발전이다. 이는 초기 수도교부들의 주된 관심사이기도 하다. 내적 생활에서 어떻게 진보할 수 있는가가 초미의 관심사이자 화두였는데, 카시아누스의 가르침은 이에 대한 나름의 종합이라 하겠다.

 

카시아누스는 『담화집』을 시작하면서 먼저 수도승 생활의 궁극 목표(telos)와 직접 목적(scopos)을 구분한다. 우리가 이 생활을 하는 궁극 목표는 ‘하느님 나라’이고, 이 목표에 이르기 위한 직접 목적은 ‘마음의 순결’ 혹은 ‘애덕’이라는 것이다(『담화집』 1,4 참조). 우리는 순수한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고 하느님 나라에 도달할 수 있다. 이것은 카시아누스가 생각하는 궁극 목표를 잘 요약해주고 있다.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포기’와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 마음의 순결을 얻어야 한다. 포기는 기도를 위한 것이다. 기도 안에서 사랑하는 분과 함께 있으려고 모든 것을 떠나는 것이다.

 

카시아누스에게 수도승은 ‘세상을 포기하는 자’다(『제도서』 4,1). 그는 세 단계의 포기를 이야기한다. “첫째 포기는 현실적으로 이 세상의 모든 부와 재력을 업신여기는 것이다. 둘째 포기는 과거에 가졌던 마음과 육신의 습관과 악행과 감정을 배척하는 것이다. 셋째 포기는 우리 마음이 현세적이고 가시적인 모든 것을 멀리하고 오직 미래의 것을 바라보고 볼 수 없는 것을 열망하는 것이다.”(『담화집』 3,6) 이것을 다른 말로 외적 포기, 내적 포기, 관상적 포기라고 한다. 이러한 포기 없이는 끊임없는 기도도 마음의 순결도 순수한 기도도 하느님과 일치도 하느님 나라도 불가능하다. 오늘날의 수도승들은 포기가 아닌 소유를 통해 목표로 나아가려 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포기는 수도승을 끊임없는 기도로 이끌어준다. 카시아누스는 『담화집』 9-10 담화에서 기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주님의 기도와 시편에 기도의 모든 형태가 요약되어 있다고 말한다. 주님의 기도와 시편이 끊임없는 기도에 이르는 길이니, 수도승은 이것들을 꾸준히 사용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이사악 압바는 시편의 한 구절을 택해서 일상에서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되새기라고 한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하느님, 어서 저를 구하소서. 주님, 어서 저를 도우소서.”(시편 70,2)라는 시편 구절을 제시한다(『담화집』 10,10 참조). 오늘날 시간전례 도입부로 사용되고 있는 이 구절은 바로 카시아누스의 권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일상에서 주님의 기도를 꾸준히 사용하고 시편을 점점 더 내면화 해 나간다면 마음이 정화되어 순수해질 것이다.

 

결국 포기와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 마음의 순결을 얻은 수도승은 순수한 기도로 나아가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고 하느님 나라라는 궁극 목표에 도달한다. 이것이 사막 교부들의 입을 빌어 카시아누스가 우리에게 전한 가르침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카시아누스의 궁극 목표(하느님 나라)와 직접 목표(마음의 순결)는 우리 영성생활(내적 생활)의 두 차원, 즉 관상적 차원과 수행적 차원의 목표에 부합한다. 관상생활은 하느님 나라를, 수행생활은 마음의 순결을 목표로 한다. 수행을 통해 마음의 순결에 이른 자만이 하느님 나라를 차지한다. 자기 수행이 부족한 오늘날 내적 생활에 대한 카시아누스를 위시한 교부들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마무리하며

 

토마스 머튼은 카시아누스가 서방 수도승 생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저술가라고 주장한 바 있다. 카시아누스가 서방 수도승 생활과 영성 발전에 미친 영향을 생각할 때 머튼의 평가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서방 수도승들은 16세기 동안 카시아누스의 가르침에 따라 양성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시아누스는 그리스도교 전통에 굳게 서 있던 수도승 영성의 가장 탁월한 스승이자 그리스도교 영성의 스승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다양하고 풍부한 체험을 바탕으로 동방의 보화를 서방에 전해준 전통의 전달자였으며, 동방과 서방을 이어준 가교였다. 이 공로로 그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화두인 내적 생활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큰 스승으로 간주된다. 새것만을 추구하고 과거와 현재의 올바른 대화가 단절되어가는 오늘날, 동방과 서방을 이어주고 교회의 고귀한 전통을 전달해 준 요한 카시아누스는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오는 교부 중 한 분이다. 독자들이 이 지면으로나마 교회 전통 안에 숨겨진 값진 보화를 맛보게 된다면 원고를 쓰는 필자의 노고에 큰 위로가 될 것이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6년 봄호(Vol. 33), 허성석 로무알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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