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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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이스라엘 성지: 예수님께서 희년을 선포하신 나자렛 회당 성당, 그리고 절벽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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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8-03 ㅣ No.1775

[예수님의 생애를 따라가는 이스라엘 성지] 예수님께서 희년을 선포하신 나자렛 회당 성당, 그리고 절벽산

 

 

– 나자렛 절벽산에서 내려다 본 이즈르엘 평야. 왼쪽의 둥근 산이 예수님의 모습이 거룩하게 변하신 타보르 산이고, 맞은편에 보이는 산기슭에 나인 동네가 있다.

 

 

나자렛은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는 마리아의 응답에 하느님의 아들이 친히 사람으로 잉태되신 인류 역사의 위대한 사건이 일어난 곳입니다. 나자렛은 또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어머니 마리아와 양부 요셉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합니다. 이를 기념하는 주님 탄생 예고 대성당과 성가정 성당(성요셉 성당이라고도 함)에는 세계 곳곳에서 찾아오는 수많은 순례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자렛에서는 이 두 성당 말고도 복음서, 특히 루카 복음서에서 전하는 예수님의 자취를 직접 느껴볼 수 있는 두 곳을 더 볼 수 있습니다. 나자렛 회당 성당과 절벽산입니다. 루카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신 후 성령을 충만히 받아 갈릴래아로 돌아가시어 “그곳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모든 사람에게서 칭송을 받으셨다”고 예수님의 갈릴래아 활동을 압축해서 전합니다. 그런 다음 바로 이어서 나자렛에서 희년을 선포하신 사건을 소개합니다(루카 4,16-30 참조). 편의상 그 내용을 둘로 나눠 살펴봅니다.

 

– 나자렛 회당 성당 내부(좌) 나자렛 회당 성당 입구(우)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1. 당신이 자라신 고향 나자렛에 가신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이 되어 그곳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구약 성경 이사야 예언서가 적힌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런 대목을 읽으십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주시어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시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수님께서 읽으신 부분은 이스라엘 백성이 고대하던 구원을 알리는 이사야 예언서 61장 1-2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이 50년마다 지내는 희년에 관한 레위기 25장 8-13절과도 관련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께서는 회당에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십니다(4,16-21 참조).

 

예수님께서 희년이 당신과 함께 실현되었다고 선언하신 그 나자렛 회당이 있던 자리에 회당(시나고그) 성당이라고 불리는 작은 성당이 있습니다. 나자렛의 성요셉 성당의 바로 동쪽에 있습니다. 하지만 성요셉 성당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길은 없고 이 회당 성당으로 가려면 나자렛 잉태 예고 대성당 정문으로 나와서 좁은 시장 골목을 조금 걸어야 합니다. 성당이라기보다는 벽돌로 된 아주 작은 경당이라고 할 수 있는 나자렛 회당 성당은 예수님 시대에 있던 회당 자리 위에 십자군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중앙 제대, 그리고 좌우 벽면의 긴 나무 의자 몇 개가 전부인 소박한 성당은 그래서 오히려 순례자들에게는 더욱 뜻 깊은 곳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 성당 바닥에서 어디에서 어린 예수님은 말씀을 듣기도 하고 기도도 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루카 복음에서 전하듯이 갈릴래아에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가르치시던 예수님께서는 이 회당에서 은총의 해, 곧 희년이 당신과 함께 실현되었다고 나자렛 주민들에게 선포하셨습니다. 회당에 조용히 앉아 두루마리를 받아 펼치시고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을 읽으신 후 이 말씀이 오늘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고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잠시 그려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은총의 해의 정신으로, 희년의 정신으로 새로운 우리 삶을 새롭게 하면 좋겠습니다.

 

나자렛 절벽산.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밀어 떨어뜨리려한 ‘절벽산’

 

2.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처음에는 놀라워하면서 모두 예수님을 좋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그들은 예수님이 자기들이 잘 아는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면서 수군거리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면서 구약의 엘리야와 엘리사 두 예언자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십니다. 사람들은 이 말씀에 화가 치밀어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아 벼랑 위에서 떨어뜨리려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고 루카 복음서는 전합니다(루카 4,22-30 참조).

 

사람들이 예수님을 밀어 떨어뜨리려고 있던 그 벼랑으로 전해지는 곳이 나자렛 입구 남쪽 산등성이에 있습니다. 해발 397m의 케두민(Kedumin) 산인데 산 서남쪽 경사 깎아지른 벼랑처럼 가팔라서 흔히 절벽산 혹은 추락산이라고 부릅니다. 2009년 5월 요르단과 이스라엘 성지를 순례한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이 나자렛을 방문했을 때 먼저 이곳 절벽산에서 야외 미사를 거행했지요.

 

– 나자렛 절벽산에서 갈릴래아 호수 북단의 카파르나움까지 이어지는 약 70km의 복음의 길 트레킹 코스의 출발점을 알리는 표지석.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의 장소인 타보르 산이 왼쪽에 둥근 사발을 엎어 높은 모양으로 자리 잡고 있고, 멀리 오른쪽 산기슭 한쪽에는 예수님께서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신 동네 나인(루카 7,11-17)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이스라엘 최대 곡창인 이즈르엘 평야가 한눈에 펼쳐져 보입니다. 구약성경 사무엘기, 열왕기, 유딧기, 호세아서 등에 자주 등장하는 바로 그 이즈르엘입니다.

 

이 절벽산에서 눈 아래 펼쳐지는 성경의 무대를 조망하고 나면 꼭 묵상해 보아야 할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벼랑 끝으로 밀어 떨어뜨리려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셨다”(루카 4,30)는 구절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예상치 못한 뜻밖의 순간, 위기의 순간을 만나게 마련입니다. 그럴 때면 어찌할 줄 모르고 허둥대기보다는 벼랑 끝에 내몰리신 예수님을 떠올리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유유히 떠나가신 예수님 은총의 도움에 힘입어 예수님처럼 유유히 위기를 극복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8월호, 이창훈 알퐁소(가톨릭평화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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