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7일 (수)
(백) 부활 제3주간 수요일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본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수도 ㅣ 봉헌생활

수녀원 창가에서: 봉쇄의 뜰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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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10-21 ㅣ No.612

[수녀원 창가에서] 봉쇄의 뜰 안에서

 

 

계절의 여왕인 5월과 천고마비의 계절인 10월은 가톨릭교회에서 공통점이 있는 달입니다. 성모 성월인 5월과 묵주 기도 성월인 10월이 모두 성모님께 봉헌된 달이라는 것이지요.

 

저희 도미니코 수도회는 묵주의 기도로도 널리 알려져 있지요. 성모님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도미니코 성인은 갓 설립된 수도회를 성모님의 보호에 온전히 맡겨 드리길 원했습니다. 또한 성인의 설교에는 늘 성모님께 드리는 기도가 빠지지 않았습니다. 성인의 제자들도 이 아름다운 신심을 널리 퍼뜨렸고 무엇보다 이 기도의 힘으로 많은 결실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묵주 기도가 오늘날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15세기 도미니코회 알랑 드 라 로슈 수사님의 덕분입니다. 이분이 당시 성모송만 바치던 묵주 기도에 그리스도의 생애와 수난, 영광을 묵상하는 신비를 만들어 보급하기 시작하셨거든요. 묵주 기도의 명성에 걸맞게 도미니코회 모든 수도자는 성모님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답니다.

 

이제 ‘봉쇄의 뜰’ 안에서 우리 하늘 엄마에 대해 함께 나누어 볼까 합니다. 과연 봉쇄 수도자들은 묵주 기도를 바치는지, 성모님과의 관계는 어떤지 궁금하시지요? 여러분의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오늘 여러분을 봉쇄의 뜰 안으로 초대합니다.

 

 

눈으로 보는 성모님

 

먼저, 재미있는 퀴즈로 시작해 볼까요?

 

“과연 우리 봉쇄 수도원 안에는 몇 개의 성모상이 모셔져 있을까요?”

 

“측정 불가능!”

 

왜 그런지는 이유를 설명하면 이해되실 텐데요. 자, 그럼 수도원 건물 밖에 모신 성모님부터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수녀원 회랑 중앙에는 아기 예수님을 어깨 너머로 번쩍 들어 올리고 계신 청동의 큰 성모님이 모셔져 있답니다. 그 다음 뒷문을 통해 산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 가다 보면 산 중턱, 무성한 나무들 사이에서 저희 수도원을 사랑스럽게 내려다보고 계신 일명 ‘산의 성모님’이 계시지요. 거기서 다시 산길을 따라 내려가면 날마다 열띤 시합이 벌어지는 배구장 옆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계신 대리석 성모님이 계십니다.

 

이제 본관을 지나 수련소로 가면 소박한 정원에 열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 성모님’이 수련소 식구들을 맞이하고 계신답니다. 수련자들에게 어울리는 성모님이시지요. 거기서 아래로 난 길을 따라가면 이내 ‘농부 성모님’이 보입니다. 왜 농부 성모님이냐 고요? 땀방울을 빗방울처럼 흘리며 밭에서 일하는 우리 수녀님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계시기 때문이지요. 이제 봉쇄 수도원 담 끝에 도착하게 되었네요.

 

이처럼 수도원 건물 밖에 있는 성모상만 해도 다섯이나 된답니다. 이 밖에도 옷방, 공동방, 당가, 제병방, 지나다니는 복도 등 곳곳에 성모님이 계시고, 벽에 걸린 성모님 성화까지 합하면? 자, 이제 왜 ‘측정 불가능’인지 아시겠지요?

 

 

기도로 만나는 성모님

 

이것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고요, 하늘 엄마를 향한 저희들의 사랑은 하루에도 여러 번 드러난답니다.

 

땡땡땡! 아침 기상 종이 울리면 기쁜 마음으로 일어나 주님께 사랑의 고백을 드리지요. 그리고 거룩한 수도복을 입으며 마리아의 노래, 이른바 마니피캇을 읊는답니다.

 

또 아침 기도 뒤에는 우리 자신과 온 세상을 성모님의 티 없으신 성심께 봉헌하고 아침 일과 전에, 또 낮 오락과 저녁 오락 뒤에도 성모님께 노래 부르며 이 봉헌을 갱신한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끝기도 때 부르는 ‘성모 찬송’(Salve Regina)은 그야말로 절정의 순간이라고 할 수 있지요.

 

묵주 기도를 바치느냐고요? 물론이죠. 하루 두 번은 성당에서, 한번은 공동 작업 시간에 바친답니다. 또한 수도원의 오랜 전통에 따라 10월 7일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이 되면 저희는 신비 20단을 제비뽑기한답니다. 그래서 일 년 동안 한 사람이 한 신비를 책임지고 바치는데 대개 밤 기도를 마치고 각자 수방(수도자의 방)으로 돌아갈 때 바친답니다. 온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지요.

 

우아! 봉쇄 수도원 안이 정말 성모님으로 꽉 찼지요? 그 밖에도 성모님 축일이나 대축일이 다가오면 아름다운 행사, 이를테면 연극이나 나눔의 시간이 마련되기에 지루할 겨를이 없답니다.

 

 

세상에서 꼭 필요한 것은

 

이제 왜 성모님을 사랑하는지 질문이 나올 법도 한데요. 대답하기에 앞서 또 다른 퀴즈를 내 볼까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것, 절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돈? 건강? 가족? 저는 ‘엄마’라고 생각합니다. 고도로 발달한 기술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마음 안에서 이 ‘엄마’라는 단어를 지워 버린다면 인류는 극도의 메마름과 영적 빈곤 속에서 멸망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엄마라는 존재는 우리의 무의식 속에 보이지 않는 끈으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알게 모르게 우리는 늘 이 ‘엄마’를 그리워하고 찾습니다.

 

어쩌면 예수님께서 십자가 아래에서 당신 어머니를 내어 주신 이유가, 우리에게 엄마가 얼마나 필요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시겠지요. 우리를 무척 사랑함에도 늘 인간의 나약함을 지니는 우리 육신의 어머니와 달리 이 하늘 엄마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십니다.

 

글자 그대로 늘,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시고 우리의 옹알이를 정겹게 들으신답니다. 저희 봉쇄 수도자들의 사명 가운데 하나가 이 영적 모성애를 연장해 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세상의 모든 이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하늘나라에서 다시 태어날 때까지 예수님과 함께 우리 품에 안고 가는 것…, 참으로 값진 사명이지요? 이 사명에 성실할 수 있도록 저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길 청합니다.

 

이 글을 마무리하며 독자들에게 감히 약속드려 봅니다. 하늘나라에서 우리가 서로 얼굴을 마주할 때까지 저희의 가난한 삶과 기도로 독자 한 분 한 분과 늘 함께하리라고요.

 

주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그 안에 우리를 향한 무한한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이지요. 조금만 고개를 들어 바라보면, “너를 사랑한단다.” 하고 말씀하시는 예수님과 성모님의 진한 사랑 고백을 들으실 수 있을 거예요. 언제나 예수님과 성모님의 귀여운 자녀로 살아가시길 기도드립니다.

 

* 이주혜 성삼의 마리아 - 도미니코회 천주의 모친 봉쇄수도원 수녀.

 

[경향잡지, 2018년 10월호, 이주혜 성삼의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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