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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자료

[신약] 사도행전 이야기20: 스테파노의 순교(사도 7,5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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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6-10 ㅣ No.4697

[이창훈 위원의 사도행전 이야기] (20) 스테파노의 순교(사도 7,54-8,1)


첫 순교자 스테파노, 죽음 앞에서도 박해자 위해 기도하다

 

 

- 첫 순교자 스테파노는 예수님을 본받아 죽어가는 순간에도 자기를 돌로 치는 이들을 용서해 주시도록 기도한다. 그림은 17세기 이탈리아 화가 조반니 안드레아 데 페라리(1598-1669) 작 '스테파노의 순교'.

 

 

“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여, 여러분은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천사들의 지시에 따라 율법을 받고도 그것을 지키지 않았습니다”(7,15-53) 하고 질타하는 스테파노의 말에 최고의회 의원들은 어떻게 반응했고 그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요? 그 이야기를 살펴봅니다.

 

“그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화가 치밀어 스테파노에게 이를 갈았다.”(7,54)

 

사도행전의 저자가 전하는 최고의회 의원들의 반응입니다. “이를 갈았다”는 것은 그만큼 적대감과 분노가 크게 일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들과는 대조적으로 스테파노는 성령이 충만해서 하늘을 바라보니,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예수님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하고 말합니다.(7,55-56) 이 대목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최고의회에서 신문을 받으실 때에 시편 110편 1절의 말씀을 인용해 “이제부터 사람의 아들은 전능하신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을 것”(루카 22,69)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스테파노는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하고 직접 증언합니다. 이로써 스테파노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실제로 이루어졌음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스테파노가 최고의회에 끌려오게 된 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씀을 선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최고의회 곧 산헤드린은 율법과 하느님을 모독한 죄라면 사람을 사형에까지 처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지닌 최고 권력 기구입니다. 그 최고의회 의원들 앞에서 스테파노는 오히려 당당하게 설교하면서 그들을 비판한 데 이어, 율법도 무시하고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그들이 그토록 싫어했던 그 예수님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인다고까지 말합니다.

 

스테파노의 이 말이 최고의회 의원들에게는 이만저만한 신성모독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큰소리를 지르고 귀를 막습니다. 신성모독적인 말을 더는 듣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스테파노에게 달려들어 그를 성 밖으로 몰아내고서는 그에게 돌을 던집니다.( 7,57-58ㄱ)

 

최고의회 의원들이 “일제히 스테파노에게 달려들어 성 밖으로 몰아냈다”는 표현은 예수님께서 공생활 초기에 나자렛 회당에 가셔서 예언자는 자기 고향에서 존경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을 때에 나자렛 주민들이 화가 나서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는 루카 복음 4장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나자렛 주민들은 예수님을 벼랑 아래로 떨어뜨리려고 했으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고 루카는 전합니다.(4,29-30) 그러나 예수님과 달리 스테파노는 사람들이 던지는 돌에 맞습니다.

 

사람들이 돌을 던질 때에 스테파노는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하고 기도합니다.(7,59) “제 목숨을 당신 손에 맡기니”라는 시편 31장 6절을 원용한 이 기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직전에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하고 기도하신 그대로입니다.

 

사도행전 저자는 또 스테파노가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하고 외치고는 잠이 들었다고, 곧 숨을 거뒀다고 표현합니다. 이 역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루카 23,34) 하고 기도하신 것을 상기시킵니다.

 

이렇게 볼 때 첫 순교자 스테파노의 죽음은 여러 면에서 스승이요 주님이신 예수님의 죽음을 본받는 것으로 제시됩니다. 단지 죽음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부활과 승천 그리고 성령 강림으로 연결되면서 사도들의 복음 선포로 이어지듯이, 스테파노의 죽음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로 이어지지만, 이 박해는 오히려 복음이 예루살렘 너머 팔레스타인 전역으로, 그리고 소아시아와 마케도니아, 마침내는 당시 제국 전체로 선포되는 계기로 작용합니다.

 

한편, 복음이 팔레스티나 곧 이스라엘을 넘어 이방인들에게로 선포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이 스테파노의 순교 때에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스테파노에게 돌을 던진 증인들이 겉옷을 벗어 그 발 앞에 둔 사울이라는 젊은이입니다.(7,58) 사도행전 저자 루카는 이 사울이 “스테파노를 죽이는 일에 찬동하고 있었다”(8,1)고 기록합니다. 말하자면 사울은 스테파노가 하느님을 모독한 죄로 돌로 쳐죽임을 당해 마땅하다고 본 것입니다.

 

 

생각해봅시다

 

스테파노의 죽음을 전하는 대목을 살펴보면 예수님의 죽음과 차이 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최고의회의 신문에서 신성모독으로 고발되고 다시 로마 총독에게 사형 선고를 받은 후에 십자가형을 받는 형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적어도 합법적인 절차를 거친 셈이지요.

 

이에 비해 스테파노의 사형은 합법적인 절차에 따르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더욱이 예수님의 재판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던 상황에서 죄인을 사형시킬 합법적인 권한은 로마총독에게 있었습니다.(마태 27,1-2; 요한 18,31 참조) 신성모독의 종교적 죄를 지은 사람에게 최고의회가 사형을 집행할 권한이 있었다 하더라도 사형 집행에는 법적 절차가 있었습니다. 최고의회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은 남자이면 옷을 벗긴 다음에 첫 번째 증인이 높은 곳에서 밀어 떨어뜨립니다. 사형수가 죽지 않으면 두 번째 증인이 돌을 던지고 그래도 죽지 않으면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돌을 던져 죽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스테파노의 죽음에는 이런 절차가 없었습니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라는 스테파노의 말 자체가 용서받지 못할 신성모독이어서였는지, 최고의회 의원들은 “큰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는 스테파노에게 달려들어 끌고 나가서 돌을 던져 죽였습니다. 스테파노의 이런 죽음은 이제 그리스도교 신자들에 대한 박해가 얼마나 심하게 펼쳐질지 예고한다고 하겠습니다.

 

스테파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최고의회 의원들의 이런 태도와 행동은 우리에게 깊은 성찰거리를 안겨줍니다. 최고의회 의원들은 율법에 정통하고 충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자기들이 옳다고 여기는 것에 집착한 나머지 그들의 마음은 완고하게 닫혀 있었습니다. 그 완고함이 결국 스테파노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완고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럼으로써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럼으로써 또한 성령을 거스릅니다.(사도 7,51 참조) 성령을 거스르지 않으려면 우리에게서 돌 같이 굳은 마음을 도려내고 부드러운 마음을 심어주시도록 기도하고 또 그런 마음을 지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6월 9일, 이창훈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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