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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 과학이 도달할 수 없는 인간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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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2-19 ㅣ No.1082

과학이 도달할 수 없는 인간의 신비

 

 

얼마 전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리며 이세돌 9단과의 대국에서, 4승 1패의 승리를 거둔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를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다. 컴퓨터를 통해 추론 · 탐색을 하는 기본적인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연구는 1950년대 후반부터 지속적으로 있어 왔지만 알파고의 승리는 더욱 남다른 의미가 있다. 바로 인공지능의 능력이 컴퓨터가 스스로 이미지를 분류하는 딥러닝(Deep Learning)이라는 획기적인 프로그래밍을 만나 하드웨어적인 도약을 보여준 결과였기 때문이다. 인간과 같은 뇌의 활동과 마음을 담은 강한 인공지능의 출현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했다. 이외에도 이미 간단한 음성인식 장치나 청소하는 로봇, 의학진단에 사용되는 ‘왓슨’ 등은 실생활에서 상용화되었고, 구글의 무인자동차가 도로를 활주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첨단정보통신산업은 이전까지 익숙하던 우리 삶의 형태를 빠르게 바꾸어가고 있다. 무엇이 얼마만큼 어떻게 바뀌어 갈지 정확히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인간이 가진 고유한 영역까지 앗아가 버리는 것은 아닌지 막연한 두려움마저 느끼게 한다. 신앙인이자 인공지능 전문가인 가톨릭대학교 컴퓨터공학부 노상욱 교수를 만나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과학기술의 발전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들어본다.

 

 

기계학습으로 이루어지는 인공지능

 

“제가 1999년에 미국의 텍사스대학에서 인공지능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그때는 인기가 별로 없었지요. 제 학위 주제가 ‘인공지능에서의 기계학습(Machine Learning) 연구’였어요. 15년이 지나니까 요즘처럼 인공지능이 각광을 받는 시기가 되었네요, 하하! 저의 학문적인 출발점도 인공지능의 대가들이 인공지능을 정의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가장 학문적으로 정의한 사람을 스튜어트 러셀(Stuart Russell, 1962~)로 보는데, 그는 인공지능을 ‘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주체를 프로그래밍하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즉 기계학습과 예습 유형도를 기반으로 이성적 판단을 하도록, 이성적 판단의 기준이 되는 올바른 행동을 하도록 프로그래밍(programming)하는 것이지요.”

 

인공지능 연구자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무엇일까? “인공지능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에요.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주체를 구현하고자 합니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자율적인 행동으로 이해되기에 ‘어, 사람이 필요 없네… 사람이 할 것을 로봇이 하네!’라고 생각하지만 사람이 가진 감성이나 창작의 영역은 포함되어 있지 않지요. 저는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것까지는 기계학습으로 정할 수 있고 학문적으로 인공지능의 영역은 여기까지로 봅니다. 그 이상은 예를 들어 감성, 분노, 무의식, 창작이라는 영역을 기계학습에 의해 로봇이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하는 의견에는 보수적입니다. 그러나 알파고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하드웨어의 발전이 너무 빨라서 가능성이 완전히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인공지능의 기본 원리인 기계학습 자체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고 봅니다.”

 

 

인공지능의 설계자는 인간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이 세상을 다스려라’(창세 1,27-28 참조)라는 소명을 주셨다. 이러한 소명을 가진 인간은 이성으로 사물들의 질서를 깨달을 수 있으며 자기 의지로 진리와 선을 탐구하며 사랑하는 데에서 존재의 완성을 찾는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704항 참조). 그러나 인공지능은 생각하고 행동하게끔 프로그래밍 해주는 인간 설계자를 필요로 한다. 인간이 프로그래밍하는 대로 학습하게 된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출발점은 다른 것이다. 인공지능을 프로그래밍하는 인간의 올바른 윤리의식도 강조되는 부분이다. 노 교수는 말한다.

 

“인공지능의 학습에 대해 조금 더 설명을 드리면 미로학습을 예로 들 수 있지요. 잘하면 플러스 100만점을 주고 못하면 마이너스 100만점을 줍니다. 인간의 편리함을 더 해 줄 수 있는 방식, 빌 게이츠가 정원을 걸을 때 좋아하는 음악을 들려주는 등의 편리함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계에 입력할 수 있습니다. 아마존에서 책을 보다가 사고 싶어서 가지고 나오면 그대로 결재되는 시스템 등입니다. 기사를 작성할 때 두 개의 문단을 주고 주제어를 뽑아 헤드라인을 추출해 낸다던지, 작곡을 하는 로봇의 등장 같은 것이지요. 그러나 프로그래밍을 나쁜 목적으로 입력하게 되면 그 설정대로 기계는 학습하게 되지요.” 사용자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해지는 부분이다.

 

“사용자인 인간의 편의에 의해 설정되어 질 수 있는 것이 인공지능의 시스템입니다. 인류가 다이너마이트의 효과를 알고 좋은 곳에 쓰일 수 있도록 관리하고 있듯이 인공지능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인류가 잘 관리하면 인간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데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지요. 단순한 업무 등은 자료를 일반화해서 알고리즘(algorithm)으로 정확히 정의하고 지시할 수 있기에 앞으로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많다고 봅니다. 그러나 일반화하기에 어려운 영역이 있지요, 인간의 감성이나 직관, 창의력이 요구되는 분야입니다.”

 

 

인간, 창조된 신비이며 하느님의 모상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설레는 날이 있고, 같은 음악을 들어도 우울하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인간 안에 감추어진 수많은 무의식과 예상치 못했던 기발한 아이디어를 하나의 알고리즘으로 일반화하는 데에는 아직 무리수가 있다.

 

노 교수도 이러한 인간의 감성과 직관을 인공지능이 담기에는 현재로는 어렵다고 한다. 또한, 획기적인 하드웨어의 발전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감성과 직관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일반화를 추론해 내었다고 하자. 그래도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기본 개념 구조인 프레임워크(framework)가 아직은 인공지능에는 없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를 거듭 할수록 더욱더 하느님이 창조하신 인간이라는 존재의 신비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아내가 신자여서 결혼은 성당에서 했지만 세례는 미국에서 유학하던 1996년에 받았습니다. 미조리 주립대에서 교직을 하면서 견진도 받고 레지오 활동도 했죠. 제가 연구하는 분야가 기계가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에 대한 원리를 연구하다 보니, 사람에 비하면 기계가 너무 유연하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기계학습으로 여러 상황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것이 인간의 결정에 비해 쉽지 않았어요. 알고니즘적인 상황에서 보면 뇌를 가진 인간의 결정은 너무 복잡한 것이고 이해하기가 힘들었지요. 과학의 힘으로는 풀리지 않는 많은 의문을 느꼈구요. 그런 의미에서 창조주가 만든 것 중에서 인간을 대체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대체되어 질 수도 없다고 봅니다. 이러한 한계를 많이 느끼면서 인간이 생각하고 사고하는 영역에 비하면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사용하는 것은 정말 일부분임을 알 수 있었지요. 이것이 바로 신앙의 신비인 것 같아요!”

 

‘하늘에 별들을 누가 셀 수 있는가? 강변에 모래알 헤아릴 수 있는가? 바다에 물방울 누가 셀 수 있는가?…’라는 성가가 있다(가톨릭 성가, 161번 참조). 이 성가처럼 노 교수도 첨단 과학을 연구하면서 오히려 창조주 하느님과 인간의 신비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인간은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창세 1,31)라고 기뻐하셨던 하느님을 닮은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외침, 2018년 2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도희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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