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 (목)
(백) 부활 제3주간 목요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성경자료

[신약] 예수님 이야기29: 두 비유와 예수님 가족(루카 8,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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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9-03 ㅣ No.3805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 루카복음 중심으로] (29) 두 비유와 예수님 가족(루카 8,4-21)


내 마음속 말씀 씨앗 노력 있을 때 열매 맺어

 

 

-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세와 인내로 열매를 맺으려는 노력이 중요함을 일깨우고 있다. 그림은 빈센트 반 고흐 작 ‘씨 뿌리는 사람’.

 

 

예수님께서는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8,1) 예수님의 소문은 온 지방으로 퍼져나갔고 이제는 사람들이 각 고을에서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예수님께 모여오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와 등불의 비유입니다.(8,4-18) 그러고 나서는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이 ‘내 어머니요 내 형제’라고 하십니다.(8,19-21)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와 설명(8,4-15)

 

루카가 전하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단순합니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발에 짓밟히거나 새들이 먹어 버렸고, 어떤 씨는 바위에 떨어져 물기가 없어 말라 버렸으며, 어떤 씨는 가시덤불에 떨어져 자라면서 숨이 막혀 버렸고,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하고 말씀하셨다”고 루카는 기록합니다.(8,4-8)

 

이 말씀을 들으면 이상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씨 뿌리는 사람은 분명 농부일 것입니다. 그런데 농부가 씨를 뿌릴 때는 비유에 나오는 것처럼 아무렇게나 뿌리지 않습니다. 밭을 갈아서 씨가 잘 자랄 수 있게 해놓고는 이랑에 씨를 뿌리지요. 그런데 비유를 따르면, 농부는 나가서 씨를 그냥 훌훌 뿌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어떤 것은 길가에, 어떤 것은 바위에, 어떤 것은 가시덤불에,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지지요. 

 

이 비유를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것은 당시 이스라엘 농법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습니다. 건기(4월~10월)와 우기(11월~3월)가 뚜렷한 이스라엘에서는 농사를 짓던 밭도 건기가 되면 바짝 말라버립니다. 게다가 사람들이 그 위를 다니면 완전히 길이 돼 버리지요. 우기가 시작되면 농부는 먼저 씨앗을 뿌린 후에 밭을 간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씨가 길가에도, 바위 위에도, 가시덤불에도, 혹은 조금 남아 있는 좋은 땅에도 떨어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당시에 농사짓는 법이 이렇게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이 비유 말씀을 이해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이는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비유의 뜻을 묻지요(8,9). 여기서 제자들이란 다른 누구보다도 예수님과 함께 다닌 열두 제자로 볼 수 있습니다.(8.1 참조)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비유로만 말하였으니, ‘저들이 알아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8,10-11)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는 비유의 뜻을 설명해 주겠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씨는 하느님 말씀이고 길에 떨어진 씨는 말씀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악마가 와서 앗아가는 바람에 믿지 못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다. 바위에 떨어진 씨는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어 시련의 때가 오면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다.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인생 걱정과 재물과 쾌락에 숨이 막혀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는 사람이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해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이다.’(8,11-15)

 

예수님의 설명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 대한 배경과 뜻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우선 씨 뿌리는 사람은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말씀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겠지요. 다양하게 떨어진 씨들은 바로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입니다. 비유의 핵심은 길가에 떨어진 씨나 바위에 떨어진 씨,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가 되지 말고 좋은 땅에 떨어진 씨가 되라는 것입니다.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할 뿐 아니라 인내로써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는 비유의 뜻을 풀이해 주시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유로만 말씀하신 까닭은 무엇일가요? 또 ‘저들이 알아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라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제자들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사명을 수행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도록 해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왜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유로만 말씀하실까요? 여기서 다른 사람들이란 일차적으로 예수님 말씀을 들으러 모인 사람입니다. 말씀을 들으러 왔지만 속마음은 저마다 달랐을 것입니다. 길가에 떨어지고 바위에 떨어지고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앗처럼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과 함께 펼쳐지는 하느님 나라를 보아도 보지 못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저들이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8,10)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을까요? 

 

착하고 바른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며 인내로 가꾸려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백 배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등불의 비유(8,16-18)

 

이어서 말씀하신 등불의 비유 자체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아무도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두지 않고 등경 위에 올려놓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들어오는 사람들이 빛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등불이 어둠을 몰아내고 주변을 환히 밝히듯이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환히 나타날 것입니다.(8,16-17) 

 

그런데 “정녕 가진 자는 더 갖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8,18)라는 말씀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우선 등불을 하느님 말씀 혹은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으로 보면 어떨까요? 하느님 말씀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처럼 잘 받아들여 인내로 가꾸면서 자기 안에 열매를 맺어야 하지만 또한 등불을 켜서 등경 위에 올려놓듯이 하느님 말씀을 널리 선포해야 합니다.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 가르침을 잘 받아들여 자신 안에 열매를 맺는 것은 물론이고 말씀을 널리 선포해야 할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만일 제자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받은 하느님의 말씀마저 놓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참가족(8,19-21)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와 등불의 비유를 이렇게 이해하고 나면, 그 다음 예수님 말씀이 좀 더 명확해집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군중 때문에 더 가까이 갈 수 없게 됐는데, 누가 예수님께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왔다고 알립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8,21) 

 

예수님의 이 말씀은 육친을 가족이 아닌 것처럼 대하라는 말이 절대로 아닐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과 참된 관계를 맺으려는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으로 보아야 한다고 성경학자들은 풀이합니다. 그렇다면 참가족에 관한 예수님의 이 말씀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와 등불의 비유를 마무리하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  말씀을 받아들인 나는 몇 배의 열매를 맺고 있는지요?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지요?

 

-  나는 나의 말과 행동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등경 위에 올려놓고 있는지요? 아니면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9월 3일,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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