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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영성의 뿌리: 프리드리히 클레멘스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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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2-25 ㅣ No.574

[영성의 뿌리] 프리드리히 클레멘스 주교


고통 받는 이들 위한 수도회 창립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를 설립한 프리드리히 클레멘스 주교는 1770년에 출생했다.

1825년부터 1841년까지 독일 파더본의 교구장으로 재임한 그는 산업화의 어두운 면을 직접 목격했다.

파더본은 산업화로 인해 신흥 공업 지대로 급부상했지만 기아와 빈곤, 질병으로 고통 받는 극빈자가 증가했고 빈부 격차도 날로 심화됐다.

병든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병원 사도직의 필요성이 절실했지만, 가톨릭교회가 국가와 개신교로부터 탄압받고 있어 기존에 있던 수도회의 도움을 받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이에 프리드리히 주교는 가난한 병자들을 위한 도립병원을 개축하고, 병원에서 일하던 간호사들 가운데 수도생활을 희망한 엘리사벳 회원을 중심으로 ‘자비의 수녀회’를 설립할 계획을 세웠다.

그는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에게 베푸는 행위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진정한 이웃 사랑으로 다른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을 하는 수도회’를 하느님께서 세워주실 것이라 확신했다.

마침내 그는 국내에서는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로 더 잘 알려진 빈센트 드 뽈(Vincent de Paul) 성인과 루이제 드 마리약(Louise de Marillac) 성녀의 영성과 모범을 따라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주님으로 섬기는 ‘파더본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를 설립했다.

설립일은 수련을 마친 2명의 자매가 파더본으로 돌아와서 질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사도직을 시작한 1841년 3월 25일이다.

프리드리히 주교는 어려운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깊은 통찰력과 지도방법으로 수녀회를 성장시켰고 영적인 조언과 도움을 줬다. 그는 프로이센 황제인 빌헬름 4세로부터 수녀회의 규범 승인 허락을 얻어줌으로써 공식적인 수도회로 승인받게 해주었다.

1841년 8월 30일, 71세로 선종한 주교는 유언장을 통해 ‘건물 기부금’을 위한 많은 재산을 수녀회에 남겨 주도록 했다.

1965월 1월 8일 프리드리히 주교가 설립한 수녀회의 세 명의 수녀가 선교사로 파견돼 한국 땅에 ‘자비의 수녀회’가 시작됐다.

25년간의 성장 끝에 1990년 6월 21일, 한국의 특성에 맞게 새로운 교구립 수도회로 출발한 ‘수원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는 소외 계층을 위한 보다 폭 넓고 다양한 사도직을 전개해 왔다. 그러나 수도회의 본성과 성격, 목적과 고유 정신을 구성하는 수도회의 자산은 프리드리히 주교가 세운 파더본의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로부터 고스란히 물려받아 이어오고 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16년 1월 17일, 
김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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