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영성ㅣ기도ㅣ신앙

가르멜 영성과 기도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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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빈 [ssk5762] 쪽지 캡슐

2017-08-13 ㅣ No.998


초자연적 기도...모든 능력 하느님과 일치

 #일치의 기도(하느님과 합일)
 완전히 초자연적인 기도로 짧은 순간이지만 모든 능력이 하느님과 일치해 있어 자연적인 면에서 능력은 정지 상태에 있다. 여기서는 다만 즐기는 것뿐인데 자기가 즐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이 단계는 순수 초자연이므로 영혼 자신도, 악마도 개입하거나 방해할 수 없다. 이 초자연적인 하느님과의 합일을 위해 인간 스스로 이 능력을 정지시키는 것은 교만이다. 사이비 신비가들은 이것을 흉내 내긴 하지만 곧 무리가 오고 혹 기능을 정지시킬 수 있어도 하느님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관상기도는 순수 초자연적 은혜이기에 우리가 의지적, 임의적으로 능력들을 멈춰서는 안 된다. 이를 한번 맛본 영혼은 '하느님과 일치' 때문이 아니라 그 때 느꼈던 감미로움과 그윽한 행복감을 다시 느끼고 싶어 이런 저런 시도를 하는 것을 데레사 성녀는 교만이라 말한다. 우리 힘으로 날이 밝게 할 수 없듯이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뉴에이지 운동은 이런 영적 기쁨을 느끼기 위해 이런 상태에 들어간 사람들의 뇌파를 측정해 임의적으로 음악이나 다른 테크닉을 통해 일치의 상태와 비슷한 뇌파 상태에 들어 가게 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기쁨과 쾌락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느님과의 합일도 아니고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시려는 영적 기쁨도 아니다. 이 사이비 쾌락은 육체적인 쾌락보다 영적이기에 더욱 위험하고 해롭다.
 영혼의 성 5궁방에서 이 기도를 번데기에서 '하얀나비'로 변모된 비유로 설명하고 있다. 이 기도의 특징은 자신이 경험한 것이 분명치 않아 뚜렷이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영혼은 자신이 하느님과 일치되어 있는 것을 본다는 것과 이 은총의 너무도 두드러진 확실성만이 영혼 안에 남기에 자신이 하느님 안에 있었음을 조금도 의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상태에 있는 사람은 무엇을 보거나 듣거나 이해하지 못 한다. 하느님은 그 영혼의 깊은 곳에 계시기에 그 사람은 제 정신이 돌아온 뒤에도 자기가 하느님 안에 있고 하느님이 자기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의심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은 현상으로서가 아니라 하느님만이 영혼 안에다 심으실 수 있는 그 확실성으로 이루어진다. 이처럼 관상은 시현이나 겉으로 들어나는 현상들에 있지 않고 영혼이 하느님과의 내밀한 친교 속에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런 영혼에게 데레사 성녀는 당부한다.
 "영혼은 마음기도 중에 지극히 큰 은총을 받게 되는 경우라도 자기 자신을 조금도 신뢰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또 넘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위험스런 기회에는 어떻든 몸을 드러내 놓아서는 안 됩니다. 이 점을 잘 경계해 주십시오. 이 권고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악마가 여기서 사용할 수 있는 책략은 은총이 확실히 하느님으로부터 오는데도 있는 힘을 다해 그 은총 자체를 자기가 목적한 곳으로 돌리려 하는 것입니다. 그 작자는 덕이나 극기, 이탈에 아주 익숙하지 못한 영혼들을 속이려 듭니다. 그 이유는 영혼들이 이 상태에 한번 다달았어도 또한 아무리 좋은 소망과 결심을 품었어도 죄 되는 기회나 위험을 극복할 만한 힘을 간직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설령 영혼이 이런 상태에 다달았어도 자진해서 싸움터로 나가려 할 만큼 자기 힘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그에겐 자신을 삼가 지키는 것으로 넉넉합니다. 그는 둥우리에서 나올 수 있고 하느님께서도 가끔 꺼내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 날 수는 없습니다"(자서전 19장).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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